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독법 - 유쾌하고도 섬세하게 삶을 통찰하는 법
김민웅 지음 / 이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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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독법>은 동화를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분명히 읽었다고 생각했던 동화를 다시 읽는다. 다시 읽는 동안 우리가 읽은 동화는 없어지고 새로운 동화를 만난다. 그게 이 책을 읽는 재미다.

이솝의 동화 속 주인공들이 천 년이 넘는 시간의 문을 열고 나온다. 노동자를 착취하고 즐거움을 탐하다, 한 겨울 ‘낟알 한 알 얻지 못한 채’ 차가운 겨울 바람 속으로 사라진 베짱이는 당대 귀족들의 상징이었다. 개미는 노동자, 노예를 대변한다. 노동의 가치를 개미와 베짱이의 운명을 통해 보여주는 동화다.

저자는 이 동화를 함께 살기로 읽는다. 즉 개미의 노동이 가치를 가지듯이 베짱이의 한여름 연주는 예술행위로 인정 받는다. 노동과 예술이 동등한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다. 새롭게 읽는 <개미와 베짱이>는 개미 반장의 생일날, 베짱이가 흥겨운 연주를 하는 것으로 베짱이의 노래가 노동의 가치를 갖는다.

원작에 충실하되 원작을 꼼꼼히 읽는다는 것은 해석을 달리 하는 것이다. 꼼꼼히 읽기를 통해 원래 동화가 말하려는 것을 읽어낸다. 동화가 갖고 있는 특징은 권선징악 그 이상이다. 그 속에는 동화가 지어질 당시의 시대상황이 녹아있다. 시대를 읽어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오래된 이야기는 현재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현재적 의미를 얻고 다시 살아나 생명을 얻는다. 동화는 더 이상 어린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다.

너도 읽고 나도 읽은 <심청전> <별주부전> <인어공주> <헨젤과 그레텔> 등은 ‘그게 그런 뜻이었어?’ ‘뭘 읽은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풍부한 성서이해(그는 목사다), 사회를 인식하는 깊이, 가늠할 수 없는 지적 깊이로 읽어내는 동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이 사실은 그 반도 안되는 이해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깨달음, 지적, 새로운 이해에 대한 눈뜸이 즐거운 독자라면 두툼한 이 책을 읽는 내내 동화를 읽는 것처럼 재미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독법은 다른 책을 접할 때도 유용하다.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 독자로서 얻는 것에 차이가 있다면, 나는 저자처럼 좀 더 꼼꼼히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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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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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북경을 여행하다가 어느 주막집 벽에 씌어진 <호질>을 '열나게'(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베껴쓴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있어서!

 

소설 <위풍당당>을 읽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 또한 재미다.

한 두 장면을 꼽을 수 없을 만큼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그야말로 웃겨 죽는다. 뭐 이런 어리버리한 전국구 조직이 있을까 싶을 만큼 조직폭력배들의 주고 받고 씨부리는 말들은 현실이되 야릇하게 밉지 않으니 재미가 있다.  

 

살다살다 이렇게 운이 없고 슬프고 불쌍한 인간들이 다 있는가 싶을 만큼 상처로 얼이 빠진 것 같은 사람들이 드라마 세트 장에 모여 살게 되는데, 이들이 데면데면 사는 꼬라지가 또 재미있다.

 

영필의 멋드러지고 과장된 노래, 더듬 더듬 말 꼬리를 야무지게 매듭짓지 못하는데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아자씨' 하며 말문을 여는 여산, 사람보다 꽃과 더 많이 친한 소희, 여산을 좋아하는 이령, 자폐를 앓고 있는 준호, 말끝마다 문자질 종결 어미처럼 그랬어염, 저랬지염 제대로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은 준호 누나 새미, 거기에 스님이 끼어 가족 아닌 가족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가 싶다가 전국구 조직하고 역사적인 한판 겨루기를 하는 사이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가 되고 아들 딸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은 현장의 언어(말)로 되살려 지는데 말이 문자로 옮겨지되 독자에게 다시 말로 전달되는 과정 자체가 그야말로 생생하다.

