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인간 우리 그림책 40
안수민 지음, 이지현 그림 / 국민서관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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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집안일 중의 한 가지가 분리수거인데,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이렇게 분리수거를 하면, 이 중에 얼마나 재활용이 되고 얼마나 환경을 살리는 일이 될까.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일정 부분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은 기대감으로 분리수거를 계속하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플라스틱. 많은 양의 플라스틱이 우리 집에서도 나온다. 자주 빨래하면서 많이 사용하는 세제부터, 오랜만에 과자를 하나 샀더니 그 안에 담긴 플라스틱 고정 틀, 편의점에서 사 먹은 초코우유도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다. 말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안다. 지금 우리 생활에서 플라스틱은 너무 깊게 자리 잡았고, 없으면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플라스틱 사용의 증가로 우리가 사는 지구가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 편리한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흥미롭다. 어느 날 제임스 씨의 배꼽에서 꼬물꼬물 작은 것이 나오고 있었다. 인간의 배꼽에서? 그것도 남자가 낳은 무언가가? 낯설고 신기한 생명체에 사람들은 호기심이 끓었고, 그것에 플라스틱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묘한 것은 영리하고 귀엽기까지 했다. 먹을 것만 있으면 알아서 잘 자랐다. 제임스 씨도 이 플라스틱 인간을 예뻐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을, 이 작고 귀여운(?) 것은 점점 위험한 골리앗이 된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제임스 씨 배꼽에서 나온 작은 생명체는 플라스틱이다. 어쩌다가 인간의 몸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큰일이 난다. 제임스 씨의 하루를 지켜보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는 아침에 생수를 마시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손에 든 채로 출근을 한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일상이라 낯설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시는 생수, 매일 씻으면서 사용하는 샴푸나 목욕용품, 커피 한잔을 담은 종이컵, 걸레 대신 편해지자고 사용하는 물티슈, 매일 갈아입는 옷 같은 게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제임스 씨가 하루를 보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미세 플라스틱을 소비한다. 이게 제임스 씨의 이야기일 뿐일까?



읽으면서 저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건 나만이 아닐 테다. 제임스 씨의 하루를 지켜보면서, 그 몸에서 플라스틱 인간이 나오면서 느껴지는 불안함은 현실이 된다. 작고 귀엽던 플라스틱 인간은 끊임없이 플라스틱을 먹이로 섭취하면서 점점 거대해진다. 급기야 제임스 씨보다 더 커져 버린 플라스틱 인간은 이제 인간의 보살핌이나 조종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플라스틱 인간을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임스 씨의 플라스틱 인간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도 플라스틱 인간을 낳고 있었다. 누구나 비슷하게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에서 플라스틱 인간이 태어나는 것도 특별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제 흔하게 보이는 이 플라스틱 인간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상상 속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지울 수 없는 존재가 된 플라스틱 인간이다. 어느새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거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압권인데, 제임스 씨의 집은 이제 더는 그의 집이 아니었다. ‘이 집의 주인은 바로 나!’라고 외치는 거대한 플라스틱 인간의 표정을 보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제목에서 이미 이 책의 내용을 보여준다. 알고 읽었는데도 막상 다 읽고 나니 충격적이긴 하다. 아는데도 습관처럼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버리고, 다시 또 사용하는 일상을 떠올려보니, 이게 마냥 그림책 속 이야기로 멈추지 않는다는 걸 다시 상기하게 된다. 플라스틱의 과한 사용은 인간의 공간을 침범하는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우리가 조금 편리하다고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어느 날 우리를 공격하게 될 거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의 공격을 받는 중인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버려지는 쓰레기 속에서 항상 걱정하는 건 쓰레기 처리 문제가 아니었던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플라스틱은 이제 인간 생활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생활 곳곳에서 플라스틱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이제 플라스틱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줄이고 그 대체 용기를 생활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플라스틱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다.


