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진보 - 최원식 평론집
최원식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이 지날수록 예리하게 벼려지되 부드럽게 깊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뒤에 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에 대한 사랑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 않되 문학으로 세계의 문을 열어보이려는 것은 어쨌든 이 길에 들어선 자들의 운명일지도. 곳곳에 놓인 회초리가 요긴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몹시 사랑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가 소비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매우 슬프다,는 말을 해야하는 사실이 슬퍼서 오래 머뭇거렸다. 슬픔에 대한 공부도 제대로 못했는데 글은 다른 글로 가버리고 말았으니, 올 가을, 나의 슬픔은 그것인가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책을 듣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14
정은 지음 / 사계절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있지 않다, 즉 부재(不在)는 아예 없는 것()과 조금 다르다고 보기로 하자. 있는 것의 없음, 있어야 하지만 없는 것으로. 이 작품은 있어야 하는 것들이 없는 것의 가능성들을 숨 막히도록 빽빽한 문장들로 번역하고 있으므로.

수지는 아빠가 있지 않다. 아빠 없이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그 남자들(일란성 쌍둥이 중 한 사람이 아빠일 것으로 예상) 중 한 명은 화성 탐사 대원으로 뽑혀 현지 적응 훈련을 하기 위해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고, 또 한 명은 카리브해 깊숙이 숨겨진 잠수함에서 코카인을 제조하고 있다.

수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관이 망가졌다. 그래서 듣지 않고 본다. 손의 말을 직접 만든다. 수지는 수지의 언어를 갖고 있다. 나중에는 할머니가 있지 않고(사망) 엄마가 있지 않는다.(가출) 할머니는 있지 않지만 거침없는 고층 빌딩 사이에 떡하니 무덤으로 있으면서 수지가 쉬는 곳으로 있다. 엄마는 가출해 미국에 있다. 오랫동안 묶어 놓았던 끈을 풀고 비로소 자유가 되어 있다. 그래서 수지는 비로소 단 한 사람이 되었다. 수지는 듣는 것이 없지만 보는 것이 흑백 두 가지만 있는 한민의 친구가 되어 있다.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있지 않는 것들로 그동안 없었던 특별한 산책길을 만들었다. 수지와 한민에게 있지 않는 것들은 이제 있는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되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 있는 것들이 없거나 기능이 무효가 된 사람들을 일컫지만 이 작품을 통과하고 나면 그 말이 온전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수지와 한민에게 있지 않는 것으로 있는 것이 내게는 있는 것으로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장애와 비장애는 그저 있고 없음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곰곰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맞다. 그걸 증명하는 말이 정성스럽고 정확해서 우리는 기분 좋은 충격을 받는다.

장애를 다루는 그간의 이야기들은 장애를 딛고 극복하는 존재를 향한 응원이거나 장애가 있지만 대신 또 다른 능력을 갖게 함으로써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장애인의 사랑은 특별한 것이고 그들의 재활은 눈물겨운 사투가 되어 비장애인을 종종 경외감과 죄책감에 빠지게 하곤 했다. 비슷해지거나 닮으려는 대신 개별자로서의 고유성을 획득하고 인정이 아니라 인식하는 방식은 훨씬 설득력 있다.

사건으로 진행되기보다는 1인칭화자의 내면을 촘촘하게 표현하는 말의 과잉이 다소 뻑뻑하긴 하다. 이 작품을 끝까지 읽어내기 위해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적인 문장이 주는 감동을 기꺼이 즐기기로 한다면 옮겨 적느라 오히려 독서 시간이 더뎌질 수도 있다.

뜨개질하듯이 손으로 말을 엮는다는 말에서부터 심상치 않았으나 처음엔 읽느라 놓쳤고 중반쯤엔 못 듣는다는 것은 그들 삶의 핵심적인 정체성이었다.”라거나 이 상태로 이미 내게는 완전한 세상이니까.” 또는 질서정연하게 어지럽혀져있다.”라는 말들을 옮겨 적어 보려고 하다가 포기하고 그냥 읽기로 한다.

