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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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읽다가 뒷부분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작가 후기가 길더라. 작가가 본문에서 다 하지 못한 말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서 궁금해서 끝까지 읽어보니 개정판에 부쳐 작가 후기가 다시 써졌던 것. ‘2020년 전미 도서상 번역문학 부문을 수상하면서 역주행 신화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다시 읽힐 계기가 충분했고, 막상 이 소설을 다 읽고 보니 아직 이 책을 못 만난 독자가 있다면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일 한국인 작가가 써낸 이 소설의 내용이 비단 일본에서만 보이는 문제는 아니었기에, 아마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이 읽힐 거란 생각에 안타까움은 배가 되었다.


우리가 보는 도시의 우아하고 화려한 이면에 자리한 것을 어둠 속으로 밀어버리기 일쑤다. 그 어둠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말이 없어진다. 주인공 가즈는 가난한 집안에 도움이 되고자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일한다. 때로는 타지에서, 때로는 부모 밑에서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리고 동생들을 보살핀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이 가족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때부터 타지를 전전하며 일하고 집으로 돈을 보냈다. 이십 년이 넘는 결혼생활 중에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 채 1년도 되지 못한다고 말할 때는 이 가족이 사는 법은 어떤 걸까 한참 생각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그 오랜 세월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얼굴을 기억이나 하고 살아왔을까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 가족의 비극은 가난이 아니었다. 가난은 이들을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했지만, 아들이 죽은 건 가즈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다 큰 아들이 죽고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그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잘 살아가겠구나 싶었는데, 그마저도 그에게 허락된 행복은 아니었나 보다. 그의 아내마저 죽자 그는 손녀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 우에노역 노숙자가 된다. 노숙자의 삶을 차분하게 들려주는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아니, 알 것도 같으면서 다 알 수 없었다. 그에게 듣는 그곳의 이야기는 노숙자의 삶이면서, 도시의 이면이었다. 도쿄 올림픽이 처음 열릴 때 그는 올림픽을 위한 건물을 짓는데 노동자로 일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두 번째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이때 그는 노숙자로 이 축제를 지켜본다.


평소에는 우에노역 근처에서 노숙하는 이들을 그냥 봐주더라도, 큰 행사나 천황이 행차라도 할라치면 그들은 철거 대상이 된다. 지저분하고 걸리적거리는, 좋은 것만 보이고 싶은 공간에서 그 순간 사라져야 할 존재다. 천황의 행차를 보면서도 누군가는 직접 본다며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는 천황과 같은 날 태어난 아들을 떠올린다.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때 아들은 사인도 모른 채로 죽었는데, 천황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앞에서 행차한다. 이 묘한 우연 속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화려한 도시의 한구석에서 노숙자들은 고독하고 쓸쓸하게 저물어간다. 사람들에게 그들은 보이는 존재이지만, 그 길을 지나면서 눈에서 사라지고 기억에서 남지도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마치 유령처럼 말이다.


옛날에는 가족이 있었다. 집도 있었다. 처음부터 골판지와 비닐로 만든 천막집에 살던 사람은 없었고 자진해서 노숙자가 된 사람도 없다. 이렇게 되기까지 각자의 사정이 있다. (91페이지)


비단 도쿄만의 모습일까. 사실 이런 내용의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몇 번 접해왔던 소재이기도 하고,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지금도 엄마가 사는 동네에는 대표 노숙자 3명이 있다. 누구네 집 자식이라더라, 돈이 많았는데 다 잃고 저렇게 되었다더라, 박스를 주워가곤 한다더라. 소설 속 가즈 역시 빈 캔을 모아 팔아 번 돈으로 잠시 노숙을 피하기도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며칠, 잠깐의 일이다. 그에게 이제 노숙은 삶이 되었다. 캔을 주워 팔거나 박스로 집을 만들어 살고, 누군가 버린 음식을 먹고 사는 이들인데도 길고양이에게 곁을 내주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곳의 노숙인들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을 거다. 이제 그들은 그곳에서 삶을 채우고 죽음을 맞이한다. 또 한 번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이들은 또 퇴거 대상이 된다. 어디 이들뿐일까.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터전을 잃은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쓰나미로 공포에 떨고 붕괴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재민들과 돈을 벌겠다고 도쿄로 상경한 이들의 삶이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거기에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재일한국인 작가까지.


