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 ㅣ 월급사실주의
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평점 :
'월급사실주의' 네 번째 소설집.
2023년부터 시작해서 해마다 나오고 있다. 작가들의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내가 직접 겪는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이런 일들이 있구나,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총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 중에 이태승이 쓴 '빈칸 채우기'는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라고 한다. 빈칸 채우기. 소설의 처음에 이 빈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온다. 공공기관에서 연구(정책)보고서를 내는데, 그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서명이 있어야 하는데, 3년이 지나서 감사가 나온다고 하니, 그 빈칸이 문제가 된다.
생각해보자. 공공기관, 정부부처라고 할 수 있다. 이 부처에서 공무원이 학자 및 전문가, 관련자들을 모아 정책 연구를 한다. 그리고 결과물을 보고서로 낸다. 당연히 보고서에는 참여자들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자신들이 그 연구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 표시가 바로 내가 했다는 서명이니까.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감사가 없다면 서명이 없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감사를 코 앞에 둔 시점, 징계를 받아도 큰 징계는 받지 않을 거라지만, 하필이면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있다. 책 잡힐 일이 생기면 승진에 문제가 된다.
어떻게 하겠는가? 빈칸을 채워야 한다. 이제 참여자들을 찾아가 3년 전 보고서에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 3년,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소설은 그 점을 살펴보게 한다. 그들은 연구보고서에 과연 진심이었을까?
읽어보면 안다. 진심? 글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참여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구를 추진했던 공무원은? 마찬가지다. 그 역시 보여주기식 업무를 했을 뿐이다. 서명을 받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데,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소설 속 상황을 마냥 소설이겠지 하고 넘기기엔 무언가 씁쓸하다.
이런 표현 '서명 누락이 감사에서 단골로 지적받는 사안이라는 건, 그만큼 흔한 행정 실수라는 뜻이었다.'(이태승, '빈칸 채우기'에서. 264쪽)
흔한 행정 실수. 아니 행정 실수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보여주어야 하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여 보고서는 의미가 없다. 정책연구 용역보고서. 좋은 말만 짜깁기 되어 있는, 그럴싸한 방안들이 제시되어 있지만, 이는 계속 반복되어 말만 바꾸어 제안된 내용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굳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감도 없고, 서명이 중요할 리 없다.
용역비만 받으면 그만이고, 보고서만 내면 그만인 상황. 그런 상황이 공무원 사회에 만연한다면 사회는 그럭저럭 유지는 되겠지만, 이것을 우리는 관료화라고 한다, 변화는 힘들다.
변화가 얼마나 힘든지,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3년 뒤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에게서 정말로 그들이 연구하고 제안한 정책들이 실현되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 이런 모습을 그냥 소설 속 상황이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책의 기획 의도가 한국사회의 모습을 담는 것이다. 사실적으로! 그렇다면 이는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관료 사회가 보이고 있는 모습 중의 일부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일부가 별것이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보고서만 화려하고 실질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렇게 시간과 돈을 쓰고, 참여자에게는 스펙만 쌓게 하는 현실.
이젠 이런 모습을 관료 사회가 떨쳐내야겠지. 떨쳐내기 위해서 또 연구 용역을 주고, 보고서를 내는 일을 반복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보고서 천국으로, 서류 상으로는 너무도 훌륭한 사회가 되어 있을 테니.
이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 소설집의 제목이 되었다. 밀린 서명을 받으러 가는데 운전을 해주는 소위 금수저라 할 수 있는 후배 사무관이 하는 말.
'월급을 받으면서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이태승, '빈칸 채우기'에서. 279쪽)
무슨 소리? '워라벨'을 주장하는 이 시대에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다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사무관이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노동을 당연한 듯 평생 해온 사람들'(성혜령, '퇴직금 돌려받기'에서. 154쪽)이 될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 노동환경의 개선을 요구하기보다는 아무 소리 없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사람들. 이런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워라벨'은 바로 사무관이 하는 말처럼 그들의 삶에 다가올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재미있게,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적어도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지불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무사'라는 직업도 있는데... 그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 강보라가 쓴 '우리의 투어'라는 소설이다.
여기서 함께 두면 물어뜯고 싸우는 물고기가 나오는데, 반대로 함께 한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물고기도 있음을. 노동자들을 서로 싸우게 하는 사람들에 맞서 노동자들이 함께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노무사'여야 함에도 정작 '노무사' 사회에서도 그렇지 못함을 이 소설에서 신참이라고 할 수 있는 송엄지라는 노무사의 발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정말, '워라벨' 힘들다.
그럼에도 '노란빛의 작은 물고기 이모티콘 네 개가 연달아 찍혀 있었다. 나는 한 방향으로 나란히 놓인 그 독립된 개체들을...'(강보라, '우리의 투어' 중에서. 54쪽)이라는 표현처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작가들이 '월급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각자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리라.
이밖에 실린 다른 소설들에서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이런 저런 우리 사회가 지닌문제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이 이렇게 정리되어 있으니 표를 참조하면 된다.
무엇보다 직접 이 소설을 읽으면서 2026년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생각해보는 것이 더 좋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