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회고록 -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이해찬 지음 / 돌베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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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다. 좀더 오래 살았어야 할 사람인데...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데... 그래서 작가 유시민이 이 책의 끝에 쓴 발문 '어느 공적인 인간의 초상'의 한 구절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남은 시간 그가 사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기를 응원한다.'(561쪽)


사적인 욕망을 충족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공적인 일을 그만두지 않았고, 그 공적인 일로 베트남에 갔다가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아마도 그는 철이 든 이후에는 죽기까지 늘 공적인 삶을 살았던 그야말로 '공인(公人)'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삶을 최민희와의 대담 형식을 빌려 기록한 책. 그의 삶만이 아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를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독재 시대를 거쳐 민주화 시대를 살아온 그. 그는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던 사람이고,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한 일에 공과가 있겠지만, 공과를 떠나서 그는 민주화를 염원했고, 민주적 정당을 만들려고 자신의 삶을 바쳤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평생을 그러한 민주화와 민주적 정당을 만드는 데 헌신한 사람. 그 사람이 담담하게,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이기도 하고, 민주적 정당 만들기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에서 좌절도 있었겠지만, 그는 새로운 출발로 삼고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 아니겠는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가고, 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를 통해 우리나라 민주화를 완성하려 한다. 민주화의 완성으로 가는 길에 정당의 민주화가 있다.


정당이 한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거나, 또는 계파로 나뉘어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은 민주적인 정당이 아니다. 당원들의 권리와 참여를 보장하는 정당,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정당, 이권에 휘둘리지 않고 공적인 목표를 추진하는 정당. 그래서 그때그때 정책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서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 그러한 정당이 민주적 정당이다.


이 책에는 이해찬이 자신이 몸 담고 있던 정당에서 탈당하는 장면이 몇 번 있다. 민주적 정당이 아니라 예전의 정당으로 퇴행하는 것을 참지 못했던,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준 탈당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탈당 이후 그는 다시 자신이 있던 정당으로 돌아간다.


자기와 뜻이 맞는 사람을 모아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그곳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려는 것은 어쩌면 민주적 정당 건설이 아니라 자신이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라고, 그것은 공적인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렇게 밖에서 활동하면 거대 정당들이 민주적 정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힘들더라도 그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이라고 바꿔가려고 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이해찬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국회의원으로서, 정당원으로서 민주적 정당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면, 관료로서의 그는 어떠했을까?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하는데, 무엇보다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열린 토론을 하고, 정책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마련하고, 일의 체계를 마련했으며, 불필요한 예산을 없애 정작 필요한 곳에 예산이 투입되도록 한 것들. 과감하고 결단력 있게 일을 추진한 그의 실행력을 이 회고록을 통해 볼 수 있다.


관료 문화를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 책의 뒷부분에 그가 그러한 관료 생활을 한 지 꽤 지난 뒤에 현재의 관료들을 만나고 한 생각은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2018년쯤부터는 당정협의를 할 때 공무원들의 분위기가 달랐어요. 얘기를 들어 보니 강남 3구 출신, 특목고 출신, SKY대학 출신들이 공무원 사회의 주류를 이루게 됐다고 하더구만, 시험 준비에서부터 그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게 된 거지. 공정하게 시험을 쳐서 뽑는다는 것이 사회구조적으로는 불공정한 결과를 가져왔어요. 우리 사회 장래로 볼 때 굉장히 나쁜 거예요. 보수적인 엘리트 카르텔이 각 분야를 좌지우지할 테니까.'(547쪽)


이 말,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사적인 이익이 아닌 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한 이야기니까.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를 한 사람이 공무원 사회의 모습, 즉 관료들의 모습을 보고 우려를 한 것이니, 그야말로 '공정하다는 착각'을 어떻게 부수어야 하는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가 태어난 것은 이승만 정권 때이지만 이 책의 중심은 대학에 들어간 박정희 독재 정권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긴급조치로 대표되는 독재 정권의 만행, 그에 대한 반대, 그로 인한 투옥, 그리고 다시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87민주화 투쟁으로 쟁취한 형식적 민주주의. 그 다음은 이제 정당 정치인으로서, 관료로서 이 나라의 민주화를 완성하려 한 그의 삶이 펼쳐진다.


그가 한 말 중에 새겨두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173쪽)는 말과,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균형이 중요해요,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열정과 책임감과 객관성이 중요하지. 재야 운동은 열정과 책임감과 희생이 필요해요. 핵심이 달라, 정치는 균형, 학문은 객관성, 운동은 희생, 헌신이지.'(205쪽)는 말이다.


열정과 책임감은 기본이다. 이 기본 위에 더 갖춰야 할 덕목이 다르다는 말인데, 정치는 균형이라면, 이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상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상대는 없애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해야 할 존재다. 대화와 타협. 이것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정당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같은 정당 내에서도 모두 같은 의견만을 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펼쳐지면서, 그 의견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균형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적 정당의 모습이겠고, 이해찬이 바라는 정당 아니었을까.


이제 그는 떠났다. 하지만 그가 이루려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일은 미래 세대에게 맡겨져 있다. 그 일을 마다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그의 삶에서 고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고문받은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는데, 고문이 얼마나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는지는, 정계를 은퇴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문받던 시절의 일이 꿈에 나타난다는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한 고문을 한 자들, 과연 두 발 뻗고 잘 자고 있는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이 겪었던 일. 이해찬도 피해갈 수 없었고, 그것이 그의 마음에 또 몸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더욱 깨닫게 만든 이 회고록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해찬의 삶을 통해서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를 살필 수 있으니,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어보면 좋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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