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앞만 보고 살아왔는지도 몰라.

 

  호수에서 우아하게 노니는 백조의 겉모습만 봐왔는지도 몰라. 백조가 물 위 떠 있기 위해 물 속에서 얼마나 많은 발질을 해야 하는지 생각도 하지 않았는지 몰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오로지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어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는지 몰라.

 

  경제가 성장한다고 우리나라가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간다고 겉으로 보여주는 지표, 통계만 보고 지표 뒤에, 통계 뒤에 있는 노동자들이 흘린 피와 땀,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그들과 또 다른 나라에서 와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밑거름이 되고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는지 몰라.

 

세계 일류기업이라는 삼성이라는 겉모습에 속아 삼성 때문에 고통받고 죽어갔던 사람들에 대해서 눈 감았는지도 몰라.

 

노조를 만들기가 그렇게 힘든 그 기업에서, 노조를 만들었다고 온갖 보여주기 싫은 자신의 뒷모습까지 보여주어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지도 못했는지 몰라. 자신들 뒷면은 감추고 남들 뒷면을 들추어내는 모습을 애써 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몰라.

 

화려한 앞면 뒤에는 앞면을 받치고 있는 뒷면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몰라. 그냥 그렇게 앞만 보고 살아왔는지도 몰라. 부끄럽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51호를 보고 다시 뒷면을 생각했어. 윤리나 도덕, 법을 떠나 지금 지구를 뒤흔들고 있는, 삶을 송두리째 바꾼 계기를 마련한 '스티브 잡스'가 보이지 않는 곳에도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잠시 잊었는지 몰라.

 

제품에서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썼다고 하던데, 사람들에게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는지. 제품이 하나 나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땀이 들어가 있는지, 화려한 제품 뒤에는 반드시 노동자들이, 또 다른 사람들이, 다른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천양희가 쓴 '뒤편'이라는 시를 읽으며 놓치고 놓쳤던 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지.

 

뒤편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제51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05년 초판 1쇄. 천양희, '뒤편' 141쪽.

 

어쩌면 '삶은 뫼비우스 띠'인지도 몰라. 앞면과 뒷면이 분리될 수 없는. 앞으로 가다 보면 어느 새 뒤에 도달해 있는. 그래서 어느 한 면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만 앞면만 보고 뒷면을 부정하려고 하지. 자신이 있는 곳은 늘 앞면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앞면만을 추구하는데, 앞면만 보고 간다고 해도 언젠가는 뒷면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인데...

 

그 점만 명심한다면 앞면에 있을 때 좀더 잘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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