하지만 내가 이 작품이 좋았다고 결정한 이유는 수지와 한민이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 자신의 있지 않음으로 남들의 있지 않음을 대신할 삶의 방식을 찾아서다. 그게 먹고 사는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건 장애의 당당함이라기보다 존재의 의무로 보였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마트폰이 심장을 갖는다면 열린어린이 동시집 8
이영애 지음, 김영민 그림 / 열린어린이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버스, 광역전철, 시장, 스펨메일, 세탁소, 병원, 지역축제 등 도시적 삶의 세부를 구성하는 것들을 동시의 소재로 품어서 먼 데 이야기가 아닌 지금 여기 현실의 이야기가 되었다. 동시가 아름답고 예쁜 것들에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이 삶의 상냥한 리얼리티가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섬 고양이 창비아동문고 294
김중미 지음, 이윤엽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어 죽기 직전까지 몰린 노숙자 최 씨, 두 번이나 버림 받은 수민이, 이주 노동자의 딸로 남의 집에 얹혀사는 미나, 자식이 있으나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던 할머니의 삶은 인간답지 않다. 한 때 인간과 함께 살다 이제 길고양이나 들개가 된 삶도 동물답지 않다. 인간다움과 동물다움을 잃어버린 종족들이 서로가 서로의 희망이 되고 삶의 근거가 되어 얽혀 사는 것의 가능성을 도모하는 김중미 작품들의 선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큰 이견이 있을 수 없고 그래서 독자가 거들거나 빼고 다른 말을 보탤 여지도 없다. 네 편의 작품이 개별성을 획득했다는 것도 판단하기보다 경험하는 것으로 독서의 방향을 이끈다. 이것은 자칫 주입받는 것 같은 혐의가 있지만 그게 틀린 말이 아니기에 마땅히 거부할 근거도 희박하다.

이번 작품집에는 사회적 약자와 그보다 더 취약한 동물의 연대’(박숙경)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의지가 하나의 공식처럼 들어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의 네 번 정도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면서 작가의 주장에 동의하고 강화하면서 길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당연하고 옳은 방향이므로 이 작품집에 실린 작품들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역시 고양이와 개가 화자가 되어 말할 때가 훨씬 역동적이며 설득력이 있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동물의 말을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인간이 생각하고 듣고 싶은 말로 동물의 언어를 번역하는 것이지만 아무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김중미가 그렇다면 정말 그런 말로 들을 수 있다. 마치 처음 듣는 말처럼. 김중미는 로드킬 당하는 동물들의 최후에 머뭇거림이 없고 키우던 개를 버리는 인간들에 대해서도 일말의 인간적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가 악한을 그리거나 나쁜 상황을 이야기할 때 훨씬 더 실감난다는 건 그릇된 인간 행태에 대한 그의 차가운 분노 때문이 아닐까.

상대적으로 수민이나 최 씨, 미나의 말들은 교과서 문장처럼 지나치게 정확하다. 그들의 선의의 말들이 불의의 말들에 맞서지 못 하니 품은 말의 힘이 기운을 돋우지 못하는 거 아닐까.

다만 동물과 사회적 약자 혹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마치 정답이 정해진 것 같은 상황에서 다시 또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상상이 가능할까에 대한 피로감이 든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 다른 고양이, 개에 대한 얘기를 한다면 김중미는 이것과 다른 얘기를 해야 할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인류는 식용에서 반려의 관계가 될 만큼 질적인 인식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인식의 변화가 인간 보편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지점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아직은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소수라고 한다면 동물 이야기는 당분간 더 유효할 수도 있다. 이게 인간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여부와 함께 고민되어야 할 지점이겠지만 말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그린 작품들에 대해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 둘의 관계가 수평적이라기보다 호혜적 관계가 주는 편리함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함께 살아야하고 그들을 돕는 게 당연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말하기 쉽고 동의할 수밖에 없다. 동물이 잠재적 테러 용의자로 상상되지는 않으니까.

사회적 약자와 그보다 더 취약한 약자가 있고 그들이 잠재적 테러 용의자로 무관용과 무자비로 분류되고 거부당하는 난민이라면 문제는 몹시 어려워진다. 옳은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옳지 않을까.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반복, 강화하여 설득하는 데 어렴풋 성공했듯이 난민(을 비롯한 약자)에 대해서도 동의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가능성들.

동물이든 난민이든 타자로서 그들은 우리의 과잉과 결여를 알게 하는 지침들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