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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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북경을 여행하다가 어느 주막집 벽에 씌어진 <호질>을 '열나게'(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베껴쓴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있어서!

 

소설 <위풍당당>을 읽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 또한 재미다.

한 두 장면을 꼽을 수 없을 만큼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그야말로 웃겨 죽는다. 뭐 이런 어리버리한 전국구 조직이 있을까 싶을 만큼 조직폭력배들의 주고 받고 씨부리는 말들은 현실이되 야릇하게 밉지 않으니 재미가 있다.  

 

살다살다 이렇게 운이 없고 슬프고 불쌍한 인간들이 다 있는가 싶을 만큼 상처로 얼이 빠진 것 같은 사람들이 드라마 세트 장에 모여 살게 되는데, 이들이 데면데면 사는 꼬라지가 또 재미있다.

 

영필의 멋드러지고 과장된 노래, 더듬 더듬 말 꼬리를 야무지게 매듭짓지 못하는데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아자씨' 하며 말문을 여는 여산, 사람보다 꽃과 더 많이 친한 소희, 여산을 좋아하는 이령, 자폐를 앓고 있는 준호, 말끝마다 문자질 종결 어미처럼 그랬어염, 저랬지염 제대로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은 준호 누나 새미, 거기에 스님이 끼어 가족 아닌 가족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가 싶다가 전국구 조직하고 역사적인 한판 겨루기를 하는 사이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가 되고 아들 딸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은 현장의 언어(말)로 되살려 지는데 말이 문자로 옮겨지되 독자에게 다시 말로 전달되는 과정 자체가 그야말로 생생하다.

조폭들이 주고 받는 그들의 일상의 대화가 어찌나 실감나고 재미나는가, '쉐발루' '쉬버럴' 같은 말이 가령 자연미인 새미를 어떻게 해보려는 보스 심부름을 왔다가 결국 똥통에 빠진 조직원 양구가 내지르는 다음과 같은 절규에 이르면 정말 웃지 않고는 못배긴다.

 

 "야, 이 쉬우부아올 놈들아, 쉬우부으루알 것들아 어디 가냐......우리 죽으란 말이냐.......여긴 더러워서 못 산다......빨리 꺼내라.....야 이 시베리아야....안 꺼내주면 다 죽인다.....죽어도 죽인다....." (141쪽)

 

위풍당당하기로야 전국구 조직 정묵이네를 당할 수 없을 터이지만, 여산이 이끄는 세트장 마을 사람들의 기세 또한 살아나는 불씨처럼 은근히 뜨겁다. 결국 전세가 역전되어 이 말도 안되는 마을에서 도망가느라 전국구 조직의 꼴이 말씀이 아니다. 그 모든 과정이 유쾌하고 재미있다는 것.

 

여산이네도 상처를 입지만 그들은 일대 전쟁에서 승리한 후 가족으로 귀환한다. 위풍당당하게.

 

이 모든 일의 배경은 강이다.

소설에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여산은 강에서 고기를 잡아 식구를 먹여 살린다.

강에는 세트장 마을 사람들만 깃들어 사는 것이 아니라 참 많은 생명이 깃들어 산다. 소설은 각 장의 이야기를 열때마다 뭇 생명을 내세우며 시작한다.

 

그런데 불길하게도 뭔가 쳐들어 오는 것 같다. 아주 아주 위풍당당하게. "강의 모든 것을 때려 엎을 기계 군단이다."

 

정묵 일당과 여산 일당의 싸움이 조금씩 고조되면서 흥분하고 어떻게 될까 조마조마 하면서 마음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다가 그들의 싸움이 끝나는 순간, 나타난 기계 군단이 조금은 당황 스러웠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강을 살리겠다는 말로 느닷없이 들이닥친 기계의 소식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정묵 일당은 도망치고 세트장마을 사람들은 다시 길 위에 섰다.

돈도 없고 맨 몸인 이들이 그나마 빈 세트장이라 깃들어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들은 어디가서 고픈 배를 채울 라면을 끓일 수 있을까.

그러니 가장 위풍당당한 것은 개발이나 살린다는 가면을 쓴 거대한 파괴의 기계군단 뿐인 것 같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지만 다시 강의 생명력을 믿듯이 다시 이 이상한 가족의 합체를 믿을 뿐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완성하는 데 들이는 노력이 건축가의 설계 도면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완성도가 높다는 말은 철저한 계획과 설계로 만들어진 건물이 그렇듯이 이야기도 그럴 것이다.

 <위풍당당>은 각 장이 소제목만 따로 읽어도 한 편의 시가 된다. 각 장의 소제목은 서로 다른 노래에서 따온 말들인데 이걸 죽 늘어놓고 한 번에 읽어보라.

 누군가는 어느 부지런한 독자가 이 노래들만 한데 모아 놓았으면 좋겠다며 자기의 게으름에 민망해 하면서도 은근히 바라는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비슷한 상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는 것도 가족의 조합 요건으로 더 어울린다는 생각까지 해 보았으니 재미있게 읽은 독자는 보이는 것 말고 더 늘어놓을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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