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있는데, 알라딘에서 이 책을 찾을 수가 없다.
헌책방에서 구한 책인데... 구상 시인을 딱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의 '초토의 시'는 알고 있고, 시선집도 읽은 적이 있고, 또 화가 이중섭의 친구라는 점,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언급되는 '응향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책을 헌책방에서 만났을 때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상 시인의 삶이,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있으니까.
1993년에 출간된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에 나온 책. 그런데 책의 수명이 이토록 짧았던가.
세상이 급속도로 변해간다지만, 책이 귀했던 시절, 책도둑은 용서가 되던, 아니 책을 훔쳐서라도 읽고 싶어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도서관, 서점에서 누가 책을 훔쳐간단 말인가. 아마 공짜로 준다고, 책나눔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책들을 나눔 행사를 해도 가져가지 않으려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러니 30년도 전에 나온 책을 찾기 힘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많이 팔리지 않은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도 찾기 힘들다. 출판사도 책도 사라진 상태가 되기 십상이다. 이 책을 찾지 못하는 것이 내 무능한 검색 실력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하여간,
구상 시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내가 드문드문 알고 있었던 사실들에 더 자세한 사항을 추가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다시 경험할 수도 있었고, 최근에 일어난 비상계엄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 현대사... 일제강점기, 해방, 분단, 전쟁, 독재... 이 시기를 오롯이 겪은 시인이다. 천주교 신자로 공산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시인.
해방직후 북한에서 발간한 [응향]이란 시집으로 인해 북한에서 탄압을 받고 월남한 시인. 그럼에도 반공을 표방하지만 독재를 하는 정권에는 올곧게 맞섰던 시인.
그의 글 중에서 최근 일어난 비상계엄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 있다. 비상계엄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군인들... 그들의 선조가 있었던 셈인데... 지휘권을 지니고 있을수록 더욱 올바른 판단과 그것을 실행할 신념을 지녀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
1952년 5월 부산에서 일어났던 정치파동이다. 이승만이 국회의원들을 잡아가고 개헌을 한 사건. 이 사건에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군인들에게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많은 지휘관들이 고초를 겪었지만, 그들은 정치에 자신들이 이용되는 행위를 반대했다고 하니...
이런 과거가 있는 우리나라 군대인데... 이런 것을 배워야 하는데... 물론 선조들의 군인정신을 배운 군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비상계엄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었겠지.
하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권의 속성이 변하지 않음을,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깨어 있는 국민과 불의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군인, 경찰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군에 관련된 업무를 한 구상 시인이었기에 그 당시의 정치파동을 직접 겪어서 이런 글을 남겨 놓았으니,이때 발표된 성명서, 군대에 있을 때 교육자료로 써도 좋을 듯하다. 또한 지휘관들에게는 이 성명서를 읽고 생각하고 따르게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고.
참, 시인의 삶을 쓴 책에서 비상계엄과 군인들을 만나다니... 이토록 굴곡진 우리나라 현대사라니.. 참.
이 책 뒷부분에 실린 구상 시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시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를 읽으면 어느 정도 우리나라 현대사와 구상 시인의 삶을 만날 수 있다.
구상 시인의 글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그의 삶과 그가 만난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참고로 이승만 때 정치파동에 동원하려는 군인들을 막는 그 성명서의 일부를 옮겨 적는다. 불의한 명령에 따르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그 성명서. 육군참모총장 명의로 발표되었다는데... 12월 3일 비상계엄 때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어떠했지? 생각하기도 싫다.
'(전략) 현하(現下)와 같은 정치변동기에 승(乘)하여 군의 본질과 군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정사(政事)에 관여하여 경거망동하는 자가 있다면 건군(建軍) 역사상 불식할 수 없는 일대 오점을 남기게 됨은 물론 누란(累卵)의 위기에 있는 국가의 운명을 일조에 멸망의 심연에 빠지게 하여 한을 천추에 남기게 될 것이니 제군은 국가의 운명을 쌍견(雙肩)에 지고 조국 수호의 본연의 사명에 영념명심(念念銘心)하여 일심불란(一心不亂) 헌신하여 주기 바란다. (하략)' ('무등병 복무' 중에서. 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