플라스틱 인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자기 집에서 쫓겨난 제임스 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살 곳을 찾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플라스틱 인간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그가 머물 공간이 남아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혹시 길거리를 떠도는 노숙자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이런 처지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얼마나 플라스틱을 남발했으면, 플라스틱에 내 공간을 내어주고 쫓겨난 신세가 된단 말인지. 플라스틱이 개발된 지 100여 년이 지났다는데, 그 시간 동안 우리가 플라스틱과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 집과 이 지구의 주인이 누구인지, 우리가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남겨두어야 하는지 돌이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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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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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가족이 가해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복수라도 하려는 게 아닐까 싶은 두려움이 생길지도, 법이 아니라 감정의 벌을 내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소중한 존재를 잃었는데, 아무리 법이 형량으로 죄인을 다스린다고 해도 마음의 분노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겠나, 법이 해줄 수 없다면 직접 나서서 이 감정을 다스리는 수밖에.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행동한다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 분노의 감정을 억누를 방법이 없지만 참아야 한다는 것을. 피해자는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는 것으로 모든 일을 잊을 수 없다는 괴로움에 시달려야 한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도대체 피해자가 당한 고통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계산도 되지 않는다. 사건은 끝났고 가해자는 벌을 받았다고 하는데, 왜 가해자는 여전히 가해자로 살아가야 하는가.


쇼타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과하게 마셨던 그 날, 집으로 돌아간 쇼타는 여자 친구 아야키의 문자를 보고 갈등한다. 지금 만나러 오지 않으면 끝이라는 말에 만나러 가야 하는지, 술을 마셨는데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하던 쇼타는 직접 운전하면서 아야키를 만나러 가다가 사고가 난다. 누군가를 친 것 같은데, 분명 사람인 것 같은데, 선뜻 인정할 수가 없었다. 설마 아니겠지. 사람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겠지. 내려서 살펴볼 법도 하건만, 무서웠던 쇼타는 그냥 지나간다.


그날의 일은 쇼타의 인생에 무엇을 남겼을까. 완전범죄는 없었다. 쇼타는 그 사건을 뉴스로 확인하면서 개나 고양이를 친 게 아니라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됐다. 410개월의 형을 살게 된 쇼타뿐만 아니라, 쇼타의 가족 모두가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쇼타가 형기를 다 마치고 나왔을 때,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직시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했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 결혼을 앞둔 누나는 파혼했으며, 유능한 교육학자였던 아버지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졌다. 가족 모두가 정상의 삶을 유지할 수 없었다. 쇼타 역시 전과자로 쉽게 취직할 수 없었다. 예전 친구를 만나도 거리를 느낄 뿐이었다. 그나마 그의 곁에서 다시 친구가 되어준 아야카만이 유일한 인간미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의 옆 옆집으로 이사 온 이상한(?) 노인이 그의 시야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가해자가 있다면 피해자도 있기 마련이다. 쇼타가 낸 사고로 80대 여인이 죽었다. 그 여인에게도 가족은 있었고, 그 가족에게도 상실의 슬픔은 있었다. 슬픔을 잊기 위해, 허무하게 죽은 아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남편은 가해자를 쫓는다.


