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애 작가의 잘 자요 엄마를 분명 처음 출간될 때(초판 노블마인 출간) 읽었던 것 같은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이번에 출간된 작가의 최근작을 읽기 전에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서 펼쳐 들었다. 다 읽고 나니 이 책의 후속을 기다리는 독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 후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는 이 소설을 다 읽었다고, 모든 것이 후련해졌다고 말할 수 없었다.


희대의 연쇄살인범으로 사형수가 된 이병도는 그 어떤 인터뷰나 만남도 거절했다. 가끔 그가 만나는 국선변호인이 전부였다. 그런 그가 범죄 심리학자 선경을 만나자고 한다. 두 사람 사이의 접점은 없었기에 오히려 당황한 건 선경이다. 그가 왜 나를? 막상 만난 이병도는 그의 심리나 범죄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빙빙 돌려가면서 선경을 관찰하고, 맥락 없는 이야기만 꺼내면서 선경을 제압했다. 그는 왜 선경을 만나자고 했을까? 한편 선경은 갑자기 남편의 아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선경의 남편은 이혼남으로, 전처가 돌보던 딸이 한 명 있다. 알고 보니 아이의 엄마를 1년 전에 죽었고, 아이의 외조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있었던 것. 설상가상 아이가 살던 곳에 불이 났다. 외조부모 모두 사망한 상태로 아이를 돌볼 사람은 아빠밖에 없었고, 남편은 선경의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키우기로 한다.


, 나는 정말 이때부터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 들더라. 불이 났는데, 게다가 자기를 돌봐주던 외조부모까지 사망한 상태인데, 아이는 너무 침착했다. 거기에 이병도는 갑자기 선경을 만나자고 하고. 아이와 이병도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사형수의 입에서 나올 진실을 기대하면서도, 전혀 다른 분위기의 사생활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병도를 만나는 일은 선경의 일이었고, 남편의 아이 하영과 같이 지내는 일은 그녀의 사생활이었다. 차분히 준비하고 질문을 추리고 이병도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그의 심리를 파악하는 일은 이성적인 업무로 보고 싶었다. 반면에 하영과 같이 지내는 일은 모든 것에 감정이 실리는, 누구라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새엄마가 되는 일이었다. 그녀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면서도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다.


이병도를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그는 알 듯 모를듯한 말을 하면서 여지를 남겼다. 조금 더 이야기해보면 그의 여죄를 밝힐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했건만, 그는 여전히 선경을 흔들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그가 꺼내지 못한 어떤 진심을 본다. 그가 왜 잔인한 살인마가 되었는지, 그는 무슨 마음으로 여자들을 만났는지, 그 만남이 죽음으로 끝나야 하는 이유를 선경은 찾고 싶었다.


수많은 퍼즐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듯, 연쇄살인범들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모여서 완성되는 존재입니다. 유전적 기질, 성격, 성장 환경, 지금 현재의 상태, 심리적인 상황 같은 여러 조각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죠. 햇빛을 렌즈로 모아 작은 한 점을 계속 쬐이면 종이가 불타기 시작하는 것처럼, 연쇄살인범도 어느 한 가지의 여건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렇게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한군데로 집중되면서 그게 발화점이 되어 범행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잘 자요 엄마, 53페이지)


선경의 시선으로 범죄의 심리를 쫓게 되는데, 그 시선을 따라가면서 보게 되는 건 살인마가 태어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다. 굳이 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궁금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잔인한 범죄의 가해자를 볼 때마다 궁금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공포와 두려움에서부터, 도대체 왜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 싶은 호기심과 원망스러운 마음까지.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이 보인다. 어쩌면 우리도 이미 알고 있던 답. 이병도와 면담하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심리와 하영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알게 되는 것들과 맞춰지는 어떤 그림 말이다. 이병도와 하영, 둘은 너무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그래서 인간이 갖는 잔인함의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선경은 믿었다. 나도 믿고 싶다. 인간이기에 변화 가능한 모든 것에 심성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을 이렇게 하나씩 거둬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잔인함은 우리가 갖고 싶은 바람의 목록에 들어있지 않다.


