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ㅣ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243페이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던 인물이 염영숙이다. 죽어가는 상권이지만 편의점을 하나 가진 그녀가 노숙자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게, 선뜻 가능한 일일까? 아무리 도움을 받은 상황이라고 해도, 나는 그녀의 결정이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염영숙은 기차 안에서 자기 파우치가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파우치 안에는 그녀의 신분증과 지갑, 통장 등 모든 것이 담겼다. 어디서 잃어버린 것일까 궁금할 무렵에 그녀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녀가 기차를 타기 전 머물렀던 서울역으로 되돌아가서 만나기로 한 분실물 습득자. 통화상으로 가늠할 수 없던 상대방은, 막상 만나고 나니 노숙자였다. 그녀의 파우치를 끌어안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숙자의 면면을 살핀 그녀는 타이밍 좋게 그만둔 편의점 야간 알바 자리에 그를 배치한다.


그럴 수도 있지. 외모 말고 내면을 본다면, 노숙자 이력이 있어도 성실하다면, 노숙자 독고 씨를 고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잠깐을 보고 사람을 판단할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염영숙의 선택을 아직도 의심한다. 독고 씨의 현재를 봤기에, 오랫동안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살아왔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옷에 외모를 가진 그의 첫인상이 좋을 리가 없지. 그것도 물건을 팔고 편의점을 맡기면서 혹시나 하는 의심을 거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기다려 봤다. 그녀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따지려면 독고 씨의 모습을 더 지켜봐야지.


점점 이상해지는 이 기분은 뭔가 싶을 정도였다. 독고 씨는 말을 더듬을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이었고, 덩치만 컸지 누구에게 당하는 것이 일상인 것처럼 보였는데. 처음 편의점에 등장했을 때도 모두의 혐오스러운 시선을 받았던 그가 점점 변해간다. 편의점 알바 사수가 된 시현 씨는 배움이 느린 그에게 천천히 일을 가르쳐준다. 독고 씨는 나름의 성실함으로 금방 일을 배우고, 사수의 감탄을 끌어내고야 만다. 아침 교대 알바인 오 여사는 여전히 독고 씨는 경계하고 무시하지만, 그녀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 앞에 있어 준 것은 독고 씨뿐이었다. 어디 동료들뿐이랴. 편의점의 손님들 역시 이상한(?) 독고 씨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점점 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도대체 독고 씨, 당신의 능력은 무엇인가요?


오지라퍼 독고 씨가 한마디 할 때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뜨끔거리는지 모르겠다. 느리고 버벅대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고 싶게 하는 건 그의 진심 때문이겠지. 기억을 잃은 그가 되찾으려고 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놓친 것, 그가 후회하는 것, 그가 이제야 다시 찾고 싶은 것이 그의 어눌한 참견에 다 담겼다. 그렇다고 그의 참견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아마도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느낌이 드는 건, 그의 더듬거리는 말투 때문이 아닐까.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살았던 그가 잃어버린 말을 되찾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가 마주한 사람들도 무언가를 찾아가야만 했던 마음을 내비친다. 서로 윈윈하는 모양새다. 독고 씨는 잃어버린 기억의 퍼즐을 맞추면서 하나씩, 그에게 마음을 내비친 이들은 상처의 조각들을 맞추면서 하나씩. 독고 씨의 오지랖이 고마운 건 답을 알려주지 않아서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보세요 하면서 그의 의견을 슬쩍 얹어놓는 것. 그가 눈여겨봤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전달하는 방식에 의미가 있다.


그가 놓친 것을 이렇게 되찾는 건가? 등장인물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다. 타인에게 선뜻 꺼내지 못한 마음을 끌어안고 산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여간 가슴 아프고 답답한 게 아니다. 염영숙은 수시로 아들의 전화에 시달린다. 편의점을 팔고 자기 사업에 투자해 달라고.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살 생각은 안 하고 허황한 꿈에 부풀어 사는 아들이 괘씸하고 안타깝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편의점 알바로 일하는 시현 씨는 정말 자기 목표가 공무원시험 합격이 맞는 건지 궁금하다. 지금도 나쁘지 않은데, 이대로 있자니 불안하기만 하다. 오 여사는 생계를 위해 편의점 알바를 뛴다. 알바가 아니라 생업인 거다. 몇 년째 시험 준비한다면서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게임만 하는 서른 살의 아들을 보는 게 괴롭다. 어디 이들뿐이랴. 편의점에 찾아와 매일 참참참 메뉴를 고르는 영업사원의 비애는 외로움이었다. (참참참 메뉴가 뭐냐고? 참깨라면에 참이슬에 참치김밥) 등단하면 다 된다고 여겼던 희곡작가에게는 절필 선언을 할 마지막 기회가 생겼고(작가 후기 보니 아마 이 부분은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건을 훔치던 소년에게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어떻게 이들의 괴로움을 없애고 삶의 희망을 되찾을까 싶었던 그때, 독고 씨의 한 마디가 답을 알려주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독고 씨가 들어줘서 좀 풀린 거 같아요. 고마워요.”

