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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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보니, 저자의 책이 많이 출간되었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저자의 책을 읽은 지 한참 되기도 해서 궁금했던 참에 이 책을 만났다. 두께도 상당했지만, 내가 읽었던 전작의 느낌을 떠올려 그의 차분한 말투 속의 경건함(?) 같은 분위기 다시 만나고 싶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투는 여전했고, 그의 철학은 감히 내가 평가하기 어렵지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그는 앞으로 무슨 말을 더하고 싶을까 하는 궁금증이 잠깐 생기기도 했지만, 어렴풋한 생각으로는 어쩌면 이 책의 그의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에게 암이라는 몹쓸 놈이 찾아오기 7년 전의 단상들이 모였다. 그것도 양이 상당하다. 1348편의 글이라고 한다. 각 단락에 숫자가 쓰여 있기는 하지만, 장마다 다시 시작하는 그 숫자를 다 세어보지 않아서 이렇게 많은 기록으로 남겨진 줄 몰랐다. 짧은 글은 한 줄 한 문장 정도, 긴 글은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하는 터라 한 단락마다 양이 일정하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그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놨다는 게 실감이 난다. 어느 날은 메모지에, 어떤 날은 책상 위에 펼쳐놓은 노트에 써 내려간 말들이 아닐까 싶다. 하긴, 언제 어디에다 썼는지 뭐가 중요할까. 누군가의 생각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지고, 후에 누군가 이렇게 읽고 있다는 게 중요하겠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잠깐 생각하고, 혹시 그 순간의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적었을까 또 생각하는, 생각이 이어지는 거 자체가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 하나를 맞으려면 생각 하나를 쫓아내야 한다. 이럴 때는 뇌가 아프고 슬프다. 발자크는 문장들이 쇄도하고 범람해서 잠을 못 잔다고, 상드에게 썼다. 그 또한 얼마나 머리가 슬프고 아팠을까. (572페이지)


아마도 나만 느낀 건 아닐 듯하다. 이상하게도 그의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가 암 선고를 받을 것을 미리 아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이 묘한 기분(우리는 그걸 우울증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거 말이다. 그의 죽음은 정신적인 문제와 거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의 글은 차분하면서도 무게 있게 다가왔다. 존재를 고민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철학자의 사고에 닿으려고 애쓰는 듯, 그렇게 어느 햇살 좋은 날 생각에 잠긴 그를 상상하면서 문장을 읽게 된다.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많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문장은 가득 차 있었다. 우리에게 수시로 찾아오는 외로움, 인간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고, 한 사람이면서 다양한 존재(남자, 철학자, 가장 등)로 살아가는 역할에 대한 고뇌, 그가 오랜 시간 마주해온 철학과 문장에 대한 사유 등, 마치 온 세상을 망라한 또 하나의 철학서를 보는 듯했다. 아마도 그의 사유는, 책 소개에서 말했던 것처럼 철학과 문학의 힘이 바탕이 되는 건 아닐까 싶다. 세상에 속한 우리가 줄곧 생각하는 것들이, 어느 현자의 말에서 답을 찾기도 하고, 어느 작가의 문장에서 확인하게 되니까. 그가 말하는 것과 그가 살면서 담아온 것들을 소개하듯 전달하는 문장들에 시선이 머무는 건 그런 이유겠지. 조용한 일상이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까닭 말이다.


눈도 침침해진다. 손가락 통증도 심해진다. 모든 것들이 쓰는 걸 은밀하게 방해한다. 아니면 격렬한 충동질인가. (382페이지)


그의 사유를 따라가면서, 누군가의 하루를 읽기도 하고 어떤 책의 문장에 눈길이 머물렀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오늘 무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어떤 약속을 지키며 살았는지, 잠이 드는 순간까지 그의 시간을 엿보면서 동시에 그의 삶을 보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그의 건강에 문제가 시작되고 있었음을 느낀다. 혹시 그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몸의 이상을 알아챘더라면, 지금쯤 마지막 책이 아니라 다음 책을 기다리는 독자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여전히 사랑과 믿음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냥 아쉽기만 하다.


