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링크 다이어리
고은상 지음 / 로코코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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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떤 일의 가능성을 두고 확률적으로 계산을 하는 순서가 종종 있는데, 그때 우리는 말 그대로 배운 그대로 수학적으로 계산을 한다. 하지만 그런 수학적 확률이 거의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보통 사람의 마음이 계산의 대상이 되는 경우다. 아무도 상대에 대해서 100%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렇다. 그 사람이 이렇게 행동할 확률 100%,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할 확률 100%, 그 사람과 내가 인연이 될 확률 100%. ‘아무것도 100%는 없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 확률 100%를 검증한 남자가 있다. 그 확신이 볼수록 재수 없는 그 남자, 쳇~!!

모든 것을 확률 100%로 만들어버리는 남자, 유진현.
뉴욕에 있는 그녀와 서울에 있는 그가 뉴욕의 공항에서 만날 확률 100%. 그가 친구 대신에 나간 선 자리에서 그녀를 만날 확률 100%. 그녀가 다니는 회사를 그가 인수할 확률 역시도 100%. 뭐든 100%. 100%... 100%...... 그가 그렇게 만들어버린다. 마음에 둔 그녀가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는 것으로 그 확률 100%를 끔찍하게도 채워버린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라고 웃긴 짬뽕이라고 놀려주고 싶지만 그 남자의 진심은 통해버려서 밉다. 사람이 말이지 안 되는 것도 좀 있어야 사람이지, 안 그래?
“지겨워서.
기다리는 게 지겹다고.
누가 너무, 너무 늦어.
먼저 나가도 내가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느려.
늦어도 올 것 같아서 기껏 기다렸더니 저쪽엘 간 거지. 난 이쪽에 있는데. 이젠 기다리는 게 재미없어. 늦어도 안 기다려.”

그 남자의 100% 확률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여자. 김세은.
이상하게 자신에게만 까칠하게 빈정거리는 것 같고, 놀리는 것만 같은 그 남자가 보여준 진심 한 자락 때문에 3년의 시간을 타국에서 보내고, 다시 또 3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다. 바보 같은 그녀, 기다린다는 그 남자의 마음을 확인하고 인정하고 함께 나눌 수 있기까지의 시간이 길어, 너무 길어…….
“그럼 기다리지 마세요.“

그리고 여기서 늘 진심을 한발 늦게 알아차리는 캐릭터가 한 명은 등장해야 한다. 진현의 사촌동생 유준현. 세은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의 대상이며, 나중에서야 세은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는 남자. 그러나 너는 그 순간 바로 아웃이야~! 원래 이런 때는 타이밍이 중요한 거거든~??!!!
“해도 어렵고, 안 해도 어렵고. 사랑, 대체 왜 그래?”
“그러게. 대체 왜 그래?”
“그러니 사랑이지.”
“그러네.”

처음부터 끝까지 여주인공인 세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냉정과 열정 사이」 같은 교차소설의 아오이의 마음을 듣는 느낌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친절하게도 쥰세이의 마음까지 세세하게 들려주었으나, 불친절한 작가 고은상은 오직 세은의 마음만 들려주고 진현의 행동만을 보여준다. 어차피 서로가 마주하고 대화를 하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입장과 마음 밖에 모를 테니까 나는 세은이의 말만 듣기로 한다.(어쩔 수 없잖아, 진현의 마음을 안 들려주니.) 그래도 이야기는 충분히 재밌게 서로의 마음을 독자로 하여금 알 수 있게 그려지고 있다. ^^ 그래서인지 세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게 되면 그 상황들이나 감정들이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지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주저하는 마음, 살면서 사랑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부모님에 대한 기억들, 그래서 놓을 수도 쥘 수도 없으니 당연히 아파야 하는 마음.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늘 가슴 한 구석 불안을 같이 안고 살아가는 시간들이 안타깝다. 그 와중에 언젠가는 끝을 내고 달아날 궁리를 하는 그녀의 마음을 인내심의 최강자 진현은 잘도 들여다본다. 놓치지 않기 위해, 기다리다 머뭇거리다 끝나기 전에, 그 기다림을 멈추고 기꺼이 다가가면서 말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번의 확률을 계산한다. 그녀가 자신을 따라 나올 확률을. 오른쪽? 왼쪽? 1분? 2분? ^^