“그거예요.”

“뭐가요?”

“들어주면 풀려요.”

선숙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자기 앞에 선 사내의 말을 경청했다.

“아들 말도 들어줘요. 그러면…… 풀릴 거예요. 조금이라도.” (108페이지)


진심을 기본으로 장착한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 그 문제 해결의 답이었다. 이들 모두 자기만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지만, 듣다 보면 눈에 보인다.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고, 누구도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는 순간 차단 스위치가 올라간다. 집에서, 사회에서, 자기 마음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가장 당황했을 이를 당사자였을 텐데, 옆에서 윽박지르듯 다그치는 말에 소통의 부재가 시작된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다니까 왜 그만둬? 어디서 그런 자리 구하겠어? 그런 사기에 빠져들지 말고 일하라니까?! 그거 아니니까 내 말을 들어!’ 근데 정말, 저렇게 생각하고 말하면서 우리는 당사자의 생각을 듣고 말한 적 몇 번이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상처받고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자기 의견만 말하고 그게 옳다고만 하면, 내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더 상처를 주게 되고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순간 멀어진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는 우리가 되겠지. 그러다 보면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아닌 게 되고, 서로의 가슴을 더 할퀴는 일만 남는다.


그런데 독고 씨는 이 방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조금씩 그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독고 씨는 자기가 놓친 것을 알아채고, 그의 이력만큼이나 똑똑한 머리로 이들에게 답을 던져준 것이다. 지금 틀어진 이 관계를, 더 늦기 전에 더 놓치기 전에, 마치 자기가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되돌려 놓으려고 애쓴다. 동료와 손님에게 꺼낸 말들은 아마 독고 씨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거다. 자기가 회복해야 할 관계의 주문이었을 테다. 그가 자기 과거에서 놓치고, 노숙자가 되기까지 절망했던 시간에, 그가 간절히 되찾고 싶었던 것은 실패한 관계였다. 누구나 바랐던 위로 한마디에, 제발 한 번만 들어달라는 간절함을 지나쳤던 순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후회는 또 다른 후회만 남길 뿐, 이제는 그가 타인에게 건넨 위로와 그가 타인에게 받은 위로와 믿음으로 다시 길을 나서야만 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 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252~253페이지)


김호연의 ‘동네 이야기 시즌 2’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소설이, 이렇게 따뜻할 줄 몰랐다. 시리즈의 첫 번째 도서인 『망원동 브라더스』를 아직도 읽는 중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 외 작품들을 다 읽었지만, 너무 강렬한 이미지가 더 많이 남아서 그런가. 이 작품 읽고 나니 미처 다 읽지 못한 『망원동 브라더스』를 빨리 완독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힘든 오늘을 위로받고, 불편하게 만들면서 은근 츤데레 스타일을 뽐내는 독고 씨를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웃음이 나고, 따뜻해지고, 무심하게 건넨 위로에 희망을 꿈꾸는 곳. 불편한 편의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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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1-06-07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이 작가의 <고스트라이터즈>를 재밌게 읽은 적 있어요.^^

구단씨 2021-06-08 22:46   좋아요 2 | URL
그쵸? 다른 작품도 재밌어요. 의미 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요. ^^

초딩 2021-07-08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1-07-09 22: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이 작가분 책 재밌어요. 기회 닿으시면 한번 만나보셔도 좋을 듯해요.
 



혹시 ‘점빵’이라는 단어를 아시는지? 어렸을 적에 아빠가 점빵에 가서 뭘 좀 사 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기억하는 걸 보면 아마 자주 들었던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구멍가게 관련된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이 나서 초록창에 찾아보니 이런 의미를 말해준다. ‘전방(廛房).(명사)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같은 말), 전포(廛舖).(비슷한 말), 점방(店房, 가게로 쓰는 방)’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마 ‘점방’을 센 발음으로 하다가 ‘점빵’이라고 불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 실제로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가게가 일터였고 집이었다.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살림하곤 했다. 먹고 자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숙제도 하면서. 취미 삼아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지는 공간이었을 테다. 책을 읽다가 새삼 알게 된 사실은 구멍가게를 운영한 대부분이 여성이었다니, 농사가 생업이던 시절에 부족한 수입을 채우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르겠고, 농사를 지을 수 없던 형편에 구멍가게라도 해야만 했을 테고, 어쩌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시도해볼 만한 생계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경 작가의 책을 보면서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하곤 했다. 어느 시골길에서 마주칠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 구멍가게는 버스정류장이 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작은 포장마차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해소해주면서 군것질 천국이었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나의 성장기에도 다르지 않을 그곳이 있었다.


