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이코노미스트 세계경제대전망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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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하는 건 언제나 어렵습니다. 미래를 제법 잘 예측하는 사람은 큰 돈을 벌기도 합니다. 사회에서 올리는 수입은 성원들이 그의 능력과 기여에 대해 베푸는 평가의 척도이기도 하니, 미래를 잘 예측하는 일은 그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편안하게 해 주는 아주 중요한 과업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예측이라 함은 우리가 아무의 말이나 믿지 않고, 여태 공신력 있게 세상을 바라보고 정확한 진단을 해 온 전문가 집단에서 나온 말들을 믿습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큰 공신력을 지닌 미디어 중 하나가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일 것입니다. 잡지의 역사도 오래되었고 필진의 무게와 설득력도 여전히 대단합니다. 세상사를 가벼히 논하는 태도는 누구에게라도 용납이 안 되겠으나 특히 경제 문제를 따질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달려 있으므로 각별히 신중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경제 이슈 분석에는 경제 본연의 영역뿐 아니라 정치, 사회, 가까운 역사 정보까지 총동원되며, 경제 영역에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경제 정책의 향방을 결정하는 게 (그게 바람직하든 아니든 간에) 언제나 정치였지 않았습니까.

2020년은 새해 벽두부터 중요한, 위험한 국지적 충돌로 장식되었습니다. 이 책은 2020년을 전망하지만, 사실 책이 쓰여지고 출판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하므로 대부분의 아티클들은 꽤 오래 전에 자작성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많은 글들은 여전히 흥미로우며, 아직도 열 한 달 이상 남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어서 유용합니다. 어떤 글은 그 실현 여부를 바짝 앞두고도 있기에, 과연 이 글이 "지면상의 성지글"이 될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게 다 독자로서의 특권입니다. 필자들은 조마조마하겠지만 말입니다.

"출판되기까지 꽤 긴 시간..." 운운했습니다만 마치 전혀 아니라는 듯이, 이 책 p91이하에서 다루는 이슈는 바로 잉글랜드 은행을 새로 이끌 총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잉글랜드 은행은 우리 식으로(사실은 일본식으로) "영란은행"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아주 유서 깊은 기관인데요. 바로 십수 일 전에 이와 관련된 뉴스가 전파를 타기도 했기에 이 책의 해당 분석글이 더욱 큰 실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카니의 통치는 끝났다.". 영국이나 미국이나 저널리즘 기사투는 대단히 문학적(?)이며 때로는 과장이 섞여 있습니다. 사십여 년 전 닉슨이 특별검사를 해임했을 때에도 "학살'이란 표현이 즐겨 사용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사건은 그리 불리기도 하죠. 카니 총재의 행보나 스타일도 여튼 전횡이라 일컬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글의 필자는 그 나름 복잡한 소회를 피력하는군요. 여튼 어디서나 브렉시트가 문제입니다. 이제 해결의 갈피를 잡아 갑니다만 말이죠.

수십 년 전부터 중국이 새로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다느니, 사실 지난 수천 년 간 누려 오던 자리를 되찾을 뿐이라느니 하는 말이 유행했지만 어떻게 된 게 최근의 그들 행보는 갈수록 전망이 나빠집니다. 언제까지 그들은 "이름 뿐인 금융 중심지(이 책의 표현입니다)"인 상해를 목표 지점에 올려 놓을까요? 이 글에서는 말미에 뜻밖에도 축구 이야기를 꺼내는데, 이코노미스트 같은 점잖은 매체에서 다루기에 가벼운 소재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축구 이야기가 결국은 정치 이야기이고 경제 이야기더군요. 이 책 나오고 나서 얼마 후에 히딩크가 대표팀에서 짤리기도 했기에 더욱 시의성이 높습니다.