재밌게도 그녀의 마음이나 순간순간의 기분, 사랑을 하면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 지금까지 살아온, 살아가는 인생들을 오만가지 맛을 내는 드링크로 설명된다. 조금 우울하다 싶을 때는 알코올이 들어간 아이리시 커피가 위로를 해주고, 인생 자체가 너무 힘들어 괴로울 때는 쓰고, 달고, 시고, 짜고, 매운 오미자차가 공감을 해주고, 달콤한 그 순간에는 청량한 콜라의 한 모금이 톡 쏘아주고, 밤을 새울 수 있게 도와주는 각성제 믹스 커피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연애는 너무 시지 않은, 너무 달지 않은 레모네이드 같다. Not too sweet, not too sour.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음료들 때문인지 어느 계절에 읽어도 어울릴만한 느낌이다. 얼음을 오도독 씹어야 할 것 같은 차가운 주스가 필요한 순간도 있고, 향이 그윽한 홍차가 어울리는 여운이 있고, 기계적으로 느껴지지만 늘 가까이에 있는 커피향이 나는 시간이 이들의 이야기 속에 공존한다. 그래서 이 책은 딱히 계절을 타면서 고를 대상은 아니지만, 굳이 또 한 번 이 이야기에 궁합이 맞는 계절을 골라보라고 한다면 바람 부는 계절에, 추운 계절에 더 어울릴 것 같다.
딱,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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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한약방
서야 지음 / 가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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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가 오는 날, 엄마가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실 때가 있다. "비 비린내가 난다." 하고. 비가 내릴 때 나는 냄새가 비린내로 표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받아들일 때 그 냄새는 비오는 날의 흙냄새가 아닐까 한다. 흐음~ 마른 흙이 내리는 빗방울에 막 젖어 들면서 나는 냄새. 그 모든 것이 '흙냄새' 라는 한 마디로 다 표현될까 싶지만 나는 그 냄새가 가끔은 좋다. 내리는 비는 싫어도 그 흙냄새를 맡고 싶어서 마당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있을 때가 있는 걸 보면. ^^

전주라는 지명, 어느 골목길 모퉁이를 돌면 자리 잡고 있을 것 같은, '삼거리 한약방'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한약방,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서 어른들과 말동무 하면서 침을 놓고 계실 것 같은 강원장 할아버지, 그리고 그 안을 종일 누비면서 놀이터 삼아 살고 있을 것 같은 늘뫼, 한약방과 이어진 쪽문 같은 것을 지나면 마당이 딸린 안채가 나올 것 같고, 마당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평상, 수돗가, 마당 한 구석에서 푸다닥거리면서 제 영역을 표시하고 있을 것 같은 닭들, 조용히 배춧잎을 씹어 먹고 있을 것 같은 토끼들, 하루 종일 구수한 냄새가 막 풍겨 나올 것만 같은 정지간.
이 책은 그렇다. 흙냄새가 나고,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장소에만 어울리는 공간이고 사람들이다. 한약방도 늘뫼도, 그리고 그곳에 다시 채워지는 사람들은…….