죽은 여인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는다는 설정에,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분노의 감정을 인간이 보여주려는구나 싶었다.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법이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결론 내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에게 고통을 준 이의 목숨을 끊어놓고 싶은데, 법리적인 판단은 다르지 않았던가. 그러니 내가 만족할 수 없는 판결을 마주했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마무리 짓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지. 내가 예상했던 흐름은 이런 거였다. 피해자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아 그만의 방식으로 복수하겠다는 거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피해자의 남편이 가해자를 쫓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가해자를 쫓던 그 마음은 나의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그렇게 빗나간 예상은 오히려 인간다운 면을 강조한 듯 보였다. 언제 어떤 상황을 만났느냐에 따라 우리는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 자리에 서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한때는 가해자였던 이가 다른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야쿠마루 가쿠의 전작에서 보지 못한 다른 시선이었다. 작가의 작품 최초로 가해자의 눈으로 사건을 보는 이야기라고 했다. 뺑소니 사건의 가해자가 사건을 일으켰을 때부터 사건 이후의 이야기까지 가해자 쇼타의 시선으로 흐른다. 그는 분명 벌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고, 법의 심판으로 벌을 달게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가 받은 형량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게 소설 속 이야기로만 남을 수 있을까? 운전해본 적은 없지만,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누구나 가해자 쇼타의 입장이 될 수 있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내가 일으킨 사고에서 내가 쇼타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같은 상황에 닥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쇼타와 내가 다를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사고를 일으켰지만, 남은 인생 웃으면서 살아가고 싶은 바람을 품으면 안 되는 걸까?


법이 접근할 수 없는 마음속 죄의식을 묻는 이 소설에 많이 공감했다. 법이 정한 형기를 마쳤다고 가해자의 책임을 다한 것인지, 마음속에 남은 죄의식이 남은 삶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가해자로도 피해자로도 마주할 수 있는 이 사건에서, 우리가 무게를 두어야 할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 싶어질 것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까지 함께 다뤄져서 많은 생각을 남겨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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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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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의 성장이 도시의 흥망성쇠와 같이하는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강렬한 첫 문장,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라는 말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뇌리에 강하게 박혀버렸나. 카지노에서 태어나 카지노에 버려진 아이가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소년의 눈 앞에 펼쳐진 어른들의 삶, 도시의 흥함은 어떻게 쇠락해가는지, 그 시선에 잡혀 남겨진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소년은 궁금하다. 할머니와 엄마 삼촌이 함께하는 집에 소년의 존재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엄마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누구도 이 출생에 관해 말해주는 이가 없다. 이 비밀을 알고 싶은 소년과 살아온 세월이 곧 역사가 된 할머니 사이에 무언가 있다. 이들인 사는 곳은 한때 탄광으로 흥했던 마을 지음이다. 지금은 카지노가 들어섰다. 노동자가 많았던 시절에 할머니는 올림픽 다방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고, 카지노가 들어선 지금은 월드컵 전당포를 운영하며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의 물건을 받는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장면이 그려진다. 작은 도시에서 열심히 노동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북적거리다가. 점점 석탄의 수요가 줄면서 노동자는 설 자리를 잃고, 누군가의 자본이 흘러들어와 카지노가 열리자 마을의 그림은 달라진다. 마을은 살아남으려고 애썼다. 카지노 사업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각자의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지 않았겠나. 마을이 흥해도 망해도 남겨진 자들이 있다. 그들은 살아가야만 했으니까.


지음은 어떤 곳일까. 출생 신고도 되어 있지 않은 그림자 소년은 전당포에서 지내면서 이 가족의 일원이 된다. 불안증에 시달리는 엄마와 랜드가 무너진다라고 외치고 다니는 삼촌까지, 할머니와 함께 네 식구가 살아가고 있지만, 소년은 항상 궁금했다. 자기 출생에 대해서.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출생의 비밀을 알려고 하지 말고 네 안을 먼저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박수 할아버지. 묘한 이들의 관계는 소년이 꾸는 꿈의 내용과 연결된다. 마을이 물에 잠기는 꿈을 꾸면서 독자인 나는 복선 같은 긴장감에 휘말린다. 정말로 도로에 구멍이 뚫리고 물이 차올랐으니까. 이렇게 차오르는 물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했다. 정말 탄광촌이었다가 망하고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흥해진 마을이 이제 다시 망하는 길로 들어서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곳, 그 사람들의 비밀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소년은 출생의 비밀까지 알게 된다. 설마 했던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누군가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탐욕에 취한다. 누군가는 그 탐욕에 빠져들어 인생을 모른 척한다. 되돌아보면 늦는다. 그때 그 순간에 깊게 빠져들지 말았어야 했다. 카지노 베이비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탐욕 속으로 빠져든 부모가 남겨 놓은 것이었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어느 카지노 근처의 모습을 설명하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람이 북적거리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화려함에 이끌리는 곳이지만, 그곳 주변의 많은 것이 상대적으로 흑백의 장면을 그리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년의 할머니가 전당포를 운영하면서 겪은 많은 일이 그러하다. 전당포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 표정은 이미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하는 것만 같다.


