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나는 어떤 시간이 있다. 일부러 소환하지는 않았지만, 기어코 떠오르고야 마는 장면들 때문에 울컥해지고야 만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고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닌데, 아련하게 떠오르고야 마는 기억 때문에 심장이 잠시 두근거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떤 계기로 떠오르기도 하고, 갑자기 찾아온 그리움 같기도 하다.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은 대부분 후회를 동반한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면서 가슴을 한번 치고 싶은 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어떤 일,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책 같은 거 말이다. 그래도 좋았는데, 그리운데, 그 한가운데는 언제나 아쉬움이 있다. 나이를 먹어가는 걸 이렇게 느끼는 건가. 아니면 이런저런 생각에 심란해서 그냥 그런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거나. 안드레 애치먼의 하버드 스퀘어는 처음부터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인 는 열일곱 살 아들과 함께 캠퍼스에 있다. 하버드였다.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아버지의 자격으로 함께 듣는 설명회였지만, 거기에는 두 가지 진실도 있다. 아들이 후회하지 않는 대학 생활을 바라는 마음에 부모로서 건네는 조언과 염려와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는 그의 대학 생활 한 부분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그럴 수도 있지. 대학에 입학하는 아이를 두고 어느 부모라도 그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너무 자연스러운 기억의 부름이 아니겠나.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보면 이십 대의 시작이었을 테고, 너무도 찬란해서 종종 그리워질 시간이다. 가장 젊고 예뻤을 때, 청춘이라 불리며 힘이 넘쳤을 때, 하고 싶은 게 많을 때. ,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그립다. 하지만 그의 대학 생활을 여유롭지 못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버는 돈은 모두 집세로 들어갔고, 그의 용돈은 항상 모자랐다. 그나마 받는 장학금이 도움이 되는 정도였을까.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시간이었고, 그의 청춘과 다른 어려운 시절이었다.


느 순간 그는 아들을 앞에 두고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그의 대학 시절의 어느 날, 문학 시험을 대비해 책을 읽던 카페에서 그는 친구가 될 칼라지를 만난다. 수다스럽지만 의미 있는 말을 쏟아내는 칼라지. 그의 힘든 시절 한 장면을 장식하게 될 중요한 사람을 만난 순간이었다. 칼라지의 몇 마디에 반해버린 그는 단번에 칼리지와 친해진다. 어쩌면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칼리지와 나눌 수 있어서일까. 주변의 화려한 것 가운데서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일까.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자기 출신을 부끄러워하고 가난을 힘들어했다. 상황이 비슷한데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칼라지를, 그를 부러워했다. 매력적으로 여기며 닮고 싶었다. 두 사람에게는 프랑스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었으니, 대화가 얼마나 잘 통했을까.


소설에서 묘사되는 칼리지는 참 당당한 사람이었다. 환경에 주눅 들고, 항상 돈에 쫓기며 지내는 대학 생활이 그를 우울하게 했던 것과 달리 칼리지는 무서울 게 없어 보였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지식이 넘쳐 보였다. 안으로 숨어들기에 바빴던 그가 칼리지를 어떻게 봤을지 상상이 된다. 비슷한 조건인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이상해 보이기도 했겠지만, 닮고 싶기도 했을 거다.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 하버드에서 살아가기란 어려웠다.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허락된 건 그저 하버드 입학뿐이었을까. 칼리지를 알고 그에게는 고향의 냄새를 맡는 것처럼 편안했다. 학교 시험에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통과해야 할 시험보다 카페에서 칼리지와 머무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초라해 보이는 카페에서 마음만은 초라하지 않은 일이 가능했다.