한없이 인간적으로 보이면서도 때로는 무너져 내리는 인간을 구원할 철학자의 면모도 갖춘 그였다. 때로 고독하고 우울할지라도 결국 용기 내어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에, 그의 문장은 더 친근하고 마음 깊숙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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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문구점에 갑니다 - 꼭 가야 하는 도쿄 문구점 80곳
하야테노 고지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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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문구를 대하는 내 마음은 이랬다. 예쁘고, 좋고, 비싼 거.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예쁜 거 보고 있으면 공부도 더 잘하고 싶지 않을까 하는, 뭐 이런 마음? ^^ 이런 마음도 오래전 일이긴 하다. 이제는 글씨 쓸 일이 생기면 자판으로 두드리는 게 대부분이고, 급하게 메모하게 되면 휘갈겨 쓰느라 내가 써놓고 내가 못 알아보는 일이 흔하다. 그러니 나에게 문구는, 이제는 별 상관없는 세계의 일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잠깐이지만 다시 문구 장비빨에 빠져든 시간을 보냈다. 뭘 좀 배우겠다고 학원에 등록했고, 두 달 예정의 수업을 듣느라 나는 다시 장비(?)를 마련해야 했다.


 

 

(연필, 샤프펜, 샤프심, 필통 : 판매자 알라딘 ^^)




학원 등록하고 처음에는 다 있는 매장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집에 볼펜은 흔하게 넘치지만, ‘잘 써지는펜이 필요했다. 집에 이면지나 메모지, 노트도 넘쳐났지만, ‘펜이 잘 먹히는노트도 마련했다. (볼펜)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아니더라. 공부하려면 연필을 쓸 일도 생겼다. 연필을 쓰다 보니 필통이 더러워지더라. 안 되겠다, 연필 뚜껑도 필요해. 연필 깎으려고 오랜만에 커터칼을 밀었는데, 정말 안 예쁘게 깎인다. 또 다른 장비 마련에 눈길이 돌아간다. 몇십 년 만에 연필깎이도 샀다. 연필깎이 검색하면서 알았는데, 기차 모양 말고도 연필깎이가 정말 많더라는 거. 신세계를 본 것 같아! , 정말 중요한 거. 책 넣어서 다닐 가방이 있어야 하잖아! 네모반듯한 가방을 찾다가, 당근에서 7천 원 주고 가방도 하나 샀다. (이거 너무 싼 거 아니야? 라는 의심을 잠깐 했지만, 7천 원에 눈이 멀어 일단 샀는데, 7천 원이어야 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됐다는 슬프고 분노하는 마음. ㅠㅠ) 또 뭐가 있더라? 암튼, 어떤 공부 좀 하자면 일단 공부할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는 거다. 그 환경에 당연히 장비는 포함되고 말이다. 근데, 이거 제대로 하는 거 맞나? 뭐가 없어서 공부를 못 한다는 핑계를 삼기에 이제는 발을 뺄 수가 없다. 뭐든 다 마련한 거 같은데, 공부는 진짜 안 해서 발등에 불 떨어졌다. 공부에 장비가 중요하지 않았더라는 후회를 할 즈음에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바로 하야테노 고지의 오늘도 문구점에 갑니다되시겠다.


개성 가득한 도쿄 문구점 순례를 담은 책이다. 꼭 문구 덕후가 아니더라도 한번은 눈길이 갈만한 소재의 여행기 같다. 얼마 전에는 빵지순례를 보다가 빵을 따라가는 여행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새로운 것을 만나는 재미로 문구순례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왜 문구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저자의 이력과 연관해 보니 그럴 수도 있구나 싶다. 거기에 열성적인 문구 마니아란다. 그러니 이 책은, 마치 그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가 엄선한 도쿄 문구 지도는 이렇게 탄생했다.


