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35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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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공감 능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그것들을 대한다. 그런 태도가 시에 나타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그냥 지나쳤던 것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 또 무시했던 것들, 애써 숨기려했던 것들을 시를 통해 받아들이는 과정이 바로 시를 읽는 과정일 것이다.

 

이번 김선우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딱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읽어가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런 따스함. 시가 주는 은혜인지도 모른다.

 

이런 따스함을 넘어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에서 공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대로 올수록 남들과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오로지 경쟁 경쟁(하다못해 공기업조차도 성과제로 운영을 하면서 경쟁체제를 구축하고, 또 공기업을 민영화-민영화가 아니라 사영화가 맞는 언어다-하겠다고 한다)하여 다른 이에게 공감하기보다는 다른 이를 눌러야지만 자신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가 팽배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남들과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14년 초판 12쇄. 45쪽

 

사람들이 죽어가도, 굶어가도 내 일이 아니니 관심이 없다는, 국민이 힘들어 하는데,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는 지도자... 공감능력의 부족.

 

이 시에서 이렇게 공감하는 마음이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굳이 크로포트킨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는 경쟁보다는 협동이 더 주요했고, 상대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인정을 받아왔으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하는 능력을 되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공감하는 능력이 이 시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지금 이 시대와 관련짓는다면 정부에서 발표한 쌀 수입 관세율을 513%로 했다고 하는데, 농민들이 바라는 것은 쌀 수입 전면 반대 아니던가.

 

관세율을 높여서 우리나라 쌀 가격보다 외국의 수입쌀 가격이 한참 비싸면 우리나라 쌀을 살 것이라고 하는데, 협상이란, 그리고 관세율이란 지속적으로 내려가기가 쉽기 때문에 결국 우리나라 쌀 농사는 힘들어지게 되고 식량주권이라는 말은 무색해지리라.

 

농민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정치인들, 관료들. 그들은 높은 관세율로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다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쌀 수입이 되는 것 역시 우리들의 생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시, '깨끗한 식사'

 

                                        깨끗한 식사

 

  어떤 이는 눈망울 있는 것들 차마 먹을 수 없어 채식주의자 되었다는데 내 접시 위의 풀들 깊고 말간 천 개의 눈망울로 빤히 나를 쳐다보기 일쑤, 이 고요한 사냥감들에도 핏물 자박거리고 꿈틀거리며 욕망하던 뒤안 있으니 내 앉은 접시나 그들 앉은 접시나 매일반. 천년 전이나 만년 전이나 생식을 할 때나 화식을 할 때나 육식이나 채식이나 매일반.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는 것인데, 일테면 만년 전의 내 할아버지가 알락꼬리암사슴의 목을 돌도끼로 내려치기 전, 두렵고 고마운 마음으로 올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고 (시장에도 없고) 내 할머니들이 돌칼로 어린 죽순 밑동을 끊어내는 순간,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고) 사뭇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는 것.

 

  내 몸에 무언가 공급하기 위해 나 아닌 것의 숨을 끊을 때 머리 가죽부터 한 터럭 뿌리까지 남김없이 고맙게, 두렵게 잡숫는 법을 잃었으니 이제 참으로 두려운 것은 내 올라앉은 육중한 접시가 언제쯤 깨끗하게 비워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도대체 이 무거운, 토막 난 몸을 끌고 어디까지!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14년 초판 12쇄. 20-21쪽 

 

먹을 것에도 이렇게 공감을 한다면 그래서 그 고마움을 자신의 생활에서 실천한다면 우리가 굳이 식량주권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식량주권 문제는 해결될 터.

 

이런 사람이 외국에서 오는 식량을 먹을 리가 없고, 자기 몸의 일부가 되는 음식들을 함부로 대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역시 공감의 문제다.

 

이런 공감의 절정은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에 대한 공감이다. 아직도 수요집회가 계속되고 있고, 일본 정권의 수장이라는 사람은 헛소리만 찍찍해대고 있으며, 우리나라 지도자 역시 이 문제를 외교로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도 수요집회는 계속되고 있는 이 비극적 현실.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되어가는데... 꽃다는 십대의 나이에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온 할머니들이 이제는 저승길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니.

 

너무도 한심한 공감능력의 부족이다. 이런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가 '열네 살 무자(舞子)'라는 시에서 절절하게 펼쳐진다.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았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시가 너무 길기에 인용은 생략한다. 이 시집 64쪽에서 74쪽에 걸쳐서 표현되어 있다) 

 

이런 일이 '세월호'에서도 일어날까 두렵기도 하고, 정말 조금이라도 권력을 쥐고 있다는 사람들의 공감능력 없음에 화가 나기도 한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가 어떤 것인지 파악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세 편의 시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공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시를 통해서 공감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추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멀리 여행을 갈 때 시집을 한두 권 들고 갔으면 좋겠다. 특히 외교 관계로 해외순방을 자주 하는 나으리들. 인문학, 인문학 하는데, 자칭 어렵다고 하는 인문학 책들도 좋지만 시집을 몇 권 들고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찬찬히 읽어보시는게 어떠실지.

 

이 김선우 시집... 찬찬히 읽으면 마음 속에서 '공감' 하는 마음이 막 생겨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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