조폭들이 주고 받는 그들의 일상의 대화가 어찌나 실감나고 재미나는가, '쉐발루' '쉬버럴' 같은 말이 가령 자연미인 새미를 어떻게 해보려는 보스 심부름을 왔다가 결국 똥통에 빠진 조직원 양구가 내지르는 다음과 같은 절규에 이르면 정말 웃지 않고는 못배긴다.

 

 "야, 이 쉬우부아올 놈들아, 쉬우부으루알 것들아 어디 가냐......우리 죽으란 말이냐.......여긴 더러워서 못 산다......빨리 꺼내라.....야 이 시베리아야....안 꺼내주면 다 죽인다.....죽어도 죽인다....." (141쪽)

 

위풍당당하기로야 전국구 조직 정묵이네를 당할 수 없을 터이지만, 여산이 이끄는 세트장 마을 사람들의 기세 또한 살아나는 불씨처럼 은근히 뜨겁다. 결국 전세가 역전되어 이 말도 안되는 마을에서 도망가느라 전국구 조직의 꼴이 말씀이 아니다. 그 모든 과정이 유쾌하고 재미있다는 것.

 

여산이네도 상처를 입지만 그들은 일대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가족으로 귀환한다. 위풍당당하게.

 

이 모든 일의 배경은 강이다.

소설에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여산은 강에서 고기를 잡아 식구를 먹여 살린다.

강에는 세트장 마을 사람들만 깃들어 사는 것이 아니라 참 많은 생명이 깃들어 산다. 소설은 각 장의 이야기를 열때마다 뭇 생명을 내세우며 시작한다.

 

그런데 불길하게도 뭔가 쳐들어 오는 것 같다. 아주 아주 위풍당당하게. "강의 모든 것을 때려 엎을 기계 군단이다."

 

정묵 일당과 여산 일당의 싸움이 조금씩 고조되면서 흥분하고 어떻게 될까 조마조마 하면서 마음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다가 그들의 싸움이 끝나는 순간, 나타난 기계 군단이 조금은 당황 스러웠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강을 살리겠다는 말로 느닷없이 들이닥친 기계의 소식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정묵 일당은 도망치고 세트장마을 사람들은 다시 길 위에 섰다.

돈도 없고 맨 몸인 이들이 그나마 빈 세트장이라 깃들어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들은 어디가서 고픈 배를 채울 라면을 끓일 수 있을까.

그러니 가장 위풍당당한 것은 개발이나 살린다는 가면을 쓴 거대한 파괴의 기계군단 뿐인 것 같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지만 다시 강의 생명력을 믿듯이 다시 이 이상한 가족의 합체를 믿을 뿐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완성하는 데 들이는 노력이 건축가의 설계 도면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완성도가 높다는 말은 철저한 계획과 설계로 만들어진 건물이 그렇듯이 이야기도 그럴 것이다.

 <위풍당당>은 각 장이 소제목만 따로 읽어도 한 편의 시가 된다. 각 장의 소제목은 서로 다른 노래에서 따온 말들인데 이걸 죽 늘어놓고 한 번에 읽어보라.

 누군가는 어느 부지런한 독자가 이 노래들만 한데 모아 놓았으면 좋겠다며 자기의 게으름에 민망해 하면서도 은근히 바라는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비슷한 상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는 것도 가족의 조합 요건으로 더 어울린다는 생각까지 해 보았으니 재미있게 읽은 독자는 보이는 것 말고 더 늘어놓을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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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 돈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3
이시백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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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담서원 두 번째 청소년인문학 책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를 읽었다.

 

'돈'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한 묶음으로 읽을 수 있다.

종이 돈의 역사가 금을 맡겼다는 증서에서 시작되었다는 얘기부터 돈이란 것이 결국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서 실체가 없다는 지적까지.

전쟁의 반대가 평화가 아니라 평화 없음이라는 지적처럼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평화롭지 못한 상태다.

교육을 받을 권리는 기본권이지만 돈의 유무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지는 현실은 여전히 평화롭지 못하다.

착한 소비보다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충고도 새겨듣는다.

