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결혼, 그리고 결혼
유리화 지음 / 마롱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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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그랬다. 서로에게 관심 없던 두 사람이었으니, 뭐 시작이랄 것도 없는 인연이었겠지. 두 할아버지의 다그침이 없었다면 그들의 결혼은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었을 터. 인예는 지금 결혼이 아니라 일이 우선이었다. 이제 막 시작된 사회생활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 마치 인예의 결혼만이 할아버지의 치료약이 되는 것 같은 분위기. 어차피 해야 할 결혼이라면, 할아버지의 평온이 인예의 결혼이라면, 이 남자와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철진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가 꿈꾸는 증손주까지는 몰라도, 당장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다면, 아주 모르는 사람도 아닌 인예와의 결혼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은근 인예를 향한 눈빛도 감지한 터라 자기 아내가 된 인예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이 될 것도 같고. 응?

 

'선결혼 후연애' 혹은 '계약결혼' 키워드에 충실한 소설이다. 지금 만난 낯선 여자와 남자가 엮어가는 관계가 아니라, 비록 기억은 희미하지만 오래전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다. 두 할아버지를 기점으로 한쪽은 손녀, 한쪽은 손자가 만들어낸 인연. 진짜 부부가 아니라 부부 행세를 위한 계약이었지만,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은 한 공간에서 보내는 이들이 어떻게 마음이 통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낮에는 회사에서, 밤에는 집에서, 그렇게 한 공간에서 숨을 쉬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을 그렸다. 칼 같은 성격에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의 구분이 명확한 철진, 유한 성격이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며 누군가의 마음을 거절할 줄도 아는 여자 인예. 다른 것 같지만 은근 비슷한 면을 보이는 두 사람의 성격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철진에게 향한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스토킹이었던 미란과 자기 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도 아니면서 마치 자기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던 정민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너무 닮았다. 어떤 사건 이후의 처리를 하는 방식마저 시원하게 비슷했다. 병적인 집착을 용서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 희망고문을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인간적인 배려와 기본이 무엇인지 전달하려는 모습은 통쾌했다.

 

상사와 부하직원이면서 남편과 아내라는 비밀을 감춘 채로 하루를 보내는 두 사람의 긴장감은 볼만하다.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커밍아웃하게 만드는 조연들의 활약(?)도 흥미롭다. 특히 미란 씨. 내 것이 아닌데도 내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 집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에휴, 안타깝구만. 정민 씨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지 않은 채로 마치 자기와의 인연이 정해진 것처럼 행동하는 거, 별로다. 솔직히 이건 현실에서도 종종 보곤 하는데, 옆에서 그러고 있으면 저절로 상대의 마음이 넘어올 거라는 계산은 별로다.

 

읽는 게 나쁘지는 않은 소설이나 한 가지 거북스러웠던 단어. '내 아내'라는 말. 철진이 인예와 대화하면서, 혹은 혼잣말 하면서, 문장의 끝에 붙이는 그 '내 아내'라는 말이 니글거려서 혼났다. 꼭 그렇게 불러야만 했니? 영화나 드라마 속의 온갖 느끼한 장면들이 계속 생각나서, 읽는 동안 몰입감 최고로 방해하던 요인이었다.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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