집에서 나오면 바로 골목이 있고, 그 골목은 조금 걸어가면 차가 다니는 큰길, 그 큰길 모퉁이 자리했던 00상회. 뛰어가면 5초도 걸리지 않을 그곳에 드나드는 게 즐거움이었다. 과자, 아이스바(그땐 하드라고 불렀지), 음료수, 각종 반찬거리. 요즘의 마트와 편의점의 기원이라고 해도 되겠다. 아이스바 하나에 50원을 내고 사 먹은 기억도 있다(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 나이가 참... ㅠㅠ). 지금이야 먹을거리가 다양해졌고, 그 다양한 먹거리를 접할 기회도 많지만, 어디 그 시절이야 그랬을까. 그냥 슈퍼마켓 운영하는 친구의 집이 부러웠고, 부모가 삼거리에서 짜장면집 하는 자식들이 부러웠다. 막연하게 생각했지. ‘아, 쟤네들은 매일매일 가게에 있는,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가난이 만든 바람이 아니었을까.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든 환상 같은 거 말이다. 지나고 보면 ‘그땐 그랬지’ 하는 라떼를 마시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생각할수록 가끔은 그리운 시절이다. 가난의 기억만 뺀다면 다시 돌아가도 좋은 시간.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20~23페이지>


이 책 세 권을 함께 읽으면서 처음 구멍가게를 바라보던 환상은 점점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경 작가의 책이 구멍가게의 추억과 즐거움을 소환하는 거였다면, 박혜진 심우장 작가의 『구멍가게 이야기』는 조금은 서늘한 현재의 풍경이 같이 담겼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의 속내와 사연들. 그들의 이야기 속 세월의 흔적으로 우리 현대사의 한 흐름을 본다. 어떤 물건은 저절로 기억하면서 오랜 역사를 이어왔고, 우리가 쓰는 말의 어원을 뜻밖의 곳에서 찾기도 했다. 많은 이가 먹고 살기 위해 구멍가게를 운영했고, 그마저도 운영이 쉬웠던 건 아니다. 이제는 변해가는 세상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 변화의 속도는 또 얼마나 빠른지. 구멍가게는 동네 슈퍼마켓으로 변하기도 하면서, 이제는 대형 마트나 편의점으로 그 모습을 바꿨다. 요즘에 가끔 지나가다 보면, 시골 마을 안쪽 구석에도 편의점이 있더라. 얼마나 놀랐던지. 어느새 구멍가게는 몇십 년의 세월을 건너와 편의점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구멍가게였던 때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로 말이다. 내가 아무리 변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꿋꿋하게 그 변화는 계속되면서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다.


<구멍가게 이야기 33페이지>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156~157페이지>


이상하게도 이 책들에 삽입된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뭔가 공통점을 느끼지 않았나? 바로 보이는 어떤 것들이 있더라. 구멍가게 옆의 우체통과 공중전화, 가게 문 앞이나 가게 앞 커다란 나무 그늘에 놓인 평상, 대부분 동네 어귀에 자리하면서 버스정류장의 역할을 했던 곳. 나에게도 즐거운 기억은 아니지만, 외상의 경험까지. 10대의 조카들에게 물으면 그게 뭐냐고 반문할만한 것들이 작가가 전하는 세월 속에 있었다. 지금 공중전화나 우체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말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사용할 수 있게 어느 거리 어느 자리쯤에 있는 공중전화. 이제는 우체국 앞에나 있는 빨간 우체통. 동네 슈퍼나 구멍가게가 사라져가고 있으니 그 앞에 자리했던 장판 깔린 평상을 더는 볼 수 없다. 편의점의 파라솔이 예쁘게 자리하고 있지. 분명 우리 생활은 편해졌고 불필요한 시간 단축하며 살아갈 방법은 많아졌지만, 세월 속에 자리한 어떤 느낌은 사라져갔다. 계속 사라질 것이다. 조급한 일상에 쉬어가는 느낌으로, 때로는 ‘아날로그’나 ‘레트로’를 찾곤 하겠지만, 그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겠지.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갈 사람들이기에, 지나간 그 시간에 많은 부분 할애하며 살아가기에는 그 불안과 조급증은 심해질지도 모르니까.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에 같은 시대를 읽게 하는 책들이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로 위기를 느끼기도 하고, 추억하는 것들로 그리움을 쌓기도 한다. 이미경 작가의 글이 자라던 시절의 모습을 그리고 추억을 새기고 싶은 동화를 생각한다면, 박혜진 심우장 작가의 글은 쇠락해가는 골목의 현실과 생존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두 이야기 모두 사람 사는 냄새를 맡게 한다.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된다. 작가들이 직접 그곳에 가서 보고 들은 것들은, 그리고 쓰고 찍어낸 것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살아가는 이야기,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거기에 우리의 시간이 더해져 추억이라는 것을 불러내기에 이르곤 하지. 그 추억이 꼭 좋은 것만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립고 애틋하고 그렇더라. 나이 먹어가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암튼, 읽다 보면 기분 묘해진다.


