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 하는 중입니까?
김지운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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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져가면서, 누구 앞에서 마음 붉히며 수줍어본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고 느낄 즈음 만난 이 책이 설렜다. 늙은 여자 사람이 추하게 느끼는 설렘이 아닌, 인간적으로 느끼는 설렘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과 마음이 만나 공유한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일 것이다.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없을 것이고, 살아가면서 장애물 하나 만나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이 후회되고 안타까워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이 자리에서 다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일 테고... 두 주인공은, 특히 그 남자 문정효는 그래서 지금의 삶을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한 순간에 과거를 한번 후회 했으니, 이 시간 이후로 살아가는 순간에 만날 과거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테니...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동생의 상담을 기다리다가 만난 희한한 남자, 정효. 긴 머리와 함께 그가 툭툭 던지는 말들은 그 남자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린의 손에 쥐고 있던 큐브보다 더 큐브 같았던 그 남자 정효를 그렇게 눈에 담았다. 한번 스칠 인연이라 생각했지만, 그린은 정효의 공방에서 베이비시터(강아지 또또)를 하게 되고, 정효라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시작을 열게 된다. 정효와 함께 하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과 함께 점점 더 알아가게 된다. 문정효라는 남자, 그의 과거, 그의 시간, 그의 상처, 그의 다짐 같은 것들을. 그리고 정효와 함께 할 그린의 시간, 그린의 상처, 그린의 치유까지...

왠지 제멋대로인,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왔을 것 같은 정효와 ‘토실토실’이 ‘사랑스럽다’는 말과 동의어로 들리게 하는 그린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웃음이 입술 끝에 걸리게 했다. 물론 이들이 사랑을 이루어가던 그 과정에서는 지나간 상처도 다시 꺼내야했고, 그로 인해 아픔도 견뎌야했지만, 이루고자 하는 그 끝을 만났으니 된 거다, 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쉬운 길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 길을 걷는 시간마저 소중하고 감사했다는 마음을, 그 종착역에서 만나고 싶은 거다. 가고자 하는 그 길의 끝에 도착했을 때, 지나온 그 여정마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싶은 소소한 바람... 그래서 그린과 정효에게 새롭게 시작될 오늘, 어쩌면 내일이 아름다울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었다. 집중력 최고의 초록을 수제자 삼아 열심히 물레를 돌리고 있을 것 같은 정효, 정효를 ‘싸부님~ 나의 싸부님~(초록이처럼 강하게 발음해야 함!)’이라 부르며 자신의 재능을 신나게 즐기고 있을 것 같은 초록, 평생 청소는 안하게 만들겠다는 정효를 머슴 부리듯, 발끝을 리모콘 삼아 정효를 향해 까딱대고 있을 것 같은 그린, 아장아장 지후와 아직 이름이 없는 베이비가 함께 하는 그림이, 막 그려지지 않아? 물론 배경색은 그린이어야 한다.(좀 연한 그린이었으면 좋겠다.) 편안해 보이고 쉬어갈 수 있게 만드는, 마치 삶의 피곤 따위는 없는 것처럼 보이게. 연분홍 나비가 살랑살랑 날갯짓 하며 날아와 새겨졌을 것처럼 싱그럽게...

‘사부님’이란 단어가 이렇게 말랑말랑한 줄 몰랐다. 중국 무술영화에서나 나오는 호칭으로만 기억하던 나에게 이런 정신적 충격을 선사하다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는 그 많은 호칭 다 내다 버리고 이렇게 불러줄 테다. “사부님~ 나의 사부님~(아주 부드럽고 연하게 불러줄 테야!)”이라고 불러야지. 맘에 안 드는 말이나 행동을 봤을 때는 입술을 쭉 내밀고, 뿌~ 해야지. 의자가 아닌 책상에 걸터앉아 발을 구르면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의자 따위 필요 없어!) 휴대폰에는 ‘사부님 나의 사부님’의 이름은 ‘내 남자’라고 저장해야지. 평범한 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이렇게 구구절절 말해놓고 보니, 나는 그린이한테 진 거다. (읽는 내내 그린이가 하나도 부럽지 않아! 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었는데... ㅠㅠ) 정효의 왼쪽 어깨에 새겨진 빨강(연분홍이라 우기고 싶은) 나비 문신이 지워지지 않을 테니... 에잇~ 부럽네. (인정!)

