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근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일수 옮김 / 강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바우만이 책이 많이 번역되었는데... 이 책은 바우만의 책 중에서도 일찍 번역이 된 책이라 할 수 있다. 초판이 2009년에 나왔으니. 우리나라에는 2009년에 번역이 되어 나왔지만 이 책이 출간년도를 보면 1999년이니, 책이 서양에 소개된 지 10년만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우리에게 왜 유용할까? 바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사회학적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액체근대'라는 말, 영어로 liquid라고 하는데 어떤 이는 액체라고 번역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유동하는 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말에는 움직이는, 고정되지 않은,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변화무쌍한, 정지되어 있지 않은 등등이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관통하는 기본 주제는 자유와 안전이라고 보면 된다.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동물이지만, 그렇다고 무한대로 자신의 자유만을 추구할 수는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 자유만을 추구하다보면 자연스레 안전은 담보될 수가 없는데... 이 책이 "해방"으로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자유로부터 근대가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얽매여 있던 것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얘기는 자유를 획득한다는 얘기가 되니 그런 자유를 추구하는 근대에서는 "개인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개인성"의 강조는 "공동체"를 등한시 하는 경우로 나아갈 위험이 있는데, 이는 공동체의 책임을 외면하고 모든 것을 개인에게 책임지운다는 것이다.

 

이런 "개인성"의 극단화가 바로 소비사회로의 전이이고, 소비사회는 쇼핑으로 대표가 된다. 이런 쇼핑은 사람들을 철저하게 개인으로 만들게 되는데... 이런 개인성의 사회는 "시/공간"의 변화로 나타나게 된다.

 

함께 있어도 그들은 함께 있지 않은 상태가 되고, 이런 액체 근대에서는 공간은 사라지게 된다. 즉 시간만이 존재하게 되는데...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근대 사회에서 지배적인 계급이 되게 된다고 그는 주장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를 보아도 공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은 그런 모습을 우리 사회도 보이고 있으니, 그가 1999년부터 우려했던 사회의 모습이 지금 극명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에는 사람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일"의 문제로 넘어간다. 사회학에서 "일"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는 없을테니...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액체 근대에서는 일이란 유동적인, 즉, 노동의 유연성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한다.

 

하여 마지막에 "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람의 삶이 자유와 안전이 문제가 된다면, 결국 자유와 안전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상태가 바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방부터 공동체까지 바우만은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근대, 우리는 이를 현대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 사회의 문제를 자유와 안전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의 보유에서 그는 '거리를 두고 시간을 내는 것-숙명과 타고난 처지를 구분하기 위해, 숙명을 타고난 처지로부터 해방하여 숙명이 자유롭게 우리의 타고난 처지와 대면하고 이에 도전할 자유를 주기 위하여-이야말로 사회학의 맡은 바 임무이다(336쪽)'라고 하고 있다.

 

그가 사회학을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사회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회학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고.

 

그는 또 말한다.

 

'사회학을 하고 사회학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함께 살되, 덜 불행하게 혹은 전혀 불행하지 않게 살 가능성, 나날이 억제되고 간과되고 믿지 않게 된 이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343-344쪽)'

 

갈수록 살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액체라는 말을 우리말로 쉽게 옮기면 물이다. 물의 속성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고여 있으면 썩는다. 또 너무 많아지면 곁에 있는 존재들을 휩쓸어버린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물이 어떤 상태로 흐르고 있는 것일까? 뭇생명들이 다들 만족하고 살 정도로 적당한 양으로 넓고 느리게 흐르고 있을까? 아니면 뭇생명들을 휩쓸어버릴 정도로 많은 양이 빠르고 높게 흐르고 있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학자의 임무이기도 하겠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임무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권투선수 얘기가 생각이 났다. 권투를 배울 때 눈 뜨고 맞는 법을 배운다고. 맞을 때 맞더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맞아야 한다고. 그래야 상대의 주먹이 어디에서 어떻게 날아오는지 알 수 있게 된다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맞는 것은 아프겠지만, 액체 근대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를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그 앎 속에서 행동이 나와야 한다.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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