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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가는 기분 ㅣ 창비청소년문학 75
박영란 지음 / 창비 / 2016년 10월
평점 :
『편의점 가는 기분』에서 편의점은 ‘잠깐’의 기분이 드는 곳이다. 편의점 기능이 그렇듯이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잠깐, 개발되기 전에 잠깐, 새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아빠가 오기 전에 잠깐, 집에 가기 전에 잠깐, 고양이에게 밥을 주러 가거나 갔다 오기 전후에 잠깐. 그 잠깐의 시간들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24시간 붉을 밝히는 공간이 편의점, 그러니까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잠깐 환한 불빛 속에 들어 물건을 고르고 사는 그 잠깐 동안 소통하는 공간, 그 잠깐의 시간들이 잠깐잠깐 이어져 이야기를 완성한다.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그 잠깐의 시간 이면에 흐르고 있는 삶의 시간들이다. 장애와 외로움에 갇혀 지내던 수지의 긴 시간, 수지를 기다리는 나의 긴 기다림, 엄마와의 오랜 결별, 꼬마 수지 가족의 아픔과 이별, 꼬마 수지 엄마의 오랜 침묵, 훅의 시간, 끝나지 않을 캣맘의 밤 길 등. 편의점이 위로와 휴식, 회복의 공간이라는 느낌, 기분을 주는 것은 이들이 편의점 불빛 속에 들어와 쉬는 그 잠깐들이 이어지고 엮어내는 과정들 때문이다. 외롭고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불을 밝히고 있는 편의점이 어떻게 다가갈지.
일상적 공간이 문학적 공간으로 변하는 순간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들려 당황스러웠지만 ‘다른 방식의 표본 하나’(217쪽)에 대한 훅의 발언이다. 한껏 힘을 준 이 말이 부자연스럽기는 해도 작가가 이 말을 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것은 알겠다. 결정적인 이 주제적 발언이 당황스러운 이유는 이 작품에 진열된 인물들의 단순성과 개체수의 절대적 부족 때문일 것이다. 나의 가족사, 사라진 수지, 꼬마 수지의 가족사, 훅, 캣맘이 다른 방식의 표본 하나씩을 감당하는 무게감에 대한 공감에 따라 작품을 대하는 기분은 달라질 것이다.
편의점이라는 매력적 공간을 발견한 작가의 눈썰미가 반갑고 이 공간에 대한 해석의 깊이에 대해 독자들의 생각은 다양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