누가 이 불안하고 무모한 인생들에 경고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소년에게 출생의 비밀을 확인하는 걸 말리고 싶었던 걸까. 카지노가 있던 건물이 무너지고 소년이 꿈에서 보았던 장면은 현실이 된다. 이 위험한 순간은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기도 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소년은 또 다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과 지음의 역사, 소년을 구하고 떠난 할머니의 유산으로 이제 소년의 진짜 성장이 시작된다.


이상하다. 소년의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때와 지금은 벌써 몇십 년이 다른 시대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째 이렇게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걸까. 여전히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의 투자에 빠져 있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긴장하며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가 이런 모습도 가진 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유흥을 놓치지 않고 위태롭게 높이 올라가려고 애쓰는 게 불안하다. 누구라도 쉽게 놓치지 않으려고 할 테다. 인간의 탐욕은 자연스러운 거로 보이기도 한다. 불안하지만 던져 보고, 많이 가지려고 계속 올라간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재난을 만났을 때 어떻게 되는지 실감 나게 그려낸 소설이다. 그것도 아이의 시선으로 보고 있자니 웃음까지 난다. 이 아이가 그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며 자라나게 될까.


사실 나는 카지노가 무너졌을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소년이 출생의 비밀을 찾는다고 몰래 카지노에 입성했을 때, 도로에 구멍이 뚫리고 물이 차올랐던 장면이 바로 생각났다. 어쩌면, 어쩌면? 소년이 이미 알고 있지만 확인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카지노의 몰락 이후 살아갈 사람들의 삶을 비추고 싶었던 건지. 거대한 무너짐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할머니가 물려주신 용기가 소년을 살아가게 할 거라는 건, 나도 알고 이 책을 읽을 누군가도 알 거다. 이 소설은 소년의 시선으로 이 가족과 지음이라는 마을을 그리고 있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포스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단단하고 굳건하게, 전당포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사람들이 맡긴 물건을 감정하고 값을 매기며, 꼼꼼하게 장부를 채우는 할머니의 삶이 곧 역사였다. 할머니는 그 세월의 힘을 소년에게 조금씩 물려주며 길을 열어주었다. 소년이 이 세상을, 다 무너져내린 마을에 남아서도 살아갈 용기 말이다. 카지노에서 태어나 카지노에서 버려진 카지노 베이비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존재로 성장해갈 시간의 바탕이 된 존재였다.