이 책이 나를 건드렸던 한 가지 있는데(물론 더 많지만 콕 찍어서 말하자면), 도예가라는 정효의 직업이, 나에게 이렇게 한 번씩 떠오르게 하는 지나간 시간이다. 정효의 공방이 나에게는 그랬다. 영화 <사랑과 영혼>을 교복을 입은 채로 극장에 들어가서 봤었던 기억, 벌써 23년이나 지난 영화지만 이 영화의 물레씬이나 포스터만큼은 잊을 수가 없을 만큼 강렬했던... 하긴, 사춘기의 여고생이 이들의 사랑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뛰었겠어. 긴 생머리가 넘버원이라고 생각했던 때에 짧은 헤어스타일의 여자가 예뻐 보였고, 그전까지 내 눈에 미남이라고 할 수 없었던 패트릭 스웨이지(안타깝게도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가 상의 탈의하고 데미 무어를 뒤에서 백허그 하듯이 끌어안고 함께 물레를 돌리다니!! 허...어....억....! (하지만 입꼬리는~ 므훗~)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사랑과 영혼 공홈>

오래전 좋아해 마지않던 영화를 기억나게 하면서 나에게도 있었던 푸릇푸릇함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 지나갔나 싶게 KTX 고속열차처럼 빠르게 지나갔던 이십대 초반. 학교 다닐 때, 내가 다니던 단과대 바로 옆 건물이 도예과의 작업실이었다. 겉으로 보면 창고 같지만,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그곳을 지날 때면 그 특유의 흙냄새와 지저분한(?) 실내를 볼 수 있었다.(청소는 무지 안하더라.) 흙이 잔뜩 묻은 비닐 앞치마를 입고 주변을 돌아다니는 학생들, 우연히 봤던 늦은 시간까지의 작업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까지 곁들여져서 나는 그곳-도예과의 작업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고는 했었다. 내가 손대는 것은 슬픔인데, 바로 버려야할 쓰레기 수준으로 만들어놓는 나의 손을 보면 당연히 부러움의 대상인 곳이다. 더군다나 언니가 도예를 전공해서 그런지 그 흙덩어리를 패대기치듯 던져가면서 작업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중학생이었던 그때의 나는 언니의 학교 작업실에도 가끔 놀러가기도 했었으니까. 아직도 우리집에는, 언니가 실습삼아 만들었던 그릇이 있다. 이름도 몰라, 용도도 몰라, 생김새는 민망해, 진짜 안습이다. 차마 식탁에는 절대 올려놓지 못할 저질 상태이지만, 가끔 내가 맥주 마실 때 쥐포를 잘라서 놓는 그릇으로 만들어주면서 그 그릇의 존재를 각인시켜준지 오래... ^^


공방이란 이름, 반죽이 되어있는 흙, 얼굴에 땀범벅이 되어가면서 가마에 그릇을 굽던 장면이(직접 본 장면이라 더 생생하다.) 정효와 그린의 사랑만큼이나 가슴을 뛰게 한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으나, 아직 지워지지 않았음에 웃을 수 있는...