처음 구상에서 탈고까지 12년이 걸린 작품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긴 시간 작가의 가슴에 머물렀을까 생각하면 이 짧은 분량이 매우 커 보인다. 작가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의 기저에, ‘자신들은 결코 그런 상황에 부닥치지 않을 거란 믿음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시사한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그런 생각 전혀 안 하고 있을까? 거리의 노숙인들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 동시에 하지 않는가? 혹시라도 내 삶이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도, 지금 내 모습이 그들과 다르니까 그들을 거부하는 마음을 갖는 것. 이 두 감정이 동시에 들던데, 사실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건 사실이다. 아직 닥치지 않은 상황을 걱정하는 것보다, 지금 내 모습을 더 담아두기 마련이다. 아마도 작가가 이 소설에서 노숙인의 시선으로 서술하는 걸 보면, 나처럼 생각하는 이가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시선을 좀 보라고 다그치듯이.


혐오와 차별이 어떤 세상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 세상을 또 우리가 만든 것이겠지. 누군가의 피해와 슬픔, 고통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필요한 건 아닐까 싶다. 노숙인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길고양이한테 곁을 내어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계기조차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그런 거 아니었을까. 소외된 그들의 목소리를 작가가 들려주었으니, 우리는 그 목소리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작가가 곧 후속 작품을 내놓는다고 하니, 이 작품과 쌍둥이처럼 읽히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더 가까워질 것 같다.



#도쿄우에노스테이션 #유미리 #소미미디어 #소설 #일본소설

##책추천 #문학 #혐오 #차별 #소외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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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 - 2021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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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생각하면 참 쉬운데, 간단하게 생각되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그저 조금 더 섬세하게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했다면, 보이지 않는 부분이 적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약간 들기도 하면서. 거기에 우리가 자주 범하는 오류, 보이는 것만 보면서 믿고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새삼 알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진실을 모른 채로 또 유유히 일상을 살아가겠지.


작가의 전작에 비하면 조금 섬뜩한 이야기다. 출간 즉시 영화화 결정되었다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게 가독성이 좋다. 이야기 어느 한구석에 흐트러짐이 없다. 십 대 여학생의 이야기가 그렇지 뭐 하면서 가벼운 마음을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의 무게감과 미스터리한 전개, 소설의 결말을 마주하고서는 무릎을 쳤다. , 이럴 수도 있겠구나.


이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으스스한 분위기가 아니라,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마음을 읽는 과정에 있었다. 서은과 주연은 누가 봐도 단짝이다. 그런 두 아이가 어느 날 크게 싸웠고, 다음 날 학교 건물 뒤에서 서은의 시체가 발견된다. 주연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체포된다. 정말 주연이 서은을 죽였을까? 주연이 이 사건의 용의자가 된 이유는 충분했다. 그날 서은과 크게 싸웠고, 건물 뒤편에서 주연이 이상하게 당황한 모습으로 뛰어오던 것을 본 목격자도 있었다. 이 정도면 주연이 서은을 죽였다고 해도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단짝이던 아이가 무슨 이유인지 싸웠고, 싸우다가 주연이 서은을 죽였다는 가설이 성립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주연은 입을 다물고 있다. 무엇보다 그날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주연이 서은을 죽였다고 하는데, 주연은 자기가 정말 서은을 죽였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의 말처럼 정말 자기가 서은을 죽인 걸까?


주연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인터뷰가 교차로 진행된다. 서은과 주연의 같은 반 친구, 초등학교 동창, 담임 선생님, 동네 편의점 주인, 서은의 엄마, 주연의 부모 등 그들은 자기가 보고 겪은 두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일까? 카더라 통신의 내용과 자기가 본 몇몇 장면이 더해져 이야기는 거침없이 부풀어 오른다. 이야기가 들을수록 혼란스러웠다. 원래 타인의 말은 쉽게 하는 게 인간이기에, 나는 이들이 하는 말보다 그 누구도 아닌 두 아이를 직접 겪은 사람들의 말을 추리기 시작했다. 주연에게 성추행했다는 학원 선생, 주연의 엄마, 서은의 엄마가 본 두 아이의 묘한 관계, 스치듯 몇 번 봤겠지만 주연과 서은을 지켜본 편의점 주인의 말을 자꾸 되씹었다. 그 안에서 나는 이 사건의 진실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당사자 말고는 그 누구도 이 사건을, 각자의 진심을 말하거나 알지 못했다.