민주주의는 개인이 중요한 사회이지만 지금 우리는 돈이 더 중요해진 사회에 살고 있다. 돈이 사람 앞에 서고 사람이 돈을 쫓아가는 형국이다. 곧 사회에 나가 돈을 만져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돈의 실체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돈이 목적이 될 것인가, 수단이 될 것인가, 돈의 주도권을 사람이 쥐고 있을 것인가, 돈에게 넘길 것인가 줄다리기에서 사람이 이기기 위해 필요한 얘기들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고 싶고 돈이 좋다고 해도 알고 좋아하는 것과 모르면서 좋다고하는 것은 다르다.

 

돈이 무섭다는 것을 아주 조금, 그야말로 쥐똥 만큼 알게 된 것이 최근이다. 돈이 편하지 않고

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돈의 무게가 있다는 것을 안 것도 최근이다.

돈과 내가 가장 편안한 관계, 그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의 과제다.

어쩌면 이 경계 조차 그 누군가에게는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곳임을 늘 기억하면서, 그러기 위해서 나는 지금보다 더 적게 소비하고 더 적게 소유하고 더 적게 욕망하기를 시작해야 한다.

비우고 버리고 치워서 가벼워지기를.

쓸데없는 것은 뱃살의 비곗덩어리뿐만이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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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평가단 10기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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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야,어머나, 이를 어째!!!

내 이럴 줄 알았지. 어제는 같이 사는 조카 생일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하긴 이건 잊은게 아니라 미처 챙기지 못해 생긴 일, 유구무언!

 

신간평가단 10기 마무리 작업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문자만 기다리다가 이제서야 허겁지겁 늦은 감사를 드리네요.

 

바빴고 바쁜 중에 숙제 처럼 읽어야 하는 책읽기가 기껍지만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공공의 장소에 내 글이 올라있고, 내가 내 글을 봐야 하는 것이 몹시도 부끄럽고 민망해서 아주 혼이 났습니다. 잊혀질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지요. 하지만 또 잊혀질까봐 두려운 것이 사람인지라... 내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둘러보니 이게 다 보석이네요.

 

그중에서도 최고의 책을 한 권 고르라면 나는 <16인의 반란자들>!

'지성'과 '현실'이 한 몸으로 뿜어내는 열정은 충격과 기쁨이었지요. 무엇보다 내가 고르지 않은 책이라서 기뻤던 책. 어쩌면 결코 읽지 못했을 책이었지요. 크, 아찔까지는 아니어도 아무튼 함께 책읽는 기쁨을 만끽했지요. 에세이 평가단 여러분들이 이 책을 골라주지 않았더라면 못읽었을 책. 함께 활동했던 에세이 평가단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그리고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빌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여행기> <꿈꾸는자 잡혀간다><오래된 새책>을 골라 봅니다.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숱한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그 미지의 세계 때문에 책을 다시 들겠지요. 그 기다림과 설렘의 순간은 늘 짜릿합니다. 누군가 보내주는 책을 기다리던 순간을 한동안 기억하겠지요. 

 

오늘 아침, 우리집 베란다는 아이 학교 과제로 심은 강낭콩이 곧 만개할 것 같은 떨림의 순간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모두가 이 순간에 계시길.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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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2-05-24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들 고르셨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수꽃다리님!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고요~
 
봄날은 간다 - 공제控除의 비망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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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은밀한 사귐의 시간이다.

알듯 모를듯 서로의 마음에 닿지 못해 애달퍼 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확 끌어당김의 쾌락을 맛보기도 하는 밀당의 시간.

책 밖에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세워놓는 매정한 '주름'의 시간도 있다. 인연이 아니면 그만 두면 될 일이건만 구애의 시간은 고통 조차 추억할 사건으로 만든다.   

 

김영민의 <봄날은 간다>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책 밖에서 그의 기척을 탐지하기 위해 온 몸의 촉수를 뻗쳐들고 있어야만 했다.

무수한 산책길에 동행하면서 그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불화'하면서 '이드거니' 스며드는지 눈 똑바로 뜨고 하나 하나 지켜보고 더러 더러 따라해 보기도 했다.  