이 책 『곰곰, 하는 중입니까』 속의 주인공들이,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할지,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줄지, 얼마나 많은 공감으로 여운을 남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지독하게 싫어하는 빗소리마저 음악소리로 듣게 만들고 있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린의 부모님은 지금 어떤 소통을 하고 있을지, 정효의 아픔은 말끔히 치유가 되었을지, 그들의 ‘곰곰’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지... 많은 것들이 궁금하지만, 그냥 궁금함 그대로 남겨두려 한다. 궁금한 채로, 계속 기억되고 있을 테니까... ^^

풋풋함이 사라진 연애와 현실 속으로 뛰어든 연애에 익숙해졌을 때, 아마도 그때 처음 소설을, 로맨스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소설 속의 허구에 빠져 허우적대려는 것이 아니라, 우연찮게 읽었던 한권의 소설 속에서 공감했던 현실이 먼저 다가와 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문학에 빠져들고 로맨스소설을 즐기면서 겪었던 감정은 공감과 기대, 혹은 위로였다.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 가깝게 지내던 나의 지인들을 봤다. 또한 나를 보기도 했다. 그건 공감이란 이름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로맨스소설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읽어본 책 앞에서는, 글 앞에서는... 앞으로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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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연습
진소라 지음 / 로크미디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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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햇살은 반갑고, 바람은 너무 차가워서 칼 같고, 회오리바람처럼 휘날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시간 같았다. 오늘은, 그랬다.

‘이건 아니다’ 싶은 순간에 칼같이 잘라내는 여자에게 남자는 연애를 해보자고 말한다. 때때로 우리의 인생에 출몰해서 ‘준비’라는 시간을 갖게 하는 많은 일들처럼 연애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떡밥(?)을 던지고, 여자는 이미 반해버린 남자에게 아닌 척 연습인 척 다가가 본다. ‘아니면 늘 그래왔듯이 잘라내면 그만이니까.’라고 우습게 본 탓에 여자의 연애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연애가 되고, ‘진짜’ 인생이 된다. 물론 그건 남자에게도 마찬가지. 이 와중에 서로가 겪게 되는 진심의 순간들과 오해의 시간들이 당연한 수순처럼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이들의 이야기에서 그리 중요하게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이런 시간을 통해서 여자에게 보이던 자기 자신이란 인물이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기의 이기심 때문에 무얼 놓치면서 달려왔는지, 자기가 가로막았던 ‘연애’가 무엇이었는지를 남자를 통해서, 남자와의 연애를 통해서 보게 된다.

뭐 결론은 늘 그렇듯 해피엔딩인데, 그렇게 마무리까지 끌어가는 과정과 읽는 이에게 던져주는 느낌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읽는 내내 생각했다. 좋지 않은 갖은 별명으로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곧 자신이 되어버린 여자 반소은, 이 여자와의 연애를 위해서 한발 양보했지만 역시 그도 자신의 이기심을 먼저 챙겼던 남자 오세준. 반소은의 옆에서 구미호 같은 반소은이 되어가게 만들었던 박볶음, 이십년 지기가 사실은 많은 것들을 누르고 살아왔다는 증거 아닌 증거로 반전을 일으켰던 반소은의 친구 신이. 그리고 내가 그동안 읽은 진소라의 작품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가족이란 캐릭터의 구성들. 아마도 그건 ‘이해불가’ 머리띠를 두르고서야만 볼 수 있는 묘사들이었다. 우습게도 그런 이해불가는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도 가까이 있는 모습들이어서 더더욱 부정할 수 없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그런 캐릭터들 안에서 또 다른 진심들을 꺼내는 모습들이 불러올 감정들과 우리가 살아가는 자세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 그런 감정을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한다.
무언가 망친 기분이 들 때, 그걸 빨리 잊으려면 남의 탓을 하면 된다. (83페이지)
우리가 잘(?) 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남의 탓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고도 웃음이 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남의 탓을 하기도 하는 찌질한 인간이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넘기고 싶은 순간들, 잊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을 때, 내 잘못인 것 알고 쿨하게 인정하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남의 탓으로 돌리면 조금 더 빨리 그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아니라고?!) 주로 그런 경우는 자신이 잘못 했을 때 떠올리기 쉬운데, 이들이 말하고 있던 것은 ‘연애’라는 카테고리 안에서의 일들을 주제로 그렇게 해석한다. 그게 연애여서이기도 하고, 조금 더 넓게는 인간관계로 보아서도 마찬가지고. 반소은이 간만 보다가 버리는 것도, 연실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연애를 싫어한다고 해서 연실이), 박볶음과의 계속되는 싸움에서도. 모든 것에서 웅덩이 하나를 건너갈 구실이 되는 것이다, 남의 탓은. 그런데 그 남의 탓이 다시 ‘나의 탓’이라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는 순간은 온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해도, 우리가 만나고 싶지 않아도, 우리의 의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라도.