진실을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끝까지 주연을 쫓으며 이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카더라 통신에 의지해 말하는 이들과 내가 다르지 않음을 발견했을 뿐이다. 두 사람 사이의 일은 두 사람만 아는 게 맞는 거고, 진실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기에 꿰어맞추기가 쉽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꾹 다문 주연의 입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완전한 진실은 찾을 수 없다.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흔하게 하는 그 말, 죽고 싶다. 비슷하게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죽이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 말을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마음속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여길 뿐이다. 혹시 주연이 서은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더라도, 정말 행동에 옮겼는지는 알 수 없다. 서은과 싸우고 뒤돌아서면서 주연은 이미 그때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진실과 믿음. 평범하게 지낼 것 같은 나이에 겪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깊게 박힌다. 너무 다른 환경의 두 아이가 절친이 되었다는 것만 봐도 평등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친구인데 수직적인 관계, 누가 봐도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숙이고 있는 모습.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그 안을 들여다보고, 또 다른 진실을 마주했을 때, 정말 상처 입고 상대를 죽이고 싶다고 느끼는 건 누구였는지 생각해본다.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가 거듭될수록 점점 혼란에 빠진다. 용의자로 지목되고 체포된 주연을 더 알 수 없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닿아, 모든 진실이 들려왔을 때는 두렵기까지 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우리는 영원히 이 사건의 진실에 닿을 수 없다고 여길 것이다. 주연은 침묵할 것이고, 진실을 아는 이는 거짓을 말할 것이고, 진실을 아는 또 다른 이는 죽었으니까. 말 그대로, 진실은 편집되고 그렇게 편집된 진실은 사실로 사람들 사이에 흩어진다. 진실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게 더 중요해져 버린 세상. 그 세상의 단면을 주연의 부모와 변호사를 통해 보여준다. 아이는 그런 것을 보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세상은 다시 진실 따위는 파묻어버린 채로 흘러간다. 그런 세상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상처받으면서 성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부만큼 중요한 친구 관계가 십 대의 모습일 테다.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른도 사람 관계에 힘들어하고 위로받기도 한다. 십 대의 아이들에게는 더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가 되겠지. 그때의 여러 가지 문제와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대상이 있다는 건 위태로운 순간을 겪을 때마다 잘 건너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 의지하고 위로가 되는 존재가 어떻게 얼마나 유지되느냐 하는 문제는 또 해결해야 할 다른 숙제이기도 하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닥친 우정의 상실은 어른이라고 해서 담담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상처받은 마음이 잘 아물기를, 누구라도 비슷하게 겪고 지나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청소년 소설이 아니라, 누가 읽어도 공감하며 몰입하게 될 이야기다.



#죽이고싶은아이 #이꽃님 #소설 #청소년소설 #문학

#우리학교 #진실 #믿음 #반전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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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작은 곰자리 49
조던 스콧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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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나 책 소개 글을 보지 않고 읽었던 터라, 처음에는 이 아이가 농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들리지 않는 아이가 소리의 발음을 잘 몰라서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거로 알았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저 말을 더듬는 것뿐이다. 조금 천천히, 잘 듣기 위해 기다려준다면 충분히 더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아이.


학교 발표 수업을 싫어하고 긴장하는 게 어디 이 아이뿐일까. 멀쩡하게 잘 말하다가도 발표 수업이 있으면 저절로 말을 더듬게 되는 게 우리 아니던가. 손이 벌벌 떨리고 덥지도 않은데 땀이 줄줄 흐르는 상황. 말하지 않아도 알고, 언젠가 한 번쯤은 다 겪어봤을 일을 떠올린다. 다행히도 이 아이는 발표를 해야 하는 날이면 하굣길에 아버지가 찾아온다. 내 아이가 얼마나 긴장하고 힘들었을지 아는 아버지는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이미 상처가 난 마음을 볼 줄 아는 사람. 아버지는 아이에게 그 상처를 보듬을 방법을 알려준다. 한 가지 모양으로 흐르지 않는 강물을 보여 주고, 누구나 다 다르게 흐를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해 주는 현명한 사람이다.




아침마다 낱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지만, 정작 그 소리 들을 입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은 아이의 하루를 생각한다. 소나무, 까마귀, , 햇살, 지저귐 등 눈과 귀로 들어오는 소리는 많지만,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느낀다. 입을 열고 그 소리와 대화하고 싶어도, 언제나 낱말들이 혀와 뒤엉켜 목구멍 안쪽에 달라붙는다. 그저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할 뿐, 굳게 다물 수밖에 없는 입 밖으로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렇게 다물어버리는 입안으로 그 많은 아픔을 삼켜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한번 두 번, 그렇게 삼켜버린 아픔은 다시 튀어나오지 못하고 내면에 쌓아가기만 하겠지.