숨어있는 듯이 시골 마을의 구석에 자리한 구멍가게들은,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남겼다. 작가들 역시 하루 이틀이 아닌 오랜 세월 찾아다녔던 구멍가게들을 소개하면서 감성에만 푹 빠져들지 않게 삶의 치열함을 불러온다. 심심풀이가 아닌, 시골에 살면서도 농사를 생업으로 할 수 없는 이들이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상을 주고도 돈을 못 받거나,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는 이들도 상대해야 하는 극한 직업. 그러니 구멍가게는 추억이나 감성에만 젖어있을 수 없는 모습도 갖고 있던 것이다. 약국이나 식당에서 팔던 담배가 이제는 구멍가게에서 살 수 있게 되고, 라면을 팔면서 가게 수입도 올렸지만 라면의 전성기를 함께 이뤄냈다고. 가게의 지붕 모양을 보고 건축의 변화도 가늠한다니. 구멍가게가 단순한 가게 이상의 존재로 남았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떤 구멍가게의 날들 164~165페이지>


건축은 시대를 반영한다. 내가 말하는 건축은 그 시대에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집과 공간이다. 과거의 터전이 낡고 오래되었다고 스스로의 터를 죄의식 없이 갈아엎고 부순다면 진짜 사라지는 것은 우리의 과거요, 추억이요, 고향이요, 자아일 수 있다. 반세기동안 근대화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낡고 오래된 옛것을 우리의 삶에서 지우고 감추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따뜻하고 배부른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도 많다.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복원과 보존으로 우리 삶의 근본과 맥락을 찾아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164페이지)


무슨 박물관에 전시된 역사의 한 장면처럼, 구멍가게도 그 역사를 가진 존재가 되었다. 찌그러진 막걸릿잔에 이야기가 배었고, 출입문 문턱이 닳은 만큼 사람들의 시간이 녹았다. 동네 택배 업체가 되고, 돈이 오고 가는 거래소가 되고, 어른들의 놀이 공간도 되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다. 시골 마을의 구심점이 되어 그 역할이 다양했다고 하니, 그런 공간이 점점 사라져서 거의 볼 수 없게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다양해지는 삶만큼 각자의 인생이 우선이 되는, 타인과의 교류 시간을 갖는 것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굳이 한 공간에 모이지 않아도 가능한 교류의 방식이 얼마나 다양해졌던가.


<구멍가게 이야기 252페이지>


실제로 마을을 답사하며 담아낸 이야기에 구멍가게 고유의 역할을 듣는다. 구멍가게가 구판장, 00상회, 슈퍼마켓, 마트, 편의점이 되어가는 흐름도 읽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존의 방식을 이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마을의 중심이 되어 머물 거로 여겼던 구멍가게는, 어느 날 다시 찾아가니 사라져버린 곳도 많았다고 한다. 굳이 작가의 말이 아니어도 그 사라짐의 순간은 우리가 자주 본다. 내가 자란 곳에서만 해도, 집 앞의 슈퍼마켓은 사라져 빈 가게가 되었다. 정육점은 폐점했고, 노인이 운영하던 약국도 사라졌다. 이 약국은 의료분업이 되면서 동네 어르신들의 경로당 역할을 했었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다른 이가 다른 가게를 운영한다. 생각해보니 거의 다 사라져가는 것들뿐이네. 아쉽고 그립다. 필요한 게 있으면 아무 때나 가면 되는 편의점도 가까이 있고, 대형 마트에서 카트 한가득 장을 보고 오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그 자리에 머물기 바라는 것들이 사라질 때면 그 빈자리가 가슴에 생긴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건, 남아 있기를 그렇게 바라면서 정작 그 장소를 이용할 생각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꾸 깨끗하고 편한 것만 찾아다니곤 했지. 하아...


구멍가게의 과거와 현재는 이제 어떤 미래로 흘러갈지 궁금하다. 그 미래의 시간에 우리는 또 어떤 기억을 소환하며 오늘을 추억하게 될까. 어떤 모습을 마주하더라도 미래에 기억할 오늘의 시간이 씁쓸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되는 삶에서 고단한 시간에 위로가 되는 기억으로 남아주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 옆에 있는 것들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이것들이 나중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소소하지만 의미 있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아름답게 빛바래져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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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1 12: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구멍가게의 기능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편의점들만 있어서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드네요. 점점 삭막해지는 거 같은 ~~ 그래도 이렇게 글로 보니까 좋네요^^

구단씨 2021-06-01 13:57   좋아요 5 | URL
얼마전에 시골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자리에서 편의점 불빛이 반짝반짝...
구멍가게나 동네 슈퍼마켓이 사라져가는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오다니.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는 걸 새삼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붕붕툐툐 2021-06-01 2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골 가다 저런 점방을 만나면 완전 반갑더라구요~ 이제 진짜 몇 안 남았겠죠? 아쉽..ㅠㅠ

구단씨 2021-06-08 22:47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거의 다 사라져가는 느낌입니다.
저부터도 저런 가게 만나면 반가우면서도 선뜻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scott 2021-07-07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이달의 당선 추카!
요책들 찜했놨는데
7월의 땡튜로~*

새파랑 2021-07-07 16:43   좋아요 2 | URL
멋진 구멍가게 이야기~! 구단님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07-07 16: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구멍가게 이름이...^^

구단씨 2021-07-09 22:35   좋아요 1 | URL
제 연식이 나오는 건가요? ^^
어릴 적에 어른들에게서 많이 듣던 단어였어요. 단어의 어감이 세서 그런가 기억에 남네요.

