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제조공장 문학의 숲 27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김진언 옮김 / 현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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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절대제조공장'이 무엇을 만들어내는 공장인지 알 수가 없다. '절대'라고 번역을 해서 그런가, 차라리 '완전'이라고 번역을 했으면 좀더 이해하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완전을 만들어내는 공장.


'절대'는 무엇인가? '신'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면 신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라는 뜻인데, 과연 인간이 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는 범신론에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신은, 즉 절대는 모든 존재에 깃들여 있다. 이렇게 존재에 깃들여 있는 신을 존재를 완전히 연소시키면 신만 남게 된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들을 완전 연소시킨다면 세상에는 신이 존재하게 된다. 그것도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간에나.


차페크는 이런 상황을 가정한다. 완전 연소시킬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한다. 발명자는 이 기계에서 나온 신의 존재를 알고 두려움에 차서 그것을 팔아버리려고 한다. 이것을 사는 사람은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자,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긴 사장은 이 기계를 만들어 세계 곳곳에 팔아넘긴다. 그 결과 세계에는 신들이 넘쳐나게 된다. 성령을 받았다고 신통력을 발휘하는 사람, 사랑이 넘쳐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 사장은 공장을 노동자들과 공유하고 등등.


또한 이 기계는 자신의 힘만으로 생산을 해낸다. 노동력이 필요없다. 세상엔 물건들이 넘쳐나게 된다. 이 풍요로움. 이 신성함.


이것으로 그쳤다면 차페크의 풍자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물건은 넘치지만 그 물건이 사람들의 필요와는 상관이 없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또한 물가는 엄청나게 오른다. 


필요를 생각하지 않는 생산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경제에만 국한된다면 사람들이 대책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종교의 차원으로 넘어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만들어진 '절대'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의 인식으로 '절대'를 인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절대'는 칸트가 말한 '물자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인식을 넘어서는, 인식의 한계 밖에 있는.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식한 '절대'를 '절대'라고 믿는다. 자신의 '절대'만이 '신'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절대'는 '절대'가 아니다. '절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다음에 올 일들은 전쟁이다. 자신의 '절대'를 남들에게 강요하는 것. 강요와 강요가 말들과 말들의 다툼으로 끝날 수는 없다.


말들의 전쟁이 아니라 그야말로 생사를 건 전쟁이 벌어진다. 서로 죽고 죽이고... 또 죽고 죽이고... 이런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쟁은 끝난다. 이 기계들이 거의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인간의 시대가 돌아온다. '절대'를 인식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긴다.


내 '절대'로 다 파악하지 못했기에 남의 '절대' 역시 내가 판단할 수 없다. 이 '절대'가 사라진 자리에 인간이 와야 한다. 차페크는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믿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이런 '절대'에 대한 인식을 본디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확신하기 위해서 타인을 살해하는 걸세. 알겠는가? 자신이 신 전체, 진리의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일이라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일세.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신과 다른 신, 다른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참지 못하는 걸세. 만약 그것을 용납한다면 자신이 신의 진리 가운데 겨우 몇 미터, 몇 리터, 몇 주머니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테니.'(285-286쪽)


다른 인물을 통해서 이러한 신에 대한 믿음보다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는데,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훌륭한 신은 믿지만, 다른 사람의 것은 믿지 않아. 그 사람도 역시 무엇인가 선한 것을 믿고 있는데도.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사람을 믿지 않으면 안 돼.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깨닫게 될 거야.' (313쪽)


'알겠는가? 누군가가 가진 믿음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만큼 더 격렬하게 경멸하게 돼. 하지만 가장 커다란 믿음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거야.' (313-314쪽)


이렇게 '절대'를 제조하는 기계가 일으킨 일을 통해 인간이 인간에 대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내가 믿는 신이 중요하다면 다른 사람이 믿는 신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신은 신의 일부밖에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자신이 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신의 뜻대로 행한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으리라.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고, 그렇기에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서 함께 지내고 있음을 차페크는 이 소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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