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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밝은 달빛이 유감한 까닭에 ㅣ 우리학교 작가탐구클럽
정재림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상허 이태준.
그는 나에게 "책"이라는 수필 한 편으로 다가왔다.
'책(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로 시작하는 그 수필.
책을 좋아하던 나에게 책에 대해서 쓴 이 수필은, 그리고 책을 그렇게도 많은 대상에 비유하는 그 글은 너무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것이 상허 이태준에 대해서 지니게 된 첫 만남이었다. 이어서 그는 '문장강화'라는 글쓰기 책으로 다가왔고...
문장의 아름다움, 조선의 모파상, 단편소설의 완성자. 이것이 바로 이태준을 말해주는 수식어였다. 이것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소설은 내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냥 그랬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이태준의 소설은 카프 계열의 소설보다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냥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 그런 느낌만을 주었다.
그런 그에 대해서 여러 책을 읽긴 했지만, 기억 속에 그리 오래 남아 있지 않은 작가였다. 다만 월북되어 생사를 모른다는 사실, 그리고 구인회 일원으로 이상을 시인으로 만들어주었다는 정도.
그에 대해 많은 전기적 사실을 읽었을텐데도 머리 속에 얼마 남아 있지 않았는데, 그의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는 점을 분명 읽었을텐데도 그가 부유한 생활을 한 것처럼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까닭은 아마도 그의 '상고주의'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한다.
즉, 이태준에 관한 책을 읽어도 그의 어려운 시절은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그가 고완품(골동품)을 비롯해 난초 등 과거의 것들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만 기억에 남아 있게 된 셈이다.
이런 것들이 기억에 왜곡을 일으켜 이태준은 그냥 부유한 삶을 산 사람이겠거니 하고 어떤 고정된 상을 만들어버렸다.
이게 아닌데... 열 살이 되기 전에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잃은 사람.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안 봐도 뻔한 일 아닌가.
온갖 일을 하면서 고학을 했음에도 고등학교도 일본에서 한 대학 유학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사람. 기껏해야 1930년대 신문사 기자와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을 하면서 신문에 연재소설을 쓴 돈으로 생활에 안정을 찾은 사람.
진정한 예술작품을 쓰고 싶었으나 돈에 매여 관심을 끌어야 할 신문연재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래서 그의 장편을 읽고 실망한 하고, 뭐, 이런 통속소설이 다 있어 하면서 그의 소설은 단편밖에 쓸 만한 소설이 없다고 단정했던 나 자신이 조금은 한심스럽게 느껴지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태준을 조금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되어서 그런지, 이 책은 학생들에게 읽히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쓰여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렵지 않게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태준이라는 학생들에게는 조금 낯선 작가를 이해할 수 있게 그의 작품과 생애를 잘 연결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어쩌면 시인보다는 소설가였기에, 소설에는 필연적으로 줄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이태준이라는 작가를 소설과 연결지어 설명하기에 훨씬 수월했겠지만, 그래도 처음 읽는 사람도 이태준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설명하고 있지 않나 싶다.
남과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작가이지만, 북한에서 어떻게 세상을 떴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이지만, 그는 1930-40년대 우리나라 대표적인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해금이 되어 우리나라에서 연구가 되고 '상허문학회'라는 단체가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의 단편소설은 읽을 만하고, 생각할거리가 많으니 말이다. 하긴 요즘은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니, 그가 우리나라 근대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이제는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천천히 학생들이 이 책을 읽으며 상허 이태준이라는 사람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더불어 그의 대표적인 수필집은 "무서록"도 읽고, 또 글쓰기 책인 "문장강화"도 읽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