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 명작으로 배우는 사랑의 법칙
김환영 지음 / 싱긋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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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연애를 책으로 배웠냐?"는 건 비웃을 때 쓰는 말이지만 때로는 내가 못 느껴 본 경지까지를 엿보고 싶을 때 책에 기댈 필요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못 해 본 사랑의 단계나 못 느낀 감정이 없고 전부 몸으로 배웠다고 하는 사람은 그게 이미 셰익스피어이지 일반인이 아니겠습니다. 만약 사랑을 하다가 크게 다치기라고 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책으로 "미처 못 나갔던 진도를 마저 나가고"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달달한 감정과 다른 세상에나 간 듯 황홀한 느낌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 책은 다 읽고 나면 인문 교양 상식이 많이 느는 깊이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이 깜짝 놀라는 게 성경, 특히 <아가>나 시편 같은 데서 꽤나 절절한 애정의 정서가 묻어난다는 점이고, 이 책도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가씨는 왜 가뭇했을까?(p76)" 하긴 대체로는 순백의 피부를 뽐내는 아가씨가 아름답(게 느껴지)지, 그 반대가 아닌데 성경의 해당 구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사랑에 대한 중의적 표현인가? 여기 나온 사람들은 "모두 관계를 마친 후에" 그 절절한 느낌을 표현하는 건가? 저자는 그런 해석이 반드시 옳을 수는 없다고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옳고 그르고를 따지면 이미 문학의 해석이나 감성이 아닙니다. 며칠 전 어느 프로그램을 보니 어느 원로 전문가가 "우리 때 트로트는 청중의 해석과 감정 이입이 가능한 여백이 있었다(요즘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고 하던데, 해석은 진짜 독자의 특권입니다. 설령 "야설"로 읽는다고 해도 그 역시 독자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특히 성경의 경우 그게 가능하려면 "내용적 동등성"보다는 직역(가능하면 원문)으로 읽어야 합니다.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조국과 부왕을 버린 비정한, 아니 너무도 다정한 여인입니다(나중에는 싸이코패스가 되지만 여튼 처음에는). 이런 분은 우리 한국에도 그 한 원형이 있어서 자명고를 찢은 낙랑 공주의 이야기가 또 오래 전해지죠.

얼마 전에 리니지 M이라는 게임이 새로 나왔는데 그 광고 배경 음악이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였습니다. 이게 왜 배경으로 쓰였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저희 부모님 세대가 대학 다니면서 이 노래를 부를 시절에는 뭔가 있어 보이면서도 분위기를 잡는 필수 아이템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 에디트 피아프 개인(그 "개인" 아님)도 그렇고 노래도 왠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대목은 악에 받친 것 같기도 하고 욕설을 내뱉는 듯도 하고... 그런데 이 책에는 그에 대한 솔직하고 공감 가는 평설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나... 여튼 사랑의 이야기 주인공 중에는 저런 메데이아 같은 원형이 있곤 해서 뭔가 찜찜한 느낌도 주는 게 사실입니다. 에이.

"성적인 우정"이 있을 수 있나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을 두고 저자는 이 이슈를 끄집어냅니다. 영화 <프렌즈 위드 베네핏>도 결국은 이런 이야기인데 베네핏이 바로 그 뜻(?)입니다. 사람 사이의 친밀감이 무슨 장벽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어떤 선을 넘지 말고, 지켜야 할 건 지키는 중에" 더 흐뭇한(므흣한이 아닌) 관계의 보람을 얻습니다. 어떤 성적인 거리낌을 애써 쌓을 필요야 없지만, 반대로 모든 걸 성으로 귀결시키는 것도 우습습니다(사드 후작처럼).

문학에서의 모든 체험은 간접적입니다. 세상에는 모든 걸 직접 겪을 수 없기에 간접으로 백신을 맞고 겪어도 겪어 보는 게 더 안전할 수 있습니다. 혹 사랑이라는 게 직접 만져 보기엔 무서운 불 같은 것이라면, 그냥 안전하게 책으로 배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짜릿한 걸 못 해 보고 죽는다면" 너무 아쉽고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확 줄어들겠죠. 과연 그런 건지 아닌지도 여튼 책에서 확인 가능하니 한번 도전은 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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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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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것인지 모른 채 덩그러니 놓인 원고는 그저 보기만 해도 호기심을 자아낼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땅끝마을"이 있습니다만 프랑스에도 저 남쪽 해안에 그 비슷한 이름을 가진 지역이 있는가 봅니다. 여튼 저 "땅끝마을"의 어느 호텔 서랍 속에서 원고가 발견되고, 그 원고는 막연한 주소 하나에 기대어 어렵사리 주인을 찾아갑니다. 마치 "병 속에 담긴 편지"가 임의의 수신인을 찾아가는 셈인데, 그런 편지야 먼저 손에 쥐는 사람이 임자입니다만 이 원고는 엄연히 원작자가 있기에 사정이 많이 다르긴 합니다.