솔직히 몇 페이지 넘기면서 상황은 다 보이는데도 페이지 넘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일말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설마 하는 그대로 진행되지 않기를, 그래도 인간의 선함이 더 빛을 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서다. 하영이 문득 꺼낸 그 말, “아줌마, 내가 비밀 한 가지 말해줄까요?”라는 어린아이의 호기심 넘치는 문장이 아니다. 섬뜩하다. 즐기는 듯한 그 시선, 타인의 고통과 공포를 바라보는 무심함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아서. 그래서 더 궁금하다. 악의 근원은 어디인가 하는 물음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비밀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든, 아무리 깊게 묻어두어도 비밀은 기어코 모습을 드러내고 잔인한 미소를 짓는다.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303페이지)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작가의 전작 잘 자요 엄마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궁금했을 일. 열한 살 하영이의 마지막 표정을 기억한다면, 이야기가 그렇게 끝이 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뻔해서 말이다. 열한 살 아이답지 않게 표정도 생각도 모를 지경이던 하영이가 새엄마인 선경에게 우유 한 잔을 건네며 인사하던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많은 독자가 작가에게 물었을 것이다. 이게 끝인가요? 하영이는 어떻게 자랐나요?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건가요, 만들어지는 건가요? 한 권의 책에 그 모든 이야기를 담았음에도 여전히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던 독자에게 그 후의 이야기는 필요했다. 확인해야만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여전히 우리는 악의 힘에 휘둘려야 하는지, 악한 인간이라도 갱생의 여지는 없는 건지.


강릉의 어느 중학교 학생 유리. 가출을 결심하고 엄마의 돈까지 훔쳐서 집을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던 유리에게 계속 전화와 문자가 수신된다. 유리는 받지 않았다.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무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다짐도 오래가지 않았다. 유리는 다가오는 아이들의 폭력에 목숨을 잃는다.


열한 살 하영이는 열여섯 살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통보하듯 말한다. 이사를 하겠다고, 선경이 아이를 가졌다고. 5년 동안 이 아이가, 이 가정이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했는데, 위태로우면서도 별일은 없었나 보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하기는 하다. 하영은 아빠의 말에 분노하고 저녁 식탁을 엎는다. 왜 자기에게 의논하지 않느냐고, 일방적 통보가 화가 났다. 막상 이사하고 난 후, 새로운 환경이 하영에게 만들어준 것은 호기심과 차분함이었다. 서울에서와는 다르게 이 환경에 적응하느라 예전의 분위기는 잠시 잊은 듯하다. 그래도 여전했다. 하영은 날카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버리지 못했고, 산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방 하나로 또 다른 사건을 추적한다. 그곳은 강릉이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야 할 사람은 하영 한 명이 아니었다. 선경도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이끌고 잘 지내야 했다. 하영과 새로운 학교에도 가봐야 했다. 다행히 하영은 자기 일은 알아서 잘하는 아이라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지만, 하영의 존재 자체가 선경을 불안하게 하는 건 여전했다. 거기에 남편은 이사도 갑자기 결정하더니 새로운 곳에서도 자기 시간을 우선으로 여기며 산다. 이곳의 일상은 평온했다. 먹고 자고, 글을 쓰고, 가끔 산책하고. 고요하고 평온한데 뭔가 숨어 있는 기분이다. 선경은 그 불안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한 채로 지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자기가 놓친 것들을 찾아낸다. 하영 역시 무료한 일상에 재미를 찾은 듯 그곳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한다.