반 친구들이 비웃고 그 시선에 더 창피했던 순간이 떠올라서 울고 싶지만, 그 울음은 길지 않다. 이렇게 저렇게 모양을 바꿔가며 흐르는 강물을 가리키며 아버지는 말한다.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다름을 알려주는 방법, 그 다름 때문에 움츠러들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는 게 아니고, 여기 부딪히고 저기에서 걸리면서, 어찌 보면 우리처럼 아이처럼, 더듬더듬 빠르게 느리게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거친 물살에 무서워하며 건널 수도 있고, 거친 물살 너머에서 마주하는 잔잔한 물살에 안심하며 건너기도 하는 강물을 생각한다. 아이가 말을 더듬는 건 겉으로 보이는 한 단면이고, 아이의 내면에 자리한 여러 가지 물살은 언제나 반짝인다고. 그저 말을 더듬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이제 다시 발표 시간이 와도 아이는 떨지 않는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 말한다. 애정을 담아, 더 단단하게 강에 대해 말한다. 왜 좋아하는지, 왜 아름다운지, 어떤 존재인지.


아이는 종종 강을 보러 가겠지?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말해준 것 이상을 또 알게 되겠지. 그렇게 자연이 주는 치유에 몸을 맡기고, 하나하나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을 상상한다. 자라면서 내면의 아픔은 더 많이 겪을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게 된 만큼 아이는 더 단단하게 씩씩하게 세상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자신과 닮았을 강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가슴에 채워갈지 궁금해지게 하는 이야기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서 더 놀랐다. 말을 더듬는 아이를 배려한 아버지의 현명한 방법은 훗날 이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알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주문처럼,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고 되뇌는 저자의 표정을 상상하면서 읽게 된다. 그날의 기억이 작가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알게 된다면, 이 그림책 한 권이 또 얼마나 많은 아이와 사람을 변화하게 만들고 위로가 될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짧지만 몇 개의 문장, 문장보다 더 깊게 담은 그림의 힘이 놀라웠다. 상처와 치유를 동시에 보여 주면서도, 결국 우리는 치유하고 위로받으면서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아버지의 깊은 마음과 자연이 주는 위안의 힘을 느낀다.


섬세한 그림과 따뜻한 문장으로 하나의 풍경을 보는 듯했다. 마음의 따뜻함은 저절로 따라온다. 한번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이야기였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마음 온도를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작가의 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어야지. 상처받더라도 주저앉은 채로 머물지 말아야지. 은근하게 다짐이 많아지는 시간이었다.



#나는강물처럼말해요 #조던스콧 #책읽는곰 #그림책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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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니 나는, 왜 그렇게 싸이월드를 하고 살았던 걸까. 미니홈피에 접속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그날의 감상을 쓰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던 날들. (아무튼, 싸이월드 138~139페이지)


,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말입니다.

싸이월드 했어요?


한동안 싸이월드가 새로 문을 여느니 마느니 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도 나는 그게 왜 이슈가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 시절의 싸이월드를 불러와야 할 이유가 나에게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싸이월드를 안 했냐고? 그립지 않더냐고? 글쎄, 이걸 싸이월드 했다고 해야 할지 안 했다고 해야 할지 난감하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개설하기는 했다. 몇 개의 글도 있었을 거다. (가물가물) 그 당시 대학 동기가 교류하던 방식에 합류하려던 목적이었다. 전화나 문자보다 이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더 물었던 때였다. 그 친구가 열어놓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가끔 드나들었다. 일상을 보여주는 사진, 길지 않은 몇 개의 문장으로 장소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언급하고, 그날의 일을 아는 누군가는 친근하게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잘 놀다 왔어? 맛있는 거 먹었고? 응응, 또 가고 싶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서로를 연결해줄 매개는 없었다. 한때(?) 동기이자 친구였다는 사이의 가벼운 안부. 더 뭐가 있을까. 그렇다고 서로를 미워하던 사이도 아닌데, 점점 세월의 흔적처럼 서먹함이 쌓이고. 이제 더는 싸이월드 같은 건 하지 않는 순간을 맞이했다.


