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작은 곰자리 49
조던 스콧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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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나 책 소개 글을 보지 않고 읽었던 터라, 처음에는 이 아이가 농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들리지 않는 아이가 소리의 발음을 잘 몰라서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거로 알았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저 말을 더듬는 것뿐이다. 조금 천천히, 잘 듣기 위해 기다려준다면 충분히 더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아이.


학교 발표 수업을 싫어하고 긴장하는 게 어디 이 아이뿐일까. 멀쩡하게 잘 말하다가도 발표 수업이 있으면 저절로 말을 더듬게 되는 게 우리 아니던가. 손이 벌벌 떨리고 덥지도 않은데 땀이 줄줄 흐르는 상황. 말하지 않아도 알고, 언젠가 한 번쯤은 다 겪어봤을 일을 떠올린다. 다행히도 이 아이는 발표를 해야 하는 날이면 하굣길에 아버지가 찾아온다. 내 아이가 얼마나 긴장하고 힘들었을지 아는 아버지는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이미 상처가 난 마음을 볼 줄 아는 사람. 아버지는 아이에게 그 상처를 보듬을 방법을 알려준다. 한 가지 모양으로 흐르지 않는 강물을 보여 주고, 누구나 다 다르게 흐를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해 주는 현명한 사람이다.




아침마다 낱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지만, 정작 그 소리 들을 입으로 말하기가 쉽지 않은 아이의 하루를 생각한다. 소나무, 까마귀, , 햇살, 지저귐 등 눈과 귀로 들어오는 소리는 많지만,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느낀다. 입을 열고 그 소리와 대화하고 싶어도, 언제나 낱말들이 혀와 뒤엉켜 목구멍 안쪽에 달라붙는다. 그저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할 뿐, 굳게 다물 수밖에 없는 입 밖으로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렇게 다물어버리는 입안으로 그 많은 아픔을 삼켜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한번 두 번, 그렇게 삼켜버린 아픔은 다시 튀어나오지 못하고 내면에 쌓아가기만 하겠지.



반 친구들이 비웃고 그 시선에 더 창피했던 순간이 떠올라서 울고 싶지만, 그 울음은 길지 않다. 이렇게 저렇게 모양을 바꿔가며 흐르는 강물을 가리키며 아버지는 말한다.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다름을 알려주는 방법, 그 다름 때문에 움츠러들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는 게 아니고, 여기 부딪히고 저기에서 걸리면서, 어찌 보면 우리처럼 아이처럼, 더듬더듬 빠르게 느리게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때로는 거친 물살에 무서워하며 건널 수도 있고, 거친 물살 너머에서 마주하는 잔잔한 물살에 안심하며 건너기도 하는 강물을 생각한다. 아이가 말을 더듬는 건 겉으로 보이는 한 단면이고, 아이의 내면에 자리한 여러 가지 물살은 언제나 반짝인다고. 그저 말을 더듬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이제 다시 발표 시간이 와도 아이는 떨지 않는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 말한다. 애정을 담아, 더 단단하게 강에 대해 말한다. 왜 좋아하는지, 왜 아름다운지, 어떤 존재인지.


아이는 종종 강을 보러 가겠지?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말해준 것 이상을 또 알게 되겠지. 그렇게 자연이 주는 치유에 몸을 맡기고, 하나하나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을 상상한다. 자라면서 내면의 아픔은 더 많이 겪을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게 된 만큼 아이는 더 단단하게 씩씩하게 세상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자신과 닮았을 강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가슴에 채워갈지 궁금해지게 하는 이야기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서 더 놀랐다. 말을 더듬는 아이를 배려한 아버지의 현명한 방법은 훗날 이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알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주문처럼,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고 되뇌는 저자의 표정을 상상하면서 읽게 된다. 그날의 기억이 작가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알게 된다면, 이 그림책 한 권이 또 얼마나 많은 아이와 사람을 변화하게 만들고 위로가 될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짧지만 몇 개의 문장, 문장보다 더 깊게 담은 그림의 힘이 놀라웠다. 상처와 치유를 동시에 보여 주면서도, 결국 우리는 치유하고 위로받으면서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아버지의 깊은 마음과 자연이 주는 위안의 힘을 느낀다.


섬세한 그림과 따뜻한 문장으로 하나의 풍경을 보는 듯했다. 마음의 따뜻함은 저절로 따라온다. 한번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이야기였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마음 온도를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작가의 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어야지. 상처받더라도 주저앉은 채로 머물지 말아야지. 은근하게 다짐이 많아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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