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지음 / 환기미술관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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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신감이라니... 김환기의 글을 모은 이 책을 읽다가 마지막 부분 일기에 이렇게 쓴 부분을 보고 놀랐다. 그래 화가라면 적어도 이런 자부심은 있어야지.

 

1972년 4월 5일(337쪽) 일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

 

'... 해가 나서 모처럼 57가에 내려갔으나 볼 만한 것 없었다. Vasarely(빅터 바사렐리), Dubuffet(장 뒤뷔페), Miro(주안-후앙이라고도하고, 미로) 또 누구누구…. 역시 피카소와 내가 제일인 것 같다.'

 

수화 김환기. 환기미술관도 있고, 그의 유명한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있는, 김광섭의 '저녁에'에서 따온 시 구절을 제목으로 잡기도 했는데...

 

1970년 2월 11일 일기에 이런 말이 있다.

 

한국일보사로부터 내신(來信). 한국미술대상 전람회 제1회에 출품 의뢰. 출품하기로 맘먹다. 이산(怡山):김광섭) 시 <저녁>을 늘 맘속으로 노래하다. 시화(詩畵) 대작을 만들어 '한국전'에 보낼까 생각해 보다.

 

김환기가 김광섭의 시를 마음에 두고 있다가 결국 그림으로 그렸다는 사실을 이 일기에서 알 수 있다. 시와 그림의 만남.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듯 시와 그림은 늘 가까이 있었다.

 

김환기에 대한 사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글들이 많다. 프랑스에 가서 그림 공부를 하지만 돈이 궁색해 한국에 남아 있는 자식들이 궁핍한 생활을 할까 봐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부터,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생각. 그리고 지인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무엇보다 그가 우리나라 항아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의 그림에 나오는 항아리들이 김환기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읽은 보람이 있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그 화가들을 자랑스레 얘기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나라다운 것을 표현한 화가를 내세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림에 국경이 없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낳고 자란 풍토를 그림으로 표현해 낸 화가라면 더 애정이 가지 않을까. 수화 김환기도 그런 화가 중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자기 그림에 대해서 열정을 다하는 모습, 자부심을 가지는 모습, 우리나라 미술에 대해서 고민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기도 하니, 전쟁을 겪고, 60년대를 지나온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한 화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제시대부터 활동을 했는데, 그때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글들도 실려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도 김환기가 그린 스케치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그 그림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한 책이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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