서니데이 2021-07-07 16: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7-09 22:3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더운 주말인데, 즐겁게 지내세요.

초딩 2021-07-07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1-07-09 22:3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07-08 0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7-09 22:3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모나리자 2021-07-08 1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구단님~^_^

구단씨 2021-07-09 23:0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책 많이 만나고 싶어요. ^^

thkang1001 2021-07-08 1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7월도 좋은 시간 되세요!

구단씨 2021-07-09 23: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더운 주말인데요. 편한 날 만드시길 바랍니다. ^^

황후화 2021-07-08 1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박~~ 축하드려요 ~~

구단씨 2021-07-09 23: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얄라알라 2021-07-21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글이네요.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7-24 11:2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지금도 가끔 시골길 가다 보면, 지금은 볼 수 없는 장소들 만나면 너무 반가워요. ^^

맘속풍경 2021-07-2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골길 삼거리 앞 구멍가게의 마루에서의 여유로움이 문득 그립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그리운 점빵..
글 감사합니다~

구단씨 2021-07-24 11:29   좋아요 0 | URL
정말 그 가게 앞의 평상이 언제나 있었어요. 거기 앉아서 땀도 식히고, 어르신들 술도 한잔씩 하시고... ^^
그립네요.
 
팔과 다리의 가격 - 지성호 ㅣ 이 사람 시리즈
장강명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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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을 느껴본 적이 얼마나 있던가. 일부러 굶거나 끼니를 챙길 겨를이 없었거나. 아마도 내가 경험한 배고픔은 이 두 가지 중의 하나였던 경우가 대부분일 테다. 아니, 어쩌면. 오랜 세월 가난을 끌어안고 사는 우리 가족에게 배고픔은 부모님의 희생으로, 가까스로 피해온 경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유롭지 못했으니, 식구가 많았으니 밥상 위에 오를 밥그릇 숫자만 봐도 부모님의 고생은 엄청났을 거다. 그래도 굶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 책에서 말하는 목숨을 건 배고픔과 탈출을, 아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람이 굶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 매우 배가 고파진다. 몸에 축적한 지방층이 없는 상태에서 두 끼 이상을 연속해서 거르면 그때부터는 허기가 통증에 가까운 감각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급성 위염이나 위궤양처럼 속이 쓰린 느낌인데, 특히 성장기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이 이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다고 한다. 육체가 비명을 지르며, 신경 신호를 통해 뇌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먹을 것 외에 다른 일 따위는 생각하지 말라고, 식량을 찾는 작업에 집중하라고. (10페이지)

어른들은 총살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집단농장의 종자보관소를 습격한다. 아이들은 옥수수 몇 알에 목숨을 건다. 훔친 음식을 먹다 걸린 아이를 사납게 때려도 도망치지 않는다. 손을 들어 매질을 막지도 않는다. 입안에 있는 음식을 삼키는 데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으면서 맞아 죽는다. (14~15페이지)

책의 목차만 봐도 숨이 막힐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을 쓰는 이유를 말하자마자 굶는다는 것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적어놨다. 얼마만큼 굶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차례로 언급한다. 한 청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까지 온 젊은이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았다. 소년에게도 부모님이 있고 친척들이 있었다.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할 게 없이 살았다. 고위직에 있는 친척들의 기세를 등에 업기도 했다. 부모님은 일하고, 소년은 공부하고 동네 친구들과 뛰어놓았다. 누구나 비슷한 삶이었을 거다. 그 나이에 무엇을 알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으랴. 나조차도 흘려들으며 넘겼던, 그다지 관심 두지 않았던 북한의 그 시기, ‘고난의 행군’이라고 했다. 누가 처음 만들었을지 모를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슨 빡센 군사훈련을 말하는 줄 알았다. 지독한 훈련의 시간을 북한 주민 모두에게 경험하게 했다고 여겼다. 이 책을 읽고서야 그 시기가 혹독한 가난과 굶주림이었다는 걸 알았다. 탄광 마을에 사는 소년이 본 모든 것을 이렇게 듣는다.