이 책은 바로 지금 사서 읽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꼭 지금이 새해 벽두라서가 아닙니다. 대만의 총통 선거 이슈, 홍콩의 시위, 페르시아 만의 위기 등등이 마치 사전에 조율이라도 한 양 지금 연달아 핫 이슈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하필 지금 읽는 독자는 "와 과연 이코노미스트라서 이슈가 될 만한 일들을 잘도 엮었구나."하고 감탄할 만도 한데(TV만 틀면 그 뉴스들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는 우연의 일치이지 이코노미스트의 필진이 탁월한 데에만 기대는 건 아닙니다(그건 신이라고 해도 불가능하지 않을지...). 하긴 모르죠. 내공 깊은 필진이라 정말로 적중을 시키고 있는 중일지도요. 여튼 이분들이 하는 이야기는 특히나 신년 정초에 한번쯤 차분하게 귀 기울일 가치가 있습니다. 분명.

책 말미에 실린 간단한 세계 전망에는 한국 이야기도 나오는데, 한국의 4월 총선에 대해 제법 대담한 예측도 꺼냅니다. 보통 이런 데서 하는 이야기는 두루뭉술 펼쳐지기 마련인데 이 책의 태도는 그 기준보다는 훨씬 직설적입니다. 오랜 명성은 괜히 생기는 게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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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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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에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건 가장 큰 무례일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그것이 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최상의 배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소중한 생명을 부여받아 이 거친 세상, 때로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열심히 부대끼며 사는 중입니다. 그 와중에서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하는 건 바로 "죽음"이라는 운명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죽음이란 무서운 관문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할 운명이며 이를 피해갈 방법은 전혀 없죠. 그런데 우리가 품위 있게 이 비참한 운명을 접대하고 잘 정리할 방법은 있습니다. 바로 달관입니다. 그리고 그 달관이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는 여유를 갖고 이 죽음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과 웃음은 경우에 따라 매우 잘 어울립니다. 이 유쾌한 소설은 바로 이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때는 살짝 엉덩이가 처지긴 했어도 전체적으로 괜찮은 몸매였는데(p175)." 한창 때의 여성은 마치 초원을 활짝 아름답게 수 놓는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지구를 밝히는 미의 결정체이구나 싶게끔요. 한창 때 여인의 환한 미소를 보면 세상 근심 걱정이 다 없어집니다. 체형은 마치 터질 듯 부풀어오르면서도 절묘한 균형을 잡아 보는 사람이 다 흐뭇합니다. 거친 세상에서 먹을 것을 마련해 오는 수고는 남성들이 대개 도맡습니다만, 세상 살 맛을 제공해 주는 건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삼라 만상의 존재 이유를 구성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여성도 어느 새 전성기가 지나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되어 냉혹한 죽음을 언젠가는 맞아야 합니다.

"아우야, 바위는 산의 일부였을 적을 기억하는 법이야(p338)." 우리 모두는 기억을 갖고 삽니다. 그 기억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위기를 맞았을 때 중요한 참고 자료를 제공하기도 하며, 힘든 순간이 닥쳤을 때 이를 이겨낼 감정적인 힘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어떤 기억은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합니다. 그런 유쾌한 기억은 죽음 앞에 섰을 때조차 우리에게 무한한 용기를 제공합니다.