이 책을 읽기도 전에 두려웠다. 나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편이라, 하영의 심성이 열한 살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로 여겼다. 맞다. 하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섬세하고 영악해졌다고 해야 하나? 어른의 시선이나 말 따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의 생각대로 산다. 그러니 5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이 가족의 위태로움은 더 짙어졌을 것이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하영의 일은 하영 혼자만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읽다 보면 은근한 두려움이 자꾸 쌓인다. 뭔가 자꾸 비밀이 쌓여가는 이 가족이 언제쯤 그 비밀을 드러내며 폭발할까 궁금할 정도였다. 그렇지 않은가. 비밀이 있다는 걸 아는데, 그 비밀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데, 드러나지 않은 채로 자꾸 그 비밀을 더 감추기 위한 일이 벌어지는 걸 이대로 볼 수만은 없으니. 전작의 마지막 사건으로 이 가족은 더 거리가 생겼다. 하영과 선경 사이의 비밀, 하영과 아빠 사이의 비밀, 선경과 남편 사이의 비밀. 모든 비밀은 차곡차곡 쌓이면서 거대한 벽이 된다. 그러니 이 가족이 회복될 거라는 기대는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성장하는 하영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기대하는 이유는, 인간의 선함을 믿고 싶어서다. 여전히 하영은 보는 사람이 불안하게 하는 요소를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지만, 하영의 기억에서도 지워진 시간을 찾아냄으로써 자기 근원을 찾아가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게 기억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서 괴로워하다가도 무심코 잊고 있던 시간. 악인이 되었음에도 악을 벌하고 싶은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싶어 어렵지만, 참고 견디다가 억울하게 죽은 목숨을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었던 거다. 누구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비밀과 권력이 방해하더라도 기어코 그 마음을 부숴버릴 수 있는 상태에 이른다. (, 이럴 때 정말 드라마 <모범택시>라도 부르고 싶다. 은수, 미나, 지훈, 성호 같은 애들 다 혼내주게.) 정말 어떻게 자라나고 있을지 몰라서 두렵고 기대되는 장면이었다. 때로는 악이 넘쳐서 무섭고, 이상하게 기대어 올 때는 다정해서 손잡고 싶고, 딱 그 나이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서 평범해 보이기도 하는, 하영은 알쏭달쏭 그 마음을 알고 싶어서 계속 바라보게 되는 인물이다.


아마도 전작과 이 작품을 다 읽은 독자라면 좀 서운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전작의 강렬함에 이번 작품 출간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을 테니, 그 기대감이 오를 대로 올랐을 테니까. 그런 마음으로 읽는다면, 이 작품은 조금 김이 빠진 것 같다. 화재 사건과 동물 학대, 살인 등 전작에서 보여줬던 거에 비하면 이 작품의 분위기는 좀 선하다. 학교 폭력과 살인, 가스라이팅, 폭행 등 다양한 악이 등장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인간에 대한 이해로 비친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부르는 일들 앞에서 어떤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험난하면서도 제대로 맞춰지는 퍼즐 같았다. 그렇지. 인간이 악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선함을 갖고 있기에 인간이라는 기대가 사라지지 않게 만든다. ‘하영 연대기는 그렇게 이뤄지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악했지만, 그렇다고 계속 악해지지 않을 노력. 그 악함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찾아가는 시도. 그 악을 뿌리 뽑아야 하는 임무. 그래서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못한다.


전작 개정판을 읽으면서 보니 이 이야기는 총 3부작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처음 한 작품으로 끝내려는 작가의 마음과는 다르게 쇄도하는 독자의 요청에 2(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에는 하영의 청소년기 모습을, 3부에서 성인이 되는 하영의 모습까지 담는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읽고 나니 마지막 작품이 더 기대될 수밖에 없다. 읽으면서 미심쩍었던, 그 악의 근원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너무 궁금해서 말이다. 비밀이 더는 비밀로 남지 않을 시리즈의 결말을 기대한다. 아쉽게도 3부까지 기다려야 그 마지막을 볼 수 있다니 갈증은 좀 나겠다.