스무 살이 넘은 나이인데도 초등학생의 지적수준을 가진 지적장애인 늘뫼. 아마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렇듯 강원장도 그렇다. 자신이 이 세상과 작별하면 늘뫼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깊은 고민. 늘 늘뫼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그런 강원장의 또 다른 구원투수 편원장. 일 년에 한 번씩 강원장의 삼거리 한약방으로 진료 봉사를 오면서 늘 계획을 세운다. 늘뫼의 짝이라 생각되는 녀석들을 일부러 진료 봉사에 데리고 와서 삼거리 한약방에 떨어뜨려 놓고 갈 생각만 한다. 그동안 계속 그래왔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늘뫼와 짝지어주고 싶은 녀석을 데리고 왔다. 바로 이준 쌤. ^^ 차갑고 자상하지 않고 배려심도 없을 것 같은 이 남자의 진국의 모습을 어른들은 이미 보았나보다. 세상 물정 모르는 늘뫼와 자기 이외의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이준쌤 훈훈한 이야기.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서운함이 있다. 뭐랄까 로맨스이되, 가족드라마 같은. ^^ 늘뫼의 하루하루의 이야기가 천방지축 발랄함으로 보이지만 너무 안타깝고, 이준쌤의 그 마음은 돌덩이로 만들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산하고,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문명의 그 안하무인격 행동은 웃음과 차분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그리고 늘뫼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이 조연들이 아니라 다 주연들 같다.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사랑스럽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너무 구수하다. 어디선가 나물 무치는 구수한 참기름 냄새가 막 쏟아져 나오고 있고, 아삭 소리 내면서 풋고추 하나 된장에 찍어 먹는 것 같은 소리도 난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을 늘뫼가 보이는 듯도 하다. 아, 사랑스러워.

중요인물은 세 사람인데(늘뫼, 이준쌤, 문명), 난 오히려 문명의 이야기를 더 듣게 되어서 반갑더라. (은행나무에 걸린 장자 / 서야 / 은목의 가야금 스승으로 나왔던 인물 / 종손어르신의 연적이었던. ^^) 후반부에서 점을 치는 선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들 세 사람은 나무꾼을 놓고 선녀가 하늘로 데리고 올라갔던 세 아이의 운명 같은 관계라고. 그래서는 안 되는 사이인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안심이 되었다면 이상한가?

도시의 번화가가 아닌, 시골이어서 가능한,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흙 밟고 서 있기에 느낄 수 있는, 세련된 표준어가 아닌 촌스러운 사투리여서 더 정겨운 이야기. 아~ 포근해. ^^

근데 우리 집 골목 앞에 30년 넘은 한약방이 있는데, 거긴 이런 냄새 안 나던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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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9-2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좋습니다!^^
 
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
진소라 지음 / 로크미디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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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참 '진소라'라는 작가에게 푹 빠져있을 때, 전작들을 구하러 다녔다. 그리고 아무리 찾아도 찾아도 찾지 못했던 이 작품 <개구리 왕자 재투성이 아가씨를 만나다>. 얼마나 귀한 작품이길래 종이책이 씨가 말랐는지 안보이는 것이더냐~!! 하고 외칠 무렵 알았다. 종이책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ㅠㅠ 완전 삽질이었지. 알고 보니 모 사이트에 연재되어서 인기였던 글을 작가의 작품 이력에 넣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종이책으로 찾았던 내가 헛수고를 한 것이지...
그리고 가뭄에 단비처럼 이 책을 만났다. 그리고 그 목마름에 만났던 이 책은 충분히 갈증을 해소해주고도 남았다. 역시나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왔으면서도 울고 웃게 만든다. 

원달구청 7급 공무원인 주은에게 막중한 임무가 떨어진다. 그것은 바로, 대책없는 아이돌 공익요원 장공달의 사수가 되는 것. 둘이 너무 다르고 다른 캐릭터들인데 어떻게 사수로 공달을 길들일 것이며, 공달은 또 어떻게 주은을 따를 것이더냐... 하지만 꿋꿋하고 대쪽 같은 우리의 주은은 공달을 귀공자 아이돌이 아닌 오직 공익요원으로 철저하게 길들이고 변화시킨다. 동시에 시설 출신으로 마음을 닫아놓은 듯이 살았던 주은에게도 공달이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둘이 함께 한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게 사람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고 배운다. 공달도 주은도 그렇게 계속 자라나고 있었던 것... 