사실 싸이월드가 막을 내린다고 해도 나는 서둘러서 저장하고 불러와야 할 자료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비공개로 사진을 올려두는 정도로만 이용했다. 그것도 어쩌다 한번, 가끔. 소중한 공간이고 자료였다면 수시로 드나들면서 마음을 보여주었겠지. 그러다 점점 타인의 삶을 엿보는 공간으로 변했다. 누군가의 근황이 궁금하면 비로그인으로 찾아보기도 했던 기억. ,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네. 조용히 몰래 찾아봐야 할 정도라면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는 거잖아? 아니면 한때 좋았지만, 지금은 소식을 알 필요가 없는 존재이거나. 그런 짓도 지금 생각하니 웃음만 나네. 딱 그때, 싸이월드가 모두의 세상에 중심이 되었을 때 우리는 이십 대였겠지. 응답하라 시리즈의 1994를 열광하면서 봤던 것을 보면, 역시 이십 대가 찬란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싸이월드응사 시리즈는 비슷한 시기에 우리가 열렬하게 사랑했던 세계였네. 도토리로 집을 꾸미고, 감정을 표현하듯 노래를 고르던 그곳. 디지털카메라로 감성의 최고조를 뽐낼 수 있던 곳. 몇 개의 문장으로 자기를 한껏 표현할 수 있던 곳.


그곳은 진짜였을까. 오프라인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것을 과감히 표현하기 좋았던 곳은 아니었을까. 감추고 싶은 게 많은데도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았던 곳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음악, 영화, 그림 같은 지식을 뽐내던 누군가의 실제 성격을 떠올리기도 했다. 작가의 기억에서 소환한 누군가처럼, 그 아이가 정말 그런 성격이었을까 한 번쯤 궁금해졌던 때가 있었다. 어떤 문장을 써 내려갈 때, 마치 밤에 쓴 편지를 다음 날 읽어보기 민망해져서 5G 속도로 쓰레기통에 던져넣을 수밖에 없는 민망함도 잠깐이지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곳이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알지 못할 곳이 싸이월드라고, 지금의 나는 기억한다.


다시 찾아내려면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말처럼 싸이월드의 부활에 환호성을 지르지만, 싸이월드가 다시 우리 곁으로 오지 못한다고 해도 크게 아쉬움을 느끼지도 않을 것 같은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싸이월드를 대신할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걸까. 기본적으로 계속 사용하는 블로그도 불편하지 않고, 짧은 글과 해시태그, 한 장에 다 표현되는 것만 같은 사진으로 우리는 충분히(?) 자기를 표현하며 소통하고 있지 않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토종 소셜 미디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지만, 말 그대로 역사 속에서 마주해도 괜찮은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그 시절의 우리는 기억할 수밖에 없겠지. 그 세계에서, 그곳에서 교류하던 말들, 가장 예뻤다고 기억할 시간에 한 번쯤 다시 빠져들고 싶어질 수도 있겠다.


10년 넘게 기자로 일해온 작가가 그 기억을 이렇게 섬세하게 꺼낼 줄 몰랐다. 그랬었던가 싶을 정도로 내 기억에서는 사라진 장면들이 작가의 추억으로 소환되었다. 원하지 않았어도, 필요하지 않았어도 머물렀던 그곳에서 우리가 꾸며대던 자기만의 방을 불러온다. 요즘 세대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SNS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너무 달랐던 방식에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휴대폰 하나로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PC로만 문을 열 수 있는 미니홈피. 그곳은 추억 이상의 의미는 이제 없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면서도 재밌는 방식이었는데 말이다.


사진 170억 장, MP3 파일 53,000만 개, 동영상 15,000만 개.

싸이월드에 보관돼 있는 이용자 데이터였다. 디카 시절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광고 카피가 유행했다. 실제로 그랬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고, 사진은 추억을 지배했다. 싸이월드란 말을 들으면 아직도 마음 한편이 아련한 것,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이 회사가 망하는 것만은 덤덤하게 지켜볼 수 없는 것. 그것은 싸이월드에 보관된 170억 장의 사랑보다 아름다운 어떤 추억이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싸이월드 93페이지)


일촌을 수락하고 이름을 지어주고, 그 촌수로 서로의 거리를 가늠하며 공개했던 일상들. 음악으로 내 세상에 오는 이들을 환영하면서, 나를 표현하는 미니미로 또 다른 세상에서 머물게 했던 존재들이었는데. 아쉽고, 살짝 그리우면서 궁금하고, 그렇다고 다시 문을 연다고 해도 길게 머물 것 같지 않은, 여전히 그리움 속에 머물 시간을 싸이월드로 확인하게 되는 듯하다. 기억에 머물 공간들, 사람들.


