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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 현대의 상식과 진보에 대한 급진적 도전
이반 일리치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느린걸음 / 2013년 5월
평점 :
이반 일리치, 그를 이단의 사상가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더글러스 러미스는 그를 '급진적' 사상가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급진적이라는 말은 근본적이라는 말과 통하는데, 이를 영어로는 radical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뿌리라는 의미가 잠재되어 있다고 하니, 일리치를 이르는 말로 이보다 적당한 말은 없다고 한다.
이 책은 일리치의 강연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것도 일리치의 사후에 나온 책이 아니라 일리치가 살아 있을 때 나온 책이므로, 일리치의 사상을 왜곡할 일은 없는 책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에 다니면서 자신의 사상을 강연했던 일리치, 어쩌면 그는 요즘 말하는 노마드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를 읽다보면 그는 노마드라기보다는 정착민, 토착민이 되고자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사유 또한 여러 곳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과거로 사유의 깊이를 전개하고 있다. 게의 걸음으로 과거로 나아가는 것. 그것은 현재에 눈을 눈 상태에서 몸을 과거로 움직여가는 것이라고 한다.
무언가가 나타난 지점까지 게의 걸음으로, 현재를 직시하며 천천히 뒤로 나아가는 것, 그래서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과거를 과거의 잣대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현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가 쉽게 쓰는 용어들을 과거에 비추어보면 얼마나 많이 왜곡되었고, 이 용어들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데, 그는 그래서 '개발'이라는 말은 곧 인간 소외라고 하고, 주택이라는 말은 정주를 파괴하고 있는 상태로 나아간다고 하고 있다.
토착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할 때 '공유'의 개념이 살아 있으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제도'라는 명목으로 이런 '토착'의 삶들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고 있는지를 과거에 비추어 보여주고 있다.
하여 그의 이 책을 읽다보면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는 과거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과거는 바로 현재임을, 그래서 역사학자들에게 현재는 미래의 과거(27쪽)라고 하는 말을 하고 있기도 하다.
과거는 그냥 지나쳐간 특정한 시점의 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삶을 규정하고 있는 진행형인 과정이라는 사실, 어떤 지점에서 이런 일이 시작되었는지 그는 역사학자답게, 언어학자답게(?) 추적해나가고 있다.
하여 그의 강연 모음인 이 책을 읽는 동안, 21세기가 된 지금, 일리치의 주장은 단지 과거의 발언으로 머물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양식을 생각해보라고,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일리치의 이야기를 우리가 듣게 된다.
쓸모있는 물건이 쓸모없는 사람을 양산한다는 말. 물건들이 점점 더 인간의 편리를 위해 우리의 생활에 잠식해 들어올 때 우리는 그것을 단지 편리만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바꾸게 되는 요소로 인식하게 되고, 그것이 없으면 무언가 불편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점점 쓸모있는 물건들이 많아질수록 인간 소외는 점점 더 늘어나게 되고, 이는 쓸모없는 인간으로까지 사람들을 내몰게 된다.
일리치의 고민. 우리가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를 그런 지경으로 몰아갈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과거에 머무르는 책이 아니라, 현재에도 미래에도 지속될 그런 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