반소은이 오세준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변해가는 과정, 다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볼만하다. 남자는 그래도 연애는 할 만한 것이라고, 그 연애가 비록 실패할지라도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 끝에 상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상처를 상쇄시킬 만한 기쁨이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여자는 그에 반박할 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상처를 갖기 싫어서 연애를 안 하는 수도 있다는 듯이, 뜨뜻미지근한 게 살아가는데 편리하다는 듯이 그렇게. 살아가는 게 전쟁인 것처럼 연애도 싸워서 이겨야할 것들 중의 하나라고 여자는 생각했던 것일까. 그게 서른을 바라보는, 이십대가 아닌 삼십대가 가져야 할 연애의 자세일까. 분명한 것은 스물의 연애와 서른의 연애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 것인지 이 여자 반소은이 이 책을 통해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미지근한 게 좋아서는 아니겠죠. 뜨거워질 용기가 없고 차가워질 각오는 안 되어 있으니 이렇게 가는 거죠.” (182페이지)
언젠가부터 우리는 몸을 사리고, 상처가 두려워 손을 내밀지 않고, 내 자존심을 보호해야 하고, 어느 정도 나를 감싸줄 수 있는 중간의 자리에서의 삶을 ‘안정’이란 이름으로 지켜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받아본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겁내하지 말라는 것은 교만한 오지랖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함을 선택해야만 했던 시간들을 인생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다. 내가 반소은에게 보았던 것은 그녀가 가족을 보면서 키웠을 차가움, 연애인 듯 아닌 듯 흘러간 시간들에게서 배운 처세술 같은 것이었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미지근함 같은 것. 그런데 그게 연애에서도 같은 흐름으로 보이니, 인생이란 우주에서 연애라는 지구는 참 작은 것 같으면서도 가끔은 전부일지도…….

그런 그녀가 연습 혹은 계약이란 이름으로 했던 세준과의 연애는 뜨거워질 용기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지근함이나 차가워짐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열정이 식을 때도, 얼음이 녹을 때도 있는 것이 인생이자 연애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 역시나 사람에 따라 다르게 흡수될 터이니 ‘그런 것이다.’하고 단정 지어 말하지는 않겠다. 책 속의 구절처럼 ‘어떤 일이든 알아야 할 시기를 지나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연습 연애라니, 계약 연애라니. 제목과 이런 저런(내가 읽기 전에 생각했던) 것들이 안타까웠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이야기였다. 반소은의 인생과 연애에 오세준이라는 적군의 침투는 스스로 걸어 들어온 인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인질의 처리문제는 오직 반소은이라는 아군의 마음이다. 행복한 인질로 만들어주었을지 괴로운 포로수용소로 느끼게 해주었을지…….

식상한 소재에서 내가 건져내고 싶은 것은 나에게만 주는 어떤 ‘느낌’이었다. 가슴이 따끔따끔하게 만들어주는 상황들과 툭툭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은 어떤 문장들 앞에서 이 책의 매력을 발견한 것 같다고. 주인공 한 사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게 하는 것도, 그런 배경들이 같이 가져오는 가슴 울림-슬프다는 울림이 아님-은 이들이 만들어낸 해피엔딩이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도 인정할 수 있게 했다. 얼굴이 찢어질 것 같은 이 추위도, 지금 흐르고 있는 이 겨울의 모습이니까. 무언가를 억지로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닌 인정하는 것, 조금씩이지만 변해가고 배려하는 것, 그게 이들이 만들어낸 해피엔딩이자 행복의 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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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고 라운드 - Navie 291
심윤서 지음 / 신영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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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연갑(no1kap@hxanmail.net)
From. 윤은홍 (pinklady@hxanmail.net)
Date : 201X. 3. 15. 22:20
Subject : 갑아, 출장은 잘 다녀왔니?
(중략)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내 손길에 반들반들 윤이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가구 같은 나만의 가족이야.