특이하면서도 현실적인 소재로 늘 감동을 주던 작가가 이번에도 역시나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재미있게 해주려면 웃음만 줄 것이지, 이번에도 역시나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준다. 특히나 이번에는 주로 등장하는 독거노인분들의 모습들, 이야기들, 생각들이 마음 아파서 한동안 멍했다.(주은과 공달의 주된 임무는 독거노인들을 보살피는 것이었다) 그 안에서 주은은 보내주는 법, 남는 법을 배운다. 주은 스스로가 배워왔던 대로, 데리러 온다고 하고 오지 않았던 엄마를 스스로 마음에서 내보내주었던 것처럼, 엄마가 데리러 올 줄 알고 스스로가 시설 안에서 곧 나갈 공주처럼 하던 행동도 모두 버렸다. 그리고 자신이 돌보던 노인들과 공달을 통해서 사람들 속으로 스며드는 법과 마음을 여는 법을 동시에 배운다. 더이상 자신은 겉모습이 재투성이가 아닌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이었을을 간과하지 않게끔...
사실 신데렐라는 재투성이의 모습이었지만 원래가 귀족이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깨끗하게 세수 한번 하고 났더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빛이 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잖아. 

천방지축 어디로 튈지 모르고 다른이의 표정도 들여다볼 줄 몰랐던 공달이, 주은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했던 것처럼 주은 역시도 공달을 통해 같이 성장해 나간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외모도 생각도 환경도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났지만 이렇게 서로를 희석시켜 주고 있었으니 정말 만나야 할 사람이 만났던 인연이 아니겠냐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렇게 생생하게 들려주면서 감동까지 날려주니 사람 사는 냄새 나는 이야기였다고. 고맙다고, 같이 공감하고 배우게 해주어서... 

앞부분에서는 배를 잡고 방바닥을 뒹굴게 만들어주더니 점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웃음과 같이 눈물이 나게 만들더라. 그리고 끝까지 다 읽었을 때는, 이런 궁금증을 만들어줬다. 동화 '개구리 왕자의 이야기가 진짜 뭐였더라?' 하면서 다시 그 동화를 찾아보고 싶게 만들었던...
유쾌하고 진지하고 웃음나고 눈물나고 따뜻하고 슬프고, 한편의 버라이어티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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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 칸타타
육시몬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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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직도 비가 오네?"
"이제 지나갈 거야."
한수가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본다.
"어떻게 알아?"
"안 지나가는 비도 있나?"
그렇다. 영원히 머무는 비는 없다. 모든 것이 흐른다. 우리 모두의 아픈 기억도 흘러가는 비처럼 언젠간 흘러가 버리겠지. 거대한 슬픔과 어두운 분노와 잃어버린 사랑과 고통과 두려움과 원망과 절망도. 그리고 내일이 온다. (322페이지)


마술은 눈속임일지 몰라도 그걸 믿는 사람에겐 진정 마법이 된다는 걸. (176페이지)


그러나 사람은 좋아서도 웃지만 사노라면 너무 슬퍼도, 너무 분해도, 어이가 없어도, 허탈해도, 서글퍼도 웃음이 난다.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웃는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행복해지려면 웃어야 한다.
하. 하. 하. 하. 하. 하 (168페이지)


하루하루 우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죽어 가고 있는 걸까.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 성큼성큼 죽음으로 걸어간다. 하지만 그 걸음걸음이 바로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중이다. 우린 죽어 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 (351페이지)


속초의 한 신경정신과.
담당 닥터 육시몬.
그리고 신경정신과의 옥탑에 칩거하는 전직 아이돌 매니저 (고양이라 불리우는)고양희.
신경정신과 장기투숙자(?) 세 명, 꽃미남 폐소공포증 환자 마한수, 기억실종자이자 자해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장풍, 난독증의 왕따 홍난파.
고양이는 술김에 육시몬 신경정신과의 4백만원짜리 양주를 훔쳐 마시고 인질이 된다. 바로 육시몬 신경정신과 3인방의 트로트 가요제를 책임지고 내보내는 것. 전직 아이돌 매니저였으니 당연히 된다고 생각하고 닥터 육시몬은 고양이에게 떠안기듯 3인방을 맡긴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트로트를 부르는 3인방의 지도자이자 매니저가 된 고양이. 트로트 가요제 1등 상품인 몰디브행 티켓을 획득하기 위한 이들의 몸부림이 처절하다.

