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청소년 현대 문학선 27
정찬 지음 / 문이당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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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제목을 보면 어떤 내용인지 연상할 수가 없다. 배경이 무엇인지를 제목만 보고는 찾을 수가 없다. 광야라... 그런데 읽다보면 이육사의 '광야'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한명인 박태민이 기자인 머턴에게 한 말이다.

 

'해방 광주의 전사는 사라졌지만 새로운 전사들이 역사의 광야를 가로지르며 진실의 불꽃을 향해 달려올 것입니다. 해방 광주는 패배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의 패배일 뿐입니다.광야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195-196쪽)

 

자, 이 대사와 이육사의 '광야'에 나오는 구절.

 

'지금 눈 나리고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지금-여기에서 이기냐 지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진실은 역사의 흐름 속에 있다. 그것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사람, 패배할 수가 없다. 역사 속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것이 광주가 주는 의미다.

 

소설은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시 독일 장벽이 무너지는 때로 돌아온다. 머턴 기자가 서술자로 나오는 장면인데, 그는 광주민주화 운동 때 그곳에서 취재를 한 기자다. 왜 광주를 이야기하는데 독일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었을까?

 

분단, 이념 갈등. 그러나 결국은 무너지고 만 장벽. 광주민주화 운동 때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 바로 레드 컴플렉스라고 한다. 이념의 벽. 그것은 견고한 것을 넘어 사람들 마음 속에 들어와 행동을 낚아채고 있었던 것.

 

결국 광주민주화 운동이 그 당시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게 되는 것은 이런 레드 컴플렉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나 레드 컴플렉스가 강하냐면 남북이 서로 교류하는 것도 철저하게 막혀 있었고, 언제든지 간첩이라는 말로 사람들을 옥죌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은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적어도 레드 컴플렉스가 전가의 보도처럼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저러나 당시 광주에서는 이 점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고, 광주를 다룬 다른 소설들보다 이 소설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에 깔려 있었던 이념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권력을 쥔 자들이 권력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몰아가는지를 보면, 섬뜩할 지경이다. 폭도로 몰아야 한다. 그런데 폭도가 되려면 적어도 경찰서와 같은 관공서를 습격해야 하고, 무장을 해야 한다. 총기를 소지한 폭도를 군인들이 제압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소설에서는 이 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진압 대상의 규모를 군사 작전이 가능한 범위 안으로 축소시켜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와 함께 신군부에게 절실한 것은 군사 작전의 명분이다. 쇠파이프나 각목 등 지극히 원시적 무장 상태인 시위대를 대상으로 현대식 무기를 앞세워 진압한다면 정당성을 획득할 수가 없다.

  신군부의 발포 목적은 명확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시위대를 총기로 무장시키기 위함이었다. 시위대의 총기 무장이야말로 수십만 시민들 속에서 소수 강경파를 가려내는 마법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국가 질서에 반역한 폭도임을 선전하는 데 대단히 유용한 모습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78-79쪽)

 

'도로 양편에 매복한 계엄군이 시위대 차량이 지나가도 총 한 번 쏘지 않았다. 화순경찰서 무기고에서 카빈총 80여정을 싣고 광주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계엄군들은 시위대 차량에 실린 총을 빤히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83쪽)

 

소설은 상상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그 상상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있음직해야 한다.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신군부는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이렇게 그들은 광주 시민군을 폭도로 규정하고 행동한다. 또한 도청에 남은 사람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간첩'을 활용한다. 진짜 간첩이든 가짜 간첩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간첩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사람들은 하나에서 여럿으로 분열된다. '간첩'이라는 말은 무시무시하게 작동한다. 사람들의 행동을 주저하게 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광주를 진압하지만 그것으로 광주는 끝나지 않는다. 끝까지 도청에 남았던 사람들이 뿌려놓았던 그 '노래의 씨'들이 싹을 틔운 것이다. 마지막에 죽을 줄 알면서도 도청으로 가는 박태민, 그리고 도예섭 신부. 머턴 기자는 이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이런 이들의 태도로 인해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된다.

 

'창 너머에 있는 죽음을 엿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떠나지 않는 두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박태민과  신부 도예섭이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입가에는 똑같이 미소가 어렸다. 한 사람은 상냥하게, 또 한 사람은 천진하게.' (12-13쪽)

 

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나온다. 항쟁지도부가 되는 인물(박태민), 신부(도예섭), 군인(강선우), 대학생(김창길), 기자(머턴)가 나와 그 당시의 현실에서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도록 표현하고 있다. 그런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다.

 

같은 상황에 있더라도 누구가 같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광주에 있었던 이 사람들, 서로 다르게 행동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아무런 고민도 없이 그냥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고뇌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 것이다. 그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 중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같은 장소, 같은 상황이지만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해주는 소설을 통해서, 역사책에서 볼 수 없었던 생생한 행동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인물 중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담게 된다. 이게 소설이 지닌 힘이다.

 

이 소설 생각할거리가 참 많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그때의 상황을 여러 각도로 볼 수 있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제목이 광야인 것은 이 광야에 뿌린 씨는 비록 '가난한 노래의 씨'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광주 시민들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았음을 소설은 박태민을, 도예섭 신부를 또 그밖의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광주를 다룬 여러 소설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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