사진이 아니라 그의 재능을 그대로 담은 삽화로 문구를 표현했고, 그가 찾아간 문구점의 개성과 매력을 그대로 그려냈다. 이상하게도 그가 그린 그림과 설명을 보고 있자면, 마치 컨셉이 뚜렷한 카페를 보는 듯했다. 가게의 외관부터 보여주고, 그 가게의 역사, 직원의 서비스 만족도, 그 가게의 특별한 문구 자랑까지 가득하다. 어떤 곳은 종이에 특화되어 있고, 어떤 곳은 펜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한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하고 예쁘고 매력적인 문구가 넘쳐난다는 게 새삼스럽기도 하고, 이거 언제 다 써보고 죽나 싶기도 하다. ^^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문구의 고전적인 브랜드와 제품부터 문구 마니아가 두 팔 벌려 가득 안고 돌아가고 싶게 하는 개성 넘치는 제품들까지. 눈에 다 담을 수조차 없는 설명에 제품의 이미지가 저절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렇게 그려진 문구라고 해도 어찌 실물만 하겠는가. 직접 가서 보기 전에는 그 매력을 온전히 알게 되기는 어렵겠다. 그런 이유로 이런 여행안내서(?)가 생겨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문구의 한계를 정할 수 없어서 더 흥미로웠던 이야기였다. 기본적인 필기구류부터 다꾸용품이나 감성 넘치고 아기자기한 제품들까지 다양했다. 에코백이나 캔들, 희귀한 그림책까지 문구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소개된다는 것도 특이했다. 아마도 이건 문구는 이런 제품이라고 한정해서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 때문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한계를 두지 않고, 넓고 다양하게 보는 눈이 제품 구석구석까지 살펴보게 하고 발전을 이뤄내는 거 아닐까. 특히 저자의 삽화가 귀여운 느낌이 많아서 그런지 문구 하면 떠오르는 아기자기함이 더 와닿았던 듯하다. 아마 이 책에서 소개된 몇몇 페이지만 보더라도, 당장 도쿄의 그 문구점 앞을 서성이고 싶어질 거다.


이 책을 더 잘 활용하는 법도 안내해주었다. 그곳(도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문구 찾기 미션, 문구 원데이 클래스도 가능하니 체험해보기, 문구로 시작했지만 명소와 맛집도 놓치지 말 것. 저자가 친절하게도 가게의 상세 정보까지 다 담아주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이 책 한 권으로 도쿄 문구 여행이 충분해질 거다. 조심해야 할 것은, 귀국하는 길에 짐이 너무 많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것. 충동 구매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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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혼 오로라 -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기록한 오로라의 모든 것
권오철 글.사진, 이태형 감수 / 씨네21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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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의 소설이었나. ‘어쩌다 한집에 살게 된 두 여자의 왠지 부끄러운 소원이 오로라의 너울 속으로 빨려 올라가 회오리쳤다.’라는 문장이었을 거다. 시어머니와 오로라 여행을 떠난 여자의 이야기에 처음에는 이 무슨 이상한 여행 조합인가 싶었다가,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여자로 살아가는 순간의 한 장면일 뿐이라는 생각에 한참을 바라봤다. 아무 생각 없이 눈밭에 누워 바라본, 쏟아지는 오로라를 그대로 맞고 돌아온 이들의 일상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달라졌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분명 그 여행을 떠난, 오로라를 보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권오철이 찍은 오로라 사진으로 가득한 이 책을, 그때 그 문장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떠올렸던 단어 오로라를 이제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보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던가 보다.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우아한 오로라 사진, 낯선 땅 밟고 멈춰선 곳에서 바라보는 오로라는 어떻게 다가올까 싶었다. 어떤 이는 생애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의 하나일 것이고, 누군가는 그저 어디선가 일어나는 자연 현상쯤으로 봤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달라도 이 책 속의 장면들에 빠져들 수밖에 없던 건 똑같으리라. 이미 저자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던 터라 익숙하지만, 정작 그가 찍었다는 사진을 접해본 적은 거의 없다. 그러니 이번 책은 나에게 그의 사진과 가까워질 기회이기도 했고, 문장으로 봤던 오로라의 우아함에 취할 시간이 됐다.


