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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 지구공동생활자를 위한 짧은 우화, 동물의 존재 이유를 묻는 우아한 공방
장 뤽 포르케 지음, 야체크 워즈니악 그림, 장한라 옮김 / 서해문집 / 2022년 9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도 동물이 소송을 건 경우가 있었다. 물론 동물이 직접 소송을 걸고 재판에 임한 것은 아니다. 동물을 대신해서 인간이 나서주었다. 왜? 동물은 한국어를 하지 못하니까. 자신들끼리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과는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하지만 소송 결과는 동물들에게 그다지 이롭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각되었다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물에게 잠시 인간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재판을 한다면? 아니면 동물의 말을 알아듣고 동물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둘리틀 박사(휴 로프팅이 쓴 동화.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둘리틀 박사다)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소송을 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동물들에게 언어를 부여한다. 언어를 부여받은 동물들이 재판정에 출석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재판에 출석할 동물을 인간이 임의로 정했다. 자신들의 판단만으로.
재판에 참여한 동물 중에서 인간이 보호해야 할 동물을 선정하겠다는 의도로 재판을 연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재판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된 동물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보호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보호라는 말이 인간 중심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지금 지구에서 최고 포식자는 인간이니, 인간의 뜻에 의해서 동물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현실을 감안하자.
이런 재판 역시 인간다운, 인간을 위한 재판일 뿐이다. 겉으로는 동물을 위한다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한 재판에 동물들은 참여한다. 비록 요식 행위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의견을 인간에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수리부엉이, 담비, 갯지렁이, 유럽칼새, 멧돼지, 들북살모사, 붉은제독나비, 여우가 나온다.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자신들의 이익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살아온 터전이 인간에 의해 어떻게 침해당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자신들 역시 지구에서 귀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이들 중에서 또 경중을 나누려 한다.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종과 멸종시켜도 될 종을... 얼마나 인간중심적인가? 지구에서 늦게 출현한 인간이 그 전부터 지구에 살고 있던 종들을 없애려 하고 있다. 없애지 않으면 마치 백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들을 쫓아내 인디언보호구역에 가두었듯이 그들을 보호라는 울타리로 가두려고 한다.
하지만 동물들은 인간의 놀음에 놀아나지 않는다. 재판정에 다른 동물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재판에 참여할 동물을 인간이 선정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이 우화의 마지막 부분이 잘 보여준다.
동물들은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성토도 있지만,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어느 한 종이 멸종하면 그것은 다른 종에게도 큰 영향을 미침을 말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재판정에 서야 할 동물은 바로 인간이라고 말한다. 재판정에 들어온 개구리가 제일 먼저 한 이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 건 바로 인간이라는 겁니다. 인간이야말로, 오로지 인간이야말로 지구의 생활 환경을 맹목적으로 파괴하고 있으니까요." (173쪽)
인간이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깨닫고, 고쳐야 한다고... 그래야 지구에서 생물종들이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그것이 인간에게도 유리하다고.
이 작품의 마지막에 거북이가 한 말. 지금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동맹을 맺고, 새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새로운 조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계약이 필요합니다.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쩌면 아예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생명이라는 이 기적을 공유하는 법을 말이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이를 끊임없이 쇄신하며,조율하고 또다시 조율하는 법을요." (191쪽)
그렇게 하기 위해선 인간들끼리 먼저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울새가 말하듯이 인간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는데 어떻게 협정을 맺을 수 있냐는 반문에 우리는 무어라고 답을 할 수 있을까? 같은 종끼리도 서로 죽이고 있는 현실에서 다른 종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러니 인간들끼리라도 먼저 공존하는, 함께 살아가는 조약, 협정을 맺었으면 좋겠다. 명목상의 협정이 아니라 진실로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맺어야 할 협정이라는 생각으로.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는 데에서 시작해 다른 종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면 지구가 점점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말을 빌린 동물들의 말을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생물다양성이 곧 인류의 생존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