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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리커버 에디션) ㅣ 커트 보니것 리커버 컬렉션
커트 보니것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커트 보니것의 소설을 읽을 때 문장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내면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무슨 소리야? 하게 된다.
그의 문장 속에 숨어 있는 풍자, 비판을 찾아내야 작품을 즐길 수가 있다. 적어도 작품을 잘못 이해하지는 않게 된다.
'고양이 요람' 세상에, 이게 무슨 뜻이야? 했는데... 옮긴이의 말을 보니, 실뜨기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실을 가지고 노는 장난.
실뜨기를 하면서 여러 모양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낸 모양은 가상이다. 현실이 아니다. 즉 진실이 아닌데, 그것을 진실인 양 믿고 놀이를 진행하는 것이다. 아이 때 그런 놀이는 가능하다. 아이들은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즉 실뜨기로 만들어낸 것이 진짜가 아니라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냥 놀이로 즐기면 되니까.
하지만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여기고 그것에 의존하는 순간, 현실에 눈 감게 된다. 현실에 눈 감은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 그렇게 현실에 눈 감은 사람들이 도달한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를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나를 조나라고 부르라'(15쪽)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조나'라는 이름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를 '요나'로 바꾸면 연상되는 인물이 있으리라. 고래 뱃속에 들어갔던 사람.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상한 세계에 도달한 사람.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어김없이 나를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데려다놓았기 때문이다.'(15쪽)고 하기 때문에 자신을 '조나'라고 하는데... 그는 그렇게 한 나라가 파괴되기까지의 현장에 있게 되고, 그것을 글로 남기에 된다.
따라서 '조나'로 시작한 소설이 한 나라의 파괴로 끝난다. 그가 도착해서 살아가려고 한 나라가 어떤 물질 때문에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까지 죽어가게 되는 현실.
액체를 또는 진흙을 단단하게 만드는 물질, '아이스-나인'이 등장한다. 이것을 만든 과학자는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이런 물질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있었고, 자신도 흥미를 느꼈으며, 실제로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있었으니, 만들었으리라. 만든 다음 그 결과에 자신이 놀랐을지라도.
무언가가 연상되는 전개 아닌가.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물질, 아니 무기. 그런 무기가 개발되고, 핵무기로 인해 핵전쟁 위기까지 가는 상황을 목격한 작가는 침묵할 수 없었으리라.
게다가 이 작가는 2차 대전 때 포로가 되고, 무고한 시민들이 폭격으로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아니던가. 반전을 외치는 작가가 핵전쟁의 위협을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으리라.
그렇다면 이러한 핵전쟁의 위험, 핵무기의 위험을 어떤 식으로 알려야 할까? 정공법으로 기록하는 것도 있겠다. 이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보고서, 르포르타쥬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 그러면 내용은 건조해지겠고,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 않겠지.
최근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정공법으로 핵개발의 위험성이나 전쟁의 참상을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커트 보니것은 이런 방법이 아니라 우회적인 방법으로 핵무기의 위험이나 전쟁의 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바로 풍자다. 신랄하게 비꼬는, 또는 가볍게 농담하는 것처럼 툭툭 던지는 어투로 내용을 전개함으로써 쉽게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쉽게 읽을 수 있는데, 웃으며 읽는데,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뒤통수가 켕긴다.
마음에 무언가가 들어차서 그것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가벼운 문장들이라고 생각하고 읽어가는데 읽어갈수록 문장들이 묵직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도대체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적은 양의 '아이스-나인'으로도 한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하는데, 이것이 바로 핵폭탄 아니겠는가. 그런 핵폭탄을 사용하는데 여러 제한 장치를 두고 있지만, 어느 순간 실수로 인해 핵폭탄이 사용된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펼쳐질 것이다.
소설이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러한 핵무기의 위험성을 연상하게 전개되는데, 그 전에 그러한 물질(무기)를 개발한 과학자의 모습, 그것을 나누어 가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나누어주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여러 나라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우연히 핵무기가 사용된다면, 그 결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 엿보게 된다. 이것이 커트 보니것 소설의 장점이다.
앞부분에서 일본에 핵폭탄이 떨어질 때 정작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가 한 짓이 바로 '고양이 요람'을 만든 것이었다는데... 이 고양이 요람이 지닌 의미를 옮긴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양이 요람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행복과 위안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모든 종류의 거짓을 상징한다.'(346쪽)
태평양 건너 편에 있는 나라에 폭탄이 떨어져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그 후손들까지 대대로 고통을 받게 되는데, 정작 그러한 무기를 개발한 사람은 자신의 방 안에서 실뜨기를 하고 있었다면? 폭탄이 떨어지는 장면, 아비규환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방에서 평온하고 한가하게 실뜨기를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과학-기술이 이렇게 잘못 쓰일 수도 있는데, 과연 과학-기술자들은 그 쓰임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커트 보니것은 과학-기술의 책임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과학자-기술자의 모습을 이 소설에서 보여주면서 인간의 행복을 위한다는 과학-기술이 인간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음을, 그러한 것이 어쩌면 실뜨기(고양이 요람)처럼 실재하지 않는데, 실재하는 것처럼 우리를 잘못 이끌고 있지 않은지를 생각하게 한다.
과연 커트 보니것이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