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심장을 바치다 심장을 바치다 1
찬연 / 동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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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런 집착이 있을까? 사실 나는, 로맨스소설 읽으면서 보이는 집착을 그다지 즐겨하지는 않는다. 내 기준에서 억지스러운 느낌도 강하게 있기도 하고, 그러한 집착이 보이는 광기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걸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예전에 내가 읽은 집착을 강하게 보이는 로맨스소설 몇 권은 그랬다. 그래서인지 강한 소재는 잘 읽게 되지 않았다. 이번에 만난 <심장을 바치다> 역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다. 맥락도 없이 등장하는 집착에, 마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건 성관계밖에 없다는 듯이, 그게 모든 일의 해결과 마무리를 끌고 올 거로 예상했다. 읽어가다 보니 좀 후회가 되기도 한다. 읽기도 전에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세아가 유현을 자극하는 방법이었다. 억지로 못된 말을 하고, 그가 싫어하는 행동으로 화를 돋우는 일을 자처했다. 마음 속 말들은 그게 아니었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모두 억지스러운 것들이었다. 유현이 듣고 화를 내기에 충분한 말들. 유현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는 세아를 아낀다. 세아의 재능(그림)을 사랑한다. 그녀에게 나는 물감 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것마저 그녀의 일부였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못되게 구는 건 세아나 유현이나 똑같다. 그런데 여기서 좀 다른 점은, 두 사람 각자 과거가 작용하는 현재의 모습이다. 세아는 고아다. 입양과 파양을 거듭 경험하면서 외로움에 싸여있다. 누군가에게 버려진다는 게 세상의 공포였다. 유현이 자기에게 접근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유현에게 버려질 날을 기다리는 게 싫다. 처음부터 악다구니 써가며 단 한 방울의 정도 그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리라 다짐한다. 유현은 세아를 본 순간 돌아가신 친엄마를 떠올린다. 닮았다. 분위기도, 외모도, 표정도. 세아에게 엄마를 봤다. 그가 상처 입은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여자였다. 그러니 그가 필요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세아를 이용하면 된다. 그것뿐이다. 엄마를 닮은 그녀가 그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올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 세아는 그림을 그리고, 유현은 세아의 그림을 가지기로 한다. 세아의 생활을 유지시켜주는 게 그림의 대가이고.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가던 중, 세아는 변한다. 그녀를 둘러싼 외로움을 표현한다. 유현에게 더는 현재의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는 걸 느낀다. 그가 주는 마음을 보는 순간,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를 보살피며(구체적으로는 돈으로 생활을 영위하게 해주는) 이어가는 지금이 싫다. 그와 어떤 관계로 이어가지 못할 지라도 현재의 모습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묻는다. 자기가 그린 그림 값이 어떻게 계산되어야 하는지를.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그림 그리는 재주밖에 없으니, 그 그림으로 그의 욕망을 채워주고 있으니, 이제 그녀에게 가진 것을 전제로 새로운 계산법이 필요했던 거다. 아, 그 순간. 이 여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읽게 된다. 이 남자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고 그녀를 봤으면 하고 기도하게 된다. 집착으로, 구속하듯 묶어놓는 게 아니라, 좀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는 두 사람이 되기를 말이다. 실제로 조금씩 변하는 모습으로 소설은 결말을 맞는다. 세아는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로 삶에 웃음을 불어넣는다. 유현은 여전히 세아를 구속하지만, 그 구속의 모습이 피식거리게 할 만큼 힘을 잃었다는 게 안타깝지만, 뭐, 어때. 그렇게 좋아지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 해피엔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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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결혼, 그리고 결혼
유리화 지음 / 마롱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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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그랬다. 서로에게 관심 없던 두 사람이었으니, 뭐 시작이랄 것도 없는 인연이었겠지. 두 할아버지의 다그침이 없었다면 그들의 결혼은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었을 터. 인예는 지금 결혼이 아니라 일이 우선이었다. 이제 막 시작된 사회생활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 마치 인예의 결혼만이 할아버지의 치료약이 되는 것 같은 분위기. 어차피 해야 할 결혼이라면, 할아버지의 평온이 인예의 결혼이라면, 이 남자와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철진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가 꿈꾸는 증손주까지는 몰라도, 당장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다면, 아주 모르는 사람도 아닌 인예와의 결혼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은근 인예를 향한 눈빛도 감지한 터라 자기 아내가 된 인예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이 될 것도 같고. 응?