조심스럽게 덧붙이자면 , 서미애 작가의 작품 모두 재밌게 읽힌다. 장편은 장편대로, 단편은 단편대로 흥미롭다. 장편은 종이책으로 읽고, 단편은 전자책으로 자투리 시간에 읽곤 했는데 충분히 흥미로웠다. 한국 추리소설에 관심 가지고 호감이 생기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작가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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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행복한 금요일 밤 되세요~

구단씨 2021-06-08 22: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더운 날들 시작인데, 조금이라도 시원한 날들 지내시길요. ^^

서니데이 2021-06-04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6-08 22:4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항상 일상의 좋은 이야기, 신간 도서 잘 보고 있습니다.

꼬마요정 2021-06-04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용!!

구단씨 2021-06-08 22: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더워지는 계절 건강 조심하세요.

새파랑 2021-06-0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구단씨 2021-06-08 22:5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언제나 아아가 땡기는 날들입니다. ^^

이하라 2021-06-0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6-08 22: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
 


단순한 생각이 좋다는 게 무엇인지 이 책 읽고 다시 새겼다. 자기 임무에 충실한... 이 책은 분량도 적고 가방에도 쏙 들어가서 휴대하기 좋지만,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무게감이 있기도 하다. 이 분야를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혹은 작가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면 좋은 지침서가 되기도 하겠다. 무엇보다 독자에게도 만족스러운 책이 아닐까 한다. 나는 진짜, 궁금했거든. ^^


독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한다는 온라인 서점 엠디. 나는 진짜 단순하게 생각했다. 작가는 글을 쓰고, 출판사는 그 글을 책으로 만들고, 서점은 그 책을 판다. 이렇게 생각하면 단순한 과정으로 보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거. 글을 쓰는 것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 테다. 출판사가 책을 만드는 일도 참으로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 서점에서 책을 파는 일 역시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홈쇼핑의 뒷이야기를 들으면서 엠디의 고단한 업무를 본 적이 있는데, 서점의 엠디도 마찬가지였다. 출간된 책만 파는 게 아니었다. 물론 기본 중의 기본은 책을 파는 일이겠지만, 독자가 책을 주문하고 서점에서 판매하는 단순 과정이 아니었다는 거다. 특히 요즘에는 책파는 게 아닌 곳이 바로 온라인 서점 아니었던가.


엠디. 그들의 업무도 다양했다. 특히 오전 8시에 업무를 시작한다고 해서 놀라기도 했다. 누구나 비슷하게 9시에 일을 시작하는 게 당연한 거로 알았기에, 온라인 서점의 고객센터도 9시부터 전화 연결이 되었기에 말이다. (문의 사항 있으면 시계 보면서 전화기에 번호 누르고 9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게 습관이 되었음. 시간 잘못 맞추면 상담 연결 바로 안 되어서 화가 나기도 했기에) 그런데 8시에 업무를 시작한단다. 고객이 주문한 책과 재고 확인은 물론 출판사 발주까지 마무리해야 오전이 끝난다. 이들의 일은 대부분 전화 통화로 이루어지고 만나야 할 사람, 해결해야 할 회의도 많다.