처음에 아사(餓死)는 소문이었다고 했다. 굶어서 죽는다는 말을 그들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보다. 그러니 믿지 못했겠지. 카더라 통신으로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은 소문이 아니었다.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죽은 걸 보고 실감했다. 장애인과 노인들이 죽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이들이 먼저 죽은 거다. 소년의 가족도 다르지 않았다. 배급이 줄거나 끊기면서 먹을 것이 없었다. 먼 지역의 친척에게까지 가서 먹을 것을 구해왔어도 굶주림은 끝나지 않았다. 소년과 가족은 그 지역의 탄광에서 실려 나가는 석탄을 훔치기에 이른다. 달리는 열차에 몰래 올라타고, 어두컴컴한 상태로 포대에 손에 잡히는 석탄을 마구 담는다. 적당한 때에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그 위험한 일을 몇 번을 했다. 그렇게 훔친 석탄을 먹을 것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만 했다. 너무 굶어서 발을 헛디딘 소년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소년의 비명을 어떻게 잊을까.

한쪽 팔과 한쪽 다리로 목발을 짚고 또 살아간다. 소년은 꽃제비가 되었고,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국경을 건너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대한민국에 왔다. 이 글은 그 소년을 만난 작가가 기록했다. 자칫 정치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내용을, 작가는 한 사람의 생을 들려줌으로써 아직도 그곳에서 살아갈 이들의 굶주림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꿈을 갖기도 전에 생존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삶. 내일이 아니라 오늘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버티는 인생. 소년은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 자기 몫을 지키기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자기 것을 타인에게 나눠주며 같이 고통받았던 이들을 떠올린다. 아무 잘못 없이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야만 했던 이들의 슬픔을 공유하게 된다. 잃은 것이 아닌, 아직 남은 한쪽 팔과 다리로 살아가는 희망을 말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나 싶을 정도였다. 결국은 살아야겠다는,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그는 북한을 탈출했고, 자유를 갖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삶에 적응하면서 그는 또 다른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세상은 겪으면 겪을수록 새롭고 어렵고 힘든 일만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가 경험할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여전히 북한의 인권은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 폐쇄된 그 안에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자기 이야기를 한 지성호 씨도, 그 이야기를 이렇게 적어놓은 작가도, 읽고 있는 우리도, 아마 바라는 건 하나가 아닐까 싶다. 북한이 단단하게 쌓아 올린 그 장벽이 조금씩 무너지기를. 그렇게 그 안의 실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게 되기를. 우리에게 있는 팔과 다리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생각한다.


#팔과다리의가격 #장강명 #책 #에세이 #문학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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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 내로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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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일기에 적는 건가 보다. 가장 은밀하고 가장 솔직한,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거나 할 수 없는 말을 차곡차곡 모아놓을 수 있는 것. 여자는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에게 더는 말할 수 없었다. 자기 상태를 진료하던 의사에게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도 그녀는 회복될 수 없었다. 누구도 진실하게 진료하지 않았고, 그녀의 마음을 듣지 않았다. 그러니 침묵할 수밖에. 말할 의지를 잃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남편 존은 아내의 정신적 질병을 알고 있다. 다른 의사도 그랬지만, 남편 역시 아내에게 내린 처방은 참 단순하고도 무심했다. 절대적으로 휴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내의 신경 쇠약이 쉬어야만 낫는 병이라고 말이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시골 마을 외딴 저택으로 간다. 여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아내의 정신을 환기하겠다고 말이다. 아내를 위해 통풍이 잘되고 채광이 좋은 꼭대기 층 넓은 방을 부부가 사용하기로 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의 결정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토록 세심하게 돌봐 준다며, 은혜를 알아야 한다고.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시대를 상상할 수 없었다. 물론 21세기인 지금도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호의로 여기며 생색내는 사람이 있기는 할 테지만, 소설로 보는 작가의 경험담이 더 생생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시대를 대신 읽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남편은 자기 역할이라 여기며 아내를 돌보는 방법이 오직 휴식 치료법이라고 여겼기에 그렇게 했을 텐데, 그게 정말 치료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나 보다. 몰랐던 게 아니면, 무시하고 싶었거나.


존은 신중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내가 나서지 않도록 나를 보호해 줘. 하루 종일, 매 시간 내가 할 일을 처방해 주지. 이토록 세심하게 돌봐 주는데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응당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거야. (33페이지)


흔히 ‘휴식 치료법’이라고 불리며, 19세기 초 여성에게 히스테릭하고 신경질적인 성향이 내재하여 있다고 믿던 시기. 간혹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휴식 치료법이라는 이름으로 가두고 관리하려 드는가. 육체를 옭아매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게 휴식 치료법이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의 주장을 제압하고, 단속하려 들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아내답지 못하고, 엄마답지 못하고, 불평불만이 많고, 바라는 게 많다는 거였고, 그렇게 많은 여성이 휴식 치료법의 대상자가 되어 목소리를 잃었다. 삶을, 인생을, 미래를 잃었다.


