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 나치 시대 독일인의 삶,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만든 오욕의 역사
밀턴 마이어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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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일을 뽑으라고 하면 사람들은 아마도 망설이지 않고 2차세계대전 당시에 일어났던 유대인이나 공산주의자, 집시에 대한 나치의 학살을 이야기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점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잔혹한 점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기에 언어의 조작을 통해 학살을 최종 해결이라고 한 점에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이것이 나치에 의해서만 일어난 것일까? 도대체 독일에 열성 나치 당원이 몇 명이나 될까? 이 책은 1955년에 씌여졌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열성 나치 당원을 1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고, 당시 독일의 인구를 약 7천만 명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100만 명이 6900만 명의 의사에 반해서 그러한 학살을 저질렀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여기서 출발한다.

 

이 책의 저자는 유대계 미국인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다음 1년 동안 독일(예전에는 서독이다)에 가서 살았다. 살면서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교수라는 직함을 십분 활용하여 그 지역 주민들을 사귀게 된다.

 

그를 친구라고 하는데 다양한 직업군이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교사(독일에서 교사는 우리나라 교수쯤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는다)이고, 재단사도 있고 빵집 주인도 있듯이 우리말로 장삼이사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이들은 히틀러 집권 당시 나치에 가입한 나치 당원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은이는 이들을 '작은 자'라고 하는데, 이런 작은 자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나치 정권은 유지되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을 펼친다.

 

즉,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전쟁이 소수의 전쟁광이나 학살광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수의 방관하는 사람들, 또는 암묵적 동의를 하는 사람들에 의지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이런 10명과의 만남이 잘 나와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은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당시의 행동을 그다지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때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뒤에 '아이히만 재판'에서 너무도 많이 나온 말 아닌가.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의 표지에 '나치 시대 독일인의 삶,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만든 오욕의 역사'라고 되어 있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을 잘 읽어보면 이들은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을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주어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날 날을 사는 사람에게 선하다는 말을 쓰면 안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선하다는 표현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맞고 이들은 침묵한 것이 아니라, 어차피 앞날을 내다보며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에 이들의 행동은 방조라고 해야 한다.

 

나서서 행동하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그러한 방조.

 

이들의 방조 덕에, 또 참여 덕에 나치는 정권을 잡을 수 있었고, 자신들의 행동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었다.

 

2부에서는 독일 국민성에 대해서 나오지만, 굳이 그것을 참조하지 않아도 될 거 같고, '악의 평범성'처럼 주어진 일에 생각을 하지 않고 충성을 다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니...

 

제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했을 뿐이다. 나는 내 삶을, 또는 내가 살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지 않은가. 이는 커다란 광풍이 지나간 다음에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세계 어디서나 이런 말을 들을 수가 있다. 굳이 전후의 독일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통일이 된 독일이고, 다시 무장도 되었고,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기도 한, 유럽에서는 강국 소리를 듣는 독일의 먼 과거 이야기에 불과한 이 책이 최근에 다시 우리나라에 번역된 이유는, 나치의 독일이 그냥 과거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자꾸 인식해야 한다. 이 책에서 미국인의 관점에서 독일을 비판했지만, 이렇게 독일을 비판했다면 저자는 당연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인종차별에 대해서, 또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에 대해서 비판했어야 한다.

 

남의 나라 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다른 나라를 비판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나라를 제대로 보고, 같은 처지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 역시 나치 시대 독일 사람들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그들과 같아지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 역시 방관하고 방조하고, 또는 참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아직도 우리는 남북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고, 동서 문제도 완전히 해결이 되었다고 할 수 없는 상태인데, 이런 상태에서 그냥 넘어가거나 또는 편견을 부추길 수 있는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가 소수의 정치권에게 이용당해 얼마나 큰 비극으로 치달았는지를 나치 독일이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라는 책을 우리는 우리에게 적용해 '우리는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한다'고 바꾸어 보아야 한다.

 

생각한다가 정말로 자유로운지, 우리 역시 어떤 편견 속에 깊게 침윤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편견들을 방관, 방조, 참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을 살펴야 한다.

 

그래야 나치 독일이 겪은 비극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한참 지난 과거라고만 치부하지 않을 그 무엇인가가 이 책에 있다. 읽으면서 계속 '지금의 나는?'이라고 나를 비춰보는 거울 역할을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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