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표현한 문장 중에 슬픈, 너무도 슬픈,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어찌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무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현실,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면서, 이런 현실이라면 이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현실이 아직도 그렇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문장들이 화살이 되어 와 박힌다. 이들의 삶이 이런데 도대체 왜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령 '감정노동자'라는 시를 보면 '빨리 지옥을 빠져나가리라 / 이 지옥을 빠져나가자, 나가자, 나가자……'('감정노동자' 중에서. 16쪽) 하지만, 지옥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눈이 없는 길로 내몰리는 샌드백'(앞의 시 중에서)이 되어 '사자, 순식간에 튀어나와 / 육중한 발바닥으로 샌드백을 후려친다 / 갈기갈기 물어뜯는다 / 샌드백, 주저앉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흔들리다' (앞의 시 중에서)는 표현처럼 그렇게 당하고 산다.


이것이 어디 감정노동자뿐이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약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강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또는 그들은 폭력이라고 여기지도 않고 내뱉는 말들, 행동들)을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 아닌가.


약강강약(弱强强弱). 강자에게는 끽소리도 못하는 것들이 약자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 아닌가.


그러니 이 시는 너무도 슬프게 다가온다. 벗어나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 사회의 풍경이라니... 정말, 이 시에 표현된 내용이 사실일까 의문이 든다면, 한승태가 쓴 [어떤 동사의 멸종]'을 읽어보라. 작가가 직접 경험한 콜센터 직원의 일상이 드러나 있으니까. 그러한 감정노동자들의 생활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아무리 대화를 녹음한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이런 어른들의 폭력이 아이들에게까지 번져나간다면 그 사회가 과연 가능성이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모범이 되는 어른이 있는 사회, 그런 어른이 많은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는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일지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이 시집을 읽다가 섬뜩한 마음에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가 있는데, 그 시는 바로 '병아리'다. 병아리, 얼마나 귀여운가? 그 자체로 여리고 귀여운 생명체인데, 병아리를 대하는 아이의 모습, 이런 아이가 없다고 믿고 싶지만, 어쩌면 폭력에 무감한 사회는 이런 아이들을 키워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연신 병아리를 조몰락대던 아이 / 느닷없이 테니스공처럼 병아리를 벽에 내던졌다/ ... /하얀 백지처럼 웃으며 / 아이는 연거푸 허공에 공을 던지고 / ... /비틀거리던 몸, 안도의 숨 내쉴 때 / 아이의 손 다시 / 상자 안으로 쑥, 들어갔다'('병아리' 중에서. 59-60쪽)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날까? 일어나지 않겠지. 일어나지 않아야 하겠지. 그럼에도 시인이 이런 표현을 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약자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경고 아닌가.


그런 사람들에게 속절없이 당하고 사는 샌드백이나 병아리 같은 존재들이 이 사회에 있다고, 그것을 못 본 체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눈 감고 살지 말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시인은 그런 사회를 바라고 있기에 이렇게 우리가 보여줘서는 안 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어른이 주목받고 있는 우리 사회다. 그냥 나이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답게 살아가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어른 노릇을 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시대다. 잘못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약한 사람들을 '샌드백이나 병아리'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이 시집을 통해 시인은 우리 사회의 좋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 그것을 바꾸어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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