, 무슨 책 파는 일이 이렇게 복잡한가 싶었다. 거기에 요즘에는 서점에서 책만 파는 게 아니지 않은가?! 굿즈를 샀더니 책이 따라왔다는 말, 낯설지 않다. , 나 정말 이런 얘기 굳이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한때 온라인 서점에서 주는 컵에 미쳐서 책을 정말 많이 샀다. 읽고 싶어서? 아니, 컵 받고 싶어서. 근데 받고 보니 또 아까워서 컵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했다. 상자 포장 그대로 아껴두고 쌓아두고 있던 게 10년이 넘었고, 엄마가 맨날 내다 버리라고 하실 때마다 이 귀한 것을 왜 버리라고 하느냐며 싸우고, 근데 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애물단지 아니겠나. 그랬다. 나는 이 컵들을 바라보고 모셔두기만 했다. 그러다가 엄마랑 싸우기를 몇 년. 이번에 이사하면서 그 컵을 죄다 가지고 와서 잘 쓰고 있다. 맞다. 컵은 무언가를 따라 마시면서 사용해야 그 의미가 있다. 그렇게 나는 10년도 훨씬 넘은 컵을 이제야 사용하고 있다. 아직도 튼튼하다. 아마도 깨질 때까지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처음부터 엠디의 업무가 이런 건 아니었을 거다. 온라인 서점이 처음 생기면서 편집자라는 이름으로 일을 시작했다는 저자.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그 당시에 엠디로 일하는 건 지금보다 입사 구멍이 좀 넓었던 것 같다. 이력서와 도서 리뷰 몇 편으로 심사했다고 한다. 온라인 서점의 시작은 독자인 나에게도 눈이 확 뜨이는 판매점이었다. 시골에 살면서 서점 찾기도 어렵고, 서점에서 모든 책을 다 파는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할인해서 판매해주는 곳이니 얼마나 좋았던가. 무료배송이 할인해주는 책을 파는 곳이 생겼다는 건 책이 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단비 같았을 거다. 그런 시장에서 책을 판매하는 이들의 업무가 점점 확장되었던 건 온라인 서점의 역할이 달라지면서부터다. 그리고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온라인 서점과 독자 역시 마음 자세를 바꾸어야 했다. 일정 부분 이상의 할인은 금지되었고, 우리가 목숨 걸고 사수하고 싶었던 공짜 굿즈도 이제는 돈을 지급해야만 내 것이 된다. 경품의 규모도 같이 변했으니, , 슬프고 슬픈 일이다.


무엇보다 온라인 서점의 메인 화면에 보이는 책 추천 카테고리. 나도 한 번씩 클릭해보고 들어가 보는 곳이다. 새로 나온 책, 오늘의 책, 베스트셀러, 거기에 로그인까지 한 상태라면 개인 맞춤형 추천까지 해주는(아마도 이건 AI?) 정도이니 어느 정도는 만족스럽다. (이 맞춤형 추천이 100% 내 취향은 아님) 암튼, 이렇게 주기적으로 바뀌는 화면을 만드는 이도 엠디라고 한다. 이런 것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나는 엠디의 업무를 간단히 여겼다. 말 그대로, 책을 팔기 위해 뭐든 다 하는 사람이 되어 그 공간에 파묻힌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고, 새로 나온 책을 읽고, 책을 팔기 위한 전략에 빠져든다. 굿즈를 위한 시장조사와 회의를 하거나, 신간의 매출을 위해 추천 리뷰도 작성해야 한다. 책을 많이 팔기 위한 온갖 이벤트 기획 역시 엠디의 몫이다. 수많은 책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그들의 일이기도 하지만, 눈곱만큼이라도 책이 좋아서 뛰어든 곳일지도 모르지만, 그들 역시 경쟁이라는 시장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엠디의 많은 역할을 내가 다 적지는 못하겠다. 너무 많아. 많아도 너무 많아. 누군들, 자기 일이 단순하거나 쉽지는 않을 테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 엠디의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아서, 그저 책이 좋다고 읽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엄두를 낼 수조차 없을 정도로 고단해 보였다. 그래도 좋으니까 하는 거겠지? 그들의 업무 중에서 나는 이게 정말 궁금했는데, 그 많은 책을 다 읽고 소개하는 걸까 싶었다. 비록 소개하지는 못하더라도 많은 책을 접해야 그들의 안목도 넓어지고 세상에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알아야 책을 걸러내는 역할도 할 것인데, 도대체 그 많은 책을 언제 읽느냐 하는 거였다. 그 비밀은 정말 간단했다. 저자가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에 맞게 책을 골라서 소개해주는 것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책을 실제 출간된 책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내가 지금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기 생각을 말하고, 책을 꾸며내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 된다. (아하. 끄덕끄덕) 세상의 책을 다 읽을 수는 없고, 부득이하게 읽지 않은 책(읽다가 만 책)을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 방법도 꽤 유용하다. (나도 이런 적 있음. ㅠㅠ)


