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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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라 말을 하기 힘들다. 내가 겪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일을 겪어왔기에... 최근에 여행 간 곳에서 보게 된 소나무들의 상처.


소나무 줄기에 브이(V) 모양의 상처들이 있었다. 깊고 굵게, 그 상처를 얼핏 보면 나무가 웃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니다.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연료가 부족한 일제가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해 연료로 쓰기 위해서 커다란 소나무들에 그런 상처를 남긴 것이라고...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80년이 넘었지만 나무는 그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를 통해 우리에게 역사를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하고 있다.


그 소나무 상처.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팔레스타인을 기억해야 한다고. 특히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일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집단 학살이라고. 부정하는 자들에 맞서 그러한 학살을 기억하고 알려야 한다고.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해야 한다고. 이것이 바로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또 팔레스타인 문학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 현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슬픔, 분노, 고통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번역하는 언어가 강한 나라일 때는 더더욱.


영어, 영국의 언어이자 미국의 언어. 지금 이스라엘은 미국과 딱 붙어 있고, 팔레스타인 비극을 초래한 나라는 영국이니, 영국이나 미국의 언어인 영어로 팔레스타인, 가자의 상황을 번역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글의 저자는 이렇게 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영어는 - 특히 주로 언론과 외교 성명, 그리고 '양측'을 내세우는 서사에 쓰이는 영어는 - 팔레스타인의 고통으로부터 가해의 주체를 지워버리고 대량 학살을 '충돌의 격화'로, 봉쇄를 '안보 조치'로 축소하도록 신중하게 구성되어 있다. 가자를 이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가자의 현실을 가리도록 고안된 바로 그 구조들에 맞서 싸우는 일이다. 이것이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처해 있는 망명 상태다.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지만 그 어느 쪽도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71쪽)


이런 어려움에도 저자는 번역을 한다. 왜냐하면 '가자에서 번역을 한다는 것은 집단학살뿐만 아니라 전쟁이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삶의 평범한 순간들 역시 기록하는 작업(68쪽)'이기 때문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 번역을 하고, 기록을 한다. 이러한 번역이나 기록은 곧 기억의 행위이고, 기억은 저항이 된다. 즉 '가자에 관해 문장 하나를 쓴다는 것은 전 세계의 무관심이라는 구조물에 맞서는 일(85쪽)'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가자가 오로지 상처로만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는 따뜻함이 있던 곳.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그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하는 가자 사람들의 모습도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저자는 글을 쓴다고. 


결국 저자는 가자에서 살지 못하고 지금은 더블린에서 산다고 한다. 이 책에는 가자에서 나와 베를린과 더불린에서 겪는 일들도 나와 있는데, 이 곳에서도 저자는 가자를 잊지 못한다. 가자는 저자의 몸과 마음에 배어 있기에 저자는 가자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쓴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읽으면서 가자의 눈물, 슬픔이 떠나지 않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음, 잊지 않고 항복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느끼게 되었는데, 이는 이 책에 나온 저자의 시에 '다른 이들이 피 흘린 길을 밟는 일'('가자, 인내의 끝에서' 중. 197쪽)이라는 구절이 있듯이, 우리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피 흘린 길을 함께 걷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는데, 아직도 가자는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 당부 잊어서는 안 되겠지. 그래서라도 이런 책을 읽어야겠지.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 여기 쓰여 있는 일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가자 사람들이 여전히 똑같은 조건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6쪽)


이 책을 읽는 순간, 한겨레신문 (2026년 6월 11일 자)에 이런 글이 실렸다. 


이스라엘로 떨어지는 이란 미사일을 가자에서 보며…


저자의 목소리와 비슷한 소리, 잊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 기사를 읽고, 또 이 책을 읽으며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무관심을 거부하는 독서, 스스로에게 변화를 허락하는 독서의 경험'(8쪽)을 하라는 저자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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