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이제는 찬바람이다. 바람에 나뭇잎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제 자리를 잃고 떨어져 버린다. 떨어져 바람이 흩날린다. 정처 없이. 길 가에 떨어진 잎들을 차들이 밟고 지나가고, 밟히지 않은 잎들은 바람에 다시 날리고...

 

제 자리를 잃은 잎들은 결국 빗자루에 쓸리고, 담겨, 자루에 갇힌다. 이들이 가는 곳. 불구덩이. 본래 이들이 가야 할 곳. 땅 속. 땅 속에서 거름이 되어 자신들의 후예들이 잘 자랄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데, 갈 곳을 잃었다. 그들이 갈 곳은 이미 콘크리트로, 보도블록으로, 아스팔트로 차단되어 있을 뿐이다.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시간제 근로를 실시한다고 한다. 명목상으로는 육아를 돕기 위해서, 나이 드신 어른들의 재취업을 돕기 위해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 공부 시간 벌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비정규직 차별법, 해고법이 된 지 오래. 어떤 곳에서는 2년 동안 고용을 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아예 계약기간을 2년이 채 못 되게 계약을 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일의 전문성은 확보되기 힘들고, 사람의 영속성도 역시 확보되지 않고...마치 잎들이 가을이 되면 떨어질 준비를 하고, 바람에 정처없이 날려가버리듯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을 해주어야 그것을 '나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힘써야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나리. 그런 '정치인'이 그리워지면.. 이건 참.

 

"삶창". 따스한 글들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데... 이번 호는 그렇게 따스하지 않게 다가온다. 이유는 특집 기획도 "나는 쓰고 싶다"인데, 무엇을에 해당하는 목적어가 없다. 그 무엇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사표'라는 사실이 씁씁하다. 

 

무언가 일을 하다가 할 수 없게 될 때, 다른 일을 찾았을 때 '사표'를 쓰게 되지만,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사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은 '해고'에 다름 아니다. '해고'가 싫어서 먼저 '사표'를 쓰고 싶지만.. 그렇지만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다.

 

'사표'를 쓰는 일이 머리 속에서만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럼에도 '사표'를 쓰고 싶다고 하는 기획이 이루어질 지경이라면 이 사회는 참...

 

여기에 '앵글로 본 세상'에는 밀양의 사진이 나와 있다. 평생을 땅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을 대도시의 전기를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는 전기를 보낸다는 명목으로,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음에도 굳이 고압 송전선을 지상에 세우고자 하는 행위에 맞서 온몸을 쇠사슬로 감고 있는 노인들. 어르신들. 어떻게 마음이 따스해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삶창"에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현실은 암울할지라도 밝은 미래가 오리라고 기대하며, 그런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 그나마 위안을 준다. 

 

아직,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고... 잎들이 떨어져 이리저리 휘날릴지라도 잎들은 다시 거름이 되어 나무를 더욱 푸르게 할 수 있다고...  

 

이 현재를 과거로 밀어내고 우리가 미래를 현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래야 한다고.

 

"삶창" 이번호를 읽으며, 가을이라 그런지, 또 찬바람이 쌩하고 불어서 그런지, 거리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아서 그런지... 그 낙엽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으니.

 

지금이 지금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낙엽은 언젠가 거름이 된다. 더 좋은 푸르름을 위한.

 

"삶창"이나 낙엽이나 그런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낙엽에게

 - 비정규직 노동자


한 때 넌

네 푸르름으로 찬탄을 자아냈고,

네 짙은 녹음으로 부러움을 샀었지.

모두들 네가 있어 좋다고

넌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고 했었지.

따뜻한 봄날,

네 옅은 연둣빛 색깔에

우리의 눈은 얼마나 즐거웠고,

무더운 여름날,

네가 만든 녹음에

우리의 몸은 얼마나 시원했는지,

서늘한 가을날,

누렇게 변해가는 네 몸에서

벌써 세월이 이리 되었나,

원숙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네게서 또한

기쁨을 느꼈는데,

환경이 변하자,

우린, 널,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지.

찬 바람에

네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길거리를 배회해도

우린 우리 옷깃만 감싸쥘 뿐,

발끝에 닿는 너를 못 본체 했지.

아니, 귀찮아했지.

네가 우리에게 준 것은 까맣게 잊은 채.

낙엽이여, 낙엽이여,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여!

 

그러나 낙엽이여,

튼튼한 나무의 거름이 되어

또다른 푸르름을 위하여

온몸을 살라

다시 봄이 오게 하는 낙엽이여.

푸른 새잎도, 굳은 줄기도

그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우리 깨닫고 있으니.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노동자여.

푸름을 만들어가는 낙엽이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