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 이야기 단비 청소년 문학 42.195 2
박정애 지음 / 단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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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는 우리나라.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세상을 등지기도 하는 나라.

 

세상을 등지려고 할 때 그 때 기댈 수 있는 몸을 누군가가 주기만 한다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무언가 잡을 것만 있다면 그것을 잡고 놓치지 않고 제 몸을 지탱해가면서 꽃을 피우는 나팔꽃처럼(파란 나팔꽃) 생명을 지켜나갈 수 있을텐데.

 

맨 밑바닥까지 떨어져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개뿐.

 

올라가거나 그냥 주저앉거나.

 

이 소설은 이러한 밑바닥까지 내려간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밑바닥까지 추락했음에도 그 밑바닥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들 이야기.

 

그 희망이 친구이든(정오의 희망곡), 자신의 귀에 들리던 발소리, 그리고 자신과 하나임을 알게 해주는 남편이든(첫날밤 이야기), 자신 때문에 아빠가 죽었다는 자책에 시달리는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든(살 자격), 아니면 세상물정 모르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든(아주 오래된 하루), 말을 걸어줄 수 있는 나팔꽃이든(파란 나팔꽃) 무엇이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으면 삶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소설.

 

성적때문에 절망의 늪에 빠지고 가족과 갈등이 일어나는 학생이라면 '정오의 희망곡'을 읽으며 공감하고, 공감하고, 그래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음을, 이들이 모두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며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집의 맨 첫부분에 나오는 '정오의 희망곡'은 말 그대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집의 제목이 된 '첫날밤 이야기' 역시 주체로 서는 여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시댁의 횡포에 맞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작은아기를 통해서는 당당한 주체로서 살아가야 함을, 그것이 바로 생명의 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살 자격'은 자책감, 죄의식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볼 필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그냥 설교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내가 죽는 것이 과연 내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죗값. 그건 반드시 치러야 한다. 그 죗값이 바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는 갚아지지 않는다. 그런 죗값은 다른 이의 목숨을 살리는 일로, 다른 사람이 행복해 하게 하는 일로 갚아질 수밖에 없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 점을 일깨워주고 있어서, 한 때의 실수로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안 좋은 수렁 속으로 자꾸만 빠져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옳은 길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아주 오래된 하루' 역시 마찬가지다. 불행의 중첩이다. 어른이 된 태호가 겪는 불행은 그가 어렸을 때 겪은 불행과 판박이다. 그의 형 태복이 말했다고 한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은 부모는 부모도 아니라고. 그런 태복도 사고로 죽고 태호는 나락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른이 되어 '여름'이라는 아이의 아빠가 되고서도 그가 겪은 불행은 계속 반복된다. 이럴 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극단의 선택? 아니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한다. 살아남아야 '여름'이에게 아빠 노릇을 할 것이 아닌가. 여기에서도 그를 삶으로 이끄는 끈이 있다. 바로 장형사인데...

 

아주 작은 끈이라도 이끌어주는 끈이 있다면 그 끈은 바로 생명줄이 된다. 튼튼한 생명줄.

 

'파란 나팔꽃'도 마찬가지다. 전신불구가 된 남편도 나팔꽃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 아내도 나팔꽃에게 이야기를 하고, 중학생 아들도 중2병을 앓을 수도 없는 그 아들도 나팔꽃에게 이야기를 한다.

 

나팔꽃은 기댈 줄만 있어도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꽃을 피운다. 계속 뻗어나간다. 이 소설집의 마지막이 이 소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힘들다.

 

힘들어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정말 힘들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힘든 가운데서도 우리들끼리 서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 나팔꽃처럼 잡을 줄만 있으면 어떻게든 그것을 움켜쥐고 삶을 유지해 나가니까.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누군가를 위해서, 또 자신을 위해서 꽃을 피우니까. 그러니까 힘들어도 우리 주변에 우리가 기댈 무언가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 우리 역시 누군가가 기댈 무언가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이 소설집에서는 그런 점들이 너무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서로를 삶으로 이끌어주는 줄이 있음을, 기댈 수 있는 기둥들이 있음을 소설이라는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살아라. 넌 살 자격이 있다. 아니 살아야만 한다. 그것은 네 의무이자 권리다. 

 

덧글

 

사실 이 소설집에는 소설이 한 편 더 있다. '젖과 독'이라는 아마도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시대의 궁궐을 배경으로 한 소설. 신분사회, 선택이 여지가 없는 그런 시대에 왕세자로 태어났다는 것, 적성에 맞지도 않은 공부를 하고, 누구에게도 위안을 받지도 마음을 털어놓지도 못하는 왕세자의 모습. 유모의 젖에서 위안을 느꼈으나 이제는 그나마도 느낄 수 없는. 아직 세자빈은 그 역할을 못하는. 그래서 '독'을 생각하고, 그 '독'에 자신의 몸과 정신을 침식당하고 있는 왕세자.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어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다. 어떻게 희망이 있겠는가?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데... 그냥 처연하게 왕세자의 모습을 따라갈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아무리 세상이 암울하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 의지를 우리가 발휘할 수 있다.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선택을 할 수가 있다. 그러니 이 소설을 통해 선택을 할 수 있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왕세자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함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선택에 바로 우리는 서로 기댈 수 있는 기둥, 줄들을 마련할 수 있고, 주변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이 소설을 통해 다른 소설들의 의미가 더 살아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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