신의 영혼이라 불리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완전 무장을 하고 닿은 곳에서 마주한 오로라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굳이 어딜 가서 뭘 봐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곤 했는데, 아니다. 이건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봐야 할, 생애 꼭 한 번은 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만드는 장면이었다. 그 신비로움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무리 아름다운 색을 골라서 칠해봐도 오로라의 모습과 색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니 어쩌겠나, 직접 보는 수밖에 이걸 설명할 방법이 없을 테다. 어디선가 들었던 아이슬란드의 오로라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저자의 친절한 안내로 새롭게 알게 됐다. 캐나다의 옐로나이프에서 더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미 유명한 관광상품으로 되어버린 오로라 여행 목적지는 정해진 셈이다.


오로라는 왜 생기는 걸까? 그 빛의 출처는 태양이었다. 태양에서 나온 전기 입자들이 행성의 자기장에 이끌려 오면서 대기와 반응하여 빛을 낸다고 한다. 사진에서는 대부분 초록이었는데, 오로라의 색이 꼭 초록만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색이 아니었다. 그럼 언제 오로라를 가장 잘 볼 수 있을까? 태양의 활동이 극대기에 달하면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단다. 특히 춘분이나 추분을 전후로 한 시기가 안성맞춤이라고 하니, 오로라 여행을 계획한다면 참고하시라. 듣다 보면 이 책에는 저자의 사진뿐만 아니라, 오로라를 더 자주, 잘 볼 수 있는 여행 팁까지 함께한다. 혼자서 찾아가는 오로라도 의미 있겠지만, 여행 상품을 정해서 가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저자처럼 이 분야를 직업으로 삼은 이가 아니라면, 대부분 오로라 여행은 초보일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여행 상품으로 오로라를 보러 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지구 자기력선이 강하게 형성되는 오로라 존은 대개 춥고 교통마저 좋지 않은 곳이다. 저자의 말로는 캐나다 옐로나이프는 오로라를 보기 위한 최적 날씨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곳이다. 미국 NASA가 꼽은 최고의 오로라 관측지라고 하니 믿고 가도 좋겠다. 흐리면 오로라를 볼 수 없는데, 옐로나이프는 연중 맑은 날이 240일이나 된다니 딱 맞다.


