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물은 끊임없이 흐르면서 변화를 추구한다면, 산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품어준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성선 시인은 산을 좋아했던 시인이다. 그의 시는 산 속에서 삼림욕을 하는 것처럼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마음이 상쾌해지고 따뜻해지는 시. 요즘같이 어수선한 때, 마음이 어두운 때 한여름 더위에 내리는 소나기같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1999년에 산시 연작으로 54편을 모아놓은 시집인데... 2013년에 다시 펴냈다고 한다.

 

내가 구입한 시집은 1999년판. 헌책방에서 산 책이다. 이 시집을 보는 순간 무조건 손에 집어들었는데, 그만큼 이성선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전철 안에서 읽기에도 편하게 짧은 시들이 모여 있고, 다시 읽어도 언제나 마음에 와닿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또 느끼게 하고 있다.

 

지금 시대 산문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시를 읽으며, 복잡한 도회지의 삶을 떠나 산 속에서 신선한 공기 내음을 맡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니 좋다.

 

문답법을 버리다

- 산시 17

 

산에 와서 문답법을

버리다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구름을 조용히 쳐다보는 것

 

그렇게 길을 가는 것

 

이제는 이것 뿐

 

여기 들면

말은 똥이다

 

이성선, 산시. 시와시학사. 1999년. 34쪽

 

물 위에 달빛 붓으로

- 산시 31

 

가랑잎 종이 위에다

평생 이름을 적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슬픔이더냐

차라리 실컷

물 위에 달빛 붓으로 글을 쓰겠다

 

이성선, 산시. 시와시학사. 1999년. 51쪽.

 

이렇게 자연과 일치된 삶을 노래한다. 인위적인 것이 판치는 세상에서 시인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자연과 하나될 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야 우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각박해지는 마음을 추스리고 싶어 펼친 시집. 그래,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된다. '구름이 산을 밟았구나 /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구나'(서 있으면서 가는 나무 - 산시 54. 2연에서)라고 노래하는 시인.

 

자연은 서로에게 아픔을 주지 않는데,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으니, 산은 모든 것을 품어주고 그 넉넉한 품으로 산을 보는 사람들, 산에 든 사람들, 산에 오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넉넉하게 받아들여주는데...

 

나는 왜 이리도 각박할까? 모든 인위적인 것에 마음을 아직도 쓰고 있으니... 잠시 인위적인 것들을 내려놓고... 산을 바라볼까?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가까이에 산이 보이니 말이다. 저 산은 내게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내라고 하고 있지 않은가.

 

시인은 그렇게 산을 대신해서 내게 말을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 시인이 들려주는 산의 노래... 그 노래를 들으며 산이 내뿜는 피톤치드 그것을 내 맘 속에 깊이 들이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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