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로 기억되는,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로도 기억되는 사람.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 델포이 아폴론 신전에 있는 글귀라고 하고, 악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법은 어떤 경우에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시민불복종을 거부하는 논리로 쓰는 이 말을 소크라테스는 한 적이 없다고 하는 말도 있고.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평생 진실을 추구하던 사람이 소크라테스였으니, 그가 한 말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후대 사람들이 해야 할 의무라는 생각.
하지만 어디서 찾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글을 남긴 적이 없고,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는 제자인 플라톤이 쓴 책에서만 남아 있으니.
그나마 우리는 플라톤 저작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단편적으로만 인용하거나 알고 지냈으니. 물론 그리스 말을 알 수가 없으니, 번역본을 읽어야 하는데, 번역본조차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나 읽었을까? 학교 교육에서 도덕, 윤리, 정치, 사상 등을 배우면서도 서양 학문의 기초가 되는 이들이 쓴 책에 대해서 제대로 읽게 하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
분명 제대로 읽지도 읽을 시간도 없었음에도 이상하게 논술 문제에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더 어려운 칸트, 헤겔이 나오니, 이 나라 독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몇몇 똑똑한 학생들과 대다수 무지한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과연 고등학생들이 서울대 추천 100선이라든지, 세계고전철학 같은 것을 읽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읽지도 않고 요약된 것으로 다 아는 것인양 지내온 것이 지금 우리나라 독서 현실 아닐까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남 비판할 것이 없다. 똑같은 독서 습관으로 지내왔으니. 소크라테스, 그 유명한 사람의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읽어도 제대로 이해한 적도 없다. 그냥 읽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넘어가거나, 아니면 남들이 인용한 구절만으로 끝낸 적이 많았다.
최근에 사법농단과 관련해, 또 성소수자 문제와 연관지어 플라톤이 쓴 책들을 읽고 싶어졌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하는 연설 아니던가. 그렇다면 재판에 대해서 소크라테스가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또 [크리톤]은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에게 탈출을 권유하려고 찾아온 친구 크리톤에게 해주는 말 아닌가. 여기서 악법도 법이라는 말의 유래가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두 작품이 붙어 있는 책. 집에서 발견했다. 언제 사 놓은 것인가. 새책을 샀던가 아니면 헌책을 샀던가 기억에도 없다. 분명 사놓고 나중에 읽어야지 해놓고 잊고 있었을 터.
책값이 와, 1,500원이다. 알라딘 상품찾기에서 찾으면 나오지도 않는다. 조우현 역, 거암 출판사가 1983년에 중판으로 출간한 책이다. 당시에는 제법 읽혔을지도 모르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 다른 번역본들이 많이 나왔으니, 이 책은 이제 헌책방이나 다른 사람들 책꽂이에서 머무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변명]에서는 왜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지가 나와 있다. 공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무지를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남을 가르칠 수 있다. 무지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모르는지 알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찾을 수가 있는 것.
이런 소크라테스가 재판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있다.
"...재판관에게 청탁을 한다든가, 청탁으로 벌을 면한다든가 하는 일은 옳지 못하고, 오히려 가르치고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재판관은 정당한 일에서 정실(情實)을 베풀기 위해서 가 아니라, 옳고 그른 것을 가려 내기 위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해서 정실에 끌릴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서 재판하기를 서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그 서약을 저버리는 버릇을 붙여 주어도 안 되고,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그런 버룻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53쪽)
이런 소크라테스에게 재판관들이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다. 그는 법정에서도 자신이 할 말을 다 한다. 자신에게 떨어질 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진실을 거스르는 것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유죄 판결을 받고, 또 사형 선고를 받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위험에 처했다고 해서 어떤 천한 짓을 해도 좋다고 생각하진 않았고, 지금도 그렇게 변명한 것을 뉘우치지도 않으며, 오히려 나는 달리 변명하고서 살기보다는, 이렇게 변명하고서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냐 하면, 법정에서나 싸움터에서나 무슨 일을 해서든지 죽음을 면하려고 하는 꾀를 부리는 것은, 나건 누구건 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61쪽)
당당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동에 부끄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재판 과정 내내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으면 중간에라도 끼어드는 신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들리지 않았다는 그의 말로 미루어, 그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그 진실로 인해 받게 되는 사형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렇게 받아들인 사형에 대해 탈출을 권유하는 크리톤의 말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크리톤]에서 왜 그런지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이 나라를 떠나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그것은 진실한 행동이 아니라고.
진실하지 못한 행동으로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그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라고. 70평생을 아테네에 살면서 아테네 법에 따라 산 그가 마지막 순간에 그 법을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것은 시민불복종과는 다른 개념이다. 시민불복종 역시 그 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는다. 그 처벌이 나중에 무효가 되는 것은 절차에 의해서 법이 개정되었을 때다. 잘못된 법을 개정하기 위해 처벌까지도 감수하는 것.
결국 소크라테스의 이 말은 시민불복종과 같은 말로 쓰일 수 있다. 당시 법은 신이다. 신의 명령이다. 단지 인간들이 신의 명령을 악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신은 소크라테스가 잘못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사람들이 더 큰 죄에 시달릴 것이라고 한다.
그는 사형을 받아들임으로써 법(신)을 인정한다. 그러나 법이 잘못 쓰이는 것에 대해서 엄중한 경고를 한다. 결국 악법도 법이 아닌 것이다. 법을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재판관들에게는 더욱 엄정한 판결을 요구하는 것이다.
남을 판결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사법농단이라는 말, 검찰권력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또 돈이면 다 되는 변호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법을 법대로 처리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크리톤]에서 그 점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