남편은 아내의 완벽한 휴식을 위한다며 모든 지적 활동을 금지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생각도 하지 말고 상상도 하지 말고, 뭔가를 적는 일도 하지 말고. 오직 숨만 쉬고 먹고 자는 일만 허락했다. 방 밖으로 나오는 것도 금지했다. 아내는 꼭대기 층 방에 갇힌 채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기 마음을 말해도 부정당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갇힌 생활이 길어질수록 아내의 증상은 깊어졌다. 남편은 아내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며 자기 처방을 믿었다. “내가 의사잖아.” 의사라는 전문가의 말을 믿어야겠지만, 때로는 오진도 있고 잘못된 처방도 있지 않은가. 출구 없는 감옥에 갇힌 아내가 매일 보는 것은 누런 벽지다. 노란 것도 아닌 누런 벽지. 누워도 보이고 앉아 있어도 보이는 그 벽지에 점점 시선을 빼앗긴다. 아내의 모든 시간은 이제 한쪽 벽을 뒤덮은 누런 벽지에 잠식당한다.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병은 더 깊어만 간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챌 정도면, 아내는 정말 아픈 게 아니다. 내 몸의 이상을 나 자신이 느낄 수 있다는 건 지극히 정상이고,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녀가 아무도 듣지 않는 자기 말을 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 몰래 글을 쓰는 방법뿐이었다. 누군가 오는 기척이 나면 얼른 숨기고, 아무도 없을 때 조용히 자기 생각을 적곤 했다. 그렇게 자기 방식으로 치유를 하는가 싶었는데, 그마저도 누런 벽지에 빠져들면서 힘을 잃었다. 혼자 있는 방, 보이는 건 누런 벽지뿐. 아내는 점점 벽지에 빠져들면서 벽지를 보고 읽는다. 벽지의 무늬에서 사람을 보고, 움직임을 느낀다. 심지어 벽지와 대적하는 지경에 이른다. 아내에게 휴식을 주겠다며, 아내의 병을 치료하겠다며 선택한 방법이 옳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드디어 탈출했어, 당신과 제니는 막으려고 했지! 내가 벽지를 거의 다 뜯어냈으니 다시 나를 가둘 수 없을 것이야.” (115페이지)


총 열한 개의 일기가 담겨 있다. 그녀가 머물던 저택의 꼭대기 층 방에서 머문 시간이 고스란히 적혔다. 아무도 듣지 못한, 듣지 않으려 했던 그녀의 말을 유일하게 꺼낼 수 있던 방법. 읽을수록 바라게 된다. 그녀가 빨리 그곳을 탈출했기를, 남편이 그녀의 말을 더 새겨듣게 되기를, 갇힌 방에서 있는 게 휴식도 아니고 치료도 아니라는 것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더 와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기 안에 있는 많은 것을 억압당하고 살아야 하는 게 어떤 결말을 만드는지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분출을 막는 강요로 ‘지성이 스러지는 과정을 생경하게 그렸다’는 말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원인과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문학이라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여성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그들이 믿는 치료법이 잘못된 방법이었다는 것을 증명한 작가는, 거대한 벽 하나를 무너트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평등을 위한 외침은 계속된다. 19세기에 이뤄낸 여성 인권 신장을 이 소설로 확인하게 된다. 소설의 결말은 끔찍했지만, 작가는 독자는 물론이고 오늘을 사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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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 할머니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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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그래, 다른 거 다 없어도 돈만 있다면 노후 생활이 편해질 거로 생각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나이 먹고 돈 없으면 누가 나에게 밥을 줄까. 다른 가족이 있거나 자식이 있다면 그들과 비비며 늙어갈 수도 있겠지만, 자식도 없다면 혼자 늙어가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이다. 돈도 있고 자식도 있지만,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없는 때도 있더라. 치매라는 병 앞에서 선뜻 가족이니까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은 꺼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여긴 모든 게 다 가짜다. 바다처럼 보이려고 바다 색으로 칠한 수영장, 잠금장치도 없는 가짜 방문, 마을도 아니면서 마을이라고 붙인 가짜 이름, 여기 사는 사람인 척하지만 돈 받고 일하는 어른들, 어른들의 가짜 웃음, 아이들의 가짜 친한 척, 이젠 아기가 되어 버린 가짜 할아버지 할머니들……. (45페이지)


도란 마을은 치매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다. 하지만 누구도 병원이라고 느낄 수 없게 구성되었다. 넓은 집을 분양받듯 한 채씩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각자 생활한다. 식사 시간이나 공동 운동 시간에는 함께 모이기도 하지만, 원한다면 사생활을 유지하며 살 수도 있다. 아프면 진료해주고, 배고프면 밥 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마을 안 마트에서 산다. 카페도 있고, 미용실도 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마을 안에서 해결된다. 의료진과 직원들은 자기 자리에 맞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의사 가운이나 간호사 복장은 아니다. 마치 마을의 주민처럼, 어느 레스토랑의 직원처럼 입고 있는 직원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자기 세계에 빠져 살면서도 쉽게 공포에 떨고 놀라기도 한다. 환자들의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이 구성이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단 한 사람만 빼고.