자신만의 온전한 가족을 갖고 싶다던 바람을 가진 여자가 아버지의 소개로 ‘선’을 봅니다. ‘어차피’ 해야 할 결혼이니 결혼을 하겠다는 건조한 남자하고요. 짝사랑만 하던 여자가 제대로 된 진실한 연애를 하고 싶다고 남자에게 말합니다. 남자는 ‘진실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연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연애와 ‘진실한’ 연애가 어떻게 다른 건지, 그 ‘진실한’ 연애를 해야 하는 건지. ‘적당히’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이제는 저녁 식탁에서 마주 앉은 누군가가 필요해(?)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남자에게 ‘진실한’ 연애가 하고 싶다던 여자의 마음은 통할까요?

To. 이준모 (momo@gxxmail.com)
From. 이각모 (leegakmo@nxaver.com)
Date : 201X. 3. 05 06:00
Subject : 형님,

(중략)
그래서 형님.
나는 이 여자와 결혼을 할까, 해.

남자는 ‘어차피’ 해야 할 결혼에서 진실한 연애와 결혼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으로 변해 갑니다. 남자가 가지고 있었던 혼자 있고 싶다던 그 시간들을 잊어도 될 만큼, 오래 전 기르던 고양이 오월이를 닮은 ‘봄’ 같은 여자 오월양과 결혼을 할까, 합니다.

조용히 귓속말로 자신의 비밀번호를 말해주는, 새벽의 안개 속에서 봄을 만나게 해주는, 아닌 척 하면서 질투도 하고 뒤끝을 보여주는,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면서 온기를 전하는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무슨 말만 하면 얼굴이 빨개져서 자꾸 놀려주고만 싶은 여자가 자꾸만 보고 싶어집니다. 수줍게 말하지만 늘 솔직한, 자신보다 더 많은 용기를 내어주는,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어여쁜 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범죄행위에요.

모양은 달랐지만 아마도 은홍과 각모가 각자 원하던 가족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고 싶었던 가족은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그 안에서 사랑은 기본으로 깔려있는 것이겠지요. 따뜻한 햇살 가득 들어오는 ‘봄’ 같은 가족, 내 마음을 흡수해 줄 수 있는 ‘편안한’ 가족, ‘차라리 혼자인 게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들어줄 그런 가족을요. 그래서 두 사람이 가족을 만들어간다면 걱정하지 않을 것 같아요.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보여주는 최대치를 끌어내어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갖게 만드니까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이 책 속의 한 챕터의 소제목이기도 한 이 말이 저는 왜 그렇게 어렵던 지요. 은홍에게는 가족이 그렇습니다. 남자에게도 마찬가지겠지요. 각자의 가족을, 자신의 사랑의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 쉽지 않겠지요. 이십여 년의 시간을 새어머니와 의붓딸이라는 관계로 살아온 은홍과 어머니, 남자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 가족들의 관계가 계속 제 눈에 걸립니다. 그러고 보면 이 책 안에서 이해하기 쉬운 인물들, 이해하기 쉬운 관계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은홍에게는 나이차이 많이 나는, 엄마 대신인 것 같은, 큰언니 같은 아란 이모. 친구 같고 자매 같은 남매 같은 갑이와 준이 오빠. 각모에게는 친구 같고 의지가 되는 준모 형님. 형님의 이메일을 항상 훔쳐보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이 되는 노라 형수님.