미겔 엔젤 역시 그런 기억에 기대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의 일원입니다. 그는 하필, 가장 기쁜 순간을 기념해야 할 자신의 생일에 존속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맞습니다. 우리도 흔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라든가,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표현을 씁니다. "크루스"는 스페인어로 십자가라는 뜻인데, 저들 문화권의 중요한 원천이었던 기독교에서는 "누구나 다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가르침을 공유합니다. 그 십자가는 결코 자신이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지 않는다고도 가르칩니다. 만약 그 범위를 넘는다고 느낀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에게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웃음"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얼마 전 등장한 트럼프하라는 정치인이 두 나라 사이에 쌓은 장벽. 그 장벽의 이편과 저편에서 갖가지 양태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작가도 그렇고,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도 국경의 이편저편을 넘나들며 갖가지 양상으로 삶과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가장 축복받은 인생은 그의 주변 인물들이 조용한 박수를 쳐 주며 그가 모은 재산의 다과에 무관하게 언제나 응원을 보내 주는, 그런 흐뭇한 장노년이 아닐까 싶습니다. 빅 엔젤은 정말 인생 제대로 산 분입니다. 그에게 설령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되었건 간에, 그는 자신의 주변에 잔잔한 웃음을 주고 꺼지지 않는 햇살을 비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그를 향해 미소를 띄울 때, 우리 자신들도 아마 언젠가는 찾아올 우리들의 죽음을 놓고 아마 보다 편한 마음이 되어 있을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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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는 의심한다 -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보 로토의 ‘다르게 보기’의 과학
보 로토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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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보는 노력은 그 자체로 위함하고, 적어도 부담이 됩니다. 회사에서도 남들이 예스를 외칠 때 홀로 노를 말하는 이는 경계, 질시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죠. 하지만 요즘은 일상에서조차 혁신을 강조하는 세상입니다. 루틴에 젖으면 언제 도태될지 모르며, 그걸 떠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이 작은 행복이라도 찾으려면 다르게 보기를 습관으로 길들일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신경과학자 보 로토 교수의 이 책은, 대체 우리의 생각과 느낌이라고 믿는 많은 것들이 어느 정도까지나 우리 자신의 것인지, 혹은 그저 길들여지는 과정일 뿐인지 우리 독자들에게 근본적인 반성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세상은 끊임 없이 변화하며, 뇌는 어떤 식으로건 이를 해석하고 정보를 정리해야만 합니다. 쉼 없이 어떤 판단을 행하는 우리이지만 그 기초가 되는 정보는 "눈으로 본다"고 여기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누가 우리 생각과 다른 판단을 말하면 "그거 내 눈으로 분명히 본 거거든?"이라며 길길이 뛰기도 합니다. 본인은 본인 눈으로 본 명백한 "팩트"를 부정당하는 게 참을 수 없습니다. 사실은 야얄팍한 자존에 상처를 입었을 뿐인데도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양 "정의(착각입니다)"의 분노를 쏟아냅니다. 그리고, 이런 착각에 빠진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어지러워집니다. 이성과 논리에 의해 세상사가 결정되어야 하는데 그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길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말입니다.

"러브 스토리"는 그저 에릭 시걸의 픽션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회색질의 대뇌 피질(명탐정 에르퀼 푸아로가 내세우던 모토이기도 하죠), 그리고 시상은 우리가 사물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환상적인 "러브 스토리"라 성격 규정합니다(p113).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하여 세상 자체가 끊임 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성격임을 강조하며, 동시에 피질과 시상(세포) 역시 서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불태우며 그 의존, 상호 관계를 진화시켰음을 주장합니다.

과연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며, 이 세상이 날이면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게 가꿔지는 원동력임이 분명한 듯합니다. 물론 과학으로 증명될 만한 명제는 아니지만, 과학자의 날카로운 통찰이 아니겠습니까.

편향과 가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주관적 뿌리(p240)는 어찌 보면 두려움에 기인합니다. 우리는 어떤 경로로든 이미 뇌 속에 익숙하게 자리한 것을 근거도 없이 진리로 규정하고, 그 반대의 것을 그르다며 폭주를 일삼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객관은 그런 우리 마음 속의 불건전한 요동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모습을 유지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미약한 신경 더미들이 채 따라잡기도 전에 그 모습을 바꿉니다. 만약 우리가 이 과정에서 긴장을 풀고 종래의 확증 편향 속에 나태하게 빠져든다면 아마 판단의 착오는 임계를 넘어 위험 수위에 치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는 건 아마도 파멸의 결과뿐이겠습니다.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필요 없는 정보를 걸러 내며 생존을 위해 유익한 예측을 해야 하는(p337) 과제는 사실 진화의 기본 방향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제를 수행하려면 "의식적 사고"가 필요하며(p167) 그런 사고는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가능합니다. 