이제 소년은, 소년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거라는 걸 안다. 그건 우리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발과 탐욕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 내가 속한 세계가 흥하든 망하든, 자기만의 방식과 용기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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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문학동네 청소년 60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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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동반되는 건 원망이다. 감히 이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아픈 마음을 향할 곳이 필요하다. 너 때문에, 그때 그 이유로 같은 말들. 온전히 내 것임을 알면서도 고통의 순간을 계속 간직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시간은 흐르고 그 슬픔의 농도도 흐릿해질 만한데, 우리는 자주 그 기억을 잊고 싶어서 현실에 충실하고 싶어한다.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일을 하고, 오늘 뉴스에 나온 일들을 이야기하며 평범한 오늘을 그리고 싶은 마음. 그런데도 잊고 싶은 기억은 종종 뛰쳐나와 온화하려고 애쓰던 일상을 흩트려 놓는다. 그리워하는 대상을 불러오고, 슬픔의 기억을 소환하며, 그 슬픔 때문에 아픈 오늘의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소년의 오늘이 그러하다. 5년 전 719. 호텔 그랑블루 1013호에 묵었던 현수의 가족은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것 하나 모자랄 것 없는, 완벽하다고 기억하고 싶던 날이다. 오랜만의 가족 여행은 더할 나위 없었다. 혜진이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호텔의 서비스를 이용하던 부모님은 자리를 비웠고, 현수와 혜진이는 호텔 로비에서 놀고 있었다. 가끔 그랬듯이, 엄마는 현수에게 혜진이를 맡기고 아빠와의 데이트를 즐겼다. 잠깐이었다. 1시간이 될까 말까 한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혜진이가 사라졌고,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실종 아동 전단을 돌리고, 많은 제보에 대한민국 곳곳을 찾아다니던 아빠. 엄마는 슬픔에 빠져 술에 젖어버렸고, 아빠는 혜진이를 찾아다니느라 회사에서 잘렸다. 현수에게는 실종된 동생이 있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학교에서도 누구 하나 말을 걸지 않는다. 현수가 모두에게 친 보이지 않는 벽을 누구라도 느꼈을 테다. 이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한 끼 식사마저 어려운 가정환경, 집에 들어가면 헛소리에 술에 빠진 엄마, 일용직 일에 바빠 가끔 집에 오지 않는 아빠. 슬픔은 이 가족에게 자리 잡고 떠날 줄을 모른다. 그런 환경에서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가족 구성원 모두의 생활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저마다 슬픔을 감당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이 가족이 나아질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어떡하지? 이대로라면 누구 한 사람 오늘을 버티기 힘들어 내일이 없는 삶이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때 현수 주변에 나타난 존재들이 슬픔을 공유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일을 그리게 한다.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 얘기만 주야장천 하는 센터의 선생님. 갑자기 다가와 자기 비밀을 털어놓는 같은 반 친구. 누가 버렸는지 모를 유기견까지. 그동안 현수가 봤던,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여겼던 사람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이들의 등장은 현수를 슬픔에서 건져 올린다. 가끔 이들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알고 나니 그들만의 빈자리를 견디고 있는 거였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가족과 물리적인 거리를 느끼는 이들의 슬픔은 현수의 고통을 알아본다. 거기에, 이상하게 우연처럼 겹치는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5, 7, 19, 1013. 이 숫자들은 잊고 싶던 슬픔의 근원을 불러온다. 사라진 혜진이, 찾지 못하고 슬픔 속만 헤매며 각자의 고통을 견디고 있던 가족들, 어떤 방식으로든 오늘을 건너가고 싶었겠지만, 쉽지 않았다. 그때 현수 곁에 다가온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건, 슬픔과 슬픔이 만나 얼마나 대단해질 수 있는지 증명하는 거였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내게 다가온 슬픔을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했지, 누군가 나의 슬픔을 그대로 이해해주고 같이 견뎌줄 거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각자의 삶이 바쁜 사람들이다. 설령 시간이 여유롭다고 해도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온전히 빠져들 수도 없다. 그런데 이 삭막한 세상에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난다. 예상하지 못했던, 제대로 설명할 수 없던 슬픔이 덮쳐왔던 것처럼, 이 슬픔을 공감하며 견디게 해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다가오기도 한다는 것. 어느 날 혜진이를 봤다고 말하는 어릴 적 친구의 등장처럼, 이제 이 가족은 혜진이를 잃은 슬픔을 정돈해야 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혜진이가 사라진 건 사실이고, 이들이 겪는 슬픔도 한없이 깊겠지만, 이대로 슬픔에 파묻혀 있을 수만은 없는 게 인생이니까. 슬픔과 슬픔이 손을 맞잡으니, 서로의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사라진 아이를 잘 보내주는 일, 떠난 아이의 영혼을 붙잡지 않고 현실에 적응하는 일, 간절한 만남을 한 번쯤은 시도해보는 일. 소설 속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 소수처럼 단단해질 이들의 오늘이 기대된다. 때로는 이런 희망을 품어도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듯...