이런 마음 조금은 알 것 같지 않아? 각자의 상황, 삶이 다르기에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냥, 그런 비슷한 시절을 지나왔다고, 현실에 치여 살다가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에 눈길을 뺏기기도 했다고 말하면 어떨까. 나는 눈앞의 것을 해결해야 하는데, 마음은 너무 힘들어서 좀 쉴 곳을 찾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럴 때 우리가 보고 만난 누군가는 굉장한 의지가 된다. 나와 비슷해서 바라보고 연민을 느끼면서도,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길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혐오스러운 대상. 가까워서 편안한데 그게 불편해서 멀어지고 싶은.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그곳에 기대고 싶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야 할 텐데, 그 정도의 시간을 건너왔다면 그 존재가 지금 내 옆에 있어야 맞을 것 같은데, 없다. 그 존재는 이미 사라진 그 시간과 함께 나에게 남아 있지 않다. 잘 생각나지도 않았다.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또 지금을 살아가는 일에 다시 바쁘다고 핑계를 대면서. 일부러 기억할 수도 없었다. 그럴 기회조차 없이 살아왔다. 우리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문득, 이런 책을 만나면, 주인공의 기억과 시간을 같이 거슬러 오르면서 찾아오는 이 감정에 잠깐 묶이곤 한다. 후회를 가득 안고서. 하아.


이 어두운 침실에서 문득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을 망치고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 내가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하버드 스퀘어 272페이지)


아마도 칼라지의 인생을 조금 엿본 다음에는 이 사회의 차별과 적대, 세상사에 무관심했던 그 자신을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거다. 거리를 떠돌고, 다른 이의 집에 얹혀살면서, 택시 운전을 하고 시를 쓰는 칼라지. 물론 칼라지에게도 험난한 사건이 많았고, 현재에도 칼라지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는 게 맞겠지. 그런데도 그와 닿을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두 사람의 우정과 끈끈함이 오래 갈 거로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두 사람의 길을 너무 다르게 열리고 있었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세상에 맞선 칼라지와 하버드의 삶을 인정하며 꾸려나가려는 그는 더 가까워질 수 없었다. 오히려 서로를 알기 전보다 멀어졌다고 해야 할까. 그는 자신의 미래를 하버드에 걸었으니까. 그의 인생이 칙칙한 카페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칼라지의 사이다 같은 말에 계속 빠져 있을 수도 없었다. 그에게 현실은 하버드 안에 있었고, 그가 올라야 할 곳을 바라보는 게 그의 삶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이었으니까.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하버드 광장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너무도 닮았던 칼라지와 자신을 다시 보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대로 뒤돌아선 자신을 혼내고 있을까. 그도 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다른 선택이 그에게 최선이 될 수 없었음을.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도. 칼라지와 제대로 된 인사를 못 했기에, 풀지 못한 숙제로 오랜 세월 그의 가슴에 남아 있던 건 아닐까 싶다. 살아오는 동안 내내 그의 가슴 속에 숨겨두었던 것을 꺼내는 순간이었다. 누가 묻지 않았지만, 오늘의 그가 불행하지도 않았지만, 그에게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건 그만이 알겠지만, 그와 너무 닮은 한 사람이 그렇게 존재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종종 꺼내 보고 싶어질 것 같다. 세상에 맞서고 싶은 자신을 대신했던 사람, 그러지 못하고 숨죽인 자신의 모습을 아는 유일한 사람,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고 그저 스치듯 한번 보고 싶은 사람.


누구나 비슷하게 겪는 어떤 마음을 마주하는 것 같다. 그립고 아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혹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의 선택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도 자꾸 생각나는 건 무슨 마음인지 정의할 수 없지만, 이렇게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고. 그냥,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면서도 머물러 있지 않은 어떤 마음, 아마도 계속 이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야겠지.


안드레 애치먼의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그가 가진 배경이 많이 담겼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마치 작가의 분신처럼, 같은 배경을 가진 이가 소설을 이끌어가면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소설에 잘 녹아 있다. 이방인과 방랑자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던 시절의 그, 그런데도 쉽게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 머물렀던 그의 경험이 이야기의 바탕이 된다니 소설이 더 생생하게 들린다. 물론 소설에 담긴 모든 것이 그의 인생은 아닐 것이다. 허구와 현실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하면서 독자에게 그 경계를 서성이게 한다. 아마 전작도 그랬을 테고, 다음 작품도 그러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무렴 어떠하랴.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의 시간을 듣는 일은 행복하다. 독자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능력이 타고났다.