어쩌면 남녀노소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세상과 소통하는 이 시대에, 종이책을 팔고 있다는 것만큼 아날로그적인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의 서점은 웹 속에 존재하지만, 이 모니터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한다. 비록 우리와 고객과의 만남은 온라인에서 이뤄지지만, 책을 통해 이뤄지는 행복과 경험은 분명 우리에게도 도달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일은 실재하는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책 파는 법 169페이지)


읽다가 보면 엠디의 영역이 어디까지인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실 그 영역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지금 그들이 하는 일도 어쩌면 내일 달라질지도 모른다. 내일 또 책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변화하는 시장에 맞게 엠디도 독자도 변화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소개 글의 한 문장처럼, 엠디의 하루가 고달플수록 독자의 만족도는 올라간다. 엠디와 독자가 서로 눈에 보이는 존재는 아니지만, 온라인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서로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책을 팔고 책을 사는 위치에서 서로가 원하는 걸 위해, 만족하기 위해 존재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온라인 서점을 이용했다. 아마 온라인 서점의 시작과 거의 같은 시기에 나도 온라인 서점 이용자가 되었을 거다. 내 기억이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이용자로 온라인 서점을 겪어온 나의 시간과 온라인 서점 엠디로 살아온 저자의 시간이 비슷할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온라인 서점의 변화를 똑같이 보아왔으리라. 그 변화 속에서 만족한 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다. 그래도 매 순간 독자가 요구하는 것을 새기고 반영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저자의 글로 보인다. 물론 그 노력은 책을 팔기 위한 궁극적인 임무와 목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대상인 독자의 만족도를 위한 일이라는 것도 맞다. ‘내돈내산의 만족을 위한 독자의 요구는 아마도 계속되겠지. 그렇기에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도 엠디의 일이겠지. 고단하고 힘들겠지만, 책을 매개로 한 당신과 나 사이의 만족도를 위해 계속 애써주기를. (미안합니다. 역시 저도 책을 돈 주고 사는 사람이기에, ‘내돈내산책의 만족을 항상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부디 책 읽는 것을 부담스러운 활동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거다. 사람들은 책 좀 봐야 하는데하는 말을 습관처럼 하고 책을 읽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도 심심찮게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서 정작 책에 대한 기억은 방학 내내 추천도서 목록을 읽고 독후감 몇 편을 써냈던 선에 멈추어 있다면 어찌 독서가 행복할 수 있을까? 어찌 독서에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책을 읽는 것은 의무나 책임이 아니라 아무 부담 없이, 그저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이 생각은 서점에서 일하기 전이나 일하고 있는 지금이나 변함없다. (책 파는 법 73페이지)


책을 가까이하면서도 다 알지 못했던 하나의 세상을 본 것 같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다 알지 못한다. 병원에 수없이 드나들면서도 의료진의 입장을 다 알 수 없던 것처럼, 책으로 엮인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전에 읽었던 출판 관련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 일상이 된 온라인 서점 속 엠디의 세상도 재밌다. 일로 보면 그저 자기 밥벌이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독자로 살면서 책을 파는 공간의 이야기도 즐거웠다. 이런 이야기, 우리가 직접 부딪히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자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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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5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엠디가 일하는 범위가 엄청 넓군요. 굿즈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ㅎㅎ 리뷰를 보니 책을 좋아하더라도 그게 직업이 된다면 그렇게 즐겁지 않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ㅜㅜ

구단씨 2021-04-17 22:18   좋아요 1 | URL
네. ^^
저는 굿즈만 담당하는 담당자가 따로 있는 줄 알았어요. 독립된 부서로 굿즈를 목적으로 일하는... ^^
근데 참 도서 엠디가 많은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초딩 2021-05-08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행복한 주말 되세요~

서니데이 2021-05-08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1-05-0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즐거운 날 되세요~
 



오랜만에 이혜경 작가의 소설을 기다리고 있다.

