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다시 펼쳐든 시집이다. 지독한 사랑이라. 사랑이면 사랑이지 지독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다니.

 

이것은 어쩌면 스토커에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남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는, 제 뜻대로 하려고 하는, 그런 사랑일테니 말이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지독한 사랑'이라는 시도 조금 섬뜩하다.

 

사랑에 중독되어 자신을 완전히 잃은 사랑 아니겠는가. 시인은 그런 사랑을 '시퍼런 칼끝이 죽음을 관통하는 이 지독한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온 몸을 바친 사랑. 그런 사랑이 어떨 때는 좋지만 어떨 때는 자신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상대방을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려 할 때 그 사랑은 지독한 사랑이 되고, 그런 사랑은 서로에게 고통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사랑은 상대를 상대로 인정하고, 또 다른 나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일일 것이다.

 

너를 위하여 이렇게 했다는 말이 잘못하면 상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음을, 국민을 위하여 이런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나라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여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것, 자신의 부족을 다른 사람이, 다른 존재가 채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아닐까 한다.

 

결국 진정한 사랑은 나와 남이 함께 공존하는 데서 찾아지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서 이 '나는'이라는 시를 보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순간, 세상은 또 다른 '나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그래서 나와 또다른 나들은 우리가 된다는 사실. 서로가 각자 존재하되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일서설 수가 없습니다.

내 몸의 반은 썩어 푸른 곰팡이 번지고 있습니다.

오른쪽 뇌는 굳어 단단한 돌멩이가 되었고

오른쪽 팔과 다리는 무겁기만 합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어느 누구보다 굉장한 희열을 느낍니다.

내가 왼손으로 짚는 침대 모서리

찬장머리 농 손잡이 문 손잡이 의자등 계단 난간

이것들이 다 내 몸이니까요.

 

그대여 내 몸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다면

어떻게 저들을 깊이 알 수 있었을까요.

저 혼자 온전했다지만 목발 짚은 시간들 많았는데요.

 

채호기, 지독한 사랑, 문학과지성사. 1995년 6쇄. 26쪽.

 

우리는 모두 목발 짚은 존재들이라는 사실,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내 주변의 존재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만 잘났다고 설레발을 치는 사람들, 이 시를 한 번 읽어 보라.

(뇌의 오른쪽이 망가지면 몸의 왼쪽을 못 쓴다는 과학적 이야기는 생략하자.)

 

 내 몸이 불편해지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었던 존재들이 소중한 존재로 내게 다가온다는, 그래서 그것들이 바로 나였음을, 나는 우리로서만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시이지 않은가.

 

과연 나는 온전한 존재인가. 나는 지금 내 불편함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남에게 군림하기 위해서.

 

그러면 안 된다는 것, 이 시를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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