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하는 공포 산책자 에쎄 시리즈 2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이번엔 바우만이 쓴 책 중에서 '유동하는 공포'라는 제목을 지닌 책이다. 'liquid'라는 말에 유동적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액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어떤 언어든지 바우만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전달하면 되는데...

 

이 책의 번역자 말에 의하면 이 liquid라는 말에는 "여기저기 스미는, 어느새 젖어드는, 차갑고, 무한하며, 숨막히게 하는"(306쪽)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유동하는 공포란, 우리의 삶에 알게모르게 젖어들어 있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공포라는 뜻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공포가 언제 나타났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다만 바우만은 근대(현대)에 나타나는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즉, 공포란 언제든지 존재했지만, 유동적인 공포는 현대의 것이라는 얘기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공포가 가장 무서울 때는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이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유동하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해할 때다. 어떤 규칙성도 합리적 이유도 없는 공포, 그 낌새가 여기저기서 선뜻선뜻 나타나지만, 결코 통째로 드러나지는 않는 공포야말로 가장 무시무시하다. '공포'란 곧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위험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것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에 달려들어 맞서 싸우려 해도, 싸워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11-12쪽)

 

바로, 이게 공포다. 우리는 모르는 것, 불확실한 것에 공포를 느낀다. 이런 공포는 죽음, 악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이고, 그 다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에서 죽음만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러한 죽음과 친숙한 것이 바로 악이다. 이 악은 우리에게 죽음을 불러온다. 그래서 두렵다. 이것 자체가 공포다. 악에 대해서는 또한 알려져 있지 않다. 왜 악일까? 그 악을 어떻게 막을까? 신을 동원해도 악은 해답이 없다. 신과 악에 대한 문제, 즉 악으로 인한 고통은 성서에 나오는 '욥'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가.

 

욥은 도덕적인 인간이다. 신심이 깊은 인간이다. 그럼에도 그는 온갖 고통을 받는다. 신이 그에게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준다. 그는 악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악은 공포의 근원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초자연적인, 인과관계를 떠난 공포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또 알 수 있는 공포에 주목해야 한다. 초자연적인 것은 우리의 인식체계를 넘어선 것이기에 원초적인 공포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고 논외로 한다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공포, 즉 테러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테러는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으며, 실질적인 위협보다는 매스컴을 통해 보여지는 위험이 더 크기에 공포를 조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테러보다는(테러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종교 분쟁과 관계가 깊다고 볼 수 있으므로) 분단의 위협이 공포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바우만이 테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을 우리는 '분단'으로 받아들이고 적용하면 될 것이다.

 

바우만이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지배권력을 유지한다고 보면, 이 말은 예전의 우리나라(정말로 예전이었으면 좋겠다)에 해당이 되는 말이다. 심심하면 터졌던 간첩단 사건이라든지, 땅굴 사건이라든지, 또는 북한의 도발 위험이라든지 하는 소위 말하는 '북풍'이 꽤 있었으니 말이다.

 

하여 전쟁 자체보다는 언론에서 보여주고 있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 사회를 지배했으며,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포를 지식인들(그람시의 용어로 하면 유기적 지식인이 아닌 전통적 지식인)이 더 조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고.

 

그러나 바우만이 말하는 점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일테니 말이다.

 

가난한 나라의 빚을 탕감하고, 부유한 나라의 시장을 가난한 나라의 주요 상품에 개방하고, 지금 취학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는 1억 1천 5백만 명의 아동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후원하는 일, 그리고 이와 비슷한 행동들을 고안하고, 결의하고, 실행하는 일이 진정한 테러와의 전쟁이다. (181쪽)

 

이것을 우리는 북한에 적용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지식인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다가오는 공포, 우리의 힘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공포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 그 시작은 그것을 바로 보는 것이다. 그 뿌리를 캐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 잘라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286쪽)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공포, 우리 삶에 속속들이 들어차 있는 공포, 그래서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공포. 그것을 바로 보는 일. 그 뿌리를 캐고 들어가는 일.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바로 지식인이고,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이다.

 

이런 지식인들이 제 역할을 할 때 우리는 '유동하는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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