 

'선결혼 후연애' 혹은 '계약결혼' 키워드에 충실한 소설이다. 지금 만난 낯선 여자와 남자가 엮어가는 관계가 아니라, 비록 기억은 희미하지만 오래전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다. 두 할아버지를 기점으로 한쪽은 손녀, 한쪽은 손자가 만들어낸 인연. 진짜 부부가 아니라 부부 행세를 위한 계약이었지만,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은 한 공간에서 보내는 이들이 어떻게 마음이 통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낮에는 회사에서, 밤에는 집에서, 그렇게 한 공간에서 숨을 쉬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을 그렸다. 칼 같은 성격에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의 구분이 명확한 철진, 유한 성격이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며 누군가의 마음을 거절할 줄도 아는 여자 인예. 다른 것 같지만 은근 비슷한 면을 보이는 두 사람의 성격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철진에게 향한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스토킹이었던 미란과 자기 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도 아니면서 마치 자기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던 정민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너무 닮았다. 어떤 사건 이후의 처리를 하는 방식마저 시원하게 비슷했다. 병적인 집착을 용서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 희망고문을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인간적인 배려와 기본이 무엇인지 전달하려는 모습은 통쾌했다.

 

상사와 부하직원이면서 남편과 아내라는 비밀을 감춘 채로 하루를 보내는 두 사람의 긴장감은 볼만하다.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커밍아웃하게 만드는 조연들의 활약(?)도 흥미롭다. 특히 미란 씨. 내 것이 아닌데도 내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 집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에휴, 안타깝구만. 정민 씨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지 않은 채로 마치 자기와의 인연이 정해진 것처럼 행동하는 거, 별로다. 솔직히 이건 현실에서도 종종 보곤 하는데, 옆에서 그러고 있으면 저절로 상대의 마음이 넘어올 거라는 계산은 별로다.

 

읽는 게 나쁘지는 않은 소설이나 한 가지 거북스러웠던 단어. '내 아내'라는 말. 철진이 인예와 대화하면서, 혹은 혼잣말 하면서, 문장의 끝에 붙이는 그 '내 아내'라는 말이 니글거려서 혼났다. 꼭 그렇게 불러야만 했니? 영화나 드라마 속의 온갖 느끼한 장면들이 계속 생각나서, 읽는 동안 몰입감 최고로 방해하던 요인이었다.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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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럼에도 우리는
다노 / 동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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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게, 원래 그렇다. 다 잊었다고,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채로 있을 것 같은데, 가끔 그게 아니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떠오른다. 그래서 기억이란 건, 지워지는 게 아니라 희미해진다는 걸 확인한다. 희미하게 흐려졌다가, 어느 순간 또렷하게 생각이 났다가, 잊고 싶다고 아우성치다 보면 또 억지로 눌러 담았다가, 그게 아닌 걸 알면 또 나타나서 혼란스럽게 하거나. 그러니까 한 마디로, 기억은 내 의지대로, 머릿속 다짐대로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우진을 처음 본 진서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

 

“혹시, 나 알아요?” 혹은 “우리 어디서 본 적 없어요?”라는 말을 꺼내기가 부끄럽지 않은 순간. 진심이었다. 쌍팔년도의 작업 멘트가 아니라, 꼭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우진과 마주친 진서는 묻는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없는지. 우진도, 호재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가보다 싶다가도 불쑥불쑥 두통이 일듯 찾아오는 기억에 우진의 모습이, 우진의 목소리가 있다. 처음 본 게 아닌 것만 같다. 오랜 시간 가족처럼 지내온 호재에게 의지해 그 흔적을 찾아내려 하지만 쉽지도 않다. 뭔가를 자꾸 숨기고 있는데 그것도 금방 알아낼 수가 없다. 진서는 부딪혀 보기로 한다. 우진과 호재가 숨기는 어떤 시간을...