근데 정말, 다들 싸이월드 했어요?











#아무튼싸이월드 #싸이월드 #박선희 #도토리 #미니미 #미니홈피 #기억 #추억

#내가그의이름을지어주었을때그는나에게로와서일촌이되었다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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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14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월드 저요. 2015년까지 한 번이라도 접속한 사람 계정만 1차 복구가 되나 봐요. 좀 더 기다려야 될 듯요. 일촌. 파도타기 등 그때 용어들. 추억이네요 이것도. 인스타그램보다는 사람냄새가 났던 거 같아요.

구단씨 2021-10-14 21:16   좋아요 1 | URL
정말요? 아무나 싸이월드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었군요...
그때의 용어들이 많이 바뀌었죠? 이웃, 랜덤블로그 등등. 정말료 그 시절의 표현들이 그립기도 하네요.
 
설민석의 역사 고민 상담소 3 - 발해와 고려 시대 설민석의 역사 고민 상담소 3
설민석.서지원 지음, 조병주 그림, 단꿈 연구소 감수 / 미래엔아이세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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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이번 연휴 동안 조카랑 있을 시간이 좀 생겼는데, 지난번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설민석의 역사 고민 상담소>1편부터 3편까지 읽고 갔다. 나머지 궁금하다고 해서 4권을 주문해 주었는데, 학원 갔다 와서 지칠(?) 때 읽고 있다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사실 이 책도 완전히 재미만을 위한 책은 아니기에 조카가 이 책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라도 좀 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서였네.


설쌤은 평강이 온달이와 함께 역사 고민 상담소를 운영한다. 내담자가 별로 없는 건지, 여기저기 홍보 전단도 붙어 있다. ㅋㅋ 우연처럼, 계획처럼 설쌤의 상담소에 찾아오는 아이들. 모두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다. 겁쟁이 해찬이가 캠핑을 거부하는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줄지 궁금했는데, 역시 사람의 성장은 직접 체험하는 것만 한 게 없지. 신석기 소녀 다실이가 시대를 잘못 찾아오게 된 상담소, 이 아이는 다잡아라는 남자아이를 좋아하는데. ^^ 수줍은 소년 태양이가 친구 해찬이의 추천으로 반장이 되긴 했는데, 반장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되고 떨리고.


이 아이들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줄지 엄청 궁금했는데. 옴마야. 설쌤과 온달이 평강이가 그 고민에 맞는 시대와 등장인물을 만나게 함으로써 그 시대의 생활과 아이들이 안고 온 고민을 해결할 적재적소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특히 해찬이가 캠핑 가기 싫다고 했을 때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까 싶었는데, 해찬이를 구석기로 보내서 가장 원시적으로 생활하게 한다는 기가 막힌 처방전. 손이 더러워도, 이제 막 잡은 고기를 먹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해찬이의 성격 변화가 당연히 기대될 수밖에.


2, 3편 역시 흐름은 비슷하다. 여전히 설쌤의 역사 고민 상담소에 어린이가 찾아오고, 그때마다 설쌤과 평강이 온달이가 합심하여 이 고민을 해결해나간다. 삼총사의 잃어버린 지우개 하나로 우정은 흔들리고, 고구려로 간 온달이의 개마 무사 체험기는 웃음이 나고, 신라와 백제의 라이벌 대전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단짝처럼 지냈던 옆집 사이는 앙숙이 되어 아이들의 우정까지 막아버리는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궁예의 폭정도 다음 시대를 위해 필요했던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고. 전체적으로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 시대를 지나, 고조선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시대를 경험하고, 발해와 고려 시대를 신나게 모험하듯 걸어올 수 있는 이야기였다.


유쾌하고 흥미롭게, 어린이의 고민도 해결하고, 시간 순서로 들려오는 한국사 상식을 차곡차곡 쌓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 이야기로만 채워진 건 아니다. 중간에 다른 그림 찾기나, 놀이 같은 퍼즐도 있고, 여러 인물 가운데 주인공을 찾아보기도 하고, 시대의 설명에 맞는 퀴즈로 재미있게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역사 교과서와 놀이 시간을 합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4편 조선 시대도 완전 흥미로울 것 같다. 조카가 읽고 넘겨주면 얼른 펼쳐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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