그가  찔레꽃을 들여다보면 나또한 찔레꽃을 들여다보고, 걷기를 통해 만나는 우연이  불가능한 내 동네를 한탄했다. 그러는 동안 깨닫는다. 산이 아니라고 걷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걷지 않는 내가 문제다. '해넘을녘'의 강가의 는개를 볼 수 없다고 해도 세상 모든 곳에 황혼은 존재한다.  

이렇듯 순간에 집중하려는 나의 노력은, 그러나 휘딱 부는 바람한점에 흔들리고 말았다.

 

무엇보다 그의 책 마디마디마다 끼어있는 숱한 이론(혹은 철학)의 역습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구애자를 한방에 훅 보내버릴 만큼 막강한 제 삼자(들)다.  

듣다보다 처음인 우리말도 얄미운 방해꾼이고 일상적 말이 한자말로 떡하니 세워지니 독자는 그 또한 어려운 사람 앞에 선 아이나 촌사람이 된 것 같다. 참 어려운 상대다. 

 

그동안 읽었던 저자의 책들이 이 책과 다를 것 없었다. 그런데도 이 책에 대해 급한 마음이 든 건 이 책이 그 중 가장 개인적인 글들이기 때문이다. 철학가이기 전의 생활인으로서의 그를 엿볼 수 있는 기회. 전주와 밀양에서 산책하며, 가르치며, 만나며 궁글린 그의 생각들이 푸짐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다가가기 힘든 것은 그만큼 여기 실린 글들이 짧은 만큼 여백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백은 많고 내면은 거울 같다.  여백은 독자의 자발적인 이해와 고찰, 생각으로 채워져야 하는 공간이다.  

 

간신히 한 발 다가가면 슬쩍 나 앉는데 그게 저만치다. 갈테면 가라지 하고 돌아서고 싶은 마음인데, 사랑은 그럴수록 힘이 더 세진다. 그러니 때로는 꼭 그에게 가고 말리라는 심정으로 여백을 채워가기도 했다.  그렇게 놓아주지 않는 것이 <봄날은 간다>의 매력이고 저자의 힘이다.

미처 알아듣지 못해 민망하지만 독자로서 나는 이런 멋진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여전히 행복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한 내 공부에 절망했다.

 

책 한 권이 나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시한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다만 한 권에 대한 독서가 어떤 식으로든지 내 삶에 '주름'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저자가 사랑하는 찔레꽃이 내 주변에도 피기 시작했다. 나 또한 특별히 아끼는 꽃이다. 그는 꽃에서, 은행나무에서 신을 보는데, 그렇다면 나는 그 꽃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시대와 창의적으로 불화하면서 사는 것, 알면서 모른체 하기의 진경을 나는 아직도 가늠할 수 없어서 저자의 책 밖에서 서성대는 외로운 혹은 애처로운 구애자다. 스승이 너무 커서 올려다보다가 목이 꺾이게 생긴 늦되다 못해 될 성싶지 않은 제자마냥, 그또한 과분하니 '독애'하는 저자에 대한 독자의 짝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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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 2012-05-18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속에 녹아 있는 수수꽃다리님의 감성을 읽어내고 공감하며 기뻐하는 사람,
때론 문득문득 느껴지는 치열한 좌절에 마음이 아린 사람,
자학하지 못하게 옆에서 응원하고 싶은 사람,
수수꽃다리님에게도 열혈독자가 있다는 걸 잊지마시길......
아! 담백한 생각과 섬세한 표현! 멋지고도 다정한 그것을 느낄 수 있어
열혈독자는 행복합니다

수수꽃다리 2012-05-25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운영님!
콩꽃은 활짝 피지 않고 꼬투리를 낳으며 서서히 시들어가네요. 우리집 베란다에 아이 과제로 심은 강낭콩을 들여다 봅니다. 생산을 위한 꽃은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고 피는가 봅니다.
열혈독자가 있다는 사실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기도 하고 근심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자운영님의 서재에도 놀러가서 자운영님 글을 볼 수 있다면~~~~부디, 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