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시간을 살아가기 - 몸도 마음도 저당 잡히는 시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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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현대.

이것이 현대를 바라보는 바우만의 관점이다.

유동하는, 무엇으로 변해갈지 모르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예측을 하기 힘든 시대. 또 한 사람이 한 직장에서 한 가정을 꾸리고, 한 장소에서 평생을 살아가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 없는 시대가 바로 현대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런 유동하는 현대에 직면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분석을 담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시트랄리가 질문을 하고 바우만이 대답을 하는 식으로 엮어진 대담집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현대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현대에 대한 분석 중에 머리 속에 쏙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는데 바로 규제완화에 대한 구절이다. 우리는 지금 '규제완화, 규제완화'하는 여당의 높은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그들은 규제완화를 통해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하는데, 바우만은 이러한 규제완화가 어떻게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일으켰는지를 이 책의 앞부분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규제완화는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있는 자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몰아주는 정책이고, 이런 규제완화로 인하여 중산층은 하층민으로, 하층민은 버려지는 삶으로 내몰리게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규제완화를 강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권력은 전지구적인 자본에 넘어갔는데, 정치는 지역적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규제완화에 대한 그의 글을 보자.

 

우리는 이제 좀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한다는 미명 하에, 인간적 대담성과 주도성을 터무니없는 규제들로부터 해방시켜 선택의 자유를 증진시킨다는 미명 하에 촉진되는 규제 완화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즉 국가 개입을 찬양하는, 즉 규제 완화로 풀어놓은 자유에 의해 촉발된 파국을 강제로, 국가가가 지원책을 내놓아 구제하는 것을 찬양하는 정반대 노래의 합창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을요. 79쪽

 

이렇게 국가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국가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의 권력 행사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권력행사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몇 년에 한 번 하는 투표로는 권력을 견제할 수 없는데, 그나마 남아있는 견제 수단으로서의 선거에도 제대로 참여하고 있지 않은 형편이다.

 

이는 그동안 국가나 정치권력에 의해 밖으로 밖으로 내몰려 더이상 중심의 일에 참여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이들은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는데, 그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고, 의식이 어떻다느니, 왜 자기 권리를 포기하냐느니 하는 말들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하게 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내몰린 삶들을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노력이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 자그마한 틈을 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서는 지금의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권력을 행사하는데 필요한 대상은 초기에는 토지였다고 한다. 식민지로 나타나는 토지가 남아 돌던 시대, 자본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든지 노동과 자본을 식민지로 보낼 수 있었고, 폐기물, 일명 쓰레기라고 불리는 대상들을 식민지에 보내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식민지는 사라졌다. 그 때 다시 개척한 식민지는 바로 사람이다. 사람, 특히 연령대를 불문하고 그들을 소비자로 만들어 버리는 자본의 능력. 이런 자본의 능력으로 우리나라는 지금 어린 아이들까지도 상품의 미끼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다.

 

사람의 연령층으로 더 이상 확대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이들이 선택한 식민지는 바로 몸이다. 몸에 대한 권력의 행사. 무궁무진하다. 하여 우리나라는 성형천국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제 사람의 몸은 경제권력의 대상이다.

 

이런 몸에 대한 확장은 이제는 몸 속으로까지 퍼져 나간다. 유전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유전자조차도 상품이 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러한 것들을 넘어서서 자본은 이제 우주로까지 눈을 돌린다.

 

이렇듯 자본은 정말로 끝없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식민지를 만들어내고 확장해 간다. 거기에 대응하는 권력은 아직도 미약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이미 현실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무언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고,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견고한 자본의 권력에 흠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틈을 내는 행위, 이를 '사랑'이라고 하고 싶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바로 희망,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을 남녀간의 사랑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확장된 사랑으로 해석하면 사랑은 이 책에서 말하는 이런 의미, 이런 태도가 된다.

  

사랑은 장기간의, 고된 노력의 산물로, 위험하여, 항상 차질이 빚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름 아니라 언제든 곤란한 타협과 무거운 자기희생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을 것을 요구합니다. 286쪽.

 

그렇다. 현실은 유동적이다. 이 유동적이라는 말이 절망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전환시키는 힘,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하고, 사랑은 현실을 똑바로 보게 하는 힘을 우리에게 부여해주고, 현실에서 더 나은 가능태로 나아가게 하는 동기를 부여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바우만의 이 책. 더 유동하는 우리나라에 우리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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