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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새뮤얼 버틀러 지음, 한은경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8년 1월
평점 :
에레혼. 영어로 nowhere를 거꾸로 쓴 제목이다. 없는 곳, 유토피아와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을 읽어보면 그곳은 결코 유토피아는 아니다. 그렇다고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까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현실과 다른 곳. 우리가 사는 모습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 책이 1870년대에 쓰였다고 하니, 참 오래 된 책이기도 한데,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생각해도 될 듯하다는 생각도 든다.
[걸리버 여행기]와는 다른 점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에레혼에 대해서 결코 긍정적인 생각을 지니지 않는다. 그곳에서 탈출했다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당시 종교적인 신념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들을 전도하겠다는 생각도 소설에서 드러나고 있으니..
물론 당시 종교가 우세하던 사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시의 종교를 다른 존재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비판한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하지만 당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 이러한 소설을 썼을 테니...
우선 이 사회에서 커다란 범죄는 질병이다. 세상에 병에 걸리면 감옥에 가야 한다니... 그것도 횡령보다도 더 심한 범죄라고 하니... 질병을 사회에서 차단하는 시대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해야겠다. 감옥과 병원이 하는 역할이 바로 '격리'에 있고, 이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니 질병이 범죄가 된다는 소설의 설정은 이제 질병은 사회에서 격리되기 시작하는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고, 횡령과 같은 경제적 범죄가 큰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당시 산업혁명으로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질병에 걸린 사람은 노동력을 상실할 테니, 이것은 산업혁명으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사회에서는 용납하기 힘듦을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결국 범죄란 그 사회의 필요에 반하는 행위가 해당한다는 점...
여기에 기계를 폐기한 사회가 바로 에레혼인데, 이렇게 기계를 파괴한 사회를 등장시키는 것은 사람들이 기계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넘어 기계에 의존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점, 이것이 인간의 자율성을 파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 현실에서 기계는 인공지능으로 대체가 되고, 이미 인간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기계에 대한 구절... 이 문장은 현재도 유효하다.
'기계에게 영향을 미치고 기계를 만든 것이 인간이듯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기계다. 인간은 현재의 다양한 고통을 겪거나 아니면 점차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에 의해 스스로 대체되는 것을 보는 두 가지 길 가운데 선택해야 하며, 그러다가 들짐승이 인간과 비교가 되지 않듯 인간도 기계와 비교가 되지 않을 때가 온다.'(275쪽)
그래서 기계를 파괴한 사회가, 어떠한 기계를 사용하는 것도 범죄가 되는 사회가 바로 에레혼이다.
또한 소설에는 육식을 금지하는 내용과 채식까지도 금지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결국 이것들을 지나치게 규제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고기를 금지한다고 해도 이것이 부자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음을, 어치피 가난한 사람들은 이러한 규제가 없어도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빈부격차를 비판하고 있는 장면도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에레혼이 유토피아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설의 주인공은 에레혼을 동경하지 않는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다시 에레혼으로 가서 그들을 개종시키는 것,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로 데리고 오는 것 정도이니까.
그렇다고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잘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만, 소설에서 미래란 과거와 현재가 품고 있는 상태라고 하니,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과거를 현재에 들여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의 미래가 유토피아를 향할지, 디스토피아를 향해 나아갈지 그것은 바로 현재에서 과거를 인식하고 현재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미래는 현재에 의존하고 현재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묵인에 의해서만 살기 때문에 그 존재는 인간의 삶에 가득한 소소한 타협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과거에 의존하며,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269쪽)고 소설에 표현된 말처럼.
이러한 소설과 같이 우리가 참조할 과거가 이미 있으니... 백 년도 전에 나온 소설. 이 소설에서 '기계, 교육, 먹을거리'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