평화로운 곳이다. 고요하고 큰 소리 한번 난 적이 없다. 그런 곳에서 갑자기 들려온 비명은 까칠한 할머니 탐정을 탄생시킨다. 최고급 리조트 같은 도란 마을의 쓰레기장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아기 시체가 발견된다. 도란 마을의 원래 땅 주인이었고 현재 도란 마을 입주자인 까칠한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이 사건에 관심이 많다. 도란 마을의 의사 아들인 ‘꼬마’는 할머니와 팀이 되어 이 사건을 파헤친다. 사람도 싫고 아이도 싫어하는 할머니가 어떻게 꼬마와 팀을 이루었을까 싶지만, 원하는 게 같으면 원수도 아군이 되는 법. 할머니는 이 무료한 곳에서 사건을 추적하며 즐거움을 찾고, 꼬마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가슴에 있는 상처를 하나씩 치유해나간다.


여기가 그렇다. 이게 일상이다. 깨끗이 씻겨 놓은 노인들은 아기 같이 예쁘지만 그 똥은 아기의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자주 씻겨 준다 해도 죽음과 고통의 냄새는 가시지 않는다. 여기 일하는 모두가 말한다. 나는 이 병에 걸린다면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죽겠노라고.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치매는 치매다. 누구도 도망가지 못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뇌는 날로 쪼그라들고, 몸은 날이 갈수록 약해진다. 더 괴로운 건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땐 흘릴 눈물조차 없어진다. 왜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114페이지)


비닐봉지에 버려진 아기 시체를 시작으로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까지 불렀지만 별일 없이 묻혀버린 상황을 보니 이곳이 참 수상하긴 수상하다. 치매 노인을 위한 완벽한 천국 같은데, 이 수상쩍은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이 찝찝함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할머니와 꼬마의 활약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기억하기 어려운 할머니는 수첩에 수사(?) 상황을 꼬박꼬박 적는다. 꼬마는 눈치 빠르게 할머니의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구린내가 풀풀 나는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왜 이렇게 씁쓸해지는지 모르겠다. 처음 했던 생각은, 돈만 있으면 노후가 그나마 덜 불행할 거로 여겼다. 틀리지 않는다. 노후가 그나마 행복하려면 돈을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새삼 느낀다. 최고 시설에 최고급 대우를 받는 곳이지만, 외로웠다. 가족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가족이 없다고 외로운 것도 아니다. 레모네이드 할머니처럼 가족이 없어도 자기 삶을 잘 마무리하고 떠나는 사람도 많을 테지. 하지만 많은 이가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치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또 그 틈을 이용해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지르는 이들이 활개를 친다.


각자의 사정을 숨긴 채로 도란 마을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외로움과 슬픔은 더 깊어진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겨우 회복되려는 모자, 가난이 죄는 아닐진대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와 차별을 당하는 청년, 돈에 가려진 가족의 모습을 유지하며 불륜을 저지르는 부부, 아무리 못된 짓을 하고 다녀도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텅 빈 머리의 부모들, 당연하게 권력을 휘두르며 마약을 즐기고 마약 밀매까지 하는 권력자들, 이 사건의 시작이 되었던 아기 시체 유기까지. 세상에서 들려오는 온갖 나쁜 짓이 도란 마을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도대체 도란 마을은 어떤 곳인가?


“남들에겐 흔한 비극이라도 자기가 당하면 서러워지는 게 인간이지.” (59페이지)


챕터마다 화자가 바뀐다. 그들의 속내를 듣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내일을 살기 위한 오늘의 몸부림 같아서 말이다. 기쁨과 희망보다 감춰진 고통을 듣는 일이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할머니의 까칠한 말투나 세상 관조하는 읊조림은 사이다 같기도 하고 은근한 바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많은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못된 사람들에게 벌을 주고, 애쓰고 노력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할머니의 삶의 태도가 몸부림치는 것 같다. 우리는 각자의 나이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이 있다. 그런데도 그 상황과 나이를 넘어서서 해야만 하는 일도 있는 듯하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감춰진 거짓을 드러낼 줄 아는 용기. 꼬마가 어쩔 수 없이 할머니 옆에 있었던 것이지만, 그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누군가는 감추려고 애썼던 범죄를 훌륭하게 들춰냈으니까. 어쩌면 어른이 더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니었나 싶다.


심장 쫄깃해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이었다. 도란 마을을 떠올리면 영화 <트루먼 쇼>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결말이 다르니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본인은 모르는 본인의 삶이 다른 이들이 지켜보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내 일상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데, 정작 나는 내 인생을 잘 모르는 시간. 끔찍했다. 그게 치매 노인의 시선이고 시간일 거로 생각하니 더없이 우울해졌다. 우리 자신도 정확히 모르는 우리의 최후가 어떤 모습일지 두렵기도 하고. 한 달에 1천만 원씩 내는 요양 시설에 가지는 못할 것 같고, 그러니 더 건강하게 살아보려 애쓰는 수밖에. 그래도 레모네이드 할머니처럼 살고 싶기는 하다. 멋지고 심플하게, 당당하게. 그 마지막 모습마저 레모네이드 할머니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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