몰랐는데, 생각보다 많은 오로라 여행 상품이 있더라. 저자가 항공편부터 숙박까지, 그 추운 날씨에 어떻게 하면 안심하고 오로라를 보러 갈 수 있는지 오로라 여행 전 알아야 할 기초 상식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사실 어떤 여행이 처음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게 시행착오 아니던가. 생애 몇 번이나 이 여행을 계획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어차피 두 번 가능한 여행이 아니라면 안심하고 안전하게, 만족할만한 여행이 되면 좋지 않을까. 저자의 권유 같은 추천 방법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특이 이번 책에서 저자는 오로라 폭풍을 만날 방법을 들려준다. 거의 11년 주기로 활동하는 태양의 극대기에 오로라 폭풍을 만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하니 참고하시라. 오로라 예보와 실시간 관측자료까지 잘 숙지하고 간다면, 그곳에 머무는 동안 부족함 없이 오로라를 가슴에 담아올 수도 있겠지. 거기에 언제 또 담아올 수 있을지 모를 오로라를 사진에 잘 담을 수 있는 비결까지 들려주고 있으니 꼼꼼하게 살펴보면 좋겠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저자가 그동안 찍어왔던 오로라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가 느낀 황홀함을 독자에게 들려주는 정도가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에게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가 사진 찍는 일을 전업으로 삼기까지 혼자 고민하고 갈등하던 시간도 있었다.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많은 시간 노력이 빠지지 않았으리라는 걸 안다. 그러니 이런 사진을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거겠지. 여행서라고 하기에는 그 퀄리티가 높다. 누구라도 이 책에 담긴 사진을 본다면 당장 오로라를 보러 가고 싶어질 테다. 막상 오로라를 보겠다고 하니 막막할 것을 알아채고 작가는 친절하게 오로라를 찾아가는 방법까지 안내한다. 마치 그가 봤던 그 장면을 독자도 놓치지 않고 보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뭐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소화제로도 해결되지 않는 이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펼친 이 책에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그 눈밭에 누워 하늘에서 쏟아지는 오로라를 눈에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오직 눈앞의 빛만 가득한 것처럼, 그때만큼은 다 잊어도 좋을 만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듯했다. 이런 사진을 보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 그 장면을 눈으로 그리면서 현실의 답답함을 밀어두어도 괜찮은 마음이 이런 건가. 정말 그래도 괜찮다면 한동안은 계속 보고 있어도 좋겠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에 들어와 버린 여행지로, 오로라로 남아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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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두 구의 시체, 두 명의 살인자
정해연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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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살인사건을 분명히 보여주고 시작하는 이야기하는 걸 보니, 범인을 찾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살인 그 이상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독자가 사건의 진상과 범인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사건을 버젓이 드러내놓고 범인까지 알려주었다. 살인의 이유도 분명했다. 현도진은 질척거리는 여자를 이제 떼어내고 싶었고, 그에게 살인은 본능처럼 쉬운 일이었으니까. 그가 잡힐까? 완전범죄를 만들까? 우연히 일어난 살인이라고 하기에는 즐기는 것으로 보였던 그의 본성은 무엇일까 싶으면서도, 이런 호기심은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바삭 깨져버렸다. 또 다른 시체의 등장은 그를 살인자이자 피해자로 만들었고, 그의 가까운 곳에 그와 결이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강력 1팀 형사 현도진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출근한다. 강심장이다. 아니, 그에게는 처음부터 심장이 없던 건지도 모른다. 동료가 힘들어하는 현장의 메스꺼움조차 그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세상의 잔인함을 보고도 공감하지 못하는 그를, 우리는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직장생활의 불편함이 없던 그에게 어느 날부터 출근하기 싫어지는 대상이 생긴다. 강력 1팀 반장 장주호. 현도진을 보는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장주호가 현도진을 싫어하는 이유도 분명 존재할 테다. 현도진은 그 이유도 모른 채로 장주호의 시선을 받아내기 바쁘지만, 노련한 그는 그 눈빛조차 연연하지 않는다. 그에게 세상은 어려울 게 없었고, 그의 즐거운 놀이(?)는 완벽했으며, 그가 해내지 못할 일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어느 날, 대한민국 거물의 실종 신고가 들어오고 강력 1팀이 담당한다. 실종자를 찾아야 했지만, 현도진은 알고 있다. 실종자가 이미 살해되었음을. 우연처럼 그의 눈에 들어온 시신은 그의 본능을 피해 가지 못했다. 끝까지 사건을 추적하는 장주호 반장과 그의 팀원들, 그 중심에서 이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보던 현도진까지. 두 건의 살인사건과 두 명의 사이코패스의 대결은 이제 시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도진과 장주호의 대결 같은 심리전으로 가득하다. 거물의 실종은 곧 살인사건으로 전환되고, 이 사건에 연루된 누구라도 범인을 찾는 일이 시급했다. 사건을 추적하는 팀원들과 이 살인을 알지만, 범인을 모르는 현도진 사이의 추적이 얼마나 다를까 기대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장주호가 현도진을 나는 너를 아주 잘 알아.’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궁금했다. 둘 사이에 예전에 나쁜 인연이 있었던가? 아니면 현장 감각이 뛰어난 형사와 엘리트의 모습으로 형사를 표현하는 비주얼의 대결이었나? 외모로 보나 사건 해결 방식으로 보나 두 사람의 결은 너무 달랐다. 그런데도 너무 닮은 듯한 이 느낌은 뭔가 싶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태연한 현도진, 눈앞에 주어진 살인사건 해결에 목숨을 건 듯한 장주호, 두 사람 사이에서 형사의 길을 차분히 밟고 싶었던 새내기 형사 선우신까지.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을 수가, 누가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두 명의 사이코패스는 타고난 것인지 환경에 의해 학습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더 공포가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알고 있다면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다 알 수 없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닐까? 인간의 본성을 알고 싶으면서도, 막상 알고 다면 더 큰 두려움에 빠질 것 같기도 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가 아는 많은 이가 선하고 인심 좋은 이웃 같은데, 그 내면까지 속속들이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래서 무섭다.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는 내 앞의 당신이, 혹시 내가 알아채지 못한 사이코패스 살인자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한 작가의 작품이 오랜 세월을 지나 다시 출간되는 이유는 많겠지만, 정해연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 이 작품을 이제야 만나게 된 게 아쉬우면서도 다행이구나 싶다. 다른 작품처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범인 한 사람을 악인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누구도 악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남겼다. 나는 안 그럴 거라고 누가 감히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하나씩, 차근차근, 자기만의 이익과 본성을 채우느라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확신하게 된다.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할 것은 많아지고 그걸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함께 사는 사회의 기본이겠지만, 그 기본을 깨트리는 것 역시 인간이라는 것을.