 









#하버드스퀘어 #안드레애치먼 #하버드 #비채 #소설 ##책추천

#회상 #그리움 #아쉬움 #선택 #이방인 #이민자의삶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덧붙입니다.

안드레 애치먼의 <하버드 스퀘어>를 읽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말씀 남겨주세요.

제가 두 권을 가지고 있어서 한 권을 나눔하려고 합니다. 

좋은 책 같이 읽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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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16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드레 에치먼 작품은 아직 안읽어봤는데 리뷰를 보니 완전 좋을거 같아요~ 감정을 흔든다니 ㅋ 이번달에 꼭 한권은 읽어봐야 겠습니다 ^^

2022-02-16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2-02-16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오늘까지 기다려 보시고 안 계시면 저에게
보내주시죠.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아니 새파랑님 보내달라는 뜻인가요?
표현이 어떤 의민지 잘 모르겠네요.
구단씨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ㅎㅎ

2022-02-16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6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2-02-1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오늘 책 받았습니다.
나눔해 주셔서 넘 고맙습니다.
구단님 메모 글도 예쁘구요.ㅎ
즐겁게 읽도록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mini74 2022-03-08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넘 재미있게 읽은 책 ㅎㅎ 구단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

새파랑 2022-03-08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축하드립니다~! 좋은 책, 좋은 리뷰였어요^^

그레이스 2022-03-08 1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2-03-08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하라 2022-03-08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희선 2022-03-08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 님 축하합니다 안드레 애치먼이 쓴 이 소설에는 자기 경험이 더 많이 들어간 듯하네요 사람한테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자꾸 떠오르는 때가 있기도 하겠습니다


희선

독서괭 2022-03-09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2관왕 축하드립니다~^^

thkang1001 2022-03-09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2관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필요한 책이 있어서 도서관에 갔다.

이곳 도서관은 예전에 예약 대출이 가능했는데, 

그러다 보니 직접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불편함도 발생하는 지라, 

예약 대출 시스템을 없애고 도서관 이용 시간을 연장했다.

그리하여, 상호대차 서비스는 잘 되어 있는 편이고(시간은 하루이틀 이상 걸리지만 괜찮음),

신간 도서 입고가 느린 편이지만 그럭저럭 기다릴 만한 책을 신청하는 편이기에 괜찮은데...


아, 도서관에 비치된 도서를 가지러 갔는데 

바로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이 대출해가는 걸 보는 건 너무 괴롭....ㅠㅠ


검색해보니 여러 도서관 중에 딱 한 곳만 비치된 책이더라.

그것도 이제 막 입고된 도서였고,

마침 다른 책도 필요한 지라 겸사겸사 일부러 거기까지 갔는데,

바로 서가 바로 앞에 도착했는데 바로 내 앞에서 서성이던 어떤 사람이

그 책을 손에 들고 있어서 막 힘이 빠지더라는.

이걸 뺏어올 수도 없어서 더 허망했다. 자주 가는 도서관 아닌데, 일부러 멀리 있는 그곳까지 갔건만...

