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문학의 비밀 13
권영민 지음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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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가를 행복하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삶에서는 그다지 행복을 느끼지 못했는데, 사후에 이렇게 관심을 받는 작가를 말이다.

 

겨우 28살에 세상을 떠난 작가를 우리는 아직도 천재니 뭐니 하면서 그를 기리고, 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자들 말대로 그가 남긴 작품보다도 훨씬 더 많은 연구자료들이 축적되어 있으며, 또 많은 연구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그 작가가 바로 이상이다.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김해경. 아니 우리는 김해경이라고 하면 그를 알지 못한다. 인간 김해경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작가 이상만이 존재하고 있는 형상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이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이번 이 책은 이상을 13가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의 삶과 그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놓고, 이 13가지면(오감도에 나오는 13인의 아해와 연결이 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이상의 진면목에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하는 책이다. 

 

1. 이상과 동경 그리고 일본어 시

이상은 동경에서 죽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동경에 가고 싶어 했다. 왜? 그에겐 동경이란 최신 문학(예술)의 본거지라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제대로 된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이 현대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동경으로 유인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상 문학을 이해하는데, 동경은 하나의 열쇠가 된다. 이상 문학의 정점과 한계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상은 동경에 가지만, 곧 실망하고 만다. 동경 역시 서울과 마찬가지로 가짜 도시이다. 근대문명의 대표지가 아니라, 근대 문명을 근근이 흉내내고 있는 도시일 뿐이다. 그에게는 아마도 뉴욕이나 기타 파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존재하는 도시가 그가 꿈꾸는 문학을 대표하는 곳으로 자리 매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 속에 있는, 그의 이상 속에 있는 문학은 현실에 존재하는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다. 아니, 찾아서도 안된다. 바로 문학은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서 현실을 넘어서는 이상의 세계를 좇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이상에게 이상적인 도시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그 때는 이미 그의 문학은 현실 속에 묻혀버려 더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상이 동경에 실망한 것, 그것은 또다른 문학을 자신이 창조하려는 뒷걸음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일보 전진 이보 후퇴!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는 이보 후퇴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현실의 절망이 그의 삶을 더이상 지탱하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더 앞으로, 더 나은 문학으로 나아가야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동경은 이상 절망의 종착지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그가 초기에 일본어로 시를 썼다는 사실도 우리가 명심해야 한다. 어쩌면 일본어가 그의 의식을 지배하고, 그의 문학이 이 일본어식 사고에 대한 우리말의 극복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일본어로 쓴 시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대한 문제도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2. 오감도와 언어의 창조

이상을 일약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 오감도이다. 조감도의 오자냐 아니냐 말들이 많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일본어 시에 조감도란 시가 있으니, 이는 조감도의 오자라고 보기보다는 이상이 의도적으로 언어를 창조했다고 보는 편이 좋겠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세상인데, 새가 내려다 보았다고 하는 것이 조감도라면 이 새 중에서도 까마귀가 내려다 본 세상, 그것이 바로 오감도라고 할 수 있다. 조감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항과, 그리고 까마귀에서 연상할 수 있는 사항을 종합하여 이 시를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해라는 말을 단지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저 높은 하늘에서 바라보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아이처럼 작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다시 인식하게 해주기도 했으니...

 

난해하기로 유명한 오감도 이지만, 이 오감도에서 다른 작품들의 언어 창조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이상이 유명한 고사에서 그를 뒤틀어서 자신의 작품을 진행한다든지, 한자어를 교묘하게 바꾸어 작품을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그가 숨겨놓은 위트와 유머 등을 찾아내는 재미를 느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이상을 이해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할까.

 

3. 구인회와 삼사문학

이처럼 철저히 개인주의자인 것처럼 보이는 이상이 몸담은 단체가 바로 구인회다. 세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그것도 새까맣게 보이는 세상을 관조하는 사람이 관여한 단체라니... 아홉 사람이 모여서 친목단체(?)와 비슷한 모임을 가졌다 해서 구인회인데...

 

이 구인회가 이상에게 중요한 이유는 이상의 후원자 노릇을 구인회가 했다는 사실. 거기다 구인회의 작품집인 시와 소설을 이상이 편집했다는 사실. 그를 아껴 준 사람인 김기림, 정지용이 구인회의 주요 구성원이었다는 사실은 이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기에 이상이 유명해지게 하는 오감도를 신문에 실어주는 이태준까지. 이들이 모더니즘을 표방한, 리얼리즘을 반대한 사람들이라면, 이상의 뒤를 잇겠다는 삼사문학 동인들은 모더니즘을 더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보며 이상은 자신은 19세기와 20세기에 발을 걸쳐 놓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더라도 과연 삼사문학 동인들이 이상 문학의 수준을 뛰어넘었던가. 그건 아니라는 게 문학계의 평가 아니던가.

 

이상은 즉자를 넘어 대자로 나아간 모더니스트라면, 삼사문학 동인들은 아직도 즉자의 단계에 머무른 상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정과 반의 단계를 거쳐 합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그냥 그 세태, 정의 단계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 그들이 삼사문학이라면, 이상은 반의 단계를 거쳐 합의 단계에까지 이르려고 했던 사람이 아닐까 한다.

 

4. 결핵과 일상성 그리고 영화, 그림, 금홍이와 그의 가족

이상 소설이나 시는 그의 일상 생활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금홍과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 소설이 봉별기이고, 또 자신의 동경유학과 죽음을 그린 소설이 종생기이겠는가. 그래서 이상의 일상성이 모더니즘의 기법을 통해 작품에 드러나고 있다.

 

이상은 화가로서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림에도 상당한 소질을 발휘했고, 입선을 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소설에 삽화를 직접 그리기도 했고, 또한 박태원의 소설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림이 단지 그림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그의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수다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이상에 대해서 더 깊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예전부터 우리나라는 문학과 그림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때문에 이상의 일상생활과 작품을 동일시하려는 경향도 있지만, 그의 작품에 나타난 서사는, 내용은 그의 일상과 반드시 일치한다고 봐서는 안된다. 작품은 작품 나름대로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의 일상이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리라. 그의 결핵이 그의 작품을 추동하는 힘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과, 작품 곳곳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도 그렇다.

 

현대의 일상이 어떻게 작품으로 들어왔는지 파악하는 일, 이상 문학을 이해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5. 이상 문학의 텍스트

28세에 요절했다는 사실이, 그의 문학 텍스트를 확정짓는데 힘들게 한다. 그의 사후에 김기림으로부터 정리되기 시작한 작품집이 여러 학자들을 거쳐 계속 수정되고 정리되고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문학 연구를 하려면 텍스트 정본이 확립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이상의 텍스트는 정본 확립 중이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이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고, 아직도 이상이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인 이유가 이것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장님이 코끼리의 특정 부위만 만져서는 코끼리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코끼리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다각도로 접근하면 된다.

이상도 마찬가지다.

그를 천재로 규정하든, 서구의 기법을 흉내낸 작가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든, 이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텍스트의 정본을 확정하고, 이상 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길들을 가봐야 한다. 그 때서야 우리는 이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노력 중의 하나다. 이상 문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거나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13개로 정리해주고 있다. 하나하나 생각할 거리이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라고 이상은 절규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문학적 영감을 계속 불어넣어주는, 우리에게 도전 의식을 계속 불어넣어주는 작가다. 천재다.

그에게 다가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 아직도 열려 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천재다. 우리는 그가 숨겨놓은 그 어떤 것들을 계속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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