그 후에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은 남았는데,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말에 아쉬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문장으로 채운 스릴러의 긴장감을 마무리하듯 영상으로 더해준다고 하니 기다려야겠지. 무엇보다 장주호와 현도진의 캐릭터를 소설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낼 배우로 누가 캐스팅될지 기대된다. 살인을 완성하고 즐기듯 바라보는 그 눈빛, 궁금해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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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3-02-06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해연 작가님 좋아요!! 데뷔작이 다시 나왔더라구요. 저도 보러 갑니다^^

구단씨 2023-02-06 22:23   좋아요 1 | URL
데뷔작이라는 걸 이 책 소개 보고 알았어요. ^^
재밌네요.
 
마음의 연대
수잔 글래스펠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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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조용한 시골 마을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보안관 피터스 씨가 헤일 씨와 함께 사건의 장소 라이트 씨 집으로 간다. 남편 라이트 씨가 침대에서 죽어 있었고, 유일한 목격자이자 가족인 아내 미니는 남편의 죽음을 몰랐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아내는 당연하게(?) 용의자가 된다. 그럴 수밖에. 밖에서 침입한 흔적도 없고, 그 집에는 부부만이 살고 있었으니까.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와 헤일 씨는 사건 현장에서 단 하나의 단서라도 놓칠까 봐 구석구석 파헤친다. 보안관 피터스가 혹시라도 그 현장에서 뭐라도 발견할까 싶어 아내까지 동반하고, 혼자서 그 집을 둘러볼 용기가 없던 피터스 부인을 위해 이 사건의 신고자인 헤일의 아내 마사까지 함께 현장에 모이게 된 상황이다.


라이트 씨 집은 평소에 봐도 음침해 보였는데, 이곳에서 살인사건까지 일어났다고 하니 더 어둡고 음산한 곳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라이트 씨가 자던 침대에서 밧줄에 목이 감긴 채로 죽었다고 하니, 이 기괴한 장면을 그리는 집이 좋아 보일 리가 없다. 시신 발견자가 봤을 때도, 담당 검사가 봤을 때도 아내가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확실한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한데, 아직 완벽한 범인이 될 증거를 찾지 못했으니 답답하기도 할 테다. 그런데도 그 집에 모인 남자들은 자신만만하게 살인의 증거를 쫓으며 용의자인 미니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여자들을 비웃는다.


발견 당시의 모습을 설명하던 헤일 씨의 말을 끝으로 남자들은 사건의 단서를 찾아다니고, 마사와 피터스 부인은 사건 용의자가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떠난 주방을 서성인다. 병에 담기다 말고 쏟아져 내린 설탕 가루, 선반에 놓여있다가 추위에 깨져버린 잼 병. 뭔가 다급한 상황이 펼쳐졌을 거란 예상이 되는 주방의 장면에 여자들은 생각한다. 유난히 더웠던 그 여름에 잼을 만드느라 애썼을 텐데 이렇게 깨져버려서 속이 상했을 미니의 마음을, 정리하다 말고 쏟아버린 설탕을 허무하게 바라봤을 미니의 눈빛을. 또 한 번 남자들은 비웃는다. 이 상황에서 잼이 담긴 병이 깨져버린 거나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글쎄, 같은 공간에 같은 이유로 모인 사람들인데, 무엇이 이들의 생각을 이렇게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일까.