"사소한 그늘"


<책 소개 글 옮겨옴>

이혜경의 네 번째 장편소설. 1970년대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 자란 세 자매의 이야기다. 다정하고 정밀한 시선으로 삶을 슬픔을 껴안는 소설가 이혜경은 <사소한 그늘>에서 차분한 서술과 유려한 이미지로 세 자매의 일상 속 희로애락을 그려 낸다.

경선, 영선, 지선 세 자매는 성격도 취향도 제각각이지만, 그 시절의 많은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결혼이라는 같은 선택지에 다다른다. 여성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욕망을 저버리고 꿈을 포기한 채. 좌절과 순응을 배운 어린 시절은 세 사람에게 짙은 그늘로 남는다.

그 그늘은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력한 엄마에 대한 기억이고, 여성의 역할을 가정 안으로 제한하는 사회의 분위기이기도 하다.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에서 시작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가정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어지는 세 자매의 삶에 드리운 그늘은, 오랫동안 사소하게 여겨졌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핀 시리즈로 나온 소설은 읽을 기회를 놓치고 그냥 넘어갔는데, 이번 작품은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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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짐을 꾸리는 일부터 낯선 곳에서 고생하던 시간이 별로라면서, 그런데도 시간이 된다면 어딘가로 움직이는 마음이 참 모순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귀찮다고 여기는 내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싶었던 순간이 작년 내내 계속이었다. 코로나로 변한 일상이, 처음에는 좀 견딜 수 있다고 여기던 마음이 점점 힘들어졌다. 움직이기 싫어서가 아니라, 여행하고 싶어도 불가능해진 현실 앞에서 당황했다. 우울하고 슬펐다.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일상이,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도 된다면서 미루기만 했던 일들이 불가능해지니 코로나 이전의 날들이 감사했다. 별일 없이 지내던 일상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커피 한 잔의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 날들이었다. 거기에 마스다 미리의 작품은 그 소소한 날들이 어떤 것인지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의 오늘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오늘의 인생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가 스쳐 보낸 일상의 단편들을 그려낸다. 어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웃지 않는 페이지가 없었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 당황해서 소리 내지 못하고 나오는 웃음. 그래, 우리 이런 맛에 웃으면서 살아왔었지 싶은 이야기에 혼자 적어놓은 일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인생의 하루하루가 이렇게 모여서 삶이 완성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평온한 날들의, 평범한 날의 소박한 기록이었다. 너무 특별해서 기억하고 자랑하고 싶은 날이 아니라, 너무 평범해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순간들을 사진 찍어놓는 듯하다. 사실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날보다 어떤 사건이나 특별한 날이 더 잘 기억나는 건 맞다. 그러면서도 그 특별함 속에 자리한 평범한 날들이 잊히지도 않는다. 가끔 그렇게 별일 없는 날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 걸 보면, 역시 인생을 채우는 시간 속에서 평범한 일상의 기억이 더 애틋하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가 이렇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듣다 보면 우리의 일상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하는 것. 작가가 부리는 마법일지도.


<오늘의 인생2, 138페이지>

 

오늘의 인생 2는 그 마법의 연장선에 있다. 여전한 날들의 평범함, 그 평범함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찾아내는 삶의 기쁨인 기록이다. 거기에 작년 한 해 우리가 고통스럽게 견디던 코로나의 일상이 담겼다. 이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던 날들일 것이다.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고, 식당이나 커피점에 앉아서 먹지 못 하는 일이 생기는, 매일 브리핑하는 확진자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옆을 지나가는 누군가를 피해야 하는 공포까지. 무엇 하나 평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을 지낸다. 하루하루 식사를 하고, 공부하고, 일하는 날들을 이어간다. 평범하지 않은 날들 속에서 평범함을 살아간다. 작가의 일상을 또 한 번 마주하면서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세계가 이렇게 변하게 되었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로 우리는 여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본다.