집에 와서 바로 가까운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다음달에나 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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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0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0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0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고전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한 가지. 너무 유명해서, 여러 버전으로 접해서 내가 이미 그 작품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거다. 그 착각 속에는 고전을 많이 읽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도 있다. 고백하지만, 나는 정말 고전 거의 안 읽었다. 이상하게 상 받은 작품들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고전이 재미가 없더라는 거다. 물론 모든 고전이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니, 그저 그 작품이 내 마음에 쏙 들어오거나 아니거나, 뭐 그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그렇게 고전을 두고 몇 가지 고민을 하던 차에 새롭게 만나는 고전의 버전이 일러스트였다. 그리하여 이번에 읽게 된 제인제인 에어를 현대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주인공 제인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고, 이모의 집에서 길러진다. 평소 왕래가 없던 이모 집에서 살아야 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인생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객식구 한 명이 늘었지만, 아무도 관심 두는 이가 없다. 이모의 집은 분위기가 살벌하다. 폭력적이고 매일 싸운다. 제인은 이 집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만 지내자고 혼자 마음먹는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모아야 했다, 여기서 탈출하려면. 그렇게 제인은 부모님이 바다에 나갔던 것처럼 뱃일을 한다. 어느 정도 돈이 모였을 때 제인은 뉴욕으로 떠난다. 아마 그 집 식구들 누구도 제인이 떠나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티격태격에 바쁜 나머지 제인이 그 집에서 살았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제인은 뉴욕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작은 방을 구한다. 그러면서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일자리를 또 구해야 했는데, 용모단정한 이를 뽑는다고 해서 간 일자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라는 대로 갔더니 저택이었고, 집주인 이름은 로체스터. ㅋㅋㅋ 제인이 할 일은 로체스터의 딸 아델을 돌보는 유모였던 것. 유모가 몇 번이나 바뀌었다는 말에 생각했다. , 고된 직업이겠군. 진상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기 힘들었으니, 가장 오래 버틴 유모가 일주일이겠지. 바로 뒤돌아서서 나갈 줄 알았던 제인은 아델과 친해지고 싶어한다. ? 사실 제인은 어릴 적 혼자 지내며 외로웠던 시절을 아델에게서 다시 본 거였다. 엄마가 없이 아빠와 살지만, 아빠는 바빠서 아델을 볼 시간도 없는 게 현실. 제인이 지금 아델을 보는 게 동정은 아니겠지만, 안쓰러운 어린 시절을 지내는 건 맞지. 어쨌든 제인은 아델과 친해지고, 점점 아델을 보러 가는 일이 즐겁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마주친 아델의 아빠, 로체스터!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사업 때문에 바빠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아델의 상황을 아는 제인은 이때다 싶어 로체스터에게 아델의 상황을 말한다. 아이가 유치원에서도 혼자 지낸다고, 친구가 없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고, 학습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로체스터는 과외 선생을 들이라고 했던가? , 뭐든 돈으로 해결하면 되는 거였군. 하지만 우리의 제인은 그렇게 놔두지 않았지. 로체스터에게 유치원의 상담에 참여하라고, 아델을 좀 더 잘 돌보라는 조언을 건넨다. 그러다가 점점, 제인은 심장이 없는 듯 살아가는 로체스터에게 반하고, 로체스터 역시 제인에게 마음이 가는데...


원작에서도 아이가 있었던가? 그게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런데 반전같이 존재했던 비밀의 방은 이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아무도 들어가면 안 돼, 큰일 난다, 누구라도 그 방에 접근하려고 하는 순간 저택에서 쫓겨난다고. 제인은 이 약속을 잘 지키지만, 설마 아델의 아빠에게 마음에 뺏길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저택은 어디든 수상한 기운이 풍기고, 로체스터를 바라보는 마음을 자꾸만 심쿵하다. 이상하게 원작보다 뭔가 더 스릴 있고 더 로맨틱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밤에 계단을 오르던 그 남자는 누구일지, 로체스터가 강렬하게 제인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뭔지. , 이거 정말 사랑인가요? ?


줄거리는 거의 비슷하고, 배경이 현대로 바뀐 것만 좀 다른 듯하다. 제인이 당당하게 혼자서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마지막까지 로체스터와 관계가 더 진전되는지 보여 주지는 않았지만. , 죽을뻔한 위기를 같이 탈출했으니, 사랑하는 마음에 전우애 비슷한 것까지 더해지지 않았을까? 중간에서 아델이 또 중재자 역할도 잘할 것 같고. 이 정도면 훈훈한 마무리 되시겠다. 읽으면서도 계속 쏠리는 이 소설의 장르는 역시 고전이라기보다는 로맨스 소설 아닌감? 근데 왜 열린 결말처럼 보여줬는지 모르겠군. 둘이 다시 만나서 잘 먹고 잘살았다, 이것까지 확인사살 해주면 안 되는 법칙이라고 있는 건지 뭔지. 문장 말고 그림이 보여 주는 장면들이 확실히 더 설레긴 하다. 막 뽀뽀하는 이런 장면도 넣어주고 말이야.