각자가 모두 자기만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졸음운전으로 한 생명을 저 세상으로 보낸 고양이, 페소공포증으로 숨이 막힐 듯한 삶을 살아던 한수, 기억에는 전혀없지만 자신이 무슨 이유로인지 죽고 싶어했던 장풍, 심각한 난독증에 이해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왕따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던 난파. 어떻게 보면 사회 부적응자들의 집합소인지도 모르겠다, 육시몬 신경정신과는... 사실 닥터 육시몬도 실명에 가까운 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으니... (그래서 육시몬 신경정신과는 언제 문 닫을지 모를 시한부 병원 아닌가?) 저마다의 이유로 꼭꼭 숨어들듯이 그 건물 안에서 나오기를 꺼려했던 이들이 단 한 곡의 노래로, 단 하나의 목표로(오직 몰디브~) 똘똘 뭉쳐서 떨리고 두렵지만 세상 속으로 한 발 내딛으려 한다.

마성의 봉고봉고봉고봉쏭~!!
이들이 트로트 가요제에서 직접 만든 노래를 들고 나가고자 한다. 고양이는 대체 뭔짓이냐고 말리려다가 막상 듣고보니 너무 귀와 입에 착착 감기는 봉고봉고봉고봉쏭을 부르기로 한다.
슬플 땐 나를 찾아 봉고봉고~ 기쁠 땐 나를 찾아 봉고봉고~
봉고봉고봉고봉! 봉고봉고봉고봉! 봉고봉고봉고봉고 봉고봉고봉고~ 핫!
이들이 병원의 환자복인 하와이언 셔츠를 입고 얼덩이를 씰룩거리면서 율동을 하고 신나는 봉고봉고봉고봉쏭을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신난다. 죽여주는 외모의 남자 셋이서 이런 모습이라니, 매치가 안되지만 또 어떤가, 신나면 그만 아닌가...
이 한 곡의 노래로, 이 한 곡을 부르기 위해 모인 그 시간들로 하여금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은 이해가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노래가 주는 것은 그런 것. 마음을 흔드는 것.

내가 만난 느낌 그대로의 이 책은 성장 소설 같은 로맨스소설이다. 로맨스의 그 달달함을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은 과감하게 패스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좋더라. 그 이상한 떨림과, 웃을 수 있었던 이야기와, 고양이와 3인방을 내내 응원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까지... 부분부분 문학이 주는 그 가슴 콕콕 쑤심과, 닿을 듯 말 듯한 세 남자와 고양이의 마음의 보이지 않는 실이, 보일 듯 말 듯한 그림으로 그려진다.
저자가 시나리오 작가다. 다작은 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경력과 무관하게도 이야기의 재미와 몰입은 충분히 좋다.
그런 책이 있다.
읽다보면, 가슴이 먼저 느끼기도 하고, 이성적인 사고가 먼저 생기기도 하고, 눈 앞에 이야기의 장면장면이 영상으로 먼저 그려지는... 이 책은 그런면에서 세가지를 동시에 만족시켜준다. 아마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상당한 재미와 감동을 줄 것 같은 충분한 예감이 든다. 하와이언 셔츠를 입은 세 남자가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듯 열심히 신나게 부르는 노래와 꽃미남 외모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율동을 상상해보라. 재밌지 않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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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유 윈
김에스더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You win!!
유쌤 왈, 이렇게 유치한 연애는 처음이야~!!

