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빈곤 - 노동, 소비주의 그리고 뉴퓨어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수영 옮김 / 천지인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참으로 방대한 저작활동을 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하긴 그가 80이 넘은 노학자임을 감안하고, 그동안 사회문제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왔다면 이 정도 책들은 내 수 있겠지.

 

왜 우리나라에서 지금 바우만이 인기를 얻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한 학자의 책이 이렇듯 거의 번역이 되는 경우는 정말로 많이 알려진 학자들 외에는 별로 없을텐데... 폴란드계 유대인인 영국의 교수 책이 이렇게나 많이 번역이 되다니...

 

그것은 아마도 바우만의 책들이 현대 사회에 대한 분석을 적확하게 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지금의 현실을 말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그의 다방면에 걸친 지식에도 놀라게 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 그의 분석을 가져다 놓아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책은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다른 말로 하면 세계화시대, 지구화시대라고 하니까 한 나라의 특수성을 지니기가 상당히 힘든 시대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자본은 지구적으로 활동하고 문제는 지역적으로 해결하게 한다고 그가 말하듯이 아직도 각 나라들은 자신들만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분석이 우리나라에도 적용이 될 수 있는 것은 그의 분석은 지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는 현대 자본의 모습에 천착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적으로 활동하는 자본이 우리나라라고 해서 다르게 행동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의 현대 사회에 대한 분석이 우리나라에도 타당하게 다가온다고 할 수 있다.

 

제목이 "새로운 빈곤"이다. 빈곤이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해결이 된 적이 없는 문제이겠지만,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빈곤은 늘 존재했는데... 그가 새로운 빈곤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이 빈곤에 접근하는 우리의 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빈곤"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그는 자본주의 역사를, 아니 근대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시작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살 때, 없으면 없는 대로 더 많은 것을 추구하지 않던 시대에서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해진 근대... 그 때 등장한 노동윤리부터 시작을 한다.

 

더 일하지 않으려는 사람, 자신의 빈곤에 만족하면서 살려고 하는 사람, 이들을 노동력으로 전환시킬 필요에서 노동의 윤리가 나온다. 이는 빈곤한 사람들을 더 살기 힘들게 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노동의 현장으로 나오게 만드는 일에서 시작한다.

 

이렇듯 노동력이 필요한 시대에는 잠재적인 노동력도 꾸준히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복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실업자들이 자신들의 노동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다음에 노동력을 활용하기 편함을 깨달은 자본은 복지에 투자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복지는 이루어지게 되고, 절대적인 빈곤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산업의 발달은 곧 노동력을 잉여로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생산 사회에서 소비 사회로 전환이 이루어진다. 소비 사회에서는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은 쓸모가 없는 사람들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노동력은 더이상 많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노동력은 계속 줄어들어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실업자들에게 투자하는 일은 낭비로 치부된다. 하여 사회복지를 중시하는 일은 자본의 발목을 잡은 일이 된다.

 

실업자는 재활용이 가능한, 순환가능한 존재였다면, 이제 소비 사회에서는 쓸모 없어진 노동력은 잉여, 즉 쓰레기가 된다. 폐기물이 된다. 이런 폐기물은 여기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히 없어지거나 적어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현대의 모습이다. 이제 빈곤은 재활용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한 번 내쳐지면 보이지 않거나 사라져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복지란 이름은 사라지게 된다. 하여 이들은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빈곤"이다.

 

새로운 빈곤 계층을 최하위계급이라고 하여 이 계급은 사회의 불안을 조성하는 존재로 취급이 된다. 이들은 철저히 격리되어야 하며 우리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집단이 된다. 그리고 이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복지는 이미 사라지고 있으므로.

 

이 책은 이런 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타당하다. 바우만의 다른 책에서도 이런 개념들은 여러 번 나왔기에 친숙한 개념으로 그의 사상을 이해할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책의 마지막 장에서 바우만은 대안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른 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은 이것을 비현실적이라고 무시하겠지만 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그것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받고 있는(우리나라는 비판 정도가 아니라 무시라고 해야 한다)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다.

 

그는 이것을 '소득 수급권과 소득을 벌어들이는 능력의 분리'(219쪽)라고 하는데... 이런 생각이 사회에 퍼지는 순간, 또는 우리들이 지니고 실현하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에 대한 윤리를 회복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진다는 윤리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재미삼아 보여주는 '나만 아니면 돼'가 아니라 '너도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돼'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것이 기본 소득을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에게 '소득 수급권'을 보장해 준다면, 그는 불안에서 어느 정도 해방이 될 수 있고, 불안에서 해방이 된다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출발점에는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빈곤" 앞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기준이 될만한 책이다. 바우만의 말대로 우리는 "교차로"에 서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선택은 우리가 해야 한다. 자본의 힘에 떠밀려서 가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을 말하고자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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