몇 년 전 언젠가,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키다리 아저씨를 읽은 적이 있다. 이미 내용도 알고 여러 가지 버전으로 눈을 호강하면서 봤던 작품인데, 이거 느낌이 다르다. 문장으로 장면을 그려가면서 읽는 그 느낌이 더 말캉하다고 해야 하나. 주디가 저비스 씨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밀당 잘하라고 중얼거렸다. 일상을 너무 오픈하는 거 아니냐고 주디를 구박하면서 읽었다니까. 나중에 저비스 씨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나 싶어서 혼자 안절부절.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이미 눈치챘는데, 주디만 몰라. 저비스 씨가 키다리 아저씨라니까!!! 뒹굴뒹굴하면서 읽다가 발차기를 여러 번, 혼자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읽으면서 주디랑 저비스 씨 때문에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 주디가 너무 순진하게 보여서, 저비스 씨가 빨리 정체를 밝히지 않아서 말이야. 처음 뭣 모르고 펼쳤을 땐 동화를 읽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점점 빠져들면서 이 소설의 장르를 확인했다지. 로맨스 소설이지 뭐야. 홍홍. 아무래도 내 고전(?) 취향은 이런 건가 보다. 읽고 보니 말랑말랑해지는 거? ^^ , 주인공에게 너무 이입하지 말아야 하는데, 읽다 보면 그게 잘 안 됨. 이제 막 변신펼쳤는데, 이 작품은 또 어떠려나. 기대 반 설렘 반. 뭔가 묵직한 여운까지 한꺼번에 와닿았으면 좋겠네.


두 작품 모두 어린 여자아이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도, 당당한 삶 속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세 역시 당당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험난한 성장 과정이었어도, 고아 소녀였어도,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있었어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면서 자기 삶을 완성해가고 있었다는 것. 제인 에어의 원작이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면서, 여성의 삶이 남자의 보호 아래 있어야 안정적이라는 것과 그래서 결혼까지 닿아야 완성된 인생이라고 믿었을 때라고 하니, 현대판으로 각색된 제인에서는 로체스터의 보호나 선택이 아닌 제인 자신의 커리어와 당당함으로 인생을 완성해간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외면당한 자기 화풍이 인정받고 전시회까지 하는 것으로 그녀의 자리가 굳어진다. 그리고 사랑도 더 탄탄하게 이뤄가리라고 믿는다. 그게 인생이지.


혹시라도 나처럼, 고전 읽어보고 싶은데 선뜻 덤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비슷한 분위기로 들려오는 여러 버전을 접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네그려. 활자로 빽빽한 이야기가 부담스럽다면, 일러스트나 동화 같은 이야기로 먼저 만나도 충분히 즐겁다. 뭐든, 읽는 게 먼저 아니겠음둥? 읽고 보니 재밌다. 그리고 더 재밌어질 이야기들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말이다.











#제인 #제인에어 #키다리아저씨 #변신 #죄와벌 #고전 #명작

#책읽기 #로맨스 #책 #책추천 #문학 #소설 #일러스트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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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06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저 키스씬은 캔디가 생각난다는.... 분위기 캔디와 테리우스의 키스씬과 분위기 너무 비슷합니다. 그러고보면 제인에어도 결국 캔디장르라는 생각이 드네요. ^^

구단씨 2022-01-11 15:18   좋아요 0 | URL
꺄아악~ 캔디와 테리우스.
이야기의 분위기가 약간 비슷하죠? 캔디형 주인공. ^^

다락방 2022-01-06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키스씬 때문에 보고싶네요 ㅋㅋㅋㅋㅋ

구단씨 2022-01-11 15:18   좋아요 0 | URL
까르르르르~
그림 스타일이 좀 투박(?)한 느낌이 있는데, 로맨스드라마 보는 느낌이 강합니다. ^^
 



굿즈에 눈길 주지 말자, 그동안 굿즈 때문에 모셔온 책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잊지 말자,

혹시라도 굿즈에 눈길이 가거든 꼭 필요한 것인지 백번 이상 생각하자............는 다짐이었건만.


