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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평점 :
'성장통'이란 말이 있다. 국립국어원에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성장통이란 낱말 풀이가 이렇게 되어 있다.
1) 어린이나 청소년이 갑자기 성장하면서 생기는 통증. 주로 양쪽 무릎이나 발목, 허벅지나 정강이, 팔 따위에 생긴다. 4~10세 사이에 많이 나타나고, 1~2년이 지나면 대부분 통증이 사라진다.
2) 사물의 규모나 세력 따위가 커지면서 생기는 고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 특히 청소년들에게 쓰는 말인데, 첫번째 풀이는 육체적인 변화에 따르는 고통을 말하는 듯하고, 두번째 풀이는 사람에게라기보다는 집단이나 사물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우리가 흔히 쓰는 '성장통'에 해당하는 뜻풀이가 없다는 말이다.
청소년들이 겪는 성장통은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을 말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 그것은 청소년기에 겪는 성장통이었다 하면 방황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장통'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며 과연 어떤 성장통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방황이 모두 성장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청소년기의 일탈은 모두 성장통인가?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제목의 뜻도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방황, 일탈 등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제목 자체에서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라, 여기에 어떤 이유를 붙이지 말아라는 의도가 보인다고나 할까.
알렉스라는 청소년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그가 겪은 일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식으로 소설이 서술되고 있다.
총3부인데 1부는 알렉스 패거리가 벌이는 패악이 서술되고 있다. 그야말로 일탈이나 방황이 아닌 범죄다. 이것이 성장통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성장통과 범죄는 구분해야 한다. 성장통은 법 테두리 내에 있는 것이고, 범죄는 법 테두를 벗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 알렉스의 방황, 일탈을 성장통으로 보자.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마약에 준하는 약물에 취하는 청소년들, 거리낌없이 폭행하고, 강간하고, 약탈하는 모습이 1부에 나타난다. 도덕심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모습들.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알렉스. 패거리들에게도 배신당하고 감옥에 가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다.
2부는 감옥에서의 생활이다. 국교(국립교도소를 줄여서 화자인 알렉스는 이렇게 말한다)에서 또다시 폭력을 행사하고, 새로 생긴 치료법의 대상자가 된다. 14년형을 받았지만, 이 치료를 받으면 2주만에 나갈 수 있다는. 루도비코 치료법을 받게 되는 알렉스. 이는 약물치료라고 할 수 있다.
폭력적인 장면이나 생각을 하면 몸에 고통을 유발하는 그런 치료법. 결국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서 착한 행동이나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 치료를 하는 영화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삽입되고, 알렉스는 이 음악을 들어도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우수한 치료 수료자로 두 주가 지나 사회로 나온 알렉스. 여기에 알렉스의 의지는 없었다.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고, 그저 약물로 인한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알렉스.
비행청소년이었던 알렉스는 과연 선택을 했던 걸까?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그때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마찬가지로 교도소에서 알렉스 역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선택의 권리가 없는 인간, 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이다. 자, 이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도 흉악범들에게 약물치료를 하고(또는 하려고) 있지 않은가.
3부가 되면 사회에 나온 알렉스. 치료 효과가 신문을 통해 홍보가 되고, 알렉스는 과거 자신이 행패 부렸던 사람들에게 당한다. 당하면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런 약물치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들 역시 알렉스를 이용하려고 하지, 그에게 어떤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교도소에 갖다온 알렉스는 선택의 권리가 없는, 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 인간? 그는 태엽을 감아줘야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니 태엽이라는 말 다음에 오렌지든, 사람이든, 원숭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차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알렉스. 자, 세월이 조금 흘렀고,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불현듯 미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 이제 청소년기의 성장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장통에 시달리는 청소년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만을 알고, 감정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설은 알렉스가 자기 아이를 두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그런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으로 끝난다.
지독한 성장통이구나! 우리나라 청소년들 가운데도 알렉스의 어린 시절과 같은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는데, 이들도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미래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길을 바꾸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가 미래를 설계하고 나아가는데, 알렉스 자신이 짓밟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알렉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 이렇게 갖은 비행을 저지르더라도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쪽으로 읽기 쉽다.
너무 위험한 읽기다. 그들의 비행을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야 하면서 보아 넘겨만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청소년기는 '시계태엽 오렌지'와 같다면, 어떻게 태엽을 작동할지가 중요하다. 즉, 자기 의지로 행동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힘으로 행동을 조절하게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면 그때 제어할 수 있는 외부 환경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쪽으로 초점을 맞추어 읽다보면 그렇다면 청소년들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는가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아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유의지가 있다. 이 자유의지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 주되, 다른 사람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범주에 대해 인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는 자유가 아니다. 그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언제까지나 범죄인 취급해서도 안 된다. 그들에게 반성과 변화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그것이 희생자를 둔 사람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지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렉스가 1부에서 저지른 범죄의 희생자가 된 소설가에게서 볼 수 있다. 아내를 잃은 그가 얼마나 알렉스를 증오하고 있는지를. 아마도 이 소설이 성장소설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돌고 돌아 알렉스가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거꾸로 괴롭힘 당하는 장면이야 인과응보라 할 수 있어도 이 작가가 알렉스에게 한 행동, 그리고 그가 영원토록 겪어야 하는 고통을 생각하면, 청소년기에 했던 짓이 해서는 안 되는, 자유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소설의 말미에 알렉스의 말을 빌려 청소년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청춘은 가버려야만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 주변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끄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 거야.' (222쪽)
자, 이게 청춘이라면 우리는 일직선 상을 정리해서 청춘이 부딪히지 않도록, 아니면 부딪히더라도 제자리로 올 수 있도록 정리를 할 수가 있다.
성장통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성장통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자유가 없어지는, 생명이 없어지는 그런 일을 만들지 않도록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성장하고 있는 개인에게 약물치료가 아니라, 그가 충분히 성장통을 겪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소설은 그래서 알렉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도 좋지만, 이런 청춘들의 성장통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다.
알렉스와 같은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 기성세대들이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