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식 아파트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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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에 살면서, 집은 이 한 몸 편하게 쉴 곳을 넘어서서 자산의 의미가 크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내가 경험한 사람 대부분은 그렇다. 어쩌면 나 역시도 집의 의미를 그렇게 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 그 자산이란 집은 언제나 타이밍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집값이 어떻게 될 건가 하는 물음에, 많은 이가 이렇게 말한다. (아파트)이란, 내가 살 때가 가장 싼 거라고. 그 말이 정말 맞나? 이상하게도 내가 사고 나면 더 하락하는 게 집값이 아니었나? 거의 1년 동안 이 도시에서 새롭게 분양하는 아파트를 다 구경했고, 그중에 내 집이 있을까 싶어 고민했지만 역시나 돈이 문제였다. 바로 두 달 전에도 분양한다는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예약했지만, 가지 않았다. 괜히 보고 와서 더 우울해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 사실 이 아파트는 지금 사는 아파트 바로 근처에 지어지는 거라서, 정말 생활권 이동 없이 좋을 것 같았는데. 암튼, 작년에 분양하던 아파트는 지금 거의 무피에 거래되고 있고, 두 달 전에 보려다가 안 간 곳은 미분양이다. 대출금이나 유이자, 이걸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의 선택은 이거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놈의 타이밍은 간절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쳐 집 한 채 구하려는 사람을, 언제나 잘도 비껴간다. 에이~


그런 집 때문에 최근에 마음이 서글퍼졌던 적이 있다. 내 주변의 한 사람은 이번에 새 아파트 분양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이미 아파트가 2채나 있기에 세 번째 아파트는 대출 규제가 있어서 신청이 어렵겠다는 말을 들었다. 또 한 사람은 남편의 사업 확장에 돈이 필요하다고, 여유로 가진 아파트를 1억이나 저렴하게 내놔도 안 팔려서 걱정이라는 말을 하고. 1억을 내려도 웬만한 사람이 선뜻 사기에는 비싼 가격에 속으로 좀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많은 아파트를 보유하면서, 돈 필요하면 한 채씩 팔아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 사실은 많이, 서글펐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서글픔이 다시 밀려왔다. 잘살아 보겠다고, 전세금 올려달라는 말에 더는 이사 다니기 싫어서 겨우 마련한 집이 계속 하락세라면, 그 마음은 어떨까.


은영에게 이사는 습관 같았다. 결혼생활 십 년 동안 여러 번의 이사였다. 2년에 한 번씩 올려달라는 전세금이 더는 힘들어졌을 때, 내 집 마련의 몸부림을 친다. 그녀의 남편 정수는 연극배우지만, 딱히 언제 빛을 볼지도 모르겠다. 그녀 역시 연극배우였지만 결혼과 동시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연극판을 떠났다. 아끼고 살피며 살아왔는데, 내 집 장만을 꿈도 못 꾸었다. 갭투자가 한창일 때 전세가는 치솟았고, 더는 버틸 수 없던 은영은 경기도 외곽에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를 매매하고 이사한다. 이제 더는 이사 가라고 내쫓을 사람도 없는, 내 집이구나. 이 집값도 곧 오르겠지. 이 안정감이 은영의 삶을 바꿔놓을 줄 알았다.


마음이 급하면 뭔가 더 알아볼 겨를도 없다. 은영이 이사한 곳은 소각잔재 매립지 공사 문제로 오랫동안 시청과 싸워온 곳이었다. 뒤늦게 알고 보니 그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당연히 집값은 내려갈 거고, 그 환경에 우리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며 동네 사람들은 시위한다. 반대 서명을 받고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며, 매일 시위하는 걸 보면서 은영은 정신이 나갔다. 이제야 살아갈 만하다고 여기고 싶었는데, 동네는 어수선하고 사람은 떠나고, 기피 지역이 되어버렸다. 이사가 답이라며 다시 이사를 준비하지만, 그 사이 집값인 3천만 원이 넘게 떨어졌다. 그 도시를 떠나고 싶지만, 이제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게 됐다.


정말로, 아파트 한 채 있으면 중산층인가? 그 기준은 다 다를 테다. 그저 집이란, 아파트란 내가 머물 곳이어야 한다는 게 가장 첫 번째 의미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집이란 그런 곳이어야 하는데, 매번 집을 떠올리면 돈과 연결이 되고, 그 연결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은영이 정수와 결혼해서 집을 매매하자고 했을 때 정수는 곧 집값이 내려갈 거라면서 반대했다. 몇 번의 매매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정수의 반대로 은영은 전세를 옮겨 다녔다. 정수와 싸워서라도 그때 매매를 했어야 한다면서 후회했지만, 지금은 몇 번을 올려준 전세금으로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됐다. 이게 은영의 현실이자,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집을 구하면서 경험하는 슬픔이다.


누구나 타이밍을 잘 잡고, 물건을 잘 보는 눈이 있어서 집을 매매하고 시세 차익을 얻었다면 좋겠지. 그런 소득을 얻는 것도 살아가는 즐거움일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기회도 아니기에 매번 결말은 달라진다. 누구는 이익 보면서 추가로 다른 집을 매매할 수도 있고, 누구는 심각한 손해에 빚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알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가 다르기에, 집으로만 매겨지는 인생 시세 차익도 점점 커져만 간다. 소설에서 주인공 은영이 경험한 IMF부터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의 이십여 년을 보고 있노라면, 낯설지 않다. 우리도 겪었다. 그때의 현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눈에 선하다. 뭔가 회복하려나 싶으면 다시 경제위기는 찾아오고, 조금 나아질까 싶어 힘을 내려고 하면 다시 반복이다. 그런 시간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하는 걸까 싶지만, 은영이 마지막에 보여준 것은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온 건지 모를 희망이었다. 집값도 괜찮고 생활권도 좋은 신림동 은영의 새로운 터전은 어떻게 발전해나갈까. 다시 은영은 집값 오르기만을 기다리며 집의 의미를 다시 쓰고 있을까?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 역사를 압축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어느 시대를 봐도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나 역시 은영의 그 세월을 그대로 걸어왔고, 집의 의미를 다양하고 복잡하게 생각하느라 지금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여윳돈은 없고, 혹시 지금이 자산으로 집을 구해놔야 할 타이밍인가 싶기도 하고, 그럼 집값은 또 어디서 마련하나 싶은 걱정만 가득하고. 그러다가 이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 갚으면서 평생을 살아가게 될까 봐 또 마음을 비웠다가... 뭐가 이래. 마음이 참 씁쓸하기만 하다. 예전에 엄마가 그랬는데,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이라도 누가 나가라고 안 하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게 집이라고. 세상은 변했고 엄마의 말도 의미가 없다고 여겼는데, 이사 걱정 없이 사는 것만도 어딘가 싶을 때마다 엄마의 그 말이 자주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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