 

기억 상실이란 소재, 다시 만난 인연 앞에서 불행한 사람들, 그렇게 다시 만나는 게 옳은 건지 판단이 서지 않지만, 가슴 속 뜨거움은 그런 판단 따위 의미 없게 만드는 일들. 뭐, 색다른 분위기는 아니다. 그동안 만나온 소설들 속에서 익숙하게 느껴온 것들을 재탕하는 기분일 거로 생각했다. 그런 부분 분명 있는데, 어쩌면 이 소설은 두 사람의 로맨스 자체보다는 주변 인물과 함께 하는 힐링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이 소설이 로맨스소설의 달달함을 채우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 진서와 우진의 헤어짐의 이유를 알 것 같지만, 다시 만난 이들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대의 기억 상실이 의미 없어지게 하는 재회가 별로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진서의 기억이 돌아오면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 (어차피 해피엔딩일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만나도 되는 건가 싶은 염려가 생기기도 한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 그들의 시간에 나에게만 잘려나간 그 시간이 다시 돌아온다면 감당해야 할 충격은 아무도 계산에 넣지 않고, 오직 다시 만나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진 연인으로만 그려져서 아쉽기도 하다.

 

이들이 가진 시간의 심각함 때문에 분위기가 우중충해지려고 하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그거 별거 아니잖아? 뭘 그렇게 고민해? 마음 가는 대로 그냥 해봐!’라고 말하듯 던지는 호재의 몇 마디가 어떤 결심을 아주 쉽게 만들면서 분위기를 전환한다. 누군가가 하지 못하는 말들을 호재의 가벼운(?) 입이 방정을 떨면서 대신 말해주기도 하는 순간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을 만드는 호재 때문에 복잡하다고 여긴 일들이 의외로 쉽게 풀리는 실타래로 만들기도 한다. 진서의 아빠 역시 착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진서와 우진의 만남을 반대하면서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흐르는 마음을 거스를 수 없음을 인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진이 선택한 정의 때문에 와해한 그의 가족도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면서 가까이 다가간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의 형 강진이 보여주는 의외의 귀여움은 이 소설의 해피엔딩에 한 부분을 차지한다. 남의 일에 독설을 날릴 줄 알았지 관심이라고는 없던 인간이, 은근 오지라퍼가 되어가는 모습이 괜히 즐겁다.

 

누군가의 사라진 기억 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인연들을 보는 노파심은, 두 주인공을 비롯해 주변에서 두 사람을 응원하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용기 내게 한다. 잘라내려 했는데도 안 된다면, 모르는 사람으로 살면서 지우려고 했는데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기억해내고, 다시 만나고, 같이 갈 수밖에. 상처와 고통으로 채운 시간이 그들의 기억에 계속 박혀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버티면서,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계속 사랑할 수밖에...

 

상황의 설정이나 전개, 뭔가 자꾸 끊기는 흐름도 분명 있었다. 그때마다 몰입은 떨어지고, 페이지는 더디게 넘어가긴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으면 완독하지 못할 게 없다는 걸 보여준 소설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이 작가가 다음 작품을 내놓는다면, 그때는 좀 더 탄탄한 구성에, 캐릭터의 매력이 더해졌으면 좋겠다. 로맨스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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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남자
훈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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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에서 가우디의 작품을 본 구엘은 그의 재능을 확인하고 난 후, 그의 작품을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둘의 우정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둘의 각별한 관계는 구엘이 죽기까지 40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둘 사이의 그 어떤 관계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각인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예술적 안목과 재능을 겸비한 재력가 구엘이 가우디를 통해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다고 한다.

 

건축과 관계없는 사람도, 건축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가우디. (오래전, 학교 앞 카페의 이름도 가우디였던 게 생각난다. ^^) 어쩌면 흔하게 들어왔을지도 모를 그 이름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그저 아름다운 건축물의 이름에 늘 따라오는 이름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가우디와 구엘이라니. 둘의 조합이 이 소설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도 궁금했다. 그거야 막상 읽다 보면 알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앞서더라. 건축을 하고 싶은 이라면, 정말 한번은 가우디의 건축물을 직접 보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두 주인공이 만나는 배경이 된 스페인이 기대됐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 싶은 그곳을 향한 원혜윤. 바르셀로나는 낯선 곳이지만 그녀가 꿈꾸던 도시였다. 초라한 행색이지만 그녀의 열정만큼은 누구와 비할 수가 없는 여행길이었다. 우연이라면 그녀의 짝사랑을 고백할 운명인 거고, 아니라면 달콤한 꿈이라고 생각할 그 순간. 대학교 때부터 짝사랑했던 선배 공지섭을 만났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그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반짝일 수밖에 없다.