독서대, 쿠션, 머그컵, 유리잔, 가방, 젓가락, 텀블러, 뭐 셀 수도 없이 많은 알라딘 굿즈가 있었더랬죠.

조금 과장하자면, 저의 살림은 알라딘 굿즈로 채워졌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ㅠㅠ

이사하면서 가져온 알라딘 굿즈로 물 마시고, 커피 채워서 다니고, 방바닥 뒹굴 때 머리 기대고,

책상 위 펜들 모셔놓고, 여기저기 메모해놓은 포스트잇에, 외출용 가방까지. 흐음...

다들 저랑 비슷하신 거 맞죠?



근데 이번에는 알라딘 굿즈가 아닌, 도서 굿즈가 땡겨서요.

아주 소박하게, 소박하고 또 소박하게 하트 티스푼이 왜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거죠? 


아멜리 노통브의 <너의 심장을 쳐라>, <갈증> 구매하면 하트 티스푼을 준답니다.

물론 포인트 1500점 차감입니다. 공짜는 아닙니다. ㅡ.ㅡ;;;

근데 며칠 전부터, <갈증> 도서 출간 소식에 살펴보다가 갑자기 

그 흔하고 흔한 하트 티스푼이 왜 자꾸 눈앞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건지.

필요하면 그냥 돈 주고 하트 티스푼만 사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근데 왜...... 음.... 음... 


이상하게 자기 합리화 시작입니다.

나는 <갈증> 도서가 궁금했어. 그냥 책이 읽고 싶었을 뿐이야. 근데 책을 사려니까 숟가락도 하나 준다네.

아, 물론 공짜는 아니야. 돈 내래. 단돈 1500원에 하트 숟가락 하나. 이거 괜찮은 거래 아닌가? 응? 아니야? 음...


어차피 <너의 심장을 쳐라>는 지난 번에 샀잖아. 왜 그때는 하트 티스푼을 안 줬을까. ㅠㅠ

기회는 이번 밖에 없어. 그러니까 <갈증>을 사야해. 

마침 조카가 오늘까지 사용해야 하는 카드 잔액을 5600원이나 넘겨줬잖아. 

서점에서 오늘까지 사용해야 하는 상품권 1000원도 줬네? 그러니까. 이건 사지 않으면 안 될 일.

거의 절반 가격에 책도 사고, 숟가락도 생기고. 응? 괜찮은 거 맞쥐? 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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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1-01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굿즈 노예인 제가 봐도 탐납니다???!!!!!!!
특히나 작가 이름이 새겨져 있다니!!!
저런 건 어디서도 살 수 없잖아요ㅜㅜ
아....굿즈 지옥!!! 물욕을 자제할 수 없는 세상이에요^^

구단씨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하세요^^

구단씨 2022-01-02 22:28   좋아요 1 | URL
예뿌죵? ㅎㅎㅎ 새로울 것 없는 디자인인데도 왜 이렇게 탐날까요?
일단 주문했으니, 도착하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헤헤~

건강하시고, 대박운이 터지는 2022년 즐기셔요~

황후화 2022-01-01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거 넘이쁜데요~
굿즈 노예아닌 제가 봐도 탐납니다 ㅋㅋㅋㅋㅋ
잘사신듯여~~

그나저나 새해가 밝았군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구단씨 2022-01-02 22:29   좋아요 1 | URL
굿즈 노예에서 벗어나고자 매번 발버둥치는데, 언제나 이렇게 복병이 숨어 있습니다요. ㅋ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코로나 상황에 언제나 건강하시고요.
 


정말로, 순식간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네요...