이상하게도, 어떤 슬픔도 우리를 지나가지 않은 적이 없는 듯하다. 지독한 슬픔 속에서도 배가 고프고, 맛있는 냄새를 맡는 코가 제 역할을 한다. 이럴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도 슬픔에 죽을 것 같은데, 내 몸은 평범한 일상 속에 머물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조금씩 견딜만해 진다고, 누구도 아닌 자신만으로 방식으로. 다행이다. 한없이 불행이 나를 잠식할 것 같아도, 일상을 지속함으로써 슬픔을 견디며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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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보통날의 그림책 1
마리야 이바시키나 지음,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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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다양한 감정과 많은 언어가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인간의 마음이, 어떤 상황을 표현하고 싶은 단어가 묘할 때가 있다. 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은데 적절하지 않은 단어로 채우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딱 맞는 단어를 찾아낼 자신도 없어서 얼버무리기 일쑤였던 순간들. 한국인으로 한국말을 사용하는 내가 지금 이상의 표현을 하고 살아갈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나는 모자란 표현으로 내 감정을 말하고 있겠지. 그래서 이런 책을 만나면 신기하다. 막 가슴이 뛰면서도 차분해진다. 세상에 이런 말들이 실제로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세상 모든 언어에는 복잡한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들이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우연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에 딱 맞는 단어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단어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고, 또 이렇게 찾아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대부분일 것 같은데, 작가는 어떻게 이런 단어들을 수집해서 모아 놓을 수 있던 건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마냥 신기하다. 그 신기함을 살짝 뒤로 밀어놓고 보면, 우리에게는 이런 단어가 필요했는지도 모르지. 그 어떤 순간에도 잘 표현할 수 있는 만족감까지 들 것 같다.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앞으로 만나게 될 어떤 특별한 순간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줄지도. 어느 나라의 말이라도,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우리는 느끼는 감정 그대로 말하고 있다는 거니까.



히라이스(hiraeth : 영국)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 이 단어를 보니까 자꾸 생각난다. 그 마음은 분명 그리움인데, 그리움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순간. 그 그리움은 그곳일 수도 있고, ‘그때일 수도 있다. 오래전 추억이 남은 장소를 찾고 싶거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자꾸 생각나거나 할 때. 최근에 이 생각을 참 자주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건지, 아니면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릿속에 담고 있느라 자꾸만 과거의 어떤 것을 떠올리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면 좋을 게 없다고 여기면서도, 한 번씩 이렇게 떠올리는 순간이 좋다는 거. 알 수가 없네.


메리지아레(meriggiare : 이탈리아) 뜨거운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쉬기. 이런 마음을 표현하는 한 단어가 있다고? 풀어놓은 말처럼 하는 거 말고, 한 단어로 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더 놀랍다. 그늘이 더 간절해지는 요즘 계절 때문인지 몰라도, 한창 바쁘다가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겼을 때 쉬기 좋은 타이밍. 그늘이란 뜨거운 햇살이 만든 더위를 피하는 장소에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한여름의 낮 동안 너무 그리운 장소다. 당분간 자주 외칠 것 같다. ‘메리지아레!’


카푸네(cafune : 포르투갈)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빗어 내리는 일. , 너무 낭만적이다. 손가락빗으로 머리를 빗어 내리는 일이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일까. 이 단어의 뜻을 듣는 순간, 문장 그대로의 장면을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굉장히 가깝고, 사랑스럽고, 포근함을 주는 상대에게만 가능한 일이니까. 엄마가 마냥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듯이, 눈앞의 상대가 그런 사랑을 충분히 받아내면서 편안해할 수 있는 관계일 테니. 카푸네. 이 단어 너무 아름답다.


