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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자
실비아 플라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4월
평점 :
'벨 자'
그냥 제목을 보았을 때는 사람이겠거니 했다. 실비아 플라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니, 아마도 '벨 자'란 사람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려주는 내용이겠거니 했는데... 책을 읽어가는데 '벨 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거의 끝부분에 가서야 '벨 자'란 말이 나온다. 246쪽에. 종 모양의 유리관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는데... 이를 억압과 통제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요즘 용어로 바꾸면 유리 천장이라고 해도 좋고.
에스더 그린우드. 대학생활을 장학생으로 보내고 있으며 뉴욕에 파견되는 학생으로 뽑혀 인턴생활을 하는 능력있는 여학생. 글도 잘 쓰고 공부도 잘하는 전도유망한 학생. 그러나 그녀가 뉴욕에서 겪은 일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결코 좋을 수가 없다.
무언가 자신을 계속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살아왔던 시절.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지내왔는데, 그들이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고, 여성에게는 더 많은 제약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게 될 때 에스더는 자신 속으로 침잠한다.
자신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없다.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그 정신병원에서 만나는 여성들 또한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에 머리를 부딪친 사람들일 것.
에스더는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내야 함을 깨닫게 된다. 나중에 정신병원에서 나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으로 소설은 끝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알 수 있다. 에스더가 비록 정신병원을 나왔다고 하지만 사회는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신병원은 '벨 자'를 에스더에게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병원이 아닌 사회에서도 능력있는 여성에게 주어진 보이지 않는 한계. 그것으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마음. 정신병원에 가기 전 '벨 자' 속에 갇힌 에스더는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죽음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에게 침잠해 얻은 결론.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깰 수도 있지 않을까. 깨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에스더는 그렇게 유리 천장을 깨겠다고, '벨 자'를 벗어던지겠다고 정신병원을 나왔는지도 모른다. 병원이라는 장소에서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의사를 만났고, 그로 인해 '벨 자'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벨 자가 내 머리 위 2미터쯤 되는 곳에 매달려 있었다. 내 몸은 순환하는 공기를 향해 열려 있었다. (284쪽)
그런데, 바로 이 표현에서 에스더가 벨 자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내 머리 위 2미터, 그것이다. 벨 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에스더는 벨 자를 깨뜨리지 않았다. 없애지 못했다. 단지 그것에서 잠시 벗어나 있을 뿐이었다. 달랑 머리 위 2미터. 언제든지 내려와 자신의 몸을 가둘 수 있는 높이.
사회에 나간 에스더가 어떻게 될지를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삶의 순간 순간에 벨 자는 에스더의 몸으로 내려와 가둘 것이다. 에스더는 그 벨 자 속에서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인간들이 지닌 위선, 가식 등이 더욱 빨리 벨 자를 내려오게 할 것이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 벨 자란 생각이 든다. 자신 스스로 벨 자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갇혀버리는 것이 아닐까. 남들과 같이 살기 힘들기 때문에, 에스더가 첫성관계를 해치워버리듯이 하는 것이 그것을 말해주지 않을까.
위악에 위악으로 대응하려는 것, 그것이 자신에게서 벨 자를 없앨 수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
실비아 플라스라는 인물에 대해 여러 번 읽은 적이 있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었을 거라는 생각. 그런 사람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 소설 속 주인공 에스더에게서 실비아 플라스를 본다. 그리고 그녀의 삶을 본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우리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벨 자'를 쓰게 하지 않았는가 반성도 하게 된다. 여기에 꼭 여성들만이 아니다. '벨 자' 속에 갇힌 사람들이 여전히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유리 천장, 벨 자를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없애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벨 자'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벨 자' 속에 있으면서도 편안해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벨 자'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사회를 만든다. 그래서는 안 됨을, 이 소설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자신이 '벨 자' 속에 갇혀 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남자 버디와 같은 수많은 남자처럼은 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