이 책은 참으로 멋진 표현들을 담습니다. 진화는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특히 사람처럼 뇌 부분을 별나게 진화시킨 종이 한사코 기피하려 든 건 바로 "불확실성"입니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야말로 모든 두려움의 근원이며, 우리는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처럼이나 탁월한 지성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의식적 사고가 어떻게 가능한지. 답은 "그 불확실성 속으로 결코 두려움 없이 밀고 들어가는" 선택과 결단에 있습니다. 마치 우리 전통 속담처럼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 법"이니 말입니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자유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까요? 뉴턴 같은 과학자도 결정된 미래를 그저 수학적으로 계산해 낼 뿐이라며 암울한 결론을 암시한 바 있습니다. 반대로, 미래가 자유의지에 따라 설령 바꿀 수 있더라도 우리의 의지가 기여하는 바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저자는 그저 의지만으로 미래가 바뀌는 건 아니라며 정직한 확률을 말해 줍니다. 허나 그 과정에서 필사적으로 진실과 객관을 발견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있고, 그것은 아름답다고도 일러 줍니다. 이 책은 과학책이지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유력한 가설 하나도 일러 줍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이 거친 세상에서 하루를 버티며 생명의 불꽃을 틔우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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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도 -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네 번째 이야기 페러그린 시리즈 4
랜섬 릭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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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불교에서는 생로병사의 인과 연으로 오묘한 수수께끼를 설명하려 들지만 정답이 무엇인지는 우리들 중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순간순간 다가오는 힘든 현실의 숙제를 해결하는 데 골몰하고, 대체로 우리는 이런 이들을 성실하고 현실적이라며 칭찬합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정신이 딴세상에 가 있는 양 집중을 못하고 산만한데,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상한" 사람들은 혹시 어떤 특별한 사명을 띠고 다른 세상 다른 시간대에서 하는 일이 따로 있었던 건 아닐까요?

"예의 바른 사람들은 남의 대화를 엿듣는 게 아니다.(p21)" 그렇다고는 해도 때로는 예의 바른 이들조차 달갑지 않은 엿듣기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제이콥은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 적응해 나가지만, 만약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어느 정신병원에나 끌려갔을지도 모르는 위태위태한 신세입니다. 이 시리즈에 나오는 "이상한" 아이들, 이상한 사람들이 으례 그렇듯, 이들은 자신들을 이상하게 보는 주위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열심히 세상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분명 남 보기에 이상한 사람들,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게는 분명한 목적 의식이 있다는 게 중요하죠. 또, 알고 보면 이 세상이 이런 이상한 사람들의 노력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는 놀랍습니다. 물론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금은 설레며 할 수 있다는 게 페러그린 시리즈를 읽으며 언제나 느끼는 바이기도 합니다.

이상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즉 우리)에 의해 방해 받기도 합니다. "그들을 죽일 수도 있나요?" "그레서는 안 된단다." (p65) 규칙이 그러하며, 우리 생각에도 그 선을 넘으면 이미 세상을 지킨다는 그들의 명분이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합니다. 생명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며 이런 절실한 마음가짐 하나하나가 세상을 지탱하는 큰 기둥이기도 합니다. 남의 목숨과 재산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나쁜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 수가 일정 선을 넘는 순간 세상은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한" 사람들을 이처럼 응원하게 된다는 자체가 우리 독자들에게는 드물고 때로는 벅찬 경험입니다.