3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고 섬마을 고운도 보건소로 오게 된 닥터 유 윈.
섬마을 선생님 오지랖 고음란을 만난다.

줄거리 생략........ 하려 했으나 대충 이렇다.
쫓겨나다시피 한 닥터 유 윈은 섬마을 고운도로 가게 되고, 오히려 그 까칠하고 못되 먹은 성질을 어쩌지 못해서 섬마을에서도 스스로 쫓겨나기를 바란다. 어차피 정도 다 떨어진 의사짓 그만두려고 하던 차에 내려온 그 곳에서 더 짜증이 폭발한다. 설상가상으로 섬마을 선생님 고음란은 오지랖 대마왕. 섬이라는, 오랫동안 그 곳에서 살았다는 특성상 섬마을 사람들 모두가 가족처럼 지낸다. 그 틈에서 견디기 힘들었던 닥터 유 윈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오지랖 고음란 선생에게 마을을 뺏기게 되고 어색하지만 섬마을 주민들과 교감(?)도 이루어낸다. ^^
뭐, 대충 이런 내용.

누구나가 다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주인공인 고쌤이나 유쌤 모두 자기들의 상처가 있다. 두 사람이 다른 점은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고쌤의 그 환한 웃음에 상처를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나 매사에 까칠하고 덤비려고 하는 유쌤의 지독한 성격파탄이나... 모양새만 다르지 그들이 가진 상처를 표현해내는 상처는 같은 것 같다. 결국 유쌤도 변하게 되니, 고쌤의 긍정바이러스에 전염되었으리라.

고운도 주민들.
참 순박한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섬마을이라는 설정도 그렇거니와 육지와 떨어진(대부분 배를 이용해 육지를 나간다는 것 자체가) 곳에서의 생활이라 그런지 서로간의 돈독함과 가족 같은 느낌은 있다. 왜 그리 남의 일에 관심 많고, 한 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온 마을에 살이 붙어서 퍼지는 소문이며... ㅎㅎ 눈에 그려지는 모습들이 익숙하다. 그들의 마음에 반했던지, 철옹성 같았던 유쌤의 마음도 무너졌던게지.

특별한 악역이 없다.
어쩌면 너무 순순히 뻔하게 흘러가는 설정에 재미가 반감될지도 모르겠으나, 간만에 읽은 재밌는 책이었다. 적당한 웃음도 좋았고, 그들이 들려주는 에피소드에 방바닥 데굴데굴 구르면서 읽었으면 된 거 아닌가?(내가 웃음코드가 이상한건지는 모르겠으나...) 변비로 리어카에 실려가고 유쌤 앞에서 관장까지 하게 된(ㅠ.ㅠ) 고쌤, 제초제 먹어 뒈질뻔한 목숨을 살려놓은 막장 인생, 우리의 고쌤에 대한 유쌤의 연적 박쌤, 유쌤을 열렬히 짝사랑한 고쌤의 친구 정간호사 유심, 싫다고 관심없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고운도에 정을 실어주신 유쌤. 그리고 고운도 주민들.

유쌤의 콧대는 하늘을 찔러도 된다.
우리의 유쌤은 어찌나 콧대가 높으시던지, 자신이 잘 생겼다고 우쭐하지 않나, 넋놓고 쳐다보는 것을 대놓고 퉁박주지 않나, 잘난 맛에 사는 남자의 표본을 보여주신다. 외모 잘났지, 능력 있지(손기술이 화려하고 인정받은 외과 닥터잖아~), 돈도 많지, 솔직하다 못해 오만방자 하지, 남의 장점도 살려주고 남의 단점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시지... 어디 하나 빼놓을 구석이 없어요. 젠장~


더 얘기하면 재미 없어지니, 여기서 끝.

이야기는 참 심심하나,
스토리 눈에 확 그려지나,
뜻 밖에 만난 신간에 한참을 웃었으니,
간만에 잘 맞는 웃음코드 만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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