 

특이하면서도 그럴 수 있음을 공감한다. 겨울날의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드라이를 켜고 머리카락을 데우는(?) 일이라니. ^^ 이런 부지런함이 있을까 싶어 웃음부터 났는데, 차가웠던 머리카락이 따뜻해지면 기분이 좋다는 말에 격한 끄덕임을 보냈다. 그럴 수 있다. 차가움보다는 따뜻함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손끝에 닿는 그 느낌이 그대로 마음이 전해져온다고 생각하면, 겨울 아침의 드라이하기는 충분히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작가가 보여주는 그 간결한 선의 그림이, 많은 생각보다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 담아내면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작가는 우리이기도 하다. 많은 일에 지친 것 같다며 차 한잔 간절하지만 아무 가게에도 들어가기 싫은 마음을 품은 모습은 낯설지 않다. 주택가 어느 골목에서 나는 저녁밥 냄새에서 그리움을 찾기도 한다. 삶의 곳곳에서 묻어나는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다가와서 솔직하다고 해야 할지... 가끔 감추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은가. 아닌 척, 괜찮은 척,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안 듣는 척하면서, 일상의 사소함에 관심 없이 살아가고 싶어지는 마음. 어쩌면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세계에 속하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을 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도를 전한다. 작가가 전하는 일상의 가장 큰 힘은 공감일 것이다.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하루하루가 이렇게 충만할 수도 있구나 싶은 감동일지도 모른다. 아이스크림 하나 먹어야지 하면서 향하는 걸음이 가볍고, 차 한잔에 수다 떠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고, 전철에서 아빠의 어깨에 기대어 자는 아들의 모습에 언젠가 기억할 오늘을 상상하고, 꽃가루를 피해 도쿄를 떠난 여행지에서의 만족감 같은 일이 일상을 반짝이게 한다.


<오늘의 인생2, 64페이지>

 

어쩌면 지나간 오늘은 붙잡을 수 없는, 지나간 하루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기보다 어린 학생들을 마주하면서 종종 그들이 가진 젊음과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 나이여서 아름다운, 그 나이가 지나면 알게 될 순간들을 말하기도 한다. 사실 언제나 그렇다. 이상하게도 인생의 많은 일은 지나고 아는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 때로는 후회가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며 애틋해지기도 한다.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는 세월이지만, 계속 이어지는 인생이기에 오늘의 인생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내일의 나를 기대하면서 사는 날들일지도.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휴일을 보내면서 꼬박 집 정리를 하고, 길가의 고양이에 시선을 빼앗기고, 갓 구워나온 빵 냄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주문하는, 기분 전환 삼아 빨간 지갑을 사러 갔다가 그냥 나오고, 헬스장에서 영상을 보며 운동하고, 여행길에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접어두는, 아무리 봐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내는 작가의 이야기이기에 그 소박한 한 마디에 마음이 향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다짐하는 작가의 바람으로 시작하는 이 책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마음대로 만날 수 없고, 어디로든 떠나는 것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날들이다. 그런 오늘의 인생이 감사하다. 언젠가 마주할 내일, 오늘의 인생을 기억하며 애틋함에 수다의 주제로 오를지 모른다. 그때의 우리는 이랬다고, 그때의 불안은 정말 힘들었다고, 그래도 살아온 오늘이기에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울고 웃으면서 채워진 오늘의 인생이라고 말이다.

 

 

소심하게 덧붙이자면,

작가가 책 속에서 언급하는 또 다른 책들의 제목을 메모하는 즐거움도 컸다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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