아무튼 꽤나 낭만적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갑자기 사망자가 느는 바람에 망자들의 재산을 여기저기서 상속 받은 누군가가 갑자기 부자가 되는 수가 많았다고 합니다만 최소한의 사회적 신뢰가 살아 있거나 적어도 공증 제도가 원활히 기능해야 그런 신기한 일이 가능하지 않겠나 싶기도 합니다. 이 소설, 아니 거진 실화는 "잘 작동하는 우편 제도"라든가, 물건의 주인과 원작자를 존중하는 사회적 문화가 있어야 애초에 성립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라면 이런 기적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얼마든지 가능했을 듯하고, 거기에 한국인들 특유의 해학성과 신명이 곁들여져 더 우습고(?) 더 정감 어린 사연이 하나 만들어졌을 법도 하다 싶었습니다. 아무튼 이 사연은 정말 "프랑스적"이었습니다. 지명이나 인명 등이 프랑스식이 아니었다 해도 읽는 이들 대부분이 "거 참 프랑스스럽다"고 느낄 만큼 말입니다.

우리가 예전 초등학교를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는 "일기와 편지"라는 단원이 있었습니다. 일기와 서간문은 초등 과정에서는 장르가 비슷한 걸로 다뤄졌던 거죠. 이 훈훈하고 약간은 미스테리스러운 작품은 서간체 소설이지만, 1인칭과 2인칭만 등장하는 대목이 많기에 일기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일기와 편지는 닮은 점이 많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소설" 과연 그렇습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려면 남이 쓴 글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과 정서가 받쳐 줘야 할 듯하고, 동시에 남이 남긴 미완성의 사연에 감정 이입하여 "나라도 이 빈 부분을 완성해 줬으면"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쓴 건 맞는데, 뒷부분은 다른 분, 저보다 훨씬 세련되게 글을 쓰는 다른 분 솜씨인 걸요?" 세계 최초로 미스테리 장르물을 고안해 낸 에드가 앨런 포는 물론 미국인이었지만 오귀스트 뒤팽이 활약한 그의 픽션은 대부분이 프랑스 배경이었고, 르블랑의 뤼팽도 "편지"를 단서로 삼아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죠. 이 작품은 추리물은 아니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에 고생도 하곤 하는 우리들의 고민 아닌 고민을 대신 해결해 주는 듯해서 좋았습니다. 훈훈하고 아름다운 사연은 남이 엿봐도 즐겁고, 동참, 동감하는 가운데 이미 "남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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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지음 / 문이당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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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이정하 시인의 이름을 혹시 모르더라도 저 유명한 구절은 귀에 익을 듯도 합니다. 사랑에 빠져 본 이라면 (경우가 전부 다를 텐데도) 무한 공감하게 만드는 시구이죠. 아니 정말, 너는 눈부시고 나는 눈물겨운 게 맞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실까요.

이정하 시인의 책이 간만에 나온 거 같은데 책장 넘기면서 내내 좋았습니다. 사진도 많이 실렸고 텍스트와 어울리는 듯 한참을 두고 보게 되었습니다. "기분 좋다!"란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말입니다.

얼마 전 "OO 못 잃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뭐 좀 그렇기도 합니다만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은 건 어떻게 보면 우리 존재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인생은 결국 육신을 놓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데 그때 잃는 게 육신일 뿐 우리 전체가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가 있죠. 그런데 시인은 "못 잃어하지 말고 놓아주라"고 합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을 어디(그게 나 자신이라고 해도)에 가두어 두려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잃는 건" 더 이상 잃는 게 아니라 그(녀)를 내 마음에 영원히 간직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하긴 많은 치정 사건, 스토킹, 데이트 폭력 같은 게 다 자기만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아주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주인공 오혜성처럼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누굴 지켜 주려 했던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사랑은 또 어떨까요? 전 어렸을 때 그 만화를 읽으면서 좀 무섭기도 했는데 이 역시 문제는 있습니다.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늘 우울했어." 이건 꼭 연인이 아니라 친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 만나는 친구가 아니라 어렸을 때의 애틋한 친구 말이죠. 그런데 그런 친구는 내일 또 만난다는 보장이 있지만, 시인이 여기서 염두에 두는 연인은 뭔가 내 그릇에는 과분한 그런 상대인 거 같습니다. 아 왜 난 널 좋아해갖구 말이야, 언젠가는 (결국) 부족한 내가 널 놓아줘야 할 거 같은 불안감, 미안함에 시달리게 하느냔 말이지, 뭐 이런 느낌요.