수건이 더럽네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주부는 아니었던가 봐요. 부인들이 봐도 그렇지 않나요?” (55페이지)


보안관은 식탁 앞으로 다가와 헨더슨 검사에게 물었다.

자네 우리 안사람이 뭘 챙겼는지 확인해 보겠나?”

헨더슨 검사는 피터스 부인이 챙겨놓은 앞치마를 집어 들고는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부인들께서 뭐 크게 중요한 물건을 고르셨을 것 같지는 않군요.” (131페이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집에서 마음을 누르며 살아왔을 미니의 시간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 남편의 무심함은 하늘을 찔렀고, 어느 곳에도 마음 둘 곳 없었던 그녀의 시선을 붙잡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정말 남편을 죽였을까? 만약 그녀가 정말 범인이라면 왜 그랬을까? 사실은 그 이유가 어렴풋하게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살인사건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을 테다. 다만, 어떤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사건 현장을 둘러보던 남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생각할 필요가 없던 마음이 여기에 있다. 두 여자는 미니의 주방을 살펴보면서, 남편의 사망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던 의자를 보면서 미니의 삶을 반추한다. 마사는 알고 있었다. 결혼 전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 얼마나 빛나고 밝았는지를. 그녀의 주방 한쪽에서 문이 부서진 새장을 보고 미니를 연상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새장의 부서진 문은 지금 미니가 뚫고 나갔던 거라고. 그렇게밖에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없던 그녀의 삶이 이제야 비로소 보였다고 말이다. 평소 그 집을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현관문을 두드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는 마사. 노래하는 새처럼 맑을 목소리를 뽐냈던 미니의 지난날을 이제야 기억해낸다. 맞아,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지. 그녀의 지난날은 그렇게 빛이 났었지.


한 남자가 죽었고, 남자의 아내가 용의자로 몰린 실제 일어난 사건에 기반을 두었다고 한다. 저자는 당시 기자였는데,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저자가 이 사건에서 보고 싶었던 건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다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범인으로 몰린 아내가 어쩌다가 그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여자의 인생이 남자의 부속품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시대 안에서도 인간의 삶이 있고, 한 개인의 존재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그렇기에 두 여자가 미니의 주방에서 주고받았던 눈빛, 섣부른 손놀림을 이해하게 된다. 엉망이 되었던 조각의 마감 처리, 바구니 아래에 깊게 숨겨놓았던 작은 상자의 존재를 그녀들이 다시 감출 수밖에 없던 마음을 이렇게 읽는다. 미니는 남자들이 찾아낸 어떤 증거 하나로 살인자로 낙인찍힐지 몰라도, 그녀에게 마음을 보내는 어떤 여자들의 연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저자가 실제 사건으로 이렇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도 비슷하리라 믿는다. 어딘가에서 비슷한 고통을 가진 이들이 있을 테고, 그들에게도 전해지는 이 공감은 구원이 되리라고.


공감이나 이해 같은 말이 얼마나 힘이 될까 생각한 적이 있다. 며칠 전에 봤던 어느 방송에서, 심한 고통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방송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다시 용기를 얻어서 살아갈 힘을 냈다는 그의 모습에, 누군가는 정말 힘이 된다면서 문자를 보내기도 한단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용기를 얻고 있다면서, 고맙다고 말이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얼마만큼의 위로로 다가오는지 안다.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그 마음만큼은 크기를 따질 수 없는 연대의 힘을 가진다. 이 소설을 읽고, 미니의 삶과 두 여자의 공감을 우리가 가슴에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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