이들의 이야기를 여기서 다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알아가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저도 이들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나면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기대감도 생깁니다. 내가 타인을, 가족을, 이해 못할 관계들- 사실은 이해하지 ‘않았던’ 관계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은홍이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의 새벽예배를 따라간 것, 어색하게 손 내밀어 같은 시간을 보내자고 말하는 것, 살짝 민망했지만 마음을 감추듯 조금 열어보이던 어머니도 그렇게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거든요.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이들이 하나씩 들려주던 이야기는, 이메일이라는 형식을 통해 들려와서 그랬던지 조금 더 설레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야만,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는 한은 자신만 열어볼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누군가의 이메일을 몰래 훔쳐본 느낌도 듭니다. 물론 이들은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이메일을 우리에게 ‘들려준’ 것이지만요. ^^
저자가 왜 굳이 서간체 형식으로 들려주었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요. 편지여서 더 진심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져요. 얼굴 보고 이야기하거나 전화로 통화하거나 하는 것과는 다르게, 문자나 편지(전자메일 역시도)로 전해질 때 더 많은 진심을 담을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아주 작은 이모티콘 같은 표정 하나도 막상 얼굴 보고는 쑥스러워서 건네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요. 어쩌면 직접 들려주지 않고 한번 걸러서 들려오는 느낌이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도 막 떠올라요. 은홍이가 쑥스럽고 어색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이모에게, 갑에게, 각모에게 전하는 말들이요. 각모 역시 하기 어려운 말들을 형님과 은홍에게 그렇게 전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전 그냥 이렇게 생각할래요. 이런 형식이기에 이들의 아픈 이야기마저 조금 더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던 거라고요.

읽는 내내, 은홍이가 말하던 고가구를 검색해본다거나, 가구를 만들 때 하는 일들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평안도 숭숭이 반닫이는 어떻게 생겼나, 각모의 서재에 들여놓고 싶다던 사방탁자는 뭔가, 하는 가구를 만드는 나무나 용어들을 찾아보게 되더군요. 낯설 것 같았는데, 오랫동안 함께 해와 내 손때를 탄 어떤 것들을 바라보는 느낌이었어요. 새로 나온 어떤 제품을 사는 것과는 정말 다른 기분이잖아요. 내 손에 익숙한, 너덜너덜해졌는데 쉽게 버려지지 않는 지갑 같은 거요. 흐음...

지금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들을 전하려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들이 생각납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야겠어요.
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분들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


To. 우아란(aran@gxxmail.com)
From. 윤은홍(pinklady@hxanmail.net)
Date:201X. 09. 13. 01:15
Subject: 결전의 날
(중략)
기억하세요?
남자를 본 순간 평안도 숭숭이 반닫이가 떠올랐다고 했던 거요.
평안도 숭숭이 반닫이는 보통의 반닫이보다는 꽤 크거든요. 그렇다 보니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주로 피나무로 만들었어요. 평안도 지역에 자생하는 흔한 나무이기도 했고요. 피나무는 이파리가 하트 모양으로 생긴 나무인데, 가볍고 결도 아름답지만 아쉽게도 목질은 약한 편이에요. 그런 피나무의 단점을 보완하려고 커다랗고 아주 정교한 투각 기법의 장석을 부착했죠. 언뜻 보면 각지고 단단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섬세하고 아름다운 가구죠.
남자가 “윤은홍씨?” 하고 처음 제 이름을 부르는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나 봐요. 딱딱하고 단단한 남자의 저 껍질 너머에 아주 섬세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이 책 읽으면서는 성시경의 노래 <너는 나의 봄이다>가 많이 듣고 싶어질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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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 1 - Navie 272
진주 지음 / 신영미디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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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났을 때, 표지가 예뻐서 언제 읽을지도 모를(사실 책을 받고 나서 바로 읽을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이 책의 사진을 한 장 찍어두었다. 1권 표지 속의 여인이 아마도 이 책의 여주인공 송기제의 모습을 대신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뒷모습이 고혹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다 보이지 못한 앞모습은 슬픔을 담은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는…….