내가 부족해서 미안한 건 이게 본래 그런 걸까요, 아님 특정한 커플에만 해당하는 걸까요. 하긴 현재가 그저 흐뭇한 커플이라면 이런 고민 자체를 안 하겠으니 당연 보편적인 사정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 난 너한테 부족해." 이런 느낌을 가져 본 사람이라야 진짜 연애를 하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항상 나아!를 뽐내는 사람이라면 원하는 이성과 문제 없이 여태 연애를 해 봤겠지만, 애틋한 저런 마음을 품어 본 적 없으므로 그런 사랑은 결국 다 속이 빈 것입니다. 하하.

밤 열차를 타 보신 적 있습니까? 전 많은데 그러나 시인처럼 사랑 때문에 "아마도 늦게 헤어져서" 그래 본 적은 없는 듯합니다. 더 나눌 정을 못 나누고 홀로 쓸쓸한 풍경을 보며 몸을 싣는 열차란 확실히 느낌이 다를 것 같습니다.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늘 우울했어." 가 또 떠오르겠지만, 이런 추억은 나이 훨씬 들고 나서 그때를 회상할 때 참 달콤쌉싸름할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언제나 성공적인 연애(헌팅?)만 한 사람한테는 간직될 수 없는, 아픈 사랑의 당사자만 누릴 수 있는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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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인연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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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시적(詩的)입니다. 내용은 더 "시적"입니다. 아이들이 어느날 학교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를 만들러 "페르세우스 유성군이 찬란한 우주 쇼를 벌이는 광경"을 보러 밤에 몰래 외출합니다. 그날 밤에 아이들의 부모는 어떤 범죄자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당하고, (작품 한참 뒤에 겨우 나오지만) 많이 떨어진 다른 집의 어떤 아이는 평소에 천문 현상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자상한 아버지를 하필 그날따라 곁에 두지 않습니다. 엇갈린 운명은 끝까지 기묘한 장난을 치고, 작위적인 연극 연출자도 일부러 이리 못 만들 만큼놀라운 사연으로 발전합니다. 결말의 반전은 너무나도 충격입니다, 원.

비극을 겪어 내기에 여동생은 아직 너무 어립니다. 둘째인 남동생도 어린 건 마찬가지라서 형사가 묻는 질문에 대답도 제대로 못합니다. "센 얼굴이라니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알아듣니?(p62)" 형이 다그치지지만 아직 말솜씨나 사고가 여물지 못했는데 어쩌겠습니까. 아이들은 아동 보호 시설로 위탁되며(이 책에는 고아원이라는 말이 한 번도 안 나오는데 차별적, 비하적 언어의 지양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아들과 별 다를 바도 없는 한심한 인생들의 경솔한 입놀림과는 무척 대비되죠^^), 제가 걱정했던 바와 달리 아이들은 그런 나쁜 환경에서 별반 큰 상처를 입지 않았던 듯합니다. 일본의 "그런 시설"은 아마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나 보죠? 하긴 이런 저의 느낌부터가 근거 없는 편견에 불과하지만요. 반성합니다.

아이들이 첫번째 상처를 입은 건 성인이 되고 나서였습니다. 막내동생인 시즈나는 예쁜 여성으로 성장했는데 오히려 이게 상처를 부르는 빌미가 됩니다. "예쁘시니까 저의 애스테틱 사업 모델로 좀..." 그런 교육생 모집이 결국은 사기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큰형이자 삼남매 리더인 고이치는 p106에서 이렇게 말하네요. "돈은 본래 돌고 도는 거야(그게 그런 뜻인가요?). 내가 사기를 당했으면 나도 남에게 갚아줘야지, 정치인들이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러도 국민들이 폭동 일으키는 거 봤어? 우리도 남에게 당하고만 사는 게 아니라 남을 짓밟는 입장으로 살아야 해." 원 이게 말이 됩니까? 그들의 딱한 사정은 십분 이해가 되지만, 나한테 해코지를 한 사람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는 건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악행입니다. 이렇게 장레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사회에 악을 퍼뜨리는 바이러스 노릇을 자처한다는 게 얼마나 기가 찬 일입니까?

