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서민 여성, 바로 저자의 어머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토대로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썼다면, 이번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도 할 수 있다.


단지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 자신이 노동자 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 계급을 벗어났다. 그는 진보적인 정치 사상을 지닌 사람으로 노동자 계급임에도 자신들의 정체성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들이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저자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노동자였을 때 어머니는 조합원으로서 노동조합의 주장에 동조하고, 그들과 함께 행동을 했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서는 극우 쪽에 투표를 하기도 했으며,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


즉 노동조합원이었다고 해서 모두가 진보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원이었던 어머니가 극우 쪽에 투표를 당당히 하는 모습, 이 책에 나와 있는데, 왜 그럴까? 


그것은 나이 들어가면서 자신이 동일시할 집단이 없어졌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은 소감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건재할 때는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정책에 찬성하면서, 노동조합과 같은 정치적 성향을 지닐 수도 있다. 그때 자신은 노동조합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원으로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집단에 속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주장을 집단이 대변하고 있다는 인식, 하여 집단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노동조합원이었을 때 어머니의 처지였다고 한다면, 나이 들어 이제 노동조합원도 아니고, 사회적으로도 밀려날 수밖에 없는 노년에 이른 어머니는?


어머니는 어느 집단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 할 수 있을까? 이제는 가족과도 떨어져 홀로 지내면서 많은 시간을 텔레비전과 함께, 요즘은 여기에 더해서 핸드폰으로 만나게 되는 온갖 모임들에서 보내는 영상들과 함께 보내게 된다.


자연스레 자신의 의식이 그쪽으로 편향되게 되는데... 그러므로 저자의 어머니 역시 극우 성향의 정치인에게 투표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는 이보다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인터넷이 워낙 잘되어 있는 나라라서, 온갖 정보가 넘쳐나고 있고, 한번 만나게 된 영상은 알고리즘으로 그것을 계속 강화하는 영상들, 방송들을 만나게 하고, 다른 성향의 방송은 만날 기회를 박탈하고 있으니...


이들은 자신을 동일시할 집단을 이러한 방송에서 찾는 경향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노인들의 모습을 비판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저자는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이 겪는 일들을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부르조아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들은 노년에서 충분한 돈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노인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사회제도에 노년을 의탁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어머니 역시 나중에는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지만 프랑스의 사회복지 제도가 많이 퇴보하고 있다는 점을 저자의 어머니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식들도 독립해 살고 있고, 자신을 보살펴 줄 사람을 고용할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 물론 요양원도 천차만별이라 돈에 따라 환경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삶을 마감하기는 힘들다.


저자의 어머니가 겪은 일이 일반 서민들이 나이 들면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노년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다른 말로 하면 노년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년에 이르러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지...


그들에게 필요한 사회 제도들을 어떻게 요구하고, 요구 사항이 관철될 수 있도록 행동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의 후반부에서 살피고 있다.


결론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움직일 힘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래라는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없는 사람들, 지금 자신의 몸을 움직일 힘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 서로 연대해서 행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저자의 말을 보자.


'남들에게 들리도록 소리를 낼 수 있는 고령자들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의 가능한 '우리'가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현실에서나 심지어 상상의 영역에서도 가능한 공적 발언이 없기 때문이다.'(289-290쪽)


이 불가능성이 노년들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없게 하는데, 그렇다면 노년은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가려진 존재로 있다가 사라져야 하는가?


그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끝까지 누릴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한번은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다. 물론 자신의 노년을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년에 겪을 일들이다.


이렇게 누구나 겪어야 할 일임에도 우리는 남의 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직 자신에게 오지 않은 일이고, 자신에게 닥쳤을 때는 이미 말도 행동도, 집단을 이룰 힘도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자신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자, 닥쳤을 때는 할 수 없고, 할 수 있을 때는 남의 일처럼 여기는 이 상태, 이것이 바로 '노년'의 문제 아니겠는가. 저자는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노년을 그냥 없는 셈 칠 수는 없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대변하고 그것을 정치적인 힘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외부에서 대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일이라고, 그러므로 미리미리 바꾸어야 한다고... 이런 상황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간접경험을 통해 미래를 미리 경험하는 것이 노년을 대변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노동자들이 극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들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저자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불합리한 지시를 하는 관리자에게 저항할 수 있었지만 그 직장에 생계를 걸고 있는 어머니는 저항할 수 없었음이 이 책에도 나와 있는데, 이때는 이러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소리를 대변하는 노동조합과 진보 정치 집단이 이들을 대변한다. 


마찬가지로 노년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이 존재하게 된다면, 그때 '노년'도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와의 경험을 통해서 이 책을 쓴 것이다. 적어도 이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하여 저자는 소리를 낼 수도, 행동할 수도 없는 노년을 위해, 아니'노년만이 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소리를 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뀌고, 누군가가 가려진 채로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결국 근본에 있는 정치적 문제는 이것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발언할 수 있는가? 이 기본이 되는 정치적 행위가 가장 극심하게 지배받고 박탈당하고 취약한 사람 가운데 그렇게 많은 이에게 여전히 접근 불가능하다면 그들에 관해서, 그들을 위해서 말하고 그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 작가에게, 예술가에게, 지식인에게 돌아오는 과제가 아닐까?'(299쪽) 


이 책을 읽으면서 이것은 다른 나라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바로 우리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저자의 마지막 문제제기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우리에게 돌아오는 과제, 이 과제를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에서 큰소리치고 있는 '노인'들이 아니라, 정말 힘 없는 노인들, 그리고 그만큼이나 더 힘 없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과제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