첫눈에 반했어요.

열여덟의 해우와 스무 살의 기제가 만난다. 베트남의 하노이. 만나지 말아야 할 관계 같은 자리에서 서로를 인식한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서로에게 빠지지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기제에게 해우는 엄마와 재혼한 상대의 조카. 그래서 사심을 품어서는 안 되는 대상 박해우. 해우에게 기제는 한눈에 반한 대상이지만 표현해서는 안 될 대상이기도 한, 그래서 더 슬픈 존재. 기제는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켜줄 줄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꾸만 해우에게로 날아가는 마음을 붙잡는다. 사랑을 믿을 수 없는, 그래서 사랑을 담지 않은 여인 기제에게 오직 목표는 하나, 자신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을 꿈꾸는 것. 상류사회로의 진입은 그녀의 최대이자 마지막 목표이기에 해우를 마음에 담아서는 안 된다. 이유는 다르지만 해우 역시 마찬가지. 모범생 해우에게 지켜야할 것들, 이루어내야 할 것들이 있기에 기제는 이제 사촌누나로만 봐야할 대상이다. 기제가 자신의 사랑이 되고, 자신의 슬픔이 되어, 결국 그 슬픔 때문에 해우 자신이 죽을 것 같다고 하여도…….


만약에 사람이 슬픔 때문에 죽을 수 있다면……. 기제야, 그랬다면 난 너 때문에 죽었을 것 같아.

5년의 시간이 흘러 사랑을 표현하는 애쓰는 이들을 보았고, 다시 또 흐른 시간의 모습에서는 이들의 행복을 빌어주려 했다. 사랑이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우의 슬픔을 보고 같이 슬퍼했고, 나쁜 여자로 보일지 모를 기제의 행복을 같이 봐주려 애썼다. 그런 거니까, 사랑은. 내 맘대로 되지 않을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그거, 사랑.


책의 중간에 한 번씩 그려지는 기제의 과거를 듣다 보면, 정말 ‘뜨악’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아이가 아이답지 못한 삶을 살아온 모습이 보인다. 누가 그 아이에게 그런 고통을 경험하게 했는지, 그 아이가 그런 시선과 가슴으로 살아온 시간을 누가 보상해줄 것인지, 어른이 된 기제가 어린 그 나이부터 가슴 속에 담아온 다짐들을 이루어가려 했던 모습들을 누가 감히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기제가 품은 방법이 잘못되었으니 아니, 그런 마음을 품는 것조차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누구인가.

그래서일까. 해우의 기제에 대한 사랑은 눈이 부신 순백색처럼 보였다. 해우가 기제에게 처음 마음을 고백했던 날 하노이의 시장에서 기제가 사 입었던, 사랑에 처음이었던 소년 해우의 심장을 훔친 흰색의 아오자이는 기제의 옷이 아니라 해우의 마음이었으리라.


그렇게, 나는 너를 사랑하겠다.

어렵게 다시 만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간에 진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마음을 확인한 순간, 해우의 마음은 한결 같았던 그 시간들을 그대로 보상받는 듯 했다. 10년이란 시간이 흘러서 안타까웠지만, 처음부터 그리 되지 못하여 슬펐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들이기에 더 애달프게 보이는. 그런 사랑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한권의 책을 만나는 일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이 책이 어김없이 그것을 증명해주더라. 한 글자도 읽어지지 않을 상황에서 꾸역꾸역 한 줄씩 읽어가는 오기가 발동한 순간, 이 책을 만난 순간이 그랬다. 안 읽히면 덮어버리면 그만일 것을 무슨 끝장을 보겠다고 그렇게 붙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 읽고 난 후의 마음은 지금이 아닌 조금 더 나중에, 저절로 손이 뻗어질 때, 머릿속에 가득한 두통이 아닌 시간에, 두 눈이 더 맑았을 때 읽어야 했을 것을 후회를 했다. 가슴에 슬픔을 담은 채로 심장에 통증을 주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고통을 배로 만드는 일이기에 그러지 말자도 하면서도 자꾸만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던 것은 무슨 조화속이었는지…….