돌이켜 보면 세상은 언제나 위태로웠습니다. 특별한 악의를 갖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인간들로 위기에 처했으며, 이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딱히 있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나쁜 자들이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며 그들이 응징을 받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세상은 용케 버티며 여기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피부색이 검다고 이유 없는 차별을 받기도 했으며 도저히 용서 못 받을 살상이 끔찍하게 벌어졌고, 그럼에도 반성이란 전혀 없이 보복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도 그들 나름대로는 명분과 합리화가 있습니다. 들어 보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우리도 어떤 식으로건 풀어야 한다"며 필사적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그들의 못된 의지를 막으려는 선한 움직임에 저항하며 "이상하다, 잘못되었다"를 자격도 없이 외칩니다. 참 뭐가 정상이고 이상한 건지 끝없이 헷갈리는 판입니다.

세상을 지키려는 누군가(들)의 몸부림이 없었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진즉에 망했을 터입니다. 페러그린 여사와 이상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소명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압니다. 그 하는 일이 얼마나 막중한데도 밖에서 이들의 분투를 엿보는 우리들은 유쾌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들은 과연 자신들이 세상을 망치는 데 가담하는지, 아니면 작은 무엇이라도 기여하는지, 그저 낄낄거리며 방관하는지 의식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들 누구나 특별해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 첫걸음은 착한 마음의 회복과 냉철하고 정직한 반성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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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문명 건설 가이드 -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도구와 기계의 원리
라이언 노스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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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0으로 돌아간 상태, 즉 그라운드 제로에서 새출발을 하라면 참 상상만으로도 막막합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선조들이 일궈 놓은 문명의 혜택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먼 과거까지 거슬러올라갈 것도 없이, 우리 동시대의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편익은 또 어떻습니까. 내가 할 줄 모르는 걸 어떤 타인이 모르는 저 먼 구석에서 그의 재능을 발휘하는 중이기에 나의 편리, 나아가 나의 생존이 가능한 법 아니겠습니까.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잘도 정글에서 살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 힘으로는 일상의 영위조차 어렵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시간 여행이 혹 가능하다 가정하고 전혀 연고가 없는 시간대에 뚝 떨어졌을 때, 특정한 기술이나 장치, 노하우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를 재현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흥미롭게 독자를 가이드하는 내용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참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게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 맨땅에서 하나하나 지어올라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환경과 타인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겠죠.

감자는 유럽인들에게 "악마의 작물"이라 불렸는데 그 이유는 성경에 이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정도는 저도 어려서부터 읽은 바가 있는데, 이 책에서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특히 그리 받아들여졌다는 점 또 처음 알았습니다(또 그 이유에 대해서도 더 재미있는 이유를 저자는 제시합니다). 감자의 발견(감자 입장에서 전혀 "발견" 같은 게 아니겠으며 인류 그룹을 놓고도 유럽 대륙 거주자였던 이들에 한정하여 타당하겠지만)이 특히 농민들에게 축복이었던 이유는, 익히지 않고 먹을 시 독성이 남아 있어 여타의 동물에게 먹거리로 부적합했다는 서술이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각주에서 보노보 원숭이라는 예외가 있기에 "거의 다"라고 말했다는 문장에서 저자의 위트가 느껴집니다(사실 이 대목뿐이 아닙니다만).

인간은 많은 동물을 길들여 아예 다른 종으로 바꿔 놓았다는 이유에서 참 놀라운 동물이기도 합니다. 종의 탄생과 진화는 그저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 같은데 말이죠. 개나 고양이는 다른 가축과 달리 자발적으로 인간에게 다가온 점이 특이한데, 그 중에서도 고양이는 "1) 인간에게 뭘 바라지 않고도 유익한 봉사를 하며 2) 야생종과 애완용이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다릅니다. 사람이 일군 문명도 놀랍지만, 그 문명에 자기들 나름대로 적응하는(혹은, 적응당한) 동물들의 행태도 역시 경이롭습니다.