여튼 삼남매는 시즈나의 미모, 다이스케의 놀라운 연기력에 기대어 사기행각을 이어갑니다. "꾹 참는 것 따위는 몰랐던(p37)" 아직 어린 나이의 여동생은 그새 미인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금고 따위는 아무 소용 없어."(p48)라며 평소에 주의 깊게 재산을 간수했던 빈틈 없던 부친, 허술한 듯 하면서도 자신만의 레시피(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를 잘 개발해 손님을 끌어모았던 아버지, 이런 분을 하루아침에 잃고 삼남매는 험한 세상을 합심하여(이들 사이에는 아무 불화가 없다는 게 특이하더군요) 여튼 살아갑니다만 문제는 그 수단이 사기라는 점입니다.

p52에는 "머리가 헤싱헤싱"하다는 편의점 점장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우리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제발 이 점장(그 뒤에도 한 번 정도 더 나옵니다)이 좀 구체적인 정보를 기억해 줬으면 하지만 그런 기대는 배반당합니다. 현대문학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는 대부분 양윤옥 선생이 맡는데 저 "헤싱헤싱"이란 단어만 봐도 그 진가를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p81에 가시와바라 형사가 그 부친(읽어보시면 나옵니다)을 만나러 갔을 때 "어림없지!"라며 양육 의무를 부인하는 태도를 보고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슨 본인이 큰 손해를 본 양 과장하는 태도라니... 이런 자가 있으니 시즈나가 더욱 부모의 원한을 깊게 새기고 동시에 (사실은 자기하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오빠들에게 더 정을 느끼는 거겠죠?

p159을 보면 누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란 말이 나옵니다. 자신은 어려서 양식당을 하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고, 그 착한 마음은 그 무렵부터 싹트기 시작했으며, 비록 도박벽이 있었지만 자기 일에는 장인 정신을 갖고 몰입했던 아빠한테 아마도 착한 심성을 배웠을 시즈나. 그래서 이 무대, "양식당"이라는 장소 안에서는 다시 착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었겠죠.

p243에 보면 그 성공한 사장님의 한 마디가 나옵니다. "그들은 경쟁자이자 전우이지." 저는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일까 싶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일단은 거리 전체를 살려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들이 입점한 거리 전체가 "긴자나 롯폰기에 손님들을 빼앗기고 나면 남는 게 없고, 사람들을 모아온 후에야 우리끼리 경쟁을 해도 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이런 장사꾼들의 생생한 대화 속 디테일이 살아 있음도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p292에 "체인점를"이라고 사소한 오타가 있습니다.

p269에 우리 독자들이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의심의 눈길은 "그 사장님"에게 쏠립니다. 하필 그 공교로운 시점에, 더군다나 동종의, 아니 완전 동일한 요리 아이템인 하이라이스로 그 유명세를 타고 큰 돈을 벌었겠습니까? 우리 독자들은 이 즈음에 "그래도 무슨 반전이 있겠거니" 기대를 가질 수도 있고, 아니 혹시 그게 아니라 사장님의 눈물 어린 회오, 반성으로 결착하는 것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어느쪽이 되었든 간에 독자들은 작가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정도로 확신을 갖습니다. 그런데...

요리사가 직접 배달을 해야 할 만큼 힘든 사정에서, 무슨 돈으로 레시피를 그냥 산단 말인가, 뭐 이런 쪽으로 생각이 흐르면, 결국 이 사람이 범인이 아닌가, 아마 이 지점까지는 이런 쪽의 짐작이 독자층 대세겠지요? 결말은 2권을 내처 읽어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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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세계 경제 위기가 시작됐다 - 다가올 경제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법
미야자키 마사히로.다무라 히데오 지음, 박재영 옮김, 안유화 감수 / 센시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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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큰일입니다. 바이러스 만연만 큰일이 아니라 경제가 큰일입니다. 정치가 불안한 것도 큰일이지만 애초에 정치가 불안해지는 건 국민들이, 사람들이 먹고 사는 밑바탕의 문제가 불안해져서 터지는 문제들입니다.

세계는 벌써 오래전부터 성장의 한계에 부딪혀 왔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엔진을 찾고, 새로운 동력을 모색하는 게 (성장 그 자체 못지 않은) 또하나의 과제였습니다. 그 역할을 중국이 훌륭히 수행해 왔고, 이 덕분에 적어도 지난 십 수 년 간은 세계 경제가 딱히 큰 공황을 겪거나 하지 않고 무사히 (대체로는요) 넘겨온 게 사실입니다. 2008년, 2012년에 큰 위기가 있었으나 이 역시 생각보다는 큰, 재앙적인 상황을 맞거나 하지는 않고 넘어간 편입니다.