가끔 책을 보면서 ‘재미있다’라고 표현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극찬을 하는 베스트셀러도 내가 읽어지지 않으면 재미‘없는’ 책이 되니까. 그런 의미로 보자면 이 책은 분명 나에게 재미있는 책이다. 하지만 재미있다는 이유로 지금 바로 다시 펼쳐들기에는 많이 힘든 책이다. ‘기제와 해우가 지금쯤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라고 위안이 들 때 다시 만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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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서정원과 민혜우.
스무 살에 만나 뜨겁게 사랑했고, 스물 한 살의 나이에 결혼을 했었고, 두 사람의 아이가 잠시 머물다가 가버렸고, 정원은 군대에 갔다 왔고. 그래도 괜찮아 보였던 두 사람은 4년 열애의 종지부를 찍고 헤어진다. 혜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정원은 묵묵히 기다리겠다는 마음으로 헤어짐에 동조한다. 그리고 4년 후 전남편과 전부인으로, 앞집에 사는 이웃으로 재회한 스물여덟의 두 사람. 혜우는 이혼을 얘기하면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었기에 정원은 이혼 그 자체보다는 그녀가 말한 시간에 동의를 하고 떠난 거였다.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알았다면, 돌아오는 게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떠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생각한다. 두 사람이 끝나지 않았다고, 끝났던 적이 없었다고, 여전히 ‘-ing’의 상태로 이어져 오던 것이라고.

정말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항상 궁금했던 소재다. 내가 해보지 못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는데,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는 그 설정. 도대체 두 주인공의 마음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그 마음을 헤아려가면서 그려지는 그 이야기들에 문득 의심이 생긴다. ‘그 마음 진짜야?‘ 라고 묻고 싶다. 헤어진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는 그 마음이 그게 진짜인 게 맞냐고 확인하고 싶어진다. (내 마음은 의심천국)
근데 한 가지는 알 것도 같다. 무언가 그 마음에 대한 확답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분명 완전히 잘라내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금방 다시 붙여보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내 마음이 정말 잘라내고 싶은 건지 붙여보고 싶은 건지 다시 또 의심이 들고, 어느 것으로 하든지 만족도 못하겠고 이게 잘하는 짓인지도 확신도 안서고.

전체적인 스토리는 서로 사랑하던 두 사람이 결혼도 했었고 다시 헤어졌고, 다시 또 만난다는 내용이다. 우연히 이웃사촌으로 만나서 다시 서로에 대한 마음이 싹튼다는 것이 아니고, 남자의 목적 그대로 진행된다는 설정이다. 남자는 여자와 헤어진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여자의 앞집으로 이사를 오고, 조금은 천천히 하지만 놓치지 않을 정도로 다가가고 있는 과정을 그린 것. 그 사이에 솔직하고 대범했던 여주인공은 세월의 흐름 때문인지 과거의 경험들 때문인지 걱정 많고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렸고.
주저하던 여자는 결국 자신의 마음이 남자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마음을 표현하고, 솔직해지고, 계속 나아가기로 한다.

흔히 시행착오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의 두 주인공이 그런 경우다. 사랑하면 다 되는 줄 알고 결혼을 했지만, 끝이 없는 꽃길만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결혼생활은 그리 쉽지 않았다. 딱히 더 어려울 것도 없었겠지만 마냥 신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 한참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친구라는 대상들과 어쩌면 이성친구도 사귀면서 즐길 나이였던 그때에 결혼이라는 것을 했던 두 사람이었기에, 조금은 더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이론이나 마냥 상상 속의 결혼생활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철없던 시간의 잘못을 되돌리고 싶었던가 보다. 물론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마음은 기본으로 깔고, 그 외의 것들이 이제는 좀 제대로 된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갖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것인가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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