 

"보자. 내일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좋아요. 내일."

 

찰나의 순간에 마주친 인연으로 끝날 것 같았는데, 그는 여행지에서의 다음 만남을 제안했다. 약속이다. 내일, 다시 만나자는 그 말이 혜원의 가슴을 끓게 했다.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혜윤은 수줍게 고백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간절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어쩐 일인지, 그는 이미 혜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가오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자기를 향한 마음을 정리하라면서... 그래, 꿈이었구나. 바르셀로나의 그 순간은 눈을 뜨면 깨어날 그냥, 꿈이었구나.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들은 소식, 지섭이 한 학기 남겨두고 학교를 자퇴했단다. 이렇게 정말, 그와는 끝이구나.

 

6년이 흘렀다. 학교 선배 영민의 건축회사에서 일하는 혜윤은 새로운 프로젝트의 어마무시한 임무를 맡는다. 이름은 유명하지만,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건축가 '라이언'을 잡아 오는 것. 그와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 못한다면 해고. 성공한다면 연봉 두 배. 혜윤은 라이언과의 계약을 위해 애쓴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이메일 주소 하나뿐. guelwantsgaudi. 이메일 주소에서 느낀 호감, '라이언도 가우디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반가움이 앞서 이 일을 꼭 성사시키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라이언 수색에서 마주한 것은 의외의 인물. 그렇다고 이 계약을 포기할 수는 없지!

 

처음 혜윤의 캐릭터를 봤을 때는 혹시 고구마인가 싶었는데, 의외다. 혜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착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는데, 그게 마냥 답답하지는 않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끝까지 해내려던 오기도, 원하는 것을 향한 노력도 있었다. 착한 사람에게만 착하게 대하는,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지 않을 마음에는 애써 관심 두지 않으려는 현명함도 가진 여자였다. 그녀에게 우선인 것은 건축. 그리고 어렵게 찾은 사랑을 위해 당당해지는 일.

 

나중에야 드러나는데, 지섭이 6년 전 그때 혜윤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다시 만난 혜윤에게 지섭이 다가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상황은 역전된다. 밑도 끝도 없이 들이밀고 들어오는 지섭의 직진이 귀여우면서도 곧아 보여서 좋더라. '나는 너여야만 하고, 그래서 나는 을이 되어 기다림도 불사하겠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을이 갑이 되는 하극상도 이뤄 내리라'는 막무가내 정신도 발휘한다. 특히 지섭의 행동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 처음에 6년 만에 다시 만난 혜윤과 지섭의 동행에서 지섭은 혜윤의 손목을 잡고 걷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냥 급한 마음에 뒤따르는 사람을 잡아 쥔 곳이 손목이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런 상황이 몇 번 더 등장하자 어떤 의미가 보였다. 어느 날 지섭이 혜윤의 손을 잡았던 그때, 추측은 사실이 되었다. 그가 혜윤에게 다가가는 방식,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관계에서 더는 다가갈 수 없는 그가 혜윤을 잡을 수 있는 부분은 손목이었다. 손을 잡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대로 보이는 증명하는 듯하다. 지섭이 혜윤의 손을 잡은 순간, 두 손이 하나인 게 어떤 관계인지 설명된다.

 

이 남자 공지섭, 칼처럼 냉정하고, 자기 잘난 거 너무 잘 알아서 재수 없게 당당한 것도 멋있던데,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마냥 빙구가 되는 것도 보기 좋더라. ㅎㅎ 사랑하는 이의 꿈도 이해해주고, 같이 하고 싶은 시간을 위해 기다림의 인내도 보듬을 줄 아는... 구엘과 가우디가 사업과 재능의 관계에서 시작된 끈끈한 우정이라면, 지섭과 혜윤은 건축이라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랑이라는 것을 그대로 확인했다. guel wants gaudi.