어제부터 한파주의보나 폭설 예보는 있었어요. 

사이렌 울리면서 문자가 요즘 하도 많이 도착하다 보니 확인도 잘 안했는데, 

지금 보니 어제부터 경고를 했었네요.


그동안 겨울인데도 나름(?) 포근하다 싶었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밀려오듯 폭설이 쏟아지니,

진짜 겨울 같은데도 반갑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

어렸을 때나 좋아하던 눈이 이제는 다니기 불편한 것부터 떠오르게 하고 말입니다.

그나마 주말 시작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일기예보 잘 안맞을 때가 더 많다고 궁시렁대면서 이번에도 안 믿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눈이 내리니 기분이 묘합니다.

연말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할 게 많아서 그런지, 

어쨌든 2021년도 이렇게 가는구나 싶은 심란한 때문인지.

원래 그렇잖아요, 연말에는. 또 그렇게 끝나고 또 그렇게 내년이 시작되는구나 하면서 받아들이고야 마는.


뜨끈한 것이 저절로 생각나는 날들입니다.

뜨끈한 국물, 뜨끈한 방바닥, 뜨끈한 마음들. ^^



코로나 확산세도 그렇고, 눈도 펑펑 내리고,

나가지 말고 집에서 책이나 읽으라고 하는 건지 뭔지. 

사다 놓았지만 읽지 않은 책, 너무 많잖아요? ㅎㅎㅎㅎ

눈과 추위로 채워질 주말, 즐겁게 지내시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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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17 17: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눈이 많이 오고 있군요. 멋지네요 ㅋ 눈오는 날 너무 좋은것 같아요 ^^ 작별하지 않는다와 잘 어울리네요~!!

구단씨 2021-12-20 21:19   좋아요 2 | URL
그날 하루 그렇게 눈이 오더니 바로 얼었어요.
10중 20중 충돌사고로 뉴스를 장식했네요.
오늘은 포근해서 제법 맘에 들었던 월요일입니다. ^^

stella.K 2021-12-17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계신 곳이 어딘가요?
호남쪽에 눈이 많이 왔다고 하던데...
펜으로 그린 그림 같네요.^^

구단씨 2021-12-20 21:20   좋아요 2 | URL
네. 호남지역입니다.
순간적으로 막 쏟아졌네요.
눈은 보기에는 좋은데... 참... ^^

책읽는나무 2021-12-17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오늘 눈이 온 곳도 있었군요?
눈이 오지 않는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그저 와~~~~ 감탄할 수밖에요^^

구단씨 2021-12-20 21:20   좋아요 2 | URL
아, 책읽는나무님 사는 곳에서는 눈이 잘 안 오는군요.
여기는 안 올 때는 안 오는데, 한번 폭설 경보 내리면 정말 눈이 막막막 내리더라고요.

희선 2021-12-18 00: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날씨 잘 안 맞기도 해서 눈이 얼마나 올까 했는데 제가 사는 곳에도 좀 왔어요 어제 날씨 보니 몇 시간 눈 그림이 있기는 했군요 조금만 오다 말겠지 했는데... 눈이 왔는데 저녁에 달이 보였습니다

구단 님 주말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구단씨 2021-12-20 21:21   좋아요 4 | URL
저도요. 일기예보 자주 보면서도 사실 잘 안 믿기도 하는데. ^^
그동안 겨울이면서도 눈 안 와서 그런가 보다 하다가, 오랜만에 눈 구경 했습니다.

scott 2021-12-23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눈이 가루 처럼 쏟아 졌네요
크리스마스 앞두고 강추위! 몰려 온다고 합니다
구단님 따숩게 ^^

구단씨 2021-12-23 22:29   좋아요 0 | URL
네. 눈이 막 쏟아져서, 갈수록 눈 보기 힘든 날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번 겨울은 눈을 보긴 했네요. ^^
요즘 새벽 기온이 낮아지긴 했나 봅니다. 아침에 춥더라고요.
강추위 정말 싫은데. ㅠㅠ
건강 챙기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