라곰(lagom : 스웨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필요한 만큼. 우리 말로 하면 적당히정도가 될까. 근데 사실 적당히와 비슷한 듯 아닌 듯하다. ‘적당히는 사람마다 다르게 측량되는, 정확하지 않은 기준 같은데, ‘라곰은 그 적당히를 정확한 수치로 말해놓은 것만 같다. 김수미가 요만치라고 말할 때, 책으로 나온 김수미의 레시피에는 계량된 수치가 적혀 있는 걸 보면 같은 우리말에도 두 개의 언어가 있는 느낌이다. ^^ 물질적이든 감정이든, 딱 필요한 만큼만 두고 사용하면서, 표현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표현하기 쉬운 말인 것 같으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어려운 말 같기도 하다. 딱 필요한 그 만큼을 우리는 어떻게 정확히 계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듯하다.


슈투름프라이(Sturmfrei : 독일)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집에 혼자 남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정말 좋아하는 포지션이다. 집에 혼자 있으면 우울해진다거나 심심하지 않으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안 그래. 그냥 좋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집에 혼자 있는 게 좋고, 여기저기 책 쌓아두고 뒹굴뒹굴하면서 펼쳐보는 것도 좋고, 그렇게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드는 것도 괜찮은데. 언젠가부터 집에 있어도 이렇게 뒹굴뒹굴하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가끔 주말의 늦잠을 즐기기도 하지만, 몇 날 며칠 이런 느슨함을 즐길 수 있을 때가 없었네. 한 단어로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구체적인 자유를 이런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니, 너무 딱 맞는 듯하다. 소박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쉽게 완성할 수 없는 자유가 아닐는지.



누구나 한번은 경험했을 그 순간,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낄 때가 있을 테다. 모국어로도 표현하기 모호한 감정을 정확히 나타내는 외국어가 있다고 했을 때 뭘까 싶었는데, 단순하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딱 표현하는 게 이 단어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세계 17개국의 71개의 단어를 담은 이 책은 다른 언어권에서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나 상황을 정확히 나타낸다. 모호해서 부유하던 감정의 이름을 여기에서 찾는다. 아름답게 들리지만 낯설기도 한 단어들이 주는 건 공감이었다. , 그 마음 나도 알아. 아마도 이런 감정의 공유가 아닐까? 그 말이 나올 듯 말 듯 간질간질할 때, 옆에서 딱 꼬집어서 그 마음을 대신 말해주면 맞다 맞아하면서 그 사람의 어깨를 마구 치면서 반가워할 때. 딱 그거였다, 잃어버린 말을 찾아준 느낌. 입에서 맴돌면서 정확히 모르겠는데, 그 단어를 찾고 싶어서 사전을 뒤적이다, 딱 그 페이지를 펼쳤을 때 같은...



단어로 세계 여행을 한 기분이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황홀감 타라브(이집트), 잃어버린 기회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토아슈르트파니크(독일), 함께 식사를 마친 뒤에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고 빈 접시를 앞에 둔 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소브레메사(스페인)’ 같은 말들이 사람 사이를 연결한다. 작가는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에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많은 것이 고립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닿지 못하던 시간에 이 책으로, 단어로, 감정으로 서로에게 가 닿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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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7-22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런 책이 다 있네요. 라곰 이라는 스웨덴 단어는 들어본 적 있고 (카페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 스페인어 ‘소브레메사‘는 아마도 sobremesa 는 sobre 가 ‘위에‘, mesa가 ‘테이블‘이라는 뜻이라는 걸 떠올리니 이해가 되네요.
제일 마음에 드는건 독일어의 저 단어요. sturmfrei ^^
그림도 예쁘고, 구매욕 당기는 책입니다.

구단씨 2022-07-23 01:48   좋아요 0 | URL
단어가 참 예쁘죠? ^^
하나하나 보면서 참 신기했어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이런 뜻의 단어가 세계의 어느 언어에 있었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