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 들렀다. 시집이 놓여 있는 서가에서 눈에 들어온 시집.

 

하노이-서울 시편.

 

베트남에 여행했던 기억이 -내 첫 외국여행이 베트남이었고, 하노이였고, 하롱베이였다- 떠올랐고, 예전에 들었던 '월남'이라는 말, 그리고 '베트콩'이라는 말, '호지명(호치민)'이라는 사람, 또 고 리영희 선생의 '베트남 전쟁'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손에 들고 집에 함께 온다. 이제는 나와 함께 하는 시집이 되었다.

 

하노이, 베트남의 수도.

 

수많은 강들이 있다고 해서 하노이(河內)

 

우리나라와는 인연이 없어도 될 나라였는데, 베트남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와 인연을 맺은 나라.

 

그닥 좋은 인연이랄 수 없는데... 그래도 지금은 국교를 맺고 서로 왕성하게 교류를 하고 있는 나라.

 

식민지라는 체험을 함께 했지만, 그 뒤에 걸어온 길은 서로 다른 나라.

 

그들은 프랑스와 미국과 싸웠고, 또 자기들끼리도 싸웠는데, 우리 역시 일본과 그리고 동족끼리 싸웠던 그런 아픔을 함께 겪은 나라.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베트남에 가서 문인들과 교류하고, 우리의 잘못을 사과도 하고, 사실 이 시집에도 나오지만 사과보다는 유감이라는 말로 대체하긴 했지만...(식민 지배 체험을 공유한 한국과 베트남 양국 사이에 적대행위가 있었던 점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 이 시집 52쪽에서) 그렇게 함께 어울려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나라의 수도 하노이에 갔다 온 체험을 시로 쓴 시집.

 

베트남에 대해서 안다면 이 시집에 나와 있는 시들이 가슴에 다가올 수 있으리라. 아니, 우리 역사도 알아야만 더 가슴에 다가온다.

 

그 중 한 시.

 

다시, 하노이로

                     -  하노이-서울시편 9

 

돌아오는 길은 하롱 Bay, 눈물 고인다

낡은 10인승 승합차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은 하롱 Bay, 조선식으로,

비가 숲을 검게 하고 호수를 빛나게 하는

시골의 영롱한 장면처럼

 

창 밖은 일찌감치 어둠이 깔리고

전력이 부족한 하노이 외곽 마을에서는

그 밖에도 밤이 무언가를 포옹하며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없다

 

하노이 가까울수록 간절하다

하노이에 도착해도 후줄근한 70년대 신촌

변두리까지밖에는 가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귀향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간절한가?

그것은 내가 30년 전에 못 가보았던 길이다

공포가 없는 길이다

 

전쟁이 끝나고 마침내 사람들의

마을이 밤을 식구처럼 포옹한다

아, 이, 안온과 경건

 

돌아오는 길은 하롱 Bay, 눈물 고인다

 

김정환, 하노이 서울 시편, 문학동네. 2003년. 28-29쪽.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우리나라를 만난다. 우리나라의 70년대를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70년대와는 다르니, 그곳에는 공포가 없다. 독재자가 없다.

 

그런 나라에서 우리의 과거를 보게 되는데ㅡ 단지 과거만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도 본다. 우리가 잃은 것, 그러나 추구해야 할 것. 그것. 그래서 그런 그리움이 눈물 고이게 한다.

 

하노이와 서울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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