"죽기 싫으면 반드시 챙겨야 할 영양소" 필수 영양소는 다들 알듯이 탄수화물, 지질(요즘은 용어가 바뀌었더군요), 단백질 등입니다만 비타민 종류는 비교적 최근에 인식되어 여러 종류로 분류되었고 그 효능과 실체에 대해선 아직도 논쟁이 진행 중이긴 합니다. 학자들과 이 책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이유는 이들 비타민이 체내에서 직접 합성이 안 되므로 반드시 외부로부터의 섭취를 요하기 때문입니다. 비타민에 비타민이란 이름이 붙여진 건 비교적 최근이지만 사실 이 영양소에 대해선 고대 이집트인들도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비타민은 적어도 일곱 번 망각과 재발견을 겪었다는 게 저자의 평가입니다. 발견이라는 게 얼마나 상대적이고 인위적 개념인지 다시 확인 가능하며,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숨겨진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케플러는 스승 티코 브라헤의 관측 자료을 바탕으로 마침내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라는 걸 알아냈다고 하죠. 궤도가 원이 아니라는 게 성경의 해석(완전무결해야 하는 신의 창조 섭리)에 반한다고도 하지만 사실 타원이기나 하다는 점도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타원 역시 수학 방정식으로 우아한 표시가 가능한 도형이니 말입니다. 측정의 문제는 물리학에서도 가장 처음에 놓이는 단계인데, 이 측정의 문제에 초석을 쌓은 학자들, 선구자들의 업적이야말로 대단합니다. 저자가 말하듯이, 막연히 미지근하다 시원하다 정도의 평가, 느낌으로 일을 진행한다면 얼마나 잦은 시행착오로 고생해야 할지, 상상이 안 가는 문제이죠.

유형적인 기술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책 p375 이후에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 중 하나로 "논리"가 중요한데, 이 논리학은 우리 나라에서 그 기초를 중등 교육 과정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안 가르치기도 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의견을 조정해 가며 살아야 하는데, 그저 목소리만 높이면 다인 줄 아는 사람들, 혹은 자신이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유명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조건 진리인 줄 아는 사람들 때문에 합리적 공동선이 추구되지 않는 현실이 그저 답답할 뿐이죠. 고도의 기술이 발전하면 뭐하겠습니까. 멍청하고 열등감 가득한 인간들이 사회에 뭐 하나 기여는 못할망정 훼방 놓는 거 하나는 확실하게 해 내며 진보를 가로막는다면 다 죽는 길 외에 다른 결과가 어디 있겠습니까. 논리를 "발명" 중 하나로 꼽은 저자의 혜안이 대단하며, 보통 과학사학자들의 저작에서 간과되기 쉬운 이슈를 잘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만능주의는 정답이 아니며, 어떤 영역에서도 메타적으로 기능하는 장치가 하나 더 마련되어야 합니다.

정말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기라도 해서 엉뚱한 데서 길을 잃기라도 한다면, 부족하나마 이 책 한 권은 꼭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이 책에 실린 "각도기" 도면 하나도, 우리가 초등학생 때부터 요리조리 갖고 놀던 흔한 물품이지만 간단한 건조물 하나를 만들거나 정확한 마름질을 위해서 꼭 필요한 도구이며, 이것 하나를 쓰고 안 쓰고에 따라 엄청난 오차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는 여러 명언들이 인용되었는데, 그 출처를 놓고 (물론 원 발화자와 함께) "당신"을 병기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시간대에 떨어졌을 경우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여태 그 말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그 고안자, 저작권자인 양(저작권이란 말도 없겠지만) 잘난 척하며 내세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우리는 이미 이런 선구자들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기에 우리의 사고, 사소한 직업상의 업무 수행 하나하나가 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행해지는 거죠. 우리는 앞선 기여자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고, 한편으로 이런 기여를 미세하나마 루틴 속에서 재현, 재생하는 중이라는 점도 새길 만합니다. 내가 하는 게 내가 하는 것일뿐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빌려 다시 활동 중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연속성을 지닌 문명의 속성입니다. 그 연속성 밑에 도도한 시간이 깔려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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