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구한 시집이다. 저자의 서명도 들어 있고, 또한 곳곳에 줄도 그어져 있는. 읽은 사람의 흔적이 오롯이 들어나 있는 시집이라고나 할까.

 

김기택이 시집 중에서 [사무원]을 읽은 적이 있다. 기발한 상상력이라기보다는, 현실을, 세상을 이렇게도 자세하게 들여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시집인데...

 

세상을 관찰하는 힘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어서 좋은 시집이다.

 

그런 기대를 이번 시집에서도 저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관찰할 수도 있구나. 이런 관찰을 토대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

 

상상력이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음을. 시란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세상을 잘 바라보는데 있음을, 이 시집은 보여주고 있다.

 

이 시집을 읽다가 요즘 뉴스에서 많이 나오는 미세먼지가 함께 떠올랐는데...

 

예전에는 봄이면 며칠 동안 황사로 고생을 했는데... 이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오죽했으면 미세먼지로 인한 폐질환 환자가 30%나 늘어났다고 하겠는가. 먼지에서 가끔은 흙냄새도 나는데... 이 먼지들은 생명의 먼지가 아니라 죽음의 먼지일 뿐이다.

 

세상이 점점 이러한 먼지로 쌓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이 먼지들을 털어내고 생명이 넘치는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야 하는데...

 

김기택이 이번 시집에서 이 미세먼지와 정반대되는 내용을 지닌 시가 있다. 그 시의 제목은 '맑은 공기에는 조금씩 비린내가 난다'

 

맑은 공기에는 조금씩 비린내가 난다

 

겨울 아침, 창문을 여니 찬 산바람이 들어온다

맑은 공기에는 언제나 조금씩 비린내가 난다

맑은 공기가 더 맑아지는 비린내

아침 냄새가 더 어침 냄새 같은 비린내

그 비린내를 마시니

폭포를 먹은 듯 머리가 세차기 헹구어진다

 

플 속에 사이좋게 섞여 썩고 있는

무수한 눈과 귀, 손과 발의 냄새들

마른 풀과 낙엽에서 녹아나오는 푸른 냄새들

아직도 공기 속에서 떠돌아다니는

투명한 심장과 미세한 허파와 안개 같은 핏줄들

희미한 냄새만 남은 웃음소리들 흐느낌들

 

덜 깬 잠을 때리는이 냄새에는 귀신 냄새가 서려 있다

깊이 들이마시면 허파가 시리다

귀신들도 비린내처럼 맑은 곳에서만 산다

이 냄새들이 산 속으로 계곡으로 더 깊이

절과 굿당을 불러들이고 있다

이른 아침이면 비린내는 이슬에 흠뻑 젖어 있다

 

김기택, 소. 문학과지성사. 2005년 초판 4쇄. 35쪽

 

이런 냄새... 맑은 공기. 살아 있는 것들을 포함한 그런 냄새. 이 겨울. 창문을 열지 못하고,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말을 듣고 있는 지금. 맑은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비린내. 그것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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