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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동반되는 건 원망이다. 감히 이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아픈 마음을 향할 곳이 필요하다. 너 때문에, 그때 그 이유로 같은 말들. 온전히 내 것임을 알면서도 고통의 순간을 계속 간직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시간은 흐르고 그 슬픔의 농도도 흐릿해질 만한데, 우리는 자주 그 기억을 잊고 싶어서 현실에 충실하고 싶어한다.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일을 하고, 오늘 뉴스에 나온 일들을 이야기하며 평범한 오늘을 그리고 싶은 마음. 그런데도 잊고 싶은 기억은 종종 뛰쳐나와 온화하려고 애쓰던 일상을 흩트려 놓는다. 그리워하는 대상을 불러오고, 슬픔의 기억을 소환하며, 그 슬픔 때문에 아픈 오늘의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소년의 오늘이 그러하다. 5년 전 7월 19일. 호텔 그랑블루 1013호에 묵었던 현수의 가족은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것 하나 모자랄 것 없는, 완벽하다고 기억하고 싶던 날이다. 오랜만의 가족 여행은 더할 나위 없었다. 혜진이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호텔의 서비스를 이용하던 부모님은 자리를 비웠고, 현수와 혜진이는 호텔 로비에서 놀고 있었다. 가끔 그랬듯이, 엄마는 현수에게 혜진이를 맡기고 아빠와의 데이트를 즐겼다. 잠깐이었다. 1시간이 될까 말까 한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혜진이가 사라졌고,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실종 아동 전단을 돌리고, 많은 제보에 대한민국 곳곳을 찾아다니던 아빠. 엄마는 슬픔에 빠져 술에 젖어버렸고, 아빠는 혜진이를 찾아다니느라 회사에서 잘렸다. 현수에게는 실종된 동생이 있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학교에서도 누구 하나 말을 걸지 않는다. 현수가 모두에게 친 보이지 않는 벽을 누구라도 느꼈을 테다. 이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한 끼 식사마저 어려운 가정환경, 집에 들어가면 헛소리에 술에 빠진 엄마, 일용직 일에 바빠 가끔 집에 오지 않는 아빠. 슬픔은 이 가족에게 자리 잡고 떠날 줄을 모른다. 그런 환경에서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가족 구성원 모두의 생활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저마다 슬픔을 감당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이 가족이 나아질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어떡하지? 이대로라면 누구 한 사람 오늘을 버티기 힘들어 내일이 없는 삶이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때 현수 주변에 나타난 존재들이 슬픔을 공유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일을 그리게 한다.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 얘기만 주야장천 하는 센터의 선생님. 갑자기 다가와 자기 비밀을 털어놓는 같은 반 친구. 누가 버렸는지 모를 유기견까지. 그동안 현수가 봤던,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여겼던 사람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이들의 등장은 현수를 슬픔에서 건져 올린다. 가끔 이들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알고 나니 그들만의 빈자리를 견디고 있는 거였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가족과 물리적인 거리를 느끼는 이들의 슬픔은 현수의 고통을 알아본다. 거기에, 이상하게 우연처럼 겹치는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5, 7, 19, 1013. 이 숫자들은 잊고 싶던 슬픔의 근원을 불러온다. 사라진 혜진이, 찾지 못하고 슬픔 속만 헤매며 각자의 고통을 견디고 있던 가족들, 어떤 방식으로든 오늘을 건너가고 싶었겠지만, 쉽지 않았다. 그때 현수 곁에 다가온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건, 슬픔과 슬픔이 만나 얼마나 대단해질 수 있는지 증명하는 거였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내게 다가온 슬픔을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했지, 누군가 나의 슬픔을 그대로 이해해주고 같이 견뎌줄 거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각자의 삶이 바쁜 사람들이다. 설령 시간이 여유롭다고 해도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온전히 빠져들 수도 없다. 그런데 이 삭막한 세상에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난다. 예상하지 못했던, 제대로 설명할 수 없던 슬픔이 덮쳐왔던 것처럼, 이 슬픔을 공감하며 견디게 해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다가오기도 한다는 것. 어느 날 혜진이를 봤다고 말하는 어릴 적 친구의 등장처럼, 이제 이 가족은 혜진이를 잃은 슬픔을 정돈해야 할 때가 아니었나 싶다. 혜진이가 사라진 건 사실이고, 이들이 겪는 슬픔도 한없이 깊겠지만, 이대로 슬픔에 파묻혀 있을 수만은 없는 게 인생이니까. 슬픔과 슬픔이 손을 맞잡으니, 서로의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사라진 아이를 잘 보내주는 일, 떠난 아이의 영혼을 붙잡지 않고 현실에 적응하는 일, 간절한 만남을 한 번쯤은 시도해보는 일. 소설 속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 소수처럼 단단해질 이들의 오늘이 기대된다. 때로는 이런 희망을 품어도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듯...
이상하게도, 어떤 슬픔도 우리를 지나가지 않은 적이 없는 듯하다. 지독한 슬픔 속에서도 배가 고프고, 맛있는 냄새를 맡는 코가 제 역할을 한다. 이럴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도 슬픔에 죽을 것 같은데, 내 몸은 평범한 일상 속에 머물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조금씩 견딜만해 진다고, 누구도 아닌 자신만으로 방식으로. 다행이다. 한없이 불행이 나를 잠식할 것 같아도, 일상을 지속함으로써 슬픔을 견디며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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