이 모든 게 중국의 덕분인가? 그렇기야 하겠습니까만 밉건 곱건 간에 팩트로서 인정할 건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튼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해 온 중국이, 최근 몇 년 동안은 그렇지 못합니다. 실물 분야에서도 큰 위기가 벌써 여럿 조짐이 보이는 데다, 벌써 몇 년 전 그토록 큰 희망을 품고 시작한 "후강퉁" 등 야심찬 실험이 그리 성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이러면 세계 경제에도 위기가 닥치는 겁니다.

애써 번 돈이 국외로 빠져 나가는 건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국내 정치가 불안하다거나, 조세 정책이 불합리하다거나, 성장 전망이 안 보인다거나... 다무라와 미야자키 두 대담자는 이런 주제에 대해 책 내내 치열한 논쟁을 펼칩니다. 경제 문제는 이처럼, 한 저자의 도도한 담론과 해설을 듣는 것도 유익하지만, 그보다는 어느 정도 세계관을 공유하면서도 각론에 있어 대립각을 세우는 두 사람 혹은 세 사람 사이의 치열한 논쟁을 관전하는 게 공부도 더 되고 재미가 있습니다. 어느 한 편에 서서 "나라면 이런 논리로 받아 쳐 보겠다"는 가상의 싸움도 벌여 보고 말입니다.

"'트럼프 정부의 고관세 정책 탓으로 대미 무역 적자가 급격히 줄었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p92)." 즉 이미 그전부터 중국의 흑자와 성장폭은 큰 감소 추세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다른 이유를 찾을 게 아니라 중국 경제의 저력, 포텐셜 자체가 줄어 든 팩터를 반영해서입니다. 트럼프라는 사람이 워낙 요란하게 제스처를 취하고, 때로는 터무니없는 것까지 자기 업적이라며 허위 과장 선전을 일삼지만 이는 정치인으로서 노련히 구사하는 책략에 불과합니다. 그는 대단히 영악하고 노련한 사업가이기 때문에, 자기가 뒷감당도 못 할 무리수를 두다가 대세를 망치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원인이 아니라 냉정히 따져 보면 "결과"에 지나지 않고, 진짜 원인은 급격히 약화된 중국 경제의 체질입니다.

판빙빙 이야기가 나오는데, 무슨 중국 고위층에 의해 납치를 당했다 같은 근거 없는 성추문 따위가 아니라, 실제로 그녀가 자신의 지친과 벌인 탈세 스캔들의 실체 등 구체적인 분석이 이어집니다. 이게 그저 호사가들의 화제가 아니라, 이런 사례를 보며 왜 중국 기업들이 한때 잘나가던 그 기세를 못 이어가고 하나둘 주저앉는가에 대한 신랄한 케이스 스터디를 제공해 주는 면이 분명 있습니다.

"내분이 발전해 표면화하면 확실히 공산당 소속인 리커창이 힘을 얻을 것입니다(p175)." 화웨이 같은 경우 중국 군부와 밀착했다는 의혹을 전세계적으로 받는 중입니다만 왜 군대가 기업에 손을 대는 걸까요?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패 때문에 필요한 곳에 자원이, 예산이 분배되지 못해서입니다. 군대의 처우가 열악해질 수밖에 없고, 이런 군인들의 불만은 (중국 당국 입장에서 볼 때) 불온한 움직임으로 이어집니다. 당연히 감시의 눈길이 더 쏠리며, 이는 비효율의 또다른 섹터를 발생시킵니다.

일대일로는 과연 모두에게 이익일까요? 원래는 일본에까지 범위가 미치지 않던 것을, 최근에는 양국 최고 책임자가 만나 그 진도가 많이 진척되었습니다. 이와 관련 저자들은 "체결하려는 통화 스와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놓고 토의합니다. 최근 들어 일본도 부쩍 미국과 사이가 나빠졌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아베 총리는 결국 중국 측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으며, 안에서 밖에서 위기를 맞는 시진핑 역시 이런 손길이 달갑게 느껴졌을 겁니다. 최근 도저히 믿어지질 않는 중-일 밀월 관계는 이런 바탕에서 시작했습니다. 헌데 기본 바탕이 부실한 이런 움직임이 과연 얼마나지속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지금 대내외적으로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애초에 자본주의와 중앙 통제는 서로 상성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등소평 때부터 아슬아슬 이어오던 실험이 이제서야 중대 고비를 직면한 셈인데, 문제는 중국의 좌절이 각국에 엄청난 파고로 연쇄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바이러스도 개개인이 지혜로운 대처로 큰 재앙을 막아내듯, 경제 위기 역시 모든 나라의 현명한 시민이 합리적인 소비 행태로 자각, 재무장하면 결국 극복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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