 

혜윤을 둘러싼 음울한 환경과 악역들이 거슬리기도 하고, 혜윤이 왜 그들에게 사랑을 갈구하려는지 공감하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 확인한 인연들에서 그마저도 이해하고야 마는 혜윤의 성정이 현재 그녀의 꿈을 이루며 살게 하는 바탕이 되었을 거로 생각하니, 이해 못 할 것도 없더라는... 꿈과 일, 사랑 앞에서 당당한 이 여자가 계속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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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합본] 평탄했으면 좋겠어 (전2권/완결)
권화록 / 누보로망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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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눈길을 잡아끄는 여주인공 때문에 참 특이한 캐릭터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남자주인공인 신지헌의 말처럼, 이렇게 산만한(?) 여주인공을 만난 건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지난 연애의 찌질함에 현재 솔로인 인영은 친구 재형의 결혼식에서 눈에 들어오는 남자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른 친구들보다 선점할 것이니 다들 먼저 덤비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눈에 불을 켜고 이 예식장의 모든 남자를 살펴볼 것이라는 다짐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러다 보고야 말았다. 재형의 남편에게 인사하는 하객, 신지헌을. 친구의 결혼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그의 동선에 인영의 시선이 따라갈 뿐이다. 그러다 잠깐 친구의 결혼식에 한눈(?)판 사이에 그는 사라진다. 오늘 결혼한 친구를 닦달해서 쟁취한 신지헌의 전화번호를 받고도 한참 망설이다가 연락을 했는데, 잘못 받은 전화번호였다. 친구를 죽이네 살리네 욕이 나올 것 같지만 참고 진짜 신지헌의 전화번호를 다시 받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어렵게 받아낸 전화번호를 앞에 두고도 연락하지 못한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먼저 연락을 하는 데 망설인다. 왜? 먼저 들이대는 여자를 상대가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증 때문에.

 

첫눈에 반한다는 걸 믿지 않았던 여자가 결국 그 첫눈에 반함을 인정하는 순간을 처음부터 드러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여주인공 인영의 캐릭터가 참 신선하다.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솔직함에 컬크러시 생각해도 좋겠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지헌의 표현 그대로 산만한 성격이라고 밖에는 안 보였는데, 그게 지헌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온 듯하다. 솔직한 성격, 내숭 없이 그대로 내보이는 게 인영의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오히려 곰 같은 남자 지헌이 인영과 대조적으로 보이는데, 그게 닮지 않은 두 사람을 서로에게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인영의 많은 부분을 지헌이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걸 보면 잘 어우러지는 조합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고 2년이 흐른 상태에서 ‘결혼’이 화두가 된다. 이 정도 연애했으니 결혼하자는 지헌과 결혼 생각이 없으니 연애만 하면 안 되겠느냐는 인영. 달달하게 해왔던 연애가 한순간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마냥 헌신적일 것 같은 지헌의 노력으로 둘은 결혼을 결심한다. 이제 현실 속 결혼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아... 이 순간 소설은 엄마가 즐겨보는 막장드라마로 전환한다. 지헌의 엄마는 전형적인 시어머니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그나마 소설이 중심을 잡는 건 지헌의 노력과 인영 부모님의 털털하고 시원한 성격 때문이다. 뭔가 홀리듯 상황을 이끌고 가는 인영의 부모님은 약간은 코믹 캐릭터에 순수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고, 지헌은 약속했던 것처럼 인영을 위해 노력하는 남자이자 남편이 되려고 하고. 그런데 좀 이해 불가한 것은 지헌의 엄마만큼이나 인영의 이기적인 태도였다.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무조건 ‘나에게만 맞춰!’ 하는 것보다 같이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나? 인영은 전자였다. 자기가 생각하기도 싫고 감당하기도 싫은 것들로 지헌에게 일방적인 을의 자세를 바랐던 것 같다. 뭐, 나중에는 인영도 변하고 두루두루 맞춰가는 길로 발길을 향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여자를 만나는 건 참을 인자 백만 스물두 개를 그리면서 인내심을 길러야 할 판이다.

 

그렇게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인 시간을 흘러 맞이한 행복의 순간, ‘평탄했으면 좋겠어.’라고 읊조리던 말처럼 두 사람, 두 가족이 잘 어우러져 살아가길 바라게 된다. 처음 인영이 지헌을 발견한 순간, 지헌에게서 봤던 후광이 눈앞에 그대로 비추는 듯해서 웃음이 나는 소설이다. 그 남자를 잊지 못해서, 그 남자에게 연락하지 못해서 생긴, 서른살 여자의 상사병이